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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년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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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1-07 19:15 조회6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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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엿뉘엿 져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이윽토록 창가에 서있던 김광성은 방안의 쪽무이바닥우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였다.

김광성은 이 몇해동안 김정일동지의 각별한 보살피심속에 설계사업소 기사장사업도 하고 당일군의 중책도 맡아보고있지만 아직 한번도 어제처럼 엄한 비판을 받은적이 없었다. 지난밤은 때식도 잊고 사무실 걸상에 기댄채 뜬눈으로 꼬박 새웠다. 그러나 자기의 아픈 마음을 누를길 없어 한동안 방안의 여기저기로 오가다가 책상빼람의 속사첩을 꺼내여놓고 한장한장 번져보기 시작했다.

퍼그나 오래전에 그가 짬이 생길 때마다 그렸던 그림들이였다.

여러가지 색갈의 마지크로 속사한 건축물들, 빠리의 노트르담대사원도 있고 베이징의 고궁도 있었다.우리 나라의 자연풍경들과 연필화로 된 인물초상들, 유화도 있고 수채화도 있었다.

몇장을 번지다가 제대군복차림을 한 녀성의 초상을 보고는 오래동안 생각에 잠기였다. 옥주, 그렇게 부르면 금시 대답할듯 옥주는 정답게 마주보고었었다.

조국해방전쟁때 녀성의 몸으로 수령님의 구상을 받들고 평양시복구건설계획도 작성에 참가한 설계가는 옥주밖에 없었다. 처녀는 영예로운 사업에 스물세살의 꽃다운 청춘을 바치고 한장의 그림으로 남았다.

그 다음장을 펼치자 풍경화 《모란봉의 봄》이 눈에 띄였다. 그는 풍경화를 한참이나 묵묵히 바라보았다. 봄날의 모란봉을 무척 좋아한 옥주를 생각하며 그렸던 풍경화인데 그것이 아직 미완성으로 묵어있는것을 보니 어쩐지 예술의 세계와 떨어져 살고있는 자신의 모습처럼 가슴아프게 느껴지는것이였다. 김광성은 당장이라도 풍경화를 완성하고싶은 생각이 치밀어올라 책상우에 필요한 화구들을 펼쳐놓았다. 그리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 그리다보니 소생하는 계절의 청신함과 약동감이 전혀 살아나지 않았다. 손은 뜻대로 놀지 않고 갑자기 속이 출출해서 책상빼람을 열어보니 빈 빵봉지들만이 눈에 띄였다.

《제기랄…》

김광성은 보온병안의 맹물을 한고뿌 따라 꿀꺽꿀꺽 마시고 다시 붓을 들었으나 성수가 나지 않았다. 가슴속의 정열이 다 식어버린듯한 그의 귀전에 창조의 세계를 떠나선 안된다고 하시던 김정일동지의엄한 질책의 말씀이 다시금 뜨겁게 울려왔다. 내가 몇해동안 그림을 손에서 놓았더니 이렇게도 퇴보했는가? 김광성은 한장의 풍경화앞에서 가슴을 두드리며 몸부림이라도 치고싶었다. 그러던 그는 준엄했던 전화의 그날 불바다속으로 측량기를 메고 뛰여다닌 시절을 더듬어보며 못잊을 추억속에 깊이 잠기였다.

이 세상에 청춘시절이 없었던 사람이란 없고 리상이 없이 청춘시절을 보낸 사람도 없다. 김광성에게도 역시 가슴을 불태운 청춘기가 있었고 그 시절에 움트고 꽃핀 리상과 포부가 있었다.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젊은 시절의 그 꿈은 김광성의 가슴속에 창조의 귀중함을 깊이 새겨주었다.

그것은 북조선건축가동맹 연구부에서 일하다가 조국광복 5돐을 맞으며 동평양호텔을 건설하던 무렵이였다. 그 호텔을 설계할 때 김광성은 한 처녀설계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서로 오누이처럼 친밀해졌다. 건축에 대한 불타는 열망이 두 젊은이를 뜨겁게 융합시킨것이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웃기 잘하는 홍옥주… 그는 꽃나이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지독한 독학가로 소문난 처녀였다. 대체로 그 나이의 처녀들은 누구나 다 남보다 뒤지기 싫어하는 장점을 하나씩은 가지기 마련이다. 꿈도 많고 이른 봄날의 꽃샘마냥 시샘도 많은 시절이여서일가. 하지만 처녀시절의 시샘은 오히려 응석처럼 사랑을 받는것이 례상사이고 또 그런 사랑에 떠받들려 처녀들은 제나름의 아름다운 장래를 가꾸려고 바질바질 끓는다. 개중에는 남성들도 무색해질만큼 놀라운 정력으로 자기의 전도를 개척해나가는 녀성들도 적지 않다. 홍옥주는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수 있었다.

평양철도공장 제관공인 아버지를 닮아 성격도 남달리 활달했던 옥주는 설계가가 되려는 꿈을 안고 노상 책속에 파묻혀살았다.

그 남다른 열정의 도움으로 옥주는 드디여 도시설계사업소에 입직한지 3년만에 기사자격을 받게 되였다. 그때부터 그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김광성은 처녀를 무척 사랑해주었다. 처녀 역시 그를 몹시 따랐다.

《광성동무, 동무의 동평양호텔설계는 정말 훌륭해요. 동문 꼭 성공할거예요. 저도 적극 돕겠어요.》

김광성은 처녀의 말에 고무되여 밤낮없이 호텔건설장으로 달려가군 했었다. 호텔은 그가 설계한대로 우쩍부쩍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 호텔은 자기의 모습을 다 갖추기전에 참혹한 파괴를 당했다. 그들의 행복한 생활도 동평양호텔건설도 전쟁으로 하여 중단되였다.

미제침략군 비행대가 평양을 무참하게 폭격한 날 동평양호텔도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폭탄세례를 피할 길이 없었다.

그 호텔에는 젊은 건축가 김광성의 넋과 함께 옥주의 노력이 깃들어있었다. 김광성은 자기들의 창조물이 산산히 부서져버리는것을 그냥 볼수 없어 금방 미장을 한 옥상으로 뛰여올라갔다.

《이 날강도놈들아!》

그는 두주먹을 쳐들고 목청껏 절규했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옥상으로 달려올라왔다. 그들은 파편이 날리는 불길속에서 서로 부둥켜안았다. 그날부터 웃기를 잘하던 옥주의 얼굴에서는 웃음을 더는 볼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 두 젊은이는 손을 맞잡고 군사동원부로 찾아갔다. 옥주의 탄원은 허락되였으나 김광성은 부결되였다. 그가 전시환경에 맞게 개편된 평양시도시경영국 설비관리처사업을 맡게 된것과 관련하여 부결된것이였다. 김광성은 하는수 없이 전선으로 떠나는 처녀를 평양역에서 바래워주었다. 옥주는 군용렬차가 출발하는 순간 자기의 손을 잡은채 따라오는 김광성에게 전승의 그날까지 잊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뜨겁게 당부하였다.

조국해방전쟁의 준엄한 나날은 흘러갔다.

1952년 봄 김광성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 따라 평양시복구계획도를 작성하기 위한 사업에 참가하게 되였다. 처음에 김광성은 그 놀라운 사실이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전쟁이 한창인데 벌써 전후의 복구계획도를 작성하다니… 그러니 우린 이 전쟁에서 이미 승리한것이 아닌가. 이겼다!)

김광성은 소리쳐 만세라도 부르고싶은 크나큰 기쁨에 잠겨 옥주에게도 군사우편함으로 소식을 전했다. 설계집단은 련못동 좌측 돌박산방공호속에 거처를 잡았다. 김광성은 낮에는 시내에 들어가 재더미속을 헤치면서 측량을 하고 밤에는 방공호속에서 도면을 그렸다.

어느날 그는 모란봉의 최승대밑에 새파랗게 단장한 풀밭에 앉아 재더미로 된 평양시를 굽어보며 전후에 일떠세울 중심광장과 중앙거리형성안을 작성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 아래 청류벽밑에서는 대동강이 유유히 흐르면서 해빛에 번쩍이였다. 잔디밭에는 민들레들이 다분다분 피여있었다.

전쟁이지만 봄은 소생의 빛을 아낌없이 뿌리고있었다. 작도에 정신이 팔렸던 김광성은 때마침 저 앞쪽 떨기나무숲속에서 들려오는 가벼운 발자국소리를 들었다. 그를 향해 다가오던 한 처녀가 그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꼿꼿이 멈춰섰다.

《옥주!》

김광성은 반갑게 부르짖었다.

《광성동무!》

처녀는 넘어질듯 달려와 김광성의 손을 잡았다. 땀냄새와 화약냄새가 확 풍기였다.

《어떻게 왔소? 내가 여기 있는줄은 어떻게 알구?》

김광성이 처녀의 얼굴을 마주보며 다급히 물었다.

《왜 모르겠어요. 난 전선에서도 동무가 일하는 곳을 알고있었어요. 나한테 편지한 생각이 안나요?》

《내 편지를 받았단말이요? 그런데도 회답은 해주지 않았구만. 남은 눈이 까매서 기다리는것두 모르구.》

《회답할 필요가 없었어요. 난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받고 동무한테로 다시 왔어요. 돌박산방공호에 갔댔어요. 거기서 곧바로 찾아오는 길이예요.》

옥주는 숨이 차서 어깨를 들먹이였다.

《그렇소? 챠, 이런 반가운 일이라구야!》

김광성은 처녀의 손을 꼭 그러잡은채 기뻐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두 젊은이는 행복에 겨워 잔디밭에 나란히 앉았다. 옥주의 눈이 별처럼 반짝이였다. 처녀는 시라도 읊듯이 부르짖었다.

《오, 평양! 내가 왔다. 페허가 된 너를 보니 가슴이 아프지만 이젠 우리 이 빈터우에 새로운 네 모습을 세우련다. 적들은 파괴하지만 우리는 건설하련다. 파괴를 이겨내고 자랑찬 평양의 건설자가 되련다.》

옥주는 명랑하게 웃었다. 전쟁은 그를 훨씬 더 쾌할한 처녀로 만든듯싶었다.

《광성동무, 우리 평양을 세상에서 제일 으뜸가는 도시로 일떠세우자요.》

《난 옥주의 그 아름다운 리상에 전적인 찬성이요!》

두 젊은이는 이튿날부터 한조가 되여 시내로 나가서 측량에 달라붙었다. 김광성이 측량기를 메면 옥주는 뽈대를 쥐였다. 서로 엇바꾸어 메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김광성에게 녀성을 데리고 다니며 수고가 많겠다고 했으나 공연한 걱정이였다. 반대로 그가 옥주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2년동안이나 전선에서 단련된 옥주는 매일과 갈이 덤벼드는 적기의 맹폭격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김광성이에 비할수 없을만큼 정황판단이 빠르고 행동이 날랬다.

옥주는 이따금 김광성이가 무모한 용감성을 발휘하여 포연속으로 뛰여다닐적이면 발랄하게 웃어대군 하였다. 그러면 김광성은 자기가 옥주의 눈에 일개 사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것을 깨닫고 멋적게 들이대였다.

《옥주, 너무 구대원인체 말라구.》

《광성동문 신입대원자격도 없어요. 중요한 임무를 맡고 눈먼 파편에라도 상하면 어쩔려구 그래요.》

옥주의 충고가 옳았다. 그렇다고 순순히 굽어들기도 거북한 일이였다. 그가 자기옆에 인정많은 간호원이 있는데야 무슨 걱정이겠는가며 적당히 얼버무리면 옥주는 웃었다. 그들한테 고박사란 토목기술자가 배속되여 자주 두 젊은이의 싱갱이질에 끼여들군 했는데 그때마다 옥주의 편역을 들었다. 일명 《뻰찌다리》라고도 불리는 그는 남이 열걸음 나가는사이 겨우 세네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느렁뱅이였다. 하지만 그는 눈감고도 평양시내바닥에 묻혀있는 지하구조물과 하수도망 배선상태를 손금보듯 아는 사람이다. 고박사라는 별명도 그래서 붙어있는 그 느렁뱅이 토목기술자가 없이는 한걸음도 설계를 추진시켜나갈수 없었다.

이전에 김광성은 고박사의 느린 동작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지금은 옥주가 전적으로 담당해주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젠 자식을 둘씩이나 둔 고박사가 옥주의 손에 끌려다니면서 《요즘은 기운이 부쩍나 녀성과 일하는 멋이 있거든.》 할 때면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지군 하였다.

한번은 고박사덕분에 굉장한 횡재를 하고 환성을 올렸다. 고박사가 파괴된 백화점지하에서 큰 후방창고를 발견한것이였다. 각종 의류들과 피륙, 녀자속내의, 유방대까지 나와 옥주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통졸임상자와 술통만 해도 여라문개 잘되였다.

《이놈의 두더지굴에 별 잡동사니가 다 있군. 광성동무, 오늘밤엔 한대포 하게 됐네그려.》

고박사가 입이 귀밑으로 돌아가게 흐뭇이 웃었다. 하지만 옥주한테 물자반출권한을 맡기는통에 지하창고는 하루동안에 거덜이 났다. 옥주의 제의에 의해 겨우 한번 맛이나 보게 술을 내고는 전량을 전선으로 보내였던것이다. 전선군의소 간호원들이 소독제가 떨어져 속상할 때가 많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적극 찬성해주었다. 나머지 물품들은 전재민 구제용으로 쓸수 있게 시인민위원회 해당부서에 전부 넘겨주었다. 옥주는 측량일에 골똘해있다가도 폭격에 부상당한 사람들만 보면 참지 못하고 나서서 간호해주었다. 그는 때때로 불붙는 시민들의 집안으로 뛰여들어가 사람들을 건져냈다. 밤에는 측량을 할수 없어 낮에만 하였다. 폭격이 심한 낮이면 누구도 시내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김광성은 이전에 남들이 뭐라고 하건말건 놈들의 비행기가 날치는 날에도 더러 측량기를 메고 나서군 했지만 옥주와 함께 일한 뒤로는 분별있게 행동하였다. 그런데 하루아침 옥주가 그를 조용히 밖으로 불러내였다.

《가자요.》

《일없겠소?》

김광성이 그렇게 묻자 옥주는 누가 할 말을 하는가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서 떠날준비를 하고 나오기나 하세요.》

김광성은 며칠째 방안에 앉아 속이 쑤시던 참이라 옥주의 요구에 제꺽 응했다. 그가 측량기를 메고 밖으로 나서자 곁에서들 안심치않아 하며 말리였다. 김광성은 그들에게 벌써 저쯤 아래에 내려가서 기다리고있는 옥주를 눈짓해보였다.

《일인즉 이렇게 됐소.》

얼마후 옥주는 그와 나란히 걸으면서 방금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었다.

김광성은 어떻게 하면 옥주를 웃길가 하고 한참 궁리하다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옥주가 몇살인가고 묻더구만.》

《그래서요?》

《열 합하기 둘, 아마 그쯤될거라고 했지》

《거짓말!》

옥주는 웃고 김광성도 따라웃었다.

옥주는 짜장 십대의 천진한 소녀처림 응석기가 느껴지게 김광성의 측량기를 빼앗아메고 대신 뽈대를 넘겨주었다. 그리고나서 고선생은 왜 데리고 오지 않았는가, 집에서 어머님이 기다릴수 있으니 한달에 한번씩은 꼭 들려보라는 등 별소리를 다하였다. 김광성의 웃단추가 떨어진걸 보고는 가볍게 나무라기도 했다. 이날따라 옥주는 여러가지로 살뜰한 말을 많이 하였다.

(이거, 이상한걸…) 옥주가 언제 오늘처럼 다변한 때가 있었던가. 김광성은 그런 생각끝에 이제라도 적당히 구실을 붙여 되돌아갈가 하다가 그냥 내처 걸었다. 그들이 전번에 측량하다만 동평양지구에 당도하자 해가 한길이나 높이 떠올랐다. 구름 한점없이 맑게 개인 날이였다. 헌데 아침부터 적의 구라망편대가 날아와서 사동근방을 폭격하였다. 아군의 대공화력에 못견디여 인차 물러가긴 했지만 조짐이 그닥 좋지 않았다.

김광성은 벽채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의 근처에 급히 측량기를 세웠다. 잠시도 우물거릴 겨를이 없었다. 한시바삐 필요한 측량을 끝내가지고 돌아갈 생각밖에 없었다.

《옥주, 여기 와서 측량기를 보오, 내가 뽈대를 잡을테니까.》

《오늘은 왜 이렇게 서둘러요?》

《적들은 폭탄을 퍼붓지만 우린 맨손이 아니요?》

《맨손이라니요, 우린 래일의 평양을 설계하지 않아요?》

《참 그렇지. 고박사가 뭐랬드라. 옥주동무하고는 일하는 멋이 있다구 했지, 자, 시작해보자구.》

김광성은 뽈대를 쥐고 기운차게 달려갔다. 측량기에 얼굴을 바싹 붙인 옥주의 손짓에 따라 그는 좀더 멀리 갔지만 본래 자리로 되돌아오군 하였다. 오늘은 어떻게 된 노릇인지 옥주도 마음의 균형을 잃은것 같았다. 좌우로 뽈대를 움직이면서 반복동작을 시키는 회수도 잦았다. 옥주가 세번이나 측량기위치를 옮기면서 《주인》역할을 하는 동안 김광성은 충실한 뽈대수로 륙상선수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땀을 흠씬 뽑았다.

《옥주, 오늘은 꽤나 혼쌀내우누만 옥주한테 잘못 보인 일이라도 있는게지?》

《왜 이런지 나도 모르겠어요. 조금만 참아요, 광성동무.》

《아껴주니 좋구만.》

두 젊은이는 그만 마주 바라보며 즐겁게 웃었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날아온 적기가 급강하하기 시작하였다. 미처 몸을 피할 사이도 없었다. 기총사격소리가 귀청을 찢어대였다. 둘은 엎드렸던 자리에서 솟구쳐일어나며 《저기로!》하고 동시에 소리쳤다. 가까운 곳에 마사진 건물의 기초구뎅이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채 못미처 옥주가 무엇에 걸려 넘어졌다. 뒤따라 김광성이도 엎어지며 옥주를 부둥켜안았다. 순간 폭풍이 인듯 했다. 김광성의 몸은 허공에 떴다가 떨어져 구뎅이안으로 데굴데굴 굴러들어갔다. 옥주가 두손으로 힘껏 그를 떠밀쳐버린것이였다. 김광성은 정신없이 다시금 뛰쳐일어나면서 옥주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옥주는 바른손으로 가슴우의 상처를 누르고 곱게 누워있었다.

동그스름한 얼굴은 흙 한점 묻지 않고 해말쑥하였다. 발깃한 입술사이에서는 또다시 무슨 말인가 흘러나올것만 같았다. 김광성은 옥주의 가늘게 구부러진 눈섭이며 날이 선 코, 도두룩한 입술을 넋없이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와락 그를 그러안고 몸부림치며 《옥주… 옥주…》하고 소리쳐 불렀다. 굵은 눈물방울이 옥주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우에 떨어져 이슬처럼 반짝이였다.

김광성은 해가 지고 날이 어슬어슬할 때까지 옥주의 곁에 그냥 앉아있었다.

그해 김광성은 세계건축가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을 출발하였다. 역전에는 조선건축가동맹과, 외교부일군들, 고박사를 비롯한 여러명의 설계가들이 나와서 그를 전송해주었다.

그들속에 반드시 있어야 할 옥주의 얼굴은 볼수 없었다.

그러나 옥주는 크나큰 영예와 행복을 안고 떠나는 그의 가슴속에 뜨겁게 간직되여 있었다.

조국은 아직도 전쟁의 시련을 겪고있었다. 어느 역에서나 대포와 땅크, 각종 군수물자를 만재한 렬차들이 눈에 띄였다. 솔가지들과 풀잎으로 위장한 그가 탄 렬차도 적들의 공습성화에 밤에만 어둠을 타고 달리였다. 광성은 희생된 옥주를 그려보며 마음속으로 굳은 맹세를 다졌다.…

김광성은 풍경화 《모란봉의 봄》을 당겨놓고 다시 붓을 들었다. 포화속에서 움트고 꽃핀 그날의 그 열정인양 심장이 세차게 높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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