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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못다한 꿈...<br><br>무엇이 그를 불길에 휩싸이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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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0-11-20 20:38 조회4,2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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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정규직을 꿈꿨던 노동자가 분신을 택했다.2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정문
앞에서 집회 도중 자신의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제4공장 황인하 조합원의
이야기다. 황씨는 지난 2001년 현대차 사내하청 기업에 입사해 2005년과 올해 두번에 걸쳐 회사를 전전했다.
모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러하듯이 황씨도 "고용난민"이었다. 2005년 황씨는 고용난민을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노동부에서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투쟁에
돌입했지만 사측은 2005년 9월 그에게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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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못다한 꿈...

무엇이 그를 불길에 휩싸이게 했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정규직을 꿈꿨던 노동자가 분신을 택했다.

2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정문 앞에서 집회 도중 자신의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제4공장 황인하 조합원의 이야기다.

황씨는 지난 2001년 현대차 사내하청 기업에 입사해 2005년과 올해 두번에 걸쳐 회사를 전전했다. 모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러하듯이 황씨도 "고용난민"이었다. 2005년 황씨는 고용난민을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노동부에서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투쟁에 돌입했지만 사측은 2005년 9월 그에게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황씨는 굴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제4공장 자전거 거치대에서 50여일이 넘는 시간동안 노숙 농성을 벌였다. 징계가 해고에서 정직으로 결정되고 그해 11월 그는 현장에 복귀했다. 그리고 2005년부터 올해까지 비정규직지회 현장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다시 정규직을 꿈꿨다.

올해 7월 대법원 판결로 다시 한번 그는 "고용난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이 원청인 현대차의 지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 현대차에 대해 ‘불법파견’을 결정했다.

그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하는 일이 차이가 없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 대법원 판결이 정당함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불법파견의 증거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장 배치 자리를 자신의 휴대폰으로 영상을 담았다. 하지만 이 사실이 비조합원을 통해 사측 관리자의 귀에 들어갔다. 관리자는 황씨의 휴대폰을 빼앗아 조회하고, 사측의 시설물을 촬영한 것은 형사 입건 대상이라며 그를 협박했다.

사측의 집요한 협박에 황씨는 비정규직지회 노동자 투쟁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한편으론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사측의 협박에도 동료들과 함께 있다면 자신의 못다한 꿈도 이룰 것 같았다. 그는 17일 제4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조합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저히 미안해서 안되겠다"며 점거농성에 합류했다.

그는 18일 새벽 홀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가족들의 연락을 받고 공장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어머니의 상태가 호전된 것을 확인하고 농성에 합류하려고 했지만, 이미 사측 관리인과 용역경비업체 직원들 수천여명이 농성장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20일. 수천여명이 제1공장 농성장으로 몰려와 조합원들을 폭행하며 농성장 침탈을 시도했다.

사측의 집요한 협박을 받으면서 무자비한 폭력 앞에 동료들이 짓밟히는 것을 보고 그는 동료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홀어머니를 남겨놓고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8년간 황씨와 형님 동생 사이로 인사를 하며 알고 지냈다는 제4공장 조합원 이모(45)씨의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였다.

이씨는 "인하가 농성장에 합류하고 나서 여자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모습이 생각이 난다"며 "인하가 분신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하고 조합원 모두가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이씨는 황씨의 평소 모습에 대해 "맨날 인하는 가방을 둘러메고 항상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바빴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이씨는 "인하가 2005년부터 노동조합 활동을 한지 이제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올해 7월 대법원 판결을 보고 조합에 가입했다.

이씨는 "저도 2005년에 조합에 가입하려고 할 때 사측 반장의 협박을 받았는데, 인하가 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측의 압박을 받았을 인하와 저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흐른다"고 말했다.

황씨의 분신 소식에 제1공장 농성장의 공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한 조합원은 20일 저녁 파업 결의대회에 나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는데.."라고 말을 잊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울산=이재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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