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체르노빌 피해자 브도비첸코 “사고 후 수백만명 삶이 바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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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3-22 21:35 조회1,9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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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봄 구소련 체르노빌에서 북동쪽으로 180㎞ 떨어진 노보집코프. 4만여명의 인구가 밀집한 지역이다. 주민들은 300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에 따른 방사능 유출은 이들의 모든 삶을 바꾸어버렸다.
노보집코프 주민 파벨 브도비첸코(59)가 23~24일 열리는 ‘2012년 합천 비핵·평화대회’에 피폭자 증언을 하려고 21일 입국했다. 그는 갑상샘 이상이 있는 피폭 피해자다.
브도비첸코가 22일 서울 종로구 ‘합천 비핵·평화대회 조직위원회’ 서울사무국에서 체르노빌 사태 때와 그 후의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합천 평화의 집 제공
브도비첸코는 “사고 당일 라디오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사소한 사고가 났고, 곧 처리할 거라고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증언했다. 그는 “정부가 방사능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5개월 후에야 노보집코프 주민들은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아챘다”며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일이 끝나면 샤워를 하고 가능한 한 빨리 노보집코프를 떠나려고 했던 이유도 알게 됐다”고 했다. 노보집코프는 격리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는 “사고 이후 수백만명의 삶이 바뀌었다”며 “어디를 가더라도 방사능 측정기를 가지고 가서 먼저 방사능부터 확인해야 했다”고 밝혔다. 먹을거리는 200㎞ 떨어져 있는 안전한 곳에서 가져와야 했다. 사고 이후에는 백혈병 등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브도비첸코는 “사고로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렸다”며 “매사에 의욕이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면서 정부의 조치에 의존하는 철저히 수동적인 희생자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동적인 삶을 극복하기 위해 사고 1년 후 지역 청년들로 구성된 ‘라디미치-체르노빌 어린이들을 위한’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행동에 나섰다. 그는 “정부가 못하면 주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도비첸코는 한국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태에 “자세한 상황을 모르지만 고리원전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도 체르노빌 사고에 대하여 정확히 이해하고 원자력발전보다는 대체에너지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핵화를 위해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는 서로 모여서 협력하고 상호 토론을 통해 대안을 모색해나가야 한다”며 “일반인들은 활동가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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