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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열사들을 기리며 자주와 통일의 길로! (안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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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1-28 10:17 조회8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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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21 편집주간을 지냈던 안영민 선생의 페이스북 글을 옮깁니다.

자주와 통일의 목소리가 남녘땅 곳곳에서 울려나오기를 바랍니다.

......................................


안영민


30년이 흘렀습니다. 대개 30년을 한 세대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후대를 보는 시간. 그러고 보니 내 아이가 30년 전, 내 나이 또래가 됐습니다. 길다면 긴 세월입니다.

1991년, 그해 5월은 단지 ‘슬픔’ ‘분노’라는 단어로는 다 담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젊은 청춘들이 공권력의 폭력에 스러지고 부서지던 날, 또 그에 맞서 최후의 저항 수단으로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청춘들. 오월의 열사들이었습니다. 강경대,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김기설, 윤용하, 이정순, 김철수, 정상순, 김귀정…….

강경대 열사는 백골단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고, 김귀정 열사는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과정에 숨졌습니다. 이정순 열사, 윤용하 열사, 정상순 열사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평범한 서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김철수 열사는 고등학생이었고, 김기설 열사는 재야단체 활동가였습니다.

연이은 분신 투쟁에 노태우 정권은 당황했습니다. 정권을 구하기 위해 나선 건 한때 민주화 인사로 존경받던 김지하 시인과 박홍 신부였습니다.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환상을 갖고 누굴 선동하려 하나’며 국민들을 선동했습니다. 박홍은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주사파 배후를 들먹였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권은 김기설 열사의 유서를 대필해줬다며 강기훈씨를 분신의 배후로 몰아가 구속시켜 버렸습니다. 분신의 배후세력을 찾는다며 대대적인 공안몰이가 시작됐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으로 당시 투쟁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청춘들이 자기 몸을 불살라가며 외치고자 했던 것은 민주주의의 회복이었습니다. 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진전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게 존재했고, 민중들의 생존권 문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1990년 1월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함께 손잡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면서 거대 여당의 독주가 노골화됐습니다. 저들은 공공연하게 내각제 개헌을 말하며 공안통치 속에 일당독재 체제를 갖춰나가고 있었습니다. 재야민주화운동은 정권의 전면적인 탄압에 움츠러들었습니다. 곳곳에서 구속자가 속출했습니다. 그런 순간에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다시 민주주의의 깃발을 올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1991년 5월 열사들의 투쟁이었습니다.

30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것이 달라졌고, 많은 것이 변해갔습니다. 군사정권은 노태우 정부를 마지막으로 끝났습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조금씩 완성되어 갔습니다. 그러면서 87년 6월항쟁, 91년 오월투쟁의 주역들도 하나둘씩 정치권으로 진출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의 역사적 퇴보 앞에 국민들은 촛불로 항쟁했고, 마침내 촛불정부가 등장했습니다. 30년의 세월, 참으로 많은 역사의 진전을 이루어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정말로 그럴까요? 광주항쟁에서 6월항쟁, 다시 오월 열사투쟁을 거치면서 우리가 꿈꾸었던 사회는 무엇이었을까요? 미국 앞에 당당하고, 남북이 화해협력하며, 민중들의 생존이 보장받는 자주, 민주, 통일의 세상이었습니다. 과연 그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가요? 그 세상을 위해 우리는 여전히 애쓰고 있는가요? 오월의 열사 앞에 우리는 당당할 수 있는가요?

지난해 9월, 1991년 오월 열사들의 추모사업회와 1991년 오월 투쟁을 이끌었던 전대협 5기를 중심으로 한 전대협 세대들이 2021년 열사투쟁 3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모였습니다. 몇 차례의 모임과 논의를 거쳐 ‘1991년 열사투쟁 30주기 기념사업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기념사업은 열사들의 영상 정리와 다큐멘터리 제작, 1991년 오월투쟁 재평가를 위한 심포지엄 개최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다행히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1억 원의 사업예산을 편성해 기념사업을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필요한 예산은 1991년 세대의 모금을 통해 해결해 나갈 예정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아쉬움과 답답함이 남습니다. 열사들의 거룩한 투쟁을 기념한다는 것은 뭘까요? 단지 과거를 회상하고 기억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꿈을 남은 우리가 현재에 실현해내는 것이 진정한 기념일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요? 또 어떻게 해야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요?

오늘 저의 고민은 여기에 있습니다. 자주와 통일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 정신과 마음을 다음 세대에 이어가는 것. 오늘 우리가 정치권에 있든, 시민사회운동을 하든, 아니면 평범한 직장인, 생활인으로 살아가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2021년 5월을 맞이하면서 30년 전 열사들이 외쳤던 미완의 과제들을 과연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이 마음과 실천이 중요한 때가 왔습니다. 1991년 5월과 2021년 5월, 그 30년의 세월을 다시 연결해야 할 때가.

* 1991년 오월 열사투쟁을 책임졌던 전대협 5기를 대표해서 제가 ‘1991년 열사투쟁 30주기 기념사업위원회’에 전대협동우회 유재석 회장과 함께 공동대표로 참여합니다.

* ‘1991년 열사투쟁 30주기 기념사업위원회’ 결성과 함께 전국을 다니면서 당시 오월투쟁의 최전선에 섰던 전대협 세대와 91학번,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한총련 세대를 만나려고 합니다. 노동운동, 농민운동, 시민사회운동, 정치권, 현재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열사정신 계승을 위해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실천적 과제를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이 마련되면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지: 사람 5명, 무대 위에 있는 사람들, 인파, 실외



이미지: 사람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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