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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름 5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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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6-14 10:58 조회8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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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9-U01.jpg

(제 5 회)

2 장

김일성동지께서 내각청사를 나오시여 저택에 이르셨을 때는 10시, 비멎은 뒤끝이였다. 야외등이 푸릿하게 비치는 정원길을 곧추 질러 저택정문에 들어섰을 때 강부관이 마중하였다.

《최현동무가 몹시 기다렸겠지? 식사는 시켰소?》

《네, 처음에는 기다리겠다고 하다가 지시라고 하니까 몇술 들었습니다. 지금 쉬는것 같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신을 벗고 발끝걸음으로 왼쪽 응접실문앞에 이르시였다. 길게 숨을 들이그었다가 짧게 내보내는, 잠들었을 때의 최현의 숨소리를 확인하신 그이께서는 소리가 날세라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아당기시였다. 밤색유단을 씌운 쏘파우에서 최현이 왼켠으로 머리를 떨군채 말뚝잠을 자고있었다.

그의 한쪽 무릎우에는 룡옥이가 머리를 올려놓고 색색 코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딸애의 어깨우에는 최현의 꽜꽜한 손이 어루쓰다듬듯 놓여있었다. 어설프면서 눈물나는 광경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참이나 서서 그 모습들을 지켜보시다가 맞은편 안락의자에 가앉으시였다.

강부관이 매우 긴장된 기색으로 방에 들어와 김일성동지께 속삭이듯 말씀드렸다.

《내무성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현을 다시한번 돌아보고 방안을 걸어나가시였다. 강부관은 장군님께서 오시면 제꺽 알려달라고 하던 최현의 부탁을 리행하지 못하여 저 범같은 사람한테 한번 땀줄이 나게 닥달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시름겹게 서있다가 《뭐요?》하는 장군님의 격하신 음성에 흠칫하며 돌아보았다.

열려진 전실옆방에 김일성동지의 옆모습이 뵈였다. 한손으로 전화탁을 꽉 누르신 그이의 눈길에 심상치 않은 불빛이 번쩍였다.

《그래… 알겠소. 나도 나가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그대로 든채 굳어진듯 서계시다가 한참만에야 내리시였다. 응접실에서 최현이가 황급히 얼굴을 문지르고 옷자락을 쓸어내리며 뛰다싶이 나왔다.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어망결에 인사를 올리며 황황히 마주오자 방금까지 불꽃을 튕기던 김일성동지의 안광에는 따뜻한 미소가 피여오르시였다. 《최현동무.》 그이께서는 그러안을듯 마주가시여 최현의 두손을 꼭 잡아주시였다.

최현은 벙글벙글 웃었다.

《축가지 않으셨군요.》

《허허, 내가 왜 축가겠습니까. 그랬다간 또 동무들한테 야단을 만나려구.》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며 최현의 어깨를 그러안고 응접실로 들어가시였다.

《오늘 철호동무한테 욕을 먹진 않았습니까. 그렇게도 꿈쩍 안하면 됩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아까 앉았던 안락의자에 앉으며 물으시였다. 최현은 그이께서 권하시는 맞은편 쏘파에 엉거주춤 앉아 싱긋 웃었다.

《그 사람이야 제게 욕할 자격이 있습니까. 자기야 사민이고 나는 군인이 아닙니까.》

롱담으로 얼버무린 최현은 웃음어린 눈으로 김일성동지를 우러러보다가 정색하여 말씀드렸다.

《이젠 그 사람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아주십시오. 호부자집 귀부인처럼 호강을 하는데… 참 춘국동무를 거기서 만났습니다.》

《문병을 왔던가요?》

《예, 렌트겐촬영하러 왔다가 들렸습니다. 다리는 철덩이같은데 장군님께서 자꾸 걱정하신다고 민망해하더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였다.

최현은 그 웃음에 용기를 얻은듯 한무릎 나앉으며 두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고 말을 이었다.

《장군님, 춘국동물 그냥 〈몽골해군〉으로 두시겠습니까. 그 사람은 송악산물이 제몸에 딱 맞는다고 했습니다. 그저 산이 좋다는겁니다.》

《허허, 최현동무는 춘국동무한테서 단단히 무슨 침을 맞은 모양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으나 왜서인지 그 웃음뒤끝에 쓸쓸한 음영이 뒤따르는듯싶었다. 그이께서는 담담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사실 이제와서는 해군에 그 동무가 꼭 있어야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리부상처도 채 낫지 않고 해서 그자리에 두는것인데… 참, 거기 정세는 어떻습니까? 어제 포사격이 있었다지요.》

최현은 김일성동지께서 최춘국의 직무문제에 대하여 대답을 주시는중에 얼굴빛을 흐리신것을 보고 왜서일가 하는 의문을 굴리느라 그저 《네.》 하고말았다.

《전사 한명이 희생되였다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되였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 재차 물으시였다. 최현은 잠시 대답을 못드리고 망설였다. 모든 사실을 다 말씀드릴것인가 말것인가, 순간적으로 눈앞에 쓰러진 전사의 얼굴이 떠오르고 뒤미처 거뭇한 봉분앞에서 곡도, 흐느낌도 없이 눈물만 똑똑 떨구던 가날핀 녀인의 모습이 스쳐지났다.

《장군님, 정말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최현은 그때의 분격과 슬픔이 다시금 끓어올라 어제의 포사격으로부터 오늘 장례식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상세히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원탁에 올려놓으신 두손을 꽉 마주잡은채 아무 말씀도, 조그마한 움직임도 없이 듣고계시다가 림운학이가38선전방구분대로 오겠다고 했을 때 그의 어머니가 말없이 절을 하는것으로 아들의 소청에 동의를 표시하더라는 대목에 이르러서 문득 말허리를 끊으시였다.

《그 어머니 년세가 어떻게 됩니까?》

《쉰한살이랍니다. 전 그 운학이라는 동무의 제기에 대해서는 그저 용쿠나 하고만 생각했는데 어머니의 그 태도를 보고서는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고향이 남조선입니까?》

《고향은 승호리랍니다. 참 그 집안 래력을 듣고보면 기가 막힙니다. 그 동무네 아버지는 해방전에 〈반일무장단〉사건으로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는데 지금도 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들어 열여덟살에 잡힌다는 그 동무 동생은 아버지를 만나는것이 소원이였답니다. 포대경으로 서울쪽을 보며 울기도 하고… 그런데 죽는것도 참 기막히게… 호박밭을 돌아보다가 파편에 맞았는데 손에 호박꽃을 떡 쥐고 숨이 넘어가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글쎄 이런 일이 벌써 얼마입니까.》

최현은 작년도의 적의 무장침습사건만도 2 617회를 기록하고있고 그 무장도발에서 희생된 사람이 경비대를 제외하고도 400여명이 넘는다는것까지 말씀드리려다가 김일성동지의 안색이 무섭게 변한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 희생된 전사의 이름이 무어라고 했던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갈린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최현은 김일성동지께서 희생된 유격대원들과 그 유자녀들의 이름과 주소를 적군하던 비망록을 꺼내 펼치시는것을 보았다. 그가 희생된 전사의 이름을 말씀드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머니와 형의 이름까지 물으시였다.

《림운학?…》

그이께서는 이름을 적다가 기억을 더듬어 눈길을 쪼프리시였다.

《그 동문 총참모부 군관인데 애인이 서울에 있답니다.》

《서울에?》

《네, 이 집안을 보면 온 나라의 불행이 한군데 모인듯합니다. 장군님, 정말 이대로는 참기 어렵습니다. 쩍하면 놈들은 갈개지, 계속 희생이 생기지, 전사들은 눈에 불이나 들이댑니다. 원쑤들을 요정내고 통일을 해야 한다는것입니다.》

《통일!》

김일성동지께서는 천만의 무게를 가진 음조로 나직이 뇌이시였다. 또 한번 마음 무거운 진통을 체험하셨다. 모두가 통일을 웨치고있구나. 홍명희는 론리로, 최현은 감정과 담기로… 그 녀인과 아들은 가정적비극으로부터…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계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물론 통일은 해야 합니다. 통일이야말로 우리모두의 숙원이고 최대의 희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겐 이 땅에 두번다시 류혈이 없게 해야 할 사명도 지워져있습니다. 우린 아직 동북에 널려있는 전우들의 유해도 다 안치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최현은 숨이 탁 막혀드는것 같았다. 어제날 만주의 수림속에서 사랑하는 전사들이 쓰러졌을 때 그 시신을 부여안고 눈물짓던 장군님의 영상이 현재의 비통한 모습과 엇섞여 안겨왔던것이다.

《장군님, 제… 담배를 좀 피우겠습니다.》

《담배를?!》

김일성동지께서는 되묻고나서 《참, 내 깜빡 잊을번했소.》 하며 일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방을 나가셨다가 인츰 되돌아오시였다. 손에는 호화판포장을 한 네모난 함이 들려있었다.

《며칠전 벌가리아동무들한테서 선물받은것입니다. 그 나라의 특산이라고 자랑을 하길래 동무를 주자고 남겼던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포장을 헤치고 담배 한갑을 터치여 친히 담배가치를 최현에게 내미시였다.

《원 장군님두… 이런것까지… 뒀다가 피시지.》

김일성동지께서는 최현이 담배 한대를 다 태울 때까지 그냥 지켜보기만 하시였다. 최현은 이상스런 긴장감을 느끼며 담배불을 비벼껐다.

《최현동무…》

그이께서 말씀을 떼시자 안색이 심각해지고 알릴듯말듯 주름이 일어서는 이마에서는 준절한 기운이 풍기시였다.

《방금전에 받은 전화인데… 10시경부터 38선 거의 전반지역에서 적들이 포사격을 시작했습니다. 심상치 않은 놀음입니다. 사태는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번져나가고있습니다.》

《녜?!》

최현은 흠칫했다.

(이래서였구나.)

오늘 만나뵈인 김일성동지는 어딘가 다른데가 있었다. 그이께서는 전쟁을 보시였다. 하지만 다문 30분이라도 최현의 기분을 아늑한 즐거움속에 안아두려고 혼자서만 고뇌를 걸머지시였다.

최현은 입술을 꽉 악물고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장군님, 떠나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묵묵히 보시기만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잠간만 있으시오.》

그이께서는 방밖에 나갔다가 도자기병 하나를 들고오셨다.

상두대우에 놓인 커다란 차잔 두개를 가져다가 그 병의것을 부었다. 병의 액체는 그 두잔에 다 쏟아졌다.

《앉으시오. 최현동무.》

그이께서는 술이 담겨진 차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시다가 잔 하나를 최현에게 내미시였다.

《식사할 때 들자고 준비한건데… 자 듭시다.》

최현은 눈굽에 눈물이 핑 고였다.

《장군님, 이거 정말… 》

《왜 그러시오?》

《마음이 스산해 그럽니다.》

《아니, 동무도 약한 소릴 할 때 있소?》

《아니, 그것이 아닙니다. 아까 방에 혼자 와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만… 정숙동무가 없으니 영… 스산합니다. 지금도… 이제 험한 일이 생기면 더하겠지요. 왜 먼저 가서… 》

최현은 말끝을 채 맺지 못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흔들거리는 액체면의 잔물결을 보시다가 약간 고개를 저으셨다. 다함없는 정이 어린 눈길을 최현에게 주시였다.

《나에 대해선 걱정마시오. 동무들이 잘 돌봐주니까. 동무에게 미안한게 많소. 동무랑 철호동무랑 주을온천에 보내려고 했는데… 내 마음대로 잘 안되는구만. 언제 한번 쉬우지 못하고-》

《장군님, 무슨 말씀을… 전…》

최현은 목이 꺽 막혔다.

《마시기요.》

최현은 불을 삼키는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불은 온몸을 달구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김일성동지를 잘 알며 가깝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의 가슴에 새겨진 김일성동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면서 동지에 대해서는 가장 마음이 무르고 인정이 많은분이시였다. 동지들과 인민들의 희생과 아픔과 슬픔에 대해 백배천배로 감수하며 괴로와하시는 분이시였다. 미구에 다가올 사변속에서 가슴아프신 일이 한두가지이겠는가.

《최현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뜨거운 눈길로 최현을 보다가 말씀하시였다.

《만약 적들이 덤벼들면 단단히 답새기시오. 그러나 적들이… 물러선다면 자제하시오. 혹시 단념할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나의 희망을 동무가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장군님, 명심하겠습니다.》

《철호동무를 만나고 가시오.》

《네.》

잔을 놓고 침묵속에 마주보았다. 언어가 아닌 심장과 심장의 사랑과 믿음, 약속과 맹세가 오고갔다.

최현은 쏘파에 꼬부리고 누워 세상모르게 자고있는 자기 딸애에게 시선이 닿자 어깨를 잡아 조심히 흔들었다.

《룡옥아, 룡옥아, 이젠 가야지.》

룡옥은 입을 다시며 돌아누웠다.

《허허 다 큰게 이게 뭐냐?》

최현은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룡옥이를 훌쩍 들어안았다. 룡옥은 반짝 눈을 뜨다 말고 《아부지.》 하고는 도로 감아버리며 가느다란 두팔로 최현의 목을 꼭 그러안았다.

최현을 바래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길로 다시 내각청사로 가시였다. 차를 타지 않고 어둠에 잠긴 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며 복잡한 생각을 이어가실 때 느닷없이 최현의 이야기에서 아슴푸레 기억을 건드리던 림운학이라는 군인의 모습이 얼핏 떠오르셨다. 순서도 꼬리도 없는 추억이 점선을 그으며 그이의 뇌리를 스쳐갔다.

(그래, 보안간부훈련소에서였지. 그 동문 무슨 〈송기떡〉이라는 별명을 가진 대원과 함께 처벌훈련을 받고있었다. 두사람 다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있었지. 그 운학이라는 동무는 동생까지 잃었다.… 포사격에… 포사격이라?!…)

회상은 여기서 끊어지였다. 어마어마한 사변을 예고하는 38도선의 소란이 그이의 모든 사색과 감정을 무참히 짓눌렀다.

한때 보안간부훈련소 신입병사반에서 《송기떡》사건으로 크게 물의를 빚어낸바 있는 송기덕소대장은 금천군 시변리에 나와 모내기동원으로 틈바삐 지냈다.

래일 일요일 농촌지원을 나가는 군인들을 푸짐히 먹이겠다고 돼지접수를 갔다오라는 량식과장의 청탁을 마지 못해(사실은 바람쐬는것으로 좋았지만) 받아물고 대원 한명과 함께 이른아침에 떠났던 송기덕은 소짝같은 돼지 두마리를 접수하였다.

그런데 우리에서 나올 때만도 얌전하다고 봤던 돼지들이 길에 나서자 애를 먹이기 시작한것이 종내는 한마리가 새끼줄을 끊어버리고 맹렬한 기세로 달아났다. 기덕이 주먹을 부르쥐고 다쫓자 바빠맞은 돼지는 길가 논판에 뛰여들었다. 논물을 보던 처녀가 기급을 하며 고함을 치는바람에 주변의 모군들이 달려와 소리치고 뛰며 법석을 놓았다.

기덕이 논두렁을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며 겨우 돼지를 잡았을 때는 반들거리던 장화가 죽탕이 되였을 때였다.

기덕이 숨을 톺으며 논물에 장화를 씻는데 논물을 보던 처녀는《아유, 저 논을 어째. 한섬을 밑졌네요.》 하며 기덕에게 곱게 눈을 흘기였다. 기덕은 생글생글 웃으며 《어쩌겠소, 저놈이 군대규률을 모르다나니 그리된걸. 처벌로 저놈을 오늘내로 없애버릴테요.》 하고는 넘어진 모대 몇개를 세워놓는 시늉을 하고 돼지의 궁뎅이를 발길로 조기며 몰아왔다. 그런데 부대정문에 이르니 중대장이 나와 기다리고 섰다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련대장이 찾는다는것이였다.

기덕은 자기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르지 않았는가 두루 생각하였으나 잘못이란 불을 까지 않은 돼지가 사납다는것을 모르고 각성을 늦춘통에 농민의 논밭에 좀 피해를 준것뿐이나 그 사실은 아직 알리가 만무한것이고 혹시 꺽다리 부소대장이 리민주선전실 처녀와 어쩐다는 말이 있더니 그때문이 아닐가 하는 억측도 있었지만 그것이라면 자기우에 부중대장, 중대장, 대대장까지 있는데 이 조그마한 별 하나짜리를 중성 셋을 단 지휘관이 부른다는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련대장은 시퍼렇게 성이 난 얼굴로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련대에 배치될 때 가까이 만나고는 처음인, 늘 상냥스런 웃음으로 인상지어진 련대장이 성나있는 바람에 기덕은 죄 지은것이 없으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도착보고를 하자 련대장은 흙탕이 된 바지며 장화에 못마땅한 눈길을 던지며 딱딱하게 물었다.

《동무, 처가 있소?》

《네?… 아 아니 없습니다.》

기덕은 간부과에 바친 리력서에 적었던대로 대답하였다.

《정말 없소?》

《…네.》

기덕은 가슴이 방망이질했으나 꾹 참았다. 련대장은 눈섭 한번 깜박이지 않고 빤히 그를 보다가 딱 잘라말했다.

《동문 열흘간 영창처벌이요.》

송기덕은 얼음물에 잠겼다나온 사람처럼 정신이 홱 맑아졌다. 혹시- 하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쳤으나 지레 겁먹고 이실직고 하는것은 사내가 아니지 않는가.

《련대장동지, 질문할만합니까?》

《하시오.》

《무슨 리유인지 알려주십시오.》

《이런 소가죽같은-》

련대장 리훈은 빽 소리치고는 제풀에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퍼렇게 성을 내며 물었다.

《리복심이라는 녀자는 누구요? 솔직히 말해보오.》

련대장의 안존한 얼굴빛은 이미 태풍의 한고비가 지나갔음을 암시했다. 이렇게 된바에는 더 숨기고 뻗댈 여지도 없다. 더구나 마음이 녀자같이 착하다는 련대장이 아닌가. 송기덕은 얼굴이 뻘개서 자백은 하되 이럴 때일수록 수세에 빠지는 저자세가 아니라 공세로 나가야지 괜히 잘못했소 하고 흰기를 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련대장동지, 사실은 말입니다. 억울하게 된 일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가 까막눈의 화전군인데다가 할아버지는 봉건이 가뜩했습니다. 글쎄 해방된 다음해 평생 처음 낟알마대나 건사하게 되니까 홑 열일곱살인 저를, 그때 전 다른 열일곱살짜리보다 퍼그나 어렸습니다. 장가들인다는것이였습니다. 색시감으로 찍어놓은 녀자는 역시 화전뚜구리 리달보라는 어른네 딸인데 제야 뭐 압니까. 철이 있습니까, 셈이 있습니까, 미운거 고운거 압니까. 로할아버지는 〈사내 열일곱살이면 아들딸 3형제는 거느릴 때다〉고 하며 으르지 아버지, 어머니는 땅이 있고 돈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하며 강제결혼을 시키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울며불며 나귀 타고 가서 색시를 맞긴 맞았지만 어떻게 삽니까.

련대장동지, 그래 이것을 장가간것으로 봐야 옳습니까. 전 아직 그 동무의 옷고름에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그통에 로할아버지의 대통에 이마빼기가 두군데나 터졌습니다.》

《여 됐소, 됐소.》

련대장은 소리치다말고 배를 그러쥐고 웃어댔다. 그럴수록 송기덕은 어리광대처럼 오히려 제가 큰 모욕이나 당한것처럼 풀풀 하며 눈을 부라렸다.

《그래 그 녀자는 몇살이요?》

《제보다 한살우입니다. 그래야 녀편네사랑을 올리도 받고 내리도 받는다는겁니다.》

《군말할게 없소. 동문 이제부터 내 명령에 복종하오. 동무의 처가…》

《련대장동지, 정말 처가 아닙니다.》

《소대장동무, 연극은 그만 노우. 지금 동무의 처가 평천리 부대에 와있소. 온성이 어디요. 먼곳에서 왔는데 안만나면 되겠소. 휴가를 줄테니 가서 열흘간 지내고 오오. 조혼이란 잘된건 못되지만 어쩌겠소. 맺어논 고름이니, 가서 티각태각했다간 철직에 제대요.》

《아, 련대장동지. 그거야 봉건이지요. 련애나 가정이란게-》

《어리석은체하지 마오. 봉건을 반대한다 해서 부모가 맺어주고 혼례까지 치른 녀자를 리유없이 버린다는건 용서할수 없소. 지금까지의것은 용서해줄테니 어서 가오. 참 동문 대원들앞에서도 이러오?》

《련대장동지, 그 녀자는 정치엔 문맹입니다. 그래도 군관의 안해라면-》

《동문 입대할 때 어드랬소?》

련대장은 억이 막혀 기덕을 바라보았다. 기덕은 그 말앞에서는 아무리 개비위를 부리려 해도 더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당장 가오. 이제 30분후에 후방물자를 실으러 가는 운수차가 있을거요.》

송기덕이 이 《불행》을 가지고 중대장 최만덕에게 갔을 때 중대장은 깊은 동정을 표시했다. 조혼을 강요한 부모들의 《몽매성》과 봉건의 잔재를 함께 한탄하면서…

그런데 정작 기덕이가 떠나게 되자 이제껏 복심이에 대한 푸념에 맞장구를 치던 중대장이 영 거꾸로 나왔다.

《가서 만나면 잘 대해주라구.》

《잘 대해주란건 어쩌란겁니까?》

《그나저나 무어놓은 배필이 아닌가.》

《난 싫수다.》

《그럼 쫓아보내겠다는건가?》

《쫓기야 뭐… 그러나 살지는 않겠습니다.》

《동문… 그 밸집을 고쳐야 돼.》

《하여튼 잘 설복하지요.》

《어떤 설복을 한단말인가.》

《나야 혁명에 몸바친 사람이고… 그건 촌보리동지니 물러가라고… 》

《허허… 난 모르겠소. 여하간 쫓는것은 반대요.》

이야기는 결국 매듭을 짓지 못한채 끝나고말았다. 기덕은 저녁켠에 부대로 가는 후방부 운수차에 하나의 짐짝처럼 마음 편치않게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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