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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경맹동주의'에 많이 당황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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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광선 작성일14-02-08 23:37 조회1,7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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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 죽은 씨동무

(느닷없이 '좌경맹동주의' 소란에 휩쓸린 한국사회를 보며 떠오른 옛 글)
 (1994년 <필라청년마당>에 실었던 글)


우리말을 짓누르는 사대주의 사상

 사내끼리 모이면 곧잘 군대생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어느 사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쫄병이던 그는 어느 날 대대장 심부름으로 대대장 사택을 찾아갔다. 마당에서 대대장 부인을 만난 그는 군대식 경례보다는 다정한 마음에서 허리 굽혀 절을 했다.
“아주머니, 안녕하셨습니까? 대대장님 심부름 왔는데요.”
절을 받은 그 장교부인은 갑자기 오만상을 찌뿌리고 주먹으로 그의 면상을 후려치며 이렇게 외치더란다.
“아주머니가 뭐야!”
그는 자기가 주먹뺨을 얻어맞은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혹시 너무 허리를 깊이 꺾어 절을 하는 바람에 젊은 여자를 늙은이로 조롱한다고 느껴 그러나 싶어 떠날 때는 별로 허리를 굽히지 않고 “아주머니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인사를 했다. 부인의 씩씩거리는 분통이 등뒤를 울려 때렸다.
“저런 배워먹지 못한 놈! 아주머니가 뭐야! 사모님도 몰라!”
나는 언어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주머니라는 호칭과 사모님이라는 호칭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래서 그 장교부인이 아주머니라는 호칭에 주먹뺨을 올려붙인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 역시 나도 배워먹지 못한 놈이니까.

언제던가, 마을 아저씨가 나를 도와준데 대해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렸다.
“고맙습니다가 뭐냐?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배운 사람답지 않게.”
나는 아저씨의 그 말을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철의 시조에 “이고 가는 저 늙은이, 짐 벗어 날 주오”라는 구절이 있다. 만약에 내가 머릿짐을 인 나이드신 분에게 이 말을 그대로 쓴다면 무어라 할 것인가? 한차례 주먹뺨으로 답례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느 사이 우리 사회는 사대주의자들의 망국사상에 찌들어 곱고 바른 우리말을 잃어버렸거나 천대하는 바닥을 이루어 버린 것 같다. ‘늙은이’는 천하고 얕잡아 보는 부름으로 여기고 노인(老人)은 존칭이 되어있다. ‘고맙다’보다 ‘감사(感謝)하다’고 하는 것이 많이 배운 티로 여긴다.

이제는 한자말, 일본말에 덧붙여 영어가 우리말을 짓누르고 있다.
텔레비젼 연속극이나 신문기사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아주 쉽고 고운 우리말이 있는데도 우리말 대신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영어를 쓰면서 난체 해 보이는 꼴을 많이 접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 어린아이들 세계에서는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친숙하게 여기고, 영어를 써야만 배우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여기는 상태로까지 변해버린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내 아들 딸은 영어밖에 모르니까.

이데올로기 싸움은 씨동무를 죽이고

“동무 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
어렸을 적 나는 또래들과 손에 손 맞잡고 이 노래를 부르며 들판을 싸다녔고 흐르는 냇물에 멱을 감았다. “동무 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내 보이는 본보기로 여겨지며 불리우던 노랫말이다.
내가 중학교 다닐적에 학생문예지를 만든 일이 있다. 시골학교인데다가 문예지를 만들어 본 것이 학교 생긴 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학생들의 글은 말할 나위도 없었고 선생님들의 글을 받아 내는 일도 대여섯 차례 찾아가서 조르고 또 졸라야 했는데 그나마 몇줄 써 주신 글들은 도무지 맞춤법이라고는 근처에도 못 가 본 문장들이어서 애를 먹었다.
인쇄작업 또한 큰 고역이었다. 타자기 한대 없는 학교였으니 철판에 원지를 대고 또박또박 긁어 써서 등사 해놓고 보면 틀린 글자가 나온다. 편집할 때 쓴 글씨 크기와 철판글씨 크기가 달라 계획했던 자리에 글을 모두 넣을 수 없어 한 글을 여기저기 찢어 실어야 하는가 하면 편집쪽수가 뒤틀려 모조리 처음부터 다시 써야하는 노역을 겪어야 하기도 하는 등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어찌어찌 작업을 마치고 책을 꿰매고 난 후에 맛보던 기쁨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지도해 주신 선생님과 나는 그날 학급마다 몇 권씩의 책을 나누어주고 앞으로의 커다란 희망과 계획을 논의하며 부픈 가슴으로 하루를 지냈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나가자마자 나는 교장실에 불려갔다.
영문 모르고 서 있는 내 앞에 느닷없이 험상한 교장의 불호령이 떨어지던 것이다.
어제 맨 먼저 바늘을 뽑았던 문예지가 교장의 손아귀에서 구겨진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교장은 몇 장을 거칠게 넘기더니 손가락을 짚었다. ‘새벽’이라는 단어에 교장은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다시 몇 장을 넘기더니 ‘동무’라는 단어에 역시 동그라미가 그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벽력같은 고함이 귀청을 때렸고 옆에 떨고 서 있던 지도 선생님은 사범대학을 갖 나온 처녀였는데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자식아, 내 모가지 뗄려고 그래? 빨갱이들이 쓰는 말을 버젓이 책에 실어?”
 “그게 무엇이 잘 못 되었단 말씀이십니까? 그것은 중학 1학년짜리 아이가 쓴 글입니다. 그 말이 어째서 빨갱이들이 쓰는 말이고 우리가 써서는 안됩니까?”
중학 3년짜리 아이의 항변에 우리 중고등학교 교육을 총 책임지고 있던 교장의 답변은 지휘봉으로 사정없이 아이의 머리통을 후려치는 폭력뿐이었다. 그리고 지도 선생님의 책임하에 모든 학급에 나누어 준 책을 다 거두어 불태워버리는 것으로 나의 처벌은 면제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학생의 항변에 납득이 갈만한 답변을 할 수 없었던 교장, 지도하고 함께 만들어 낸 결실을 변명 한마디 못하고 불태우던 선생님.
나는 그날 쓰레기장의 불타는 문예지 옆에서 하루종일 흐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이 와서 수업에 들어오라는 전갈을 했고 몇몇 선생님들은 직접 나오셔서 위로하고 타이르셨지만 나는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책가방을 잊어버렸다. 지금도 종종 책가방이 없이 학교에 나가서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을 꿈에 보다가 깨어나서 “아 꿈이구나” 하고 묘한 안도의 한숨을 쉬곤 한다.
오늘 내가 보잘 것 없는 이 모양이 되어 있는 것은 오로지 내 못난 탓이지만 때때로 나는 그날 교육을 증오하고 절망하던 순간에 탓을 돌리며 그 교장 손아무개란 이름에 아직까지도 ‘선생님’을 붙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이름조차도 부를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

 우리 이웃마을에 ‘개똥이’라는 동무가 있었다. 나보다 한살인가 위였지만 ‘개똥아’ 부르면 그 동무 역시 ‘응?’하고 대답하며 그렇게 정답게 어울렸지.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를 개똥이라 부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몇대 독자던가 하던 그는 집안에서 일찍 손을 봐야 한다며 국민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장가를 보낸 것이다.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각별히 주의를 주었다. 이제는 장가들어 어른이니 더 이상 ‘개똥이’라고 부르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개똥이’란 그를 천하게 여겨서 부르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를 미워해서 그렇게 부른 것은 더구나 아니었다. 그것은 애칭이었다. 손이 귀한 그 집안에 건강하고 억세게 자라 번영을 이루라는 소망을 담아 그렇게 부른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천하고 더럽게 들리는 그런 이름은 불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를 ‘개똥이’라고 부르던 시절 나는 또 하나 이름 아닌 이름을 부르며 살았다. 깨복쟁이 동무를 ‘개똥이’라고 부르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다니던 것처럼 나는 ‘북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렇게 불렀다. 그것도 한 나라이름인 고유명사라고 여기고 당연히 그렇게 불러야하는 줄 알았다. 아무도 다른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고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여겨지던 선생님까지도 그렇게 불렀으니 그것을 ‘개똥이’만큼이나 다정하고 복 빌어주는 이름이라 여기면서.

아름다운 우리말의 수난은 나라이름에서 그 극치를 이룬다.
함석헌선생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펴신 바 있다.
“한(韓)이란 우리 민족의 이름이요, 조선(潮鮮)이란 우리 나라의 이름이니 모름지기 민족을 말할 때는 한이요, 나라를 말할 때는 조선이라 함이 옳다.”
조선이란 아름다운 아침, 빛나는 아침의 나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조선이라는 이름을 잊어버리고 있다. 그냥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우리 이름에 스스로 먹칠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무슨 학자라는 자가 ‘조선은 치욕의 대명사’라는 식의 논고를 발표하기까지 했으나 아무도 탓하는 이가 없었다. 그는 일본사람들이 ‘조센진(조선인)’하면 경멸하는 말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을 써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일본은 우리 민족을 말살하고자 우리 이름도 우리말로 쓰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이름도 우리말로 써서는 안 된다는 논리인가?
북쪽은 처 없애야 하는 공산독재정권인데 그쪽에서 나라이름을 조선이라고 정했으니까 남쪽에서는 조선이라는 말을 쓰면 적을 인정하고 도와주는 격이라는 것이 남쪽 정권의 변이고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보장받은 남쪽민중들은 시퍼런 반공법, 보안법이 무서워서 감히 조선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을 수조차 없게되고 말았다.
그래도 종종 이름을 불러야할 때가 생긴다. 통치자들은 ‘북괴’라고 부르도록 몰아넣었다. 행여 옛 이름 부르던 버릇에서 ‘조선’이란 말이 나올라치면 영락없는 ‘간첩’이 되어 죽임을 당했으니 싫어도 ‘북괴’가 어느덧 입에 붙게 되고 말았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싸우고 애쓴 덕분에 언제부터인지 ‘북괴’란 말이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대신 ‘북한’이라는 호칭이 서서히 ‘북괴’라는 자리를 대신하고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누가 ‘조선’하고 부르면 ‘간첩’ 취급하면서.

꿈에도 소원은 통일?

사람은 누구나가 ‘이웃사랑’을 말한다. 이것은 사람의 본바탕이며 기본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사랑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이웃사랑’을 삶의 철칙으로 삼고 있는 종교인들, 그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포함해서. 그것은 자기 것을 떼어 내 놓아야하는 아픔이 따르기 때문이다. 자기 것을 움켜쥐려는 동물적 본능은 쉽게 말할 수 있는 기본도리로 깰 수 있는 허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사람은 누구나 ‘통일’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지금 안고 있는 기본사명이며 당위성이기 때문이다.
분열, 분단은 자기 모습을 파괴하는 행위다. 그 파괴된 모습은 더 깊은 분열을 불러일으키고 이것은 더욱 처절한 자기파괴 행위로 나타나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악순환을 깨는 작업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래서 우리의 모습을 되찾고 일그러진 상처를 치유하여 아름다운 우리 모습을 가꾸어야 한다. 그래서 모두들 통일을 말한다.
그런데 왜 통일은 점점 어려워만 보이는가? 그것은 마치 이웃사랑을 말하면서도 움켜쥔 자기 것을 떼어 내주지 못하여 이웃사랑을 못하듯이 자기가 쥐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떼어 내주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그 예상되는 아픔을 미리부터 피하려는 이기심 때문이 아닐까?

‘아주머니’라고 불렀다가 뺨을 얻어맞은 이야기가 ‘민족통일’ 이야기로 흘러버렸다.
남의 것으로 치장하여 잘 나 보일 자기를 떼어내고 우리 것을 되찾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 어떤 구박을 당하고 얻어터지는 한이 있어도 나라이름이라도 바르게 불러보는 자세, 이런 것이 통일을 이루는 첫걸음이 아닐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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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경맹동주의’에 많이 당황하셨어요?

[한겨레 친절한 기자들]
http://m.media.daum.net/m/media/politics/newsview/2014020720500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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