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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7]김일성주석 위해 목숨 바친 중국인 장울화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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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8-05 12:17 조회2,8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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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종합] 장울화열사는 항일투쟁 시기 김일성주석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바쳐 관심을 모아 온 인물이다. 중국인 장울화열사 가정은 5대에 걸쳐 북부조국의 지도자들과 인연을
맺고 지금도 조중친선의 상징으로 남아 있고, 이 가족들은 거의 매년 조선을 방문해 왔다. 이번에는 이 가정에서
출판한 도서 《김일성과 장울화》의 일곱번째 글을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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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7]김일성주석 위해 목숨 바친 중국인 장울화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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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6월 김일성동지께서와 장울화는 무송제1소학교를 졸업하시였다.
두 학생은 다같이 학업을 계속할것인가 아니면 공부를 그만두고 생활전선으로 나갈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였다.

김형직선생님의 생전의 독립군벗들은 선생님의 념원대로 김일성동지를 길림성 화전현 화성의숙에 보내여 공부시키려 하였다.

화성의숙은 조선독립군 간부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1925년초에 세운 정의부소속의 2년제 군사정치학교였다.

장울화는 김일성동지와 함께 외지에 나가 공부하려고 하였지만 장만정이 수락하지 않았다. 장만정은 아들이 자기와 함께 있으면서 천성영에서 상점을 경영하는것을 배우게 하려고 하였다. 다정한 두 친구는 일시나마 헤여지는수밖에 없었다.

6월 중순에 김일성동지께서 무송을 떠나게 되시였다.
애젊은 두 벗이 처음으로 헤여지게 되였는데 그야말로 석별의 정을 금할수 없었다.
《내가 화성의숙으로 떠날 때 그가 울면서 나를 따라가겠다고까지 한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였다. 장울화와의 작별은 나에게 있어서도 견디기 어려웠다. 장울화가 리별을 앞두고 너무도 애달파하므로 나는 이틀밤이나 한침상에서 밤을 밝히며 그를 설복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루밤은 우리 집에서, 하루밤은 장울화네 집에서 서로의 가슴을 달래였다. 내가 화전으로 출발하던 날도 그는 송화강나루터에까지 나와 울면서 나를 바래주었다.

그날 그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성주, 신분의 차이라는게 주무랑마봉보다 더 높을가?>
<신분의 차이같은건 여기에 아무 상관도 없어. 너의 아버지가 네 요구를 허락하지 않은건 아직 객지생활을 시키고싶지 않아서 그러시는거야.>
<만일 신분의 차이때문에 아버지가 그런 구속을 한다면 난 너와의 우정을 위해서 기꺼이 가난뱅이가 될 결심이 돼있어. 하여튼 성주, 네가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건 난 어느때든지 네곁으로 찾아간다는걸 잊지 말고있어라.>》(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4권)

송화강나루터에서 헤여질 때 애젊은 두 친구는 차후활동을 어떻게 전개할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토의하였다.

나루배가 천천히 나루터를 떠났다. 사품치는 강물은 두 젊은 친구들을 갈라놓았다. 강변에서 거대한 수차가 소리없이 돌아가고있었던것이다.

장울화가 강기슭에 서서 배를 타고 떠나시는 김일성동지를 향하여 줄곧 손을 흔들고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다정한 벗인 김일성동지에 대한 애틋한 축원의 정이 솟구쳐올랐다.


하늘은 푸르고 산들은 아득히 먼데
벗을 배웅하러 송화강에 나왔노라
학창시절 2년 두 마음 하나로 합쳐져
이국형제들사이의 우정 깊어졌어라


여름날의 산들바람이 부드럽게 일며 장울화의 축원의 마음담아 싣고 점점 멀어져가는 작은 나루배를 따라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눈물을 흘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친구의 석별의 정을 헤아리시였고 친구의 심장의 목소리를 듣고 계시였다.

파도가 출렁이며 강물이 뒤설레이는데
송화강을 따라 흘러가는 그대
나는 못박힌듯 지켜보누나
벗을 따르려는 이 한마음
만갈래의 시름을 자아내노라
아 그대없이 내 장차 어이하랴


강물은 작은 나루배를 강하류로 밀어갔다. 강기슭에 서있던 장울화도 배를 따라 강하류를 향해 내달리였다. 산길이 험하여 엎어지고 쓰러지면서도 장울화는 여전히 작은 나루배우의 벗을 향해 손을 저었다. 배우에서도 그를 향해 손을 저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애틋한 정 쏟아져내리는 눈물로
송화강 건느는 그대 바라보노라
서로 멀리 떨어진다고 우정이야 변하랴
성스러운 위업 성취하면 그 우정 더욱 빛나리


첩첩히 늘어선 산들은 젊은 두 친구의 시선을 막았고 송화강의 파도소리는 서로 찾고 부르는 그들의 목소리를 삼켜버리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늘 말하는 《우정》의 뉴대는 젊은 두 친구의 마음을 하나로 굳게 련결시켜놓았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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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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