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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년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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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0-04 15:49 조회5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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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양역사의 시계바늘이 아침 아홉시를 가리키고있었다. 금방 렬차에서 내린 미영은 트렁크를 들고 역전광장에 잠시 멈춰서서 키를 다투며 우뚝우뚝 치솟은 고층건물이며 탁 트인 수도의 넓은 거리를 홀린듯이 바라보았다. 중키에 몸이 호리호리하고 스물대여섯 나보이는 한창나이의 처녀였다. 흰 샤쯔에 곤색치마를 수수하게 받쳐 입었으나 갸름한 얼굴생김은 여간만 예쁘장스럽지 않았다. 쉬임없이 꼬리를 물고 장쾌히 달리는 승용차들, 뻐스들과 무궤도전차들, 류달리 정갈하고 화려해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며 하나같이 키가 늘씬한 교통안전원들의 산뜻한 제복, 상점과 식당의 간판이며 다양한 거리장식에 취한듯 미영은 눈을 떼지 못하였다.

재작년에 평양건설건재대학을 졸업하고 사리원도시설계사업소에 배치받은 미영은 자기의 첫 설계를 들고 평양에 왔으나 마치 난생 처음 찾아온것처럼 모든것이 새롭게 느껴져 오도카니 서있기만 하였다. 황주역앞의 농촌마을에 집을 두고 매일같이 사리원으로 통근하면서도 고생스럽게 완성한 설계같은것은 가뭇 잊고 평양풍경에 그만 취해있었다. 평양역사의 탑시계가 아홉점을 쳤다.

(여덟시에 황주에서 떠났는데 벌써 오다니?)

황주에서 평양은 기차로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미영은 2년전 대학을 졸업하고 렬차에 올라 평양을 떠날때는 어째선지 황주도 사리원도 아득히 먼 고장처럼 여겨졌었다.

지금도 그때도 렬차는 꼭같은 거리를 꼭같은 시간에 달렸겠지만 평양으로 올 때와 평양에서 멀어져갈 때의 느낌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미영은 한참후에야 걸음을 옮기였다. 역광장을 건느면 무궤도전차를 탈수 있었으나 일부러 인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김책공대앞을 지나자 그의 눈에 평양대극장의 웅장한 자태가 눈앞에 다가왔다. 추녀끝을 건듯 쳐들고 금시 하늘로 날아오를것 같은 합각지붕을 떠이고 그전날의 모습 그대로 웅건하게 솟아있는 대극장을 대하는 순간 미영은 아버지의 모습을 뵙는것 같아 가슴이 저려들었다. 대극장은 건축가인 그의 아버지 심운호가 대상책임자로 직접 설계까지 맡아한 건물이였으며 명성을 떨치게 한 1960년대의 걸작이였다.

미영은 눈굽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새파란 잔디가 주단처럼 깔린 극장옆의 빈 걸상에 트렁크를 놓고 그옆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극장의 수려한 자태를 눈여겨보았다. 그전과는 달리 자격증을 가진 건축설계가의 안목으로 이리저리 음미해보아도 역시 천분을 안고 태여난 설계가의 뛰여난 재능이 요소요소에서 느껴지는 걸작이였다.

저렇듯 훌륭한 조형미를 갖춘 민족적형식의 걸작품을 설계해 낸 아버지가 어찌하여 종파놈들의 압력에 무릎을 꿇고 륜환선거리에 우리 식이 아닌 볼꼴 사나운 살림집을 세웠는지 지금에 와서도 리해하기 어려웠다. 언제인가 아버지자신이 말했던것처럼 정말 망녕이 든탓이였을가? 길다란 참대비자루로 잔디밭사이의 아스팔트유보도를 쓸면서 채양넓은 해가림모자를 쓴 공원관리원아주머니가 미영이쪽으로 다가왔다. 다른 또 한명의 관리원이 두간두간 쓸어 모아놓은 쓰레기를 딸따리의 함통에 담아 실으며 그뒤로 천천히 따라왔다.

미영은 눈치코치없이 유보도를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을 방해하며 멍청하게 걸상에 앉아있는 자신이 민망하고 쑥스러웠다. 그는 트렁크를 집어들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할일 없는 사람처럼 지낼 계제가 못되였다.

될수록이면 려관신세를 질것없이 볼일을 빨리 보고 오늘 밤차로 황주의 동생들곁에 돌아가야 한다. 그는 아버지가 황주에서 농장과수반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이후 지난해 이맘때 어머니마저 잃었다. 창졸간에 동생들을 돌봐야 하고 어머니구실을 하게 된 그는 늘 마음못놓고 때없이 두동생을 근심하는 다심한 처녀로 되여버렸다. 아직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처녀가 《엄지닭》노릇을 하게 된셈이였다. 그가 집을 떠나 평양에 출장온것은 자기의 처녀작을 심의에 제출하기에 앞서 공정하고 가치있는 의견을 서슴없이 말해줄수 있는 건축전문가를 찾아가서 사전에 의견을 받아보기 위해서였다.

평양에 있는 건축계에는 지난날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던 친지들이 많았다. 그가운데는 인민설계가의 명예칭호까지 받고 상당한 지위에서 책임적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직 명예칭호와 학위학직을 받지 못했지만 공로나 재능에서는 건축계의 거장들에 못지 않은 중진의 설계가들도 있었다. 코흘리개시절부터 자기를 잘 알고있는 그들은 미영의 첫 《산아》가 어떠한지 주저없이 감별해줄수 있고 만약 미숙한 설계이면 온전한것으로 수정완성할수 있는 훌륭한 조언을 줄것이였다.

미영은 대극장앞마당가에 있는 공중전화소로 다가갔다. 그는 자동전화번호안내소에 2년전에 사용하던 전화번호가 달라지지 않았는가를 확인해 본 다음 도시설계사업소의 건축실을 찾아 남정기선생을 바꿔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화를 받는 어떤 남자목소리가 누가 어디서 무슨 일로 찾는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꽤 까다롭게 굴더니 나중에는 갑자기 친절한 음성으로 남정기선생은 몇달전부터 중앙도서관에 나가있다면서 전화로 찾기는 어려우니 꼭 만나겠으면 거기 가서 인민대학습당 설계집단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미영은 같은 설계사업소의 소장인 림성욱선생이 요즘 어느 대상에 나가는지 알아보려다가 그만두고 송수화기를 걸어놓고말았다. 소장 림성욱으로 말하면 미영의 아버지가 건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맹활약하던 시절에 아버지와 가장 가까이 지내던 벗이였고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스스럼없는 사이였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크나큰 실책을 범하고 건축계의 일선에서 물러난 다음에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편지 한장 교환한적이 없이 지냈을뿐아니라 가족과 외따로 떨어져 대학기숙사에 남은 미영이를 따뜻이 찾아준 일도 없었다.

미영이도 기숙사생활을 하는 전기간 그전날의 아버지친구이던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 지난날의 그런 어성버성한 감정탓인지 자기의 처녀작을 감정해주고 방조를 주는데서 림성욱소장만큼 적당한 권위자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영은 선뜻 그를 찾아가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비록 그보다 건축계에서 활약한 년조는 많지 못하고 권위도 확고하지 못하지만 전도유망한 실력자로 지목되고 있는 남정기쪽에 훨씬 더 마음이 끌렸다.

새도 날다가 앉고 싶은 가지가 있다지 않는가.

미영은 중앙도서관에 갈 작정으로 지하건늠길계단을 내려갔다.

약간 서늘한 기운이 풍기는 지하건늠길안에서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세살쯤 났을 사내애가 맞은편 출입구쪽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며 엉엉 울고있었다. 이따금 엄마를 부르군 했다. 제 엄마를 따라 거리에 나왔다가 혼자 떨어진 아이임이 틀림 없었다. 미영은 얼른 어린애곁으로 다가갔다.

《얘야, 엄마를 잃어버렸니?》

머리를 어루 쓸어주며 다정히 묻자 어린것은 오동통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머리를 까딱거렸다. 미영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여 어린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말아, 이제 아지미가 엄마를 찾아줄게.》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어린것은 대뜸 울음소리를 그치고 흐느끼기만 했다.

《네 이름이 뭐지?》

어린것은 흐느낌소리를 삼키며 혀 짧은 소리로 대꾸했다.

《며ㅡ 엉처리, 유명ㅡ 엉처리.》

《유명철이, 너 참 용쿠나. 엄마이름은?》

《시ㅡ 녜영.》

이번에는 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애가 입고있는 인형아기 같은 깜찍한 옷과 구두로 보아 애어머니가 퍽 젊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신혜영! 명철인 엄마이름도 다 아는구나. 집은 어디지?》

어린것은 중성동 몇반 몇층 몇호라고 똑똑하게 번졌다. 여간 영특한 아이가 아니였다.

《어느 쪽으로 가면 집이 있는지 너 아니?》

명철은 중성동쪽으로 올라가는 출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럼 아지미하고 같이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조금만 기다리면 명철이 엄마가 올거야 》

명철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미영이 애의 손을 잡고 그 애가 자기네 집이라고 손가락질한 다층주택의 모퉁이를 꺽어돌아가려는데 뒤쪽에서 명철의 이름을 넋없이 부르며 허겁지겁 달려오는 젊은 녀인이 나타났다. 뒤를 돌아본 명철은 《엄마!》하고 소리치면서 미영의 손을 뿌리치고 제엄마한테 아장아장 마주 걸어갔다. 명철이가 엄마한테 안기는것을 보니 미영이도 마음이 놓였다.

그는 어데 갔댔느냐고 나무라와 하는 젊은 어머니의 말과 저 아지미와 같이 집으로 오댔다고 대답하는 어린것의 말소리를 귀곁에 들으며 몸을 돌려 중앙도서관쪽으로 향하였다. 그렇지만 몇걸음 가지 못해 뒤따라 쫓아온 명철이어머니에게 붙잡히고말았다.

《인사도 받지 않고 이렇게 훌쩍 달아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잠간 땀이라도 들이구 가세요. 우리 명철이를 생각해서라도?》

미영의 손에서 트렁크를 뺏아들며 잡아끄는 녀인의 얼굴에 땀이 질펀하였다. 머리는 미용원에서 나온 모양 산뜻하고 우아했다.

《고맙습니다만 저는 가야 합니다.》

미영이 사양하며 트렁크를 도로 뺏으려는데 이번에는 어린것이 그의 손을 잡아끌며 《아지미, 가지마.》하고 매달렸다. 미영은 그들 모자의 후더운 인정에 지고말았다.

《미용원에 데리고 갔었는데 머리를 하고 나오니 대기실에서 놀던 애가 없어지지 않았겠어요. 정말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녀인은 2층의 중간쯤에 자리잡은 집의 문을 열어주며 미영의 잔등을 떠밀었다. 널다란 전실에서 첫눈에 안겨 드는것이 삼면경대였다.

미영을 귀빈처럼 응접실 겸 서재로 쓰는것 같은 웃방으로 데리고 들어간 녀인은 선풍기부터 틀어놓았다.

《트렁크를 든걸 보니 어디 출장갔다 오는것 같군요.》

《평양에 출장을 왔어요.》

《그럼 퍽 시장하겠군요.》

녀인은 무엇을 대접하려는지 쏘파에서 얼른 일어섰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아요. 황주에서 조반을 먹고온걸요.》

《엄마, 얼음사탕!》

명철이가 무엇부터 대접해야 하는가를 알려주기라도 하려는듯이 그렇게 소리치고는 쪼르르 아래방으로 달려내려갔다. 녀인도 아래방으로 내려간 사이 미영은 남의 집을 구경하는 녀인의 야릇한 심정에 잠겨 방안을 둘러보았다. 퍼그나 잘 정돈된 아늑한 방이였다. 한쪽의 량켠에 갈라세운 커다란 두개의 책장에는 호화장정을 한 각종 책들이 꽂혀있고 그가운데 세운 장식장에는 여러가지 진귀한 도자기류들이 놓여있어 방안의 품위를 한결 돋구어주었다. 그옆에 바이올린케스가 놓여있고 맞은편 벽에는 목란꽃이 꽂혀있는 꽃병을 그린 한점의 조선화가 걸려있다. 방안은 문화적소양이 높은 사람들이 사는 집답게 조화롭게 장식되여있었다.

미영은 언제인가 자기가 꿈 꿔보던 가상적인 세대주방을 오늘 이 생면부지의 집에서 보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부신 해빛이 비쳐드는 창가의 책상우에는 미영의 눈에 퍽 익은 녀인의 석고상이 놓여있었다.

애인을 그리며 명상에 잠겨있는 녀인의 립상이였다. 바로 그와 꼭같은 조각상은 한때 미영이도 가지고 있은적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대하게 되는 조각상이여서 그런지 미영은 저도 모르게 책상에 다가갔다. 그 조각상에 가리워져있던 하나의 사진액틀이 눈에 띄였다. 액틀속에는 갓난아기를 안고 찍은 젊은 부부의 천연색사진이 끼워져있었다. 사진아래에는 두드러지게 박아넣은 하얀 글자들이 유표하게 눈을 끌었다.

《명철의 백날기념》

저절로 피여나는 웃음을 머금고 사진을 들여다보던 미영은 흠칫 놀랐다.

(아니? 이 동무가…)

미영은 자기의 가슴속에 첫 사랑의 불꽃을 지펴주었던 유민호를 알아본것이였다. 그는 이전에 유민호를 만나 속삭일때면 지금 보는것 같은 이런 방을 꿈꾸었었다. 하지만 유민호는 그를 버리고 그 꿈을 다른 녀자와 함께 누리고있었다.

미영은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그는 황황히 트렁크를 집어 들고 전실로 나왔다. 마침 주부도 부엌에서 손님대접으로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고 명철이도 아래방에 내려가있어 그를 보지 못했다. 미영은슬그머니 복도로 나와 바삐 계단을 내려갔다. 몇개의 아빠트를 지나 어느 한 소공원에 들어서서야 그는 걸음을 늦추고 짙은 그늘아래 놓인 빈 나무걸상에 주저앉았다.

조용한 주택거리의 어디에선가 유정한 바이올린소리는 그냥 지꿎게 들려왔다. 지난날 밤마다 그의 가슴을 설레게 한 그 바이올린 소리였다. 그의 일가가 평양에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던 마지막시기 미영이네의 아래층에는 외교부의 한 점잖은 일군네 가족이 이사해왔다. 그 다음부터 미영은 거의 매일밤 아래층에서 울려오는 바이올린소리를 듣게 되였다. 그는 바이올린의 선률을 자기의 다감한 가슴속에 몰래 받아들이면서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군 하였다. 자기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 그 바이올린연주가를 미영은 한다하는 전문연주가일것이라고 상상하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수수께끼의 인물은 미영이가 다니는 건설건재대학의 졸업학년 학생이였다. 이름은 유민호, 풍채 좋고 호인다와 보이는 아버지처럼 말쑥하게 잘 생긴 청년이였다.

미영은 어째서인지 그 외교부 과장의 아들에게 마음이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자기의 마음에서 날이 갈수록 성숙되여가는 련정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무렵엔 미영의 아버지도 외국출장이 잦아 자연히 아래집 외교부 과장과의 접촉이 많아졌다. 그 틈에 끼워 유민호와 심미영의 미묘한 관계는 예상외로 빨리 얽혀갔다. 유민호의 부모들은 자기네 아들과 미영의 우정이 깊어가는데 대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미영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날적마다 미영이 칭찬을 할래 아들자랑을 할래 공연한 수고를 하였다.

부모들의 눈먼 처사는 자주 미영이와 유민호의 화재에 재미있는 웃음거리로 되군 하였다.

대학을 졸업하던 날 유민호는 아직도 재학중인 미영에게 사랑의 녀인상을 선물하면서 자기에게 있었서 미영은 조각의 녀인처럼 생각된다는 뜻깊은 이야기를 하였다. 조각의 녀인이 달라지지 않는 한 자신도 달라지지 않을것이라고 하였다. 미영은 무상의 행복을 체험하였다.

그후 미영이네 집이 황주로 내려가고 미영이 혼자 대학기숙사에 떨어졌을 때에도 유민호의 태도에서는 별로 변함이 없는것처럼 보였다. 그는 미영이네가 자기네 웃층에서 살던 때처럼 전과 마찬가지로 그 주간에 있은 자기의 《생활경과보고》를 어김없이 하군 하였다. 미영에게 좀 이상스럽다고 생각된것은 그가 황주로 내려간 미영이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일언반구도 입에 올리지 않는것이였다. 그 의문이 풀리기전에 또 다른 이상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한주일에 한번씩 토요일마다 어김없이 만나러 오군하던 유민호의 발길이 차츰 떠졌다. 구실은 바빴다는것인데 구체적으로 알아보려고 하면 제쪽에서 오히려 언제부터 자기를 믿지 못하게 되였느냐고 까박을 붙이였다. 그러다 한번은 매우 언짢은 말들까지 오갔는데 그때야 비로소 미영은 유민호가 그전과는 달라졌다는것, 그가 겉으로는 변함없이 우정을 간직하고 있는척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기의 체면을 잃지 않으려는 위선에 지나지 않는것이고 안속으로는 자기의 낯을 깎이우지 않으면서 둘사이의 관계를 끊어버릴 구실을 찾고있음을 알아차렸다.

유민호가 결별을 바라는 이상 미영은 굳이 안떨어지겠다고 발버둥치며 매달리고싶지 않았다. 매달린다고 하여 회복될수있는 일도 아니였다. 그것은 유민호측에서 교묘하게 진척시켜온 그 은밀한 파탄이 미영의 《값》이 떨어진데 기인한것이기때문이였다.

미영은 방학기간 가족들을 만나려 황주에 내려간 기회에 유민호에게 자기를 잊어달라는 편지를 띄웠다. 유민호가 제 체면을 잃지 않고 아무런 마음의 부담도 느끼지 않으면서 미영이 곁에서 물러날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한주일이 지나 유민호한테서 아주 짤막한 답장이 날아왔다. 매우 유감스럽노라는 인사치레의 원망 비슷한 소리를 몇줄 앞세운 다음 미영이가 바라는대로 하겠으니 걱정말라는 식의 편지였다.

결국 둘사이에서 먼저 갈라지기를 바란 측이 유민호가 아니라 심미영이라는 남아의 성실성에 조금도 손상이 가지않게 락착을 지은셈이였다. 심한 허무감과 허탈상태에 빠진 심미영의 눈에 아프게 비쳐든것은 사랑의 녀인상이였다.

그날밤 기만의 상징으로 되고 만 그 조각상을 보자기에 싸들고 식구들 몰래 마을앞의 룡소로 찾아나갔다. 룡소에서는 초생달이 풍랑만난 쪽배처럼 흔들거렸다. 미영은 싸늘한 가슴을 붙안고 벼랑턱의 너설바위우에 올라섰다. 그의 손에서 조각상이 힘없이 떨어져내렸다. 밤고요를 흔들면서 첨벙ㅡ 소리가 울렸다. 미영은 자기몸도 함께 던지고싶은 심정에 모대기며 울고 또 울었다. 만약 그날밤 수상쩍은 기미를 보인 맏딸의 뒤를 밟은 어머니가 그를 찾지 않았더라면 미영은 가뜩이나 불행해진 어머니의 가슴에 엄청난 상처를 더 깊이 패이게 했을런지 모른다.…

창광산쪽에서 열두시를 알리는 고동소리가 울렸다. 이제 중앙도서관에 가도 점심시간이여서 남정기선생을 만나기 어려울것 같아서 미영은 가까운 신문도서열람실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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