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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의 평양방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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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7-12-12 00:33 조회3,0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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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은 이번 분석논평에서 유엔 펠트먼 사무차장 일행이 북조선을 방문한 것과 관련하여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이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을 조선에 파견한 것은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려는 노력이므로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이 유엔사무국으로 돌아가면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은 그를 통해 전달받은 조선의 의견을 백악관에게 전달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타협적인 핵대결이 유엔사무국의 중재로 과연 종식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론 유엔사무국이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조미핵대결 최종국면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예견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는 한편 "유엔사무국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떠맡을 중재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아메리카제국의 체면을 고려하여 미국의 굴복을 굴복이 아닌 타협처럼 포장해주는 중재역할로 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민족통신 편집실]
   


한호석.jpeg
[사진]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분석]

조용한 군사회담에서 펠트먼 평양방문까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7/12/11 [13:5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리처드 클락과 샤오위안밍의 조용한 군사회담

2. 화약고 안의 불장난은 자구책이며 전선이동징후

3. 펠트먼을 평양에 보낸 구떼헤스의 구상

4. 55년 만에 되살아난 우탄트의 기억

5. 구떼헤스의 중재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북-유엔부사무총장.jpg

[사진]북 이용호 조선외무상과 유엔사무차장이 평양에서 회담

 

1. 리처드 클락과 샤오위안밍의 조용한 군사회담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2017년 11월 29일 <AP통신>에 흥미로운 기사 한 편이 실렸다. 제목은 ‘북조선과의 긴장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진행한 조용한 군사회담’이다. 보도기사에 서술된 “조용한 군사회담(quiet military talks)”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하나는 고위급 군사회담이 아니라 준고위급 군사회담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비공개 군사회담이라는 뜻이다. 그날 비공개 군사회담은 워싱턴에 있는 국방대학교(National Defense University) 교내에서 진행되었다. 국방대학교는 미국 국방부가 직영하는 고등군사교육기관이다. 또한 그 비공개 군사회담에는 미국군 합동참모본부 기획국장인 리처드 클락(Richard D. Clarke) 육군 중장과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부참모장인 샤오위안밍(邵元明) 육군 소장이 각각 회담대표로 참석하였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그날 진행된 미국-중국 준고위급 군사회담은 조섭 던포드(Joseph F. Dunford) 미국군 합참의장이 지난 8월 15일 중국 베이징에서 팡펑후이(房峰輝)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을 만나 고위급 군사회담을 진행할 때 준고위급 군사회담을 열자고 합의하였고, 그 합의에 따라 지난 11월 29일에 열린 것이라고 한다. <워싱턴포스트> 2017년 8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던포드-팡펑후이 군사회담에서는 미국군 합동참모본부 기획국장 리처드 클락과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부참모장 샤오위안밍을 각각 대표로 하는 ‘합참대화기구(Joint Staff Dialogue Mechanism)’라고 부르는 상설회의체를 개설하기 위한 합의서를 채택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2017년 11월 29일 워싱턴에 있는 국방대학교에서 진행된 준고위급 군사회담은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조용한 군사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논의되었을까?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7년 8월 15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조섭 던포드 미국군 합참의장이 팡펑후이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의 영접을 받으며 그와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는 장면이다. 당시 던포드-팡펑후이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준고위급 군사회담을 열자고 합의하였는데, 그 합의에 따라 2017년 11월 29일 워싱턴에 있는 국방대학교 교내에서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이 열렸다. 합참대화기구는 상설회의체다. 이 회담에는 미국군 합참본부 기획국장 리처드 클락과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부참모장 샤오위안밍이 각각 대표로 참석하였다.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에서 쿠바미사일위기에 대한 공동의 사례연구결과가 논의되었다고 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AP통신>은 2017년 11월 29일 보도기사에서 지난 8월 중순 베이징을 방문한 던포드 미국군 합참의장은 팡펑후이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에게 조선의 “우발사태(contingencies)들”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고, 양측은 “발생할 수 있는 갈등(conflict) 또는 핵재앙(nuclear disaster)의 위험”에 대해 논의하였다고 하면서, 이번에 워싱턴에서 진행된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에서도 그 문제를 또 다시 논의하였을 것이라는 중국문제전문가들의 추측발언을 인용하였다. 던포드-팡펑후이 회담에서 논의되었다는 ‘갈등’이라는 것은 조미핵대결 위험이 극도로 고조된 상황을 뜻하는 말이고, 그 회담에서 논의되었다는 ‘핵참화’라는 것은 조미핵대결이 우발사태를 도화선으로 폭발한 핵전쟁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조미핵대결→우발사태→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태와 관련하여 <워싱턴포스트> 기고자 데이빗 이그네이셔스(David Ignatius)는 2017년 12월 5일 그 신문에 실린 자신의 글에서 미국 국방부 고위관리가 전해준 말을 인용하면서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에서 “쿠바미사일위기에 대한 공동의 사례연구(a joint case study of the Cuban Missile Crisis)”가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조미핵대결이 최종국면에 접어든 지금, 미국 군부 대표들과 중국 군부 대표들이 상설회의체를 개설하고 쿠바미사일위기 사례연구를 진행하였다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쿠바미사일위기 사례연구를 진행한 것은 조미핵대결 최종국면과 쿠바미사일위기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 것으로 보고, 조미핵대결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쿠바미사일위기를 재평가하는 토론을 진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에서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오판을 어떻게 예방하고, 오해의 위험을 어떻게 줄이느냐 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고 지적한, 미국 합참본부가 <AP통신>에 보내온 보도자료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회담에서 그들은 조미핵대결이 우발사태를 도화선으로 하여 핵전쟁으로 폭발하지 않도록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오판을 어떻게 예방하고, 오해의 위험을 어떻게 줄이느냐 하는 해법을 쿠바미사일위기 해결경험에서 찾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조미핵대결 최종국면과 쿠바미사일위기를 비교하면서 어떤 해법을 찾아보려는 논의는 미국군 합참본부에서만 진행되는 게 아니다. 조미핵대결 해법을 쿠바미사일위기 해결경험에서 찾아보려는 미국의 전직 외교관리, 정치분석가, 언론인들의 주장과 견해들이 올해 들어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에 지속적으로 보도되었다.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것만 추려내더라도, 2017년 4월 16일 <뉴욕타임스>, 8월 9일 <워싱턴포스트>, 8월 23일 <더 네이션(The Nation)>, 9월 25일 <포츈(Fortune)>, 10월 26일 <허핑턴포스트(Huffington Post)>, 12월 6일 <뉴스윅(Newsweek)> 등이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보도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조미핵대결 해법을 쿠바미사일위기 해결경험에서 찾으려는 논의가 빈번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그러므로 그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조미핵대결 해법을 쿠바미사일위기 해결경험에서 찾으려는 내부논의를 진행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주요언론매체들이 활발히 논의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에서까지 논의된 문제를 정작 책임 있는 당사자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외면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성공하자,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킬 시간과 기회를 잃어버려 다급해질 대로 다급해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 문제를 논의하였다면, 지금쯤 그와 관련된 움직임이 나타나는 게 정상이다. 아래에 서술한 두 가지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2. 화약고 안의 불장난은 자구책이며 전선이동징후 

 

2017년 12월 6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의 알꾸드스(Al-Quds)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한다고 선언하고,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알꾸드스로 이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람들이 무심코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 그 도시의 아랍어 명칭은 알꾸드스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 명칭이다.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강점한 그 도시는 팔레스타인의 고유한 영토이므로, 독도를 ‘다께시마’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처럼 알꾸드스를 ‘예루살렘’으로 부르면 안 된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결정은 무리수를 넘어 자충수를 둔 것이었다. 트럼프의 자충수가 미국과 중동에 얼마나 큰 해악을 불러오게 되는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트럼프 이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미국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유대인계 정치세력을 의식한 나머지 자기들의 대선공약에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알꾸드스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약방의 감초처럼 어김없이 집어넣곤 하였지만, 집권한 뒤에는 그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슬그머니 접어두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경우, 전 세계 이슬람국가들과 격렬한 충돌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고, 국제사회와 유엔으로부터 백악관으로 몰아칠 반대와 저항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폭탄뇌관 같은 그 문제를 대선공약 안에 슬쩍 끼워 넣었다가, 백악관에 들어간 뒤에는 흐지부지 넘어가는 관례를 불문율처럼 지켜왔던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7년 12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팔레스타인의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한 문서에 서명한 뒤에 그 문서를 자랑스럽게 취재진에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마익 펜스 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알꾸드스로 이전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강점한 알꾸드스는 팔레스타인의 고유한 영토일 뿐 아니라,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의 성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알꾸드스를 아랍민족의 적인 이스라엘에게 넘겨주겠다는 망발을 늘어놓았으니 거대한 화약고 안에 들어가서 불장난을 하는 꼴이다. 그는 왜 그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해행동을 저지른 것일까?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 ‘불문율’을 제 손으로 깨버렸다. 거대한 화약고 안에 들어가서 불장난을 하는 꼴이다. 미치광이 대통령의 ‘불장난’이야말로 중동에서 극도의 정치혼란과 새로운 전쟁위험을 불러일으키고, 국제사회에서 반미테러위험과 미국의 외교고립을 겹겹이 자초하는 자해행동이 아닐 수 없다. 미치광이 대통령의 ‘불장난’에 격노한 팔레스타인 민중은 곧바로 항쟁(Intifada)에 궐기하였고, 이스라엘군은 그들의 항쟁을 난폭하게 진입하고 있다. 미국-이스라엘 침략동맹에 맞서 싸우는 팔레스타인 민중항쟁이 차츰 격화되면서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왜 그런 자해행동을 저지른 것일까? 미국의 정치분석가들은 제각기 이 문제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내놓았는데, 최근 백악관을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은 이른바 트럼프-러시아 내통사건에 대한 특검수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러시아 내통사건이란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긴 직후인 2016년 12월 당시 그의 최측근이었던 마이클 플린(Michael T. Flynn)이 쎄르게이 킬스약(Sergey Kilsyak) 당시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와 은밀히 접촉하였던 사건이다. 지금 특검의 수사방향은 그 비밀접촉이 미국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를 파헤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있다. 

 

2017년 12월 1일 전격적으로 특검에 기소된 플린은 자신과 킬스약의 비밀접촉이 트럼프의 사위이며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럿 쿠쉬너(Jared C. Kushner)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폭탄진술’을 내던졌다. 이 ‘폭탄진술’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쿠쉬너가 플린에게 전달한 지시는 곧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만일 플린에 이어 쿠쉬너까지 줄줄이 특검에 기소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내통’을 쿠쉬너에게 지시한 정치적, 법적 책임을 피할 길이 없어진다. 이것은 정치생명을 끊어버릴 실각위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엄습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위중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특검에 기소당할 위험에 빠진 쿠쉬너를 구출하려는 ‘긴급구조’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긴급구조’를 요청한 지지세력은 워싱턴의 정계 및 관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대계 미국인 정치인맥이다. 이들 유대계 미국인 정치인맥과 직통하는 사람이 재럿 쿠쉬너의 아버지인 찰스 쿠쉬너(Charles Kushner)다. 찰스 쿠쉬너는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보내는 5대 후원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유대복고주의(Zionism)를 지지하는 부동산개발업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대계 미국인 정치인맥을 움직여 쿠쉬너를 위험에서 구출하려면, 그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 숙원이 바로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하는 대통령의 조치다. 이런 내막을 살펴보면, 자해행동처럼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그 결정은 실제로는 궁색스러운 자구책인 것이다.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놓고 미국의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분석기사의 논지는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그 결정 속에 깔려있는 속셈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아래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3>

 

▲ <사진 3> 팔레스타인의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하는 문제는 커다란 '폭탄뇌관'이므로, 당연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신중히 논의, 결정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문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의제로 꺼내놓았을 때, 그의 핵심측근들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비롯한 대다수 성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다수의 반대의견을 돌려세우고, 자기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그들을 설득할 강한 명분을 꺼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전선이동론이었다. 전선을 한반도에서 중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리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트럼프 대통령이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하는 문제는 커다란 ‘폭탄뇌관’이므로, 그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혼자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문제는 당연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논의, 결정되었다. 미국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 문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의제로 제기하자,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측근들인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이 반대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하는 경우, 미국에게는 얻을 것이 별로 없고, 잃을 것이 거의 전부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그 핵심측근을 반대의견으로 끌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반대하였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성원들 대다수가 반대한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성원 대다수의 반대의견을 돌려세우고 자기 의사를 관철하려면 그들을 설득할 강한 명분을 꺼내놓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놓은 명분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전선이동론이었다. 전선이동론이란 전선을 한반도에서 중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리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조선을 상대로 벌여왔으나 이미 패색이 짙어진 한반도 전선에서 발을 빼고, 그 대신 중동에서 새로운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요즈음 정치력, 군사력, 경제력이 날로 약해지고 있는 미국에게는 이전처럼 한반도와 중동의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울 수 있는 힘이 없다. 미국이 이른바 ‘두 개의 전쟁전략’을 폐기한 지도 오래 되었다.     


그런 미국이 이미 패색이 짙어진 조선과의 핵대결을 무모하게 계속하면서 그와 동시에 중동전쟁을 벌이는 확전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어느 한 전선을 택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패색이 짙어진 조선과의 핵대결을 포기하고, 새로운 중동전쟁의 길을 택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과의 핵대결을 포기한다는 말은, 조선의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성공으로 미국이 사실상 패한 핵대결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킬 협상의 길을 택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며칠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화약고 안에서 저지른 불장난’은 자신에게 몰아닥친 정치위기에서 탈출하려는 자구책인 동시에 전선을 한반도에서 중동으로 이동시키려는 징후라고 말할 수 있다.  

  

▲ <사진 4> 이 사진은 리용호 조선 외무상이 2017년 12월 7일 조선을 방문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을 만나는 장면이다. 펠트먼을 평양에 보낸 사람은 안또니오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이다.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은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기 위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서겠다고 나선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펠트먼의 조선방문을 계기로 조선과 유엔사무국은 각이한 급에서 내왕하면서 의사소통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구떼헤스가 이끄는 유엔사무국이 핵대결을 벌이는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과연 중재를 제대로 설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유엔사무국의 중재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펠트먼을 평양에 보낸 구떼헤스의 구상  

 

2017년 11월 29일 워싱턴에서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이 진행된 때로부터 엿새가 지난 12월 5일 평양국제공항에 착륙한 고려항공 여객기에서 낯선 미국인 한 사람이 내렸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그 미국인 손님은 유엔사무국 정치부 수장인 제프리 펠트먼(Jeffrey D. Feltman) 유엔사무차장이었다. 그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국무부에서 중동담당 국무차관으로 일하였는데, 미국 국무부는 2012년에 그를 유엔사무차장에 천거하여 임명되도록 하였다. 그런 배경과 경력을 가진 사람이 조미핵대결위기가 고조된 시점에 평양에 나타난 것이다. <사진 4> 

 

<교도통신> 2017년 12월 9일 보도에 따르면,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을 평양에 보낸 사람은 안또니오 구떼헤스(Antonio Guterres) 유엔사무총장이다. 그 보도기사에서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은 “북조선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조선과 관계국 간의 의미 있고, 열린, 건설적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마련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유엔사무국이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기 위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서겠다는 말이다. 

중국 <신화통신> 2017년 12월 8일 보도에 따르면,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의 중재의사를 전하기 위해 평양에 간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은 원래 3박4일이었던 체류일정을 하루 더 연장하였다고 한다. 체류일정은 연장한 것은 조선 외무성과 유엔사무차장 사이에서 대화가 원만히 진행되었음을 말해주는 징후였다. 

 

징후는 즉각 현실로 되었다. <조선중앙통신> 2017년 12월 9일 보도에 따르면, “우리측과 유엔사무국측은 이번 유엔부사무총장의 방문이 우리와 유엔사무국 사이의 리해를 깊이 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각이한 급에서 래왕을 통한 의사소통을 정례화할 데 대하여 합의하였다”고 한다. 각이한 급에서 내왕을 통한 의사소통을 정례화한다는 말은,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서겠다는 유엔사무국의 제안을 조선이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한 각이한 급에서 내왕한다는 말은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의 조선방문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2017년 9월 말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였을 때, 이고르 모르굴로브(Igor V. Morgulov) 러시아 외무차관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설 용의가 있다고 하였지만, 조선은 러시아의 중재제안을 거절하였다. 2017년 11월 17일 쑹타오(宋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하여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안을 제시하였으나, 조선은 중국의 중재안을 거절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조선은 유엔사무국의 중재제안을 받아들였다. 

 

러시아의 중재제안와 중국의 중재안을 각각 거절한 조선이 유엔사무국의 중재제안을 받아들인 까닭은,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의 정치성향이 중재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은 포르투갈 사회당 총비서로 재직하던 기간에 국제사회주의(Socialist International) 의장과 포르투갈 총리를 겸임하였던 중도좌파 정치인이다. 중도좌파 구떼헤스가 이끄는 유엔사무국이 핵대결을 벌이는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과연 중재를 제대로 설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유엔사무국의 중재 이외에 다른 대안은 찾기 힘들다. 

  

 

4. 55년 만에 되살아난 우탄트의 기억 

 

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성공으로 자기의 핵무력을 완성한 2017년 11월 29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이 진행되었는데, 그 회담에서 조미핵대결 해법을 찾기 위해 쿠바미사일위기 사례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쿠바미사일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중재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쿠바미사일위기→우발사태→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극심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중재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유엔사무국이었다. 55년 전 유엔사무국의 중재경험은 아래와 같다.

 

쿠바미사일위기가 격화되면서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위험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던 1962년 10월 26일 당시 유엔사무총장이었던 우탄트(U Thant)는 미국, 소련, 쿠바 3국 사이에서 적극적인 중재노력을 펼치겠다는 의사를 공식 발표하였다. 우탄트는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중재안, 다시 말하면 소련의 핵무력 철수와 미국의 쿠바 불가침을 맞바꾸는 중재안을 미국과 소련에게 각각 제시하였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1960년 11월 20일 쿠바미사일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중재노력을 펼치던 우탄트 유엔사무총장이 유엔본부 청사에서 양측 대표들과 회담을 마치고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서 우탄트의 왼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미국측 회담대표들이고, 그의 오른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소련측 회담대표들이다. 이 사진을 보면, 우탄트 유엔사무총장이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만 중재노력을 펼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미국, 소련, 쿠바 3자 사이에서 중재노력을 펼치면서 쿠바미사일위기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니끼따 후르쇼브(Nikita S. Khrushchev)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우탄트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면서 소련이 미국과 협상하는 동안에는 소련군 미사일을 실은 수송선을 쿠바에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요즈음 쓰이는 말로 표현하면, 핵동결을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1962년 10월 27일 쿠바혁명군은 자국 영공을 침범하여 공중정찰을 감행하던 미국군 고고도정찰기 U-2를 S-75 지대공미사일로 격추하였다. 쿠바미사일위기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던 시점이었으므로, 미국은 그 사건으로 ‘개망신’을 당했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오늘도 미국은 오산공군기지에서 U-2를 매일같이 군사분계선 상공으로 출동시켜 조선에 대한 공중정찰을 감행하고 있고, 조선인민군은 S-75를 개량한 번개-1 지대공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U-2가 군사분계선 상공을 조금이라도 넘어서기만 하면 격추해버릴 즉시발사태세를 갖추고 있다. 

 

55년 전, 미국 군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실행위원회는 쿠바혁명군의 U-2 격추에 대한 보복으로 쿠바무력침공을 주장하였다. 백악관과 펜타곤은 무력침공을 떠벌였으나, 존 케네디(John F. Kennedy) 당시 대통령은 남다르게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그가 각료들과 군부의 무력침공주장에 맞장구를 치지 않았던 까닭은,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소련과의 핵전쟁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흥미로는 사실은, 케네디가 후르쇼브도 자기처럼 겁쟁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그래서 케네디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면, 소련이 미국과 전쟁을 벌일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 전쟁은 곧 핵전쟁으로 될 것으로 우려하면서 공포를 느꼈다. 바로 이것이 케네디가 쿠바무력침공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였던 원인이다. 하지만 케네디만큼 겁쟁이였던 후르쇼브에게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는 경우, 미국과 핵전쟁을 벌여서라도 쿠바를 끝까지 지켜주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만일 케네디가 쿠바침공을 명령하였더라면, 미국군은 군사력이 약한 쿠바를 점령했을 것이다. 이처럼 쿠바를 점령할 기회를 놓쳐버린 겁쟁이 케네디는 쿠바침공에 광분하던 전쟁광신자들의 저격으로 암살당하였으니, 그 때가 쿠바미사일위기로부터 1년이 지난 1963년 11월 22일이었다. 

 

겁쟁이 케네디가 쿠바무력침공을 결정하지 못하면서 마음속으로 기대를 걸었던 것은 우탄트의 중재노력이었다. 그래서 케네디는 소련이 국제사찰단 감시 하에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면, 그에 상응하여 쿠바에 대한 불가침을 보장하고, 터키에 전진배치한 미국군 미사일을 철수한다는 우탄트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터키는 자국 영토에 배치된 미국군 미사일들이 철수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케네디는 그것을 철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1962년 10월 28일 후르쇼브 서기장은 케네디 대통령이 제시한 협상조건을 받아들였고, 그 사실을 피델 알레한드로 까스뜨로 루쓰(Fidel Alejandro Castro Ruz) 쿠바공화국 수상(당시 직책)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까스뜨로는 자기와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케네디와 타협하여 쿠바에서 핵무력을 철수하려는 후르쇼브의 비겁하고 굴욕적인 처사에 격노하였다. 

 

위기상황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자, 우탄트 유엔사무총장이 다시 중재에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쿠바를 방문하여 까스뜨로 수상과 회담하였다. 그 자리에서 우탄트는 격추당한 미국군 정찰기 U-2 조종사의 시신을 미국에 반환해줄 것과 국제사찰단이 쿠바에 입국하여 소련군 미사일 철수과정을 감시할 수 있게 허락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국제사찰단 입국을 쿠바의 주권침해로 본 피델 까스뜨로 수상은 국제사찰단 입국을 거부하였고, 미국군 정찰기 조종사의 시신만 반환하였다. <사진 6> 

 

▲ <사진 6> 1962년 10월 28일 피델 까스뜨로 쿠바 수상은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타협하여 쿠바에서 핵무력을 철수하려는 후르쇼브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비겁하고 굴욕적인 처사에 격노하였고, 후르쇼브-케네디 비밀협상을 전면 거부하였다. 까스뜨로 수상은 쿠바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5개항을 발표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미국과 끝까지 싸울 결의를 표명하였다. 위쪽 사진은 쿠바미사일위기 당시 까스뜨로 수상이 반미결사항전에 나선 쿠바혁명군 고사포부대를 시찰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쿠바혁명의 영원한 지도자들인 피델 까스뜨로와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가 담화하는 장면이다. 체 게바라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그의 혁명생애만큼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우탄트의 중재안을 거부한 피델 까스뜨로는 쿠바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5개항을 발표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미국과 끝까지 싸울 결의를 표명하였다. 그의 명령에 따라 반미결사항전을 결의해 나선 쿠바혁명군과 쿠바인민은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하였다. 그가 제시한 평화안은 미국은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와 경제제재를 중단할 것, 미국은 쿠바 정부에 대한 전복활동, 무력침공, 침투공작을 중단할 것, 미국은 쿠바 선박에 대한 해적행위를 중단할 것, 미국은 쿠바 영공 및 영해에서 모든 불법행동을 중단할 것, 미국군은 쿠바의 관따나모 해군기지에서 철수할 것 등이었다.  

 

겁쟁이 케네디와 비겁한 후르쇼브는 비밀협상으로 쿠바미사일위기를 해결하였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들의 비밀협상을 거부하고 결사항전을 결의한 쿠바는 케네디-후르쇼브의 해법을 걷어차 버렸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발생한 쿠바미사일위기가 케네디-후르쇼브 비밀협상으로 종식된 이후에도, 미국과 쿠바 사이에서 발생한 쿠바미사일위기는 종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쿠바미사일위기가 1962년 10월 28일에 종식되었다는 주장은 쿠바를 제외시킨 미국과 소련의 편중된 시각으로 쿠바미사일위기를 바라본 반쪽짜리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1962년 11월 2일 후르쇼브는 아나스따스 미꼬얀(Anastas I. Mikoyan) 소련 제1부수상을 쿠바에 급파하여 국제사찰단을 받아들이라고 피델 까스뜨로 수상을 여러 날 동안 설득해보았으나, 까스뜨로 수상은 그런 굴욕적인 요구를 거부하면서 쿠바의 주권과 자존심을 지켰다. 그렇게 되자 미국이 조작해놓은 국제사찰단은 미국 공군 해상정찰기의 공중지원을 받는 가운데 미국 해군 군함을 타고 쿠바 영해로 접근하여 쿠바 영해 밖에서 대기 중이던 소련 수송선들에 승선하여 사찰놀음을 벌이는 수밖에 없었다. 

 

 

5. 구떼헤스의 중재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위에 서술한 쿠바미사일위기 해결경험을 보면, 유엔사무국이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발생한 위기를 해소하는 데서 중재역할을 수행한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과 쿠바 사이에서 발생한 위기를 해소하는 데서는 중재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군사력이 약한 쿠바를 얕잡아보고 국제사찰단을 들이밀려는 주권침해의도를 버리지 않았고, 쿠바는 반미결사항전을 결의하고 자기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투쟁정신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유엔사무국의 중재노력도 허사로 되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보면서, 조미핵대결과 쿠바미사일위기를 굳이 비교한다면, 조미핵대결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타협가능한 대결보다는 미국과 쿠바 사이의 비타협적인 대결에 더 가깝다. 조선은 전략적 핵압박공세로 주한미국군을 철수시켜 자주권을 지키려고 하고, 미국은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계속 얻어맞으면서도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겠다고 버티기 때문에 조미핵대결은 비타협적인 대결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비타협적인 대결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고, 수세에 몰려 얻어맞는 쪽이 공세를 펴며 들이치는 쪽에게 굴복하는 것으로 멀지 않아 종식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내용만 읽어보면, 이번에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이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을 조선에 파견한 중재시도가 백악관과의 사전조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유엔사무국이 백악관에게 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미국의소리> 2017년 1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의 조선방문은 유엔사무국이 미국 정부와 협의를 거쳐 추진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렇게 하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2017년 1월 1일 안또니오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이 2017년을 평화의 해로 만들자고 전 세계에 호소하는 장면이다. 지금 그는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노력을 펼치려고 하지만,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타협적인 핵대결이 유엔사무국의 중재로 과연 종식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엔사무국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떠맡을 중재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아메리카제국의 체면을 고려하여 미국의 굴복을 굴복이 아닌 타협처럼 포장해주는 중재역할로 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7년 12월 5일 헤더 노어트(Heather A. Nauert)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언론설명회에서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이 조선에 갈 때 미국 정부의 어떤 메시지도 지참하지 않았고, 미국 정부를 대표하여 조선을 방문한 것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하나마나한 소리다. 왜냐하면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은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이 중재를 시도하기 위해 조선에 보낸 유엔사무국의 외교사절이므로, 처음부터 미국의 의사를 조선에 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이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을 조선에 파견한 것은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려는 노력이므로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이 유엔사무국으로 돌아가면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은 그를 통해 전달받은 조선의 의견을 백악관에게 전달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타협적인 핵대결이 유엔사무국의 중재로 과연 종식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론 유엔사무국이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조미핵대결 최종국면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예견할 수 있다. 유엔사무국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떠맡을 중재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아메리카제국의 체면을 고려하여 미국의 굴복을 굴복이 아닌 타협처럼 포장해주는 중재역할로 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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