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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5권 17. 첫시련 - 황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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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6-03 14:06 조회1,5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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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   련

황  순  희                    



1936년 초봄 안도현 미혼진밀영에서 있은 일이였다.

그때 나는 유격대에 입대한지 불과 한달밖에 되지 않았었다.

이때 내가 속한 제4사의 주력부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방침에 따라 광활한 지대로 진출하고 우리 녀성대원이 반수이상을 차지한 소수인원만 이 미혼진에서 약 20리가량 떨어진 깊은 수림속에서 환자들을 간호하는 한편 재봉대공작을 수행하고있었다.

식량은 이미 떨어진지 오래였고 식량공작을 나간 소부대도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환자들을 위한 비상미마저 떨어졌었다. 그렇지만 환자들을 굶길수는 없었다.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앉아 밤늦도록 해결책을 강구해보았으나 별다른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참도시깨가 돋지 않았을가.》

나의 옆에 있던 한 녀대원이 자신없이 하는 말이였다. 참도시깨란 류달리 일찍 눈밑에서도 싹트는 나물이다.

우리는 그 말을 듣자 환성을 올리다싶이 하였다.

이튿날 일찍 우리는 서너명씩 짝지어 산아래로 흩어졌다.

초봄의 깊은 산속에는 하얀 눈이 가득 덮여있었다. 나는 산중턱에서부터 눈이 적게 깔린 양지를 찾아다니며 눈속을 뒤지였다. 아니나다를가 엷게 깔린 눈밑에는 갓 돋아난 참도시깨가 파릇파릇 눈에 띄웠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한참동안 어쩔줄을 몰라했다.

나는 치마폭에 참도시깨를 캐담으며 한걸음두걸음 산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눈속을 헤집느라고 손가락이 시퍼렇게 어는것도 몰랐고 허기증도 잊어버렸다. 다만 참도시깨를 찾아가며 한포기라도 더 캐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덧 대낮이 되였다. 나물울 캐던 동무들이 맞은편 양지쪽에 모여서 쉬고있었다. 나도 다리쉼을 하기 위해 그들틈에 끼여들었다.

그들은 팔도구에서 입대한 녀동무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그는 유격대에 입대할 때 일제놈들에게 쫓기여 할수없이 갓난아이를 남의 집 토방앞에 두고온 눈물겨운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이거 봐요, 이렇게 젖이 불어나는걸…》하고 그는 목이 메여 더 이야기를 못했다. 그의 두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는 모두 원쑤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더 한층 끓어번지는것을 억제할수 없었다. 사실 많은 녀대원들이 그와 똑같은 눈물겨운 길을 걸어왔고 그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부모와 남편, 자식들을 원쑤들에게 빼앗겼던것이다.

이윽고 우리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갈 차비를 하였다.

나는 금방 들은 이야기에서 받은 충격을 가라앉히지 못한채 나물을 좀더 뜯을 작정으로 우리가 거처하는 산막집쪽으로 뻗은 도랑줄기를 따라갔다.

거기에는 참도시깨가 많았다.

나는 한동안 나물을 뜯다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모두들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를 하던 녀동무만이 얼마간 떨어진 곳에서 참도시깨를 뜯고있었다.

《그만 돌아갑시다.》하고 나는 몸을 일으키다가 《앗》하고 소스라쳐 놀라며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산밑에 누런 군복을 입은 일제놈들이 엎디여있지 않는가. 놈들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얼핏 몸을 움직이였다. 그 순간 해볕에 총창이 번뜩하였다.

《적이다.》

나는 얼결에 이렇게 소리를 치고 옆으로 뛰였다. 눈속에 빠지는것도 가시나무에 온몸이 긁히우는것도 몰랐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뛰고 또 뛰였다.

놈들은 뭐라고 꽥꽥 소리를 지르며 뒤따라왔다. 나는 산등성이를 향해 그냥 뛰였다. 《애기어머니》도 내가 목표한 곳을 향해 뛰고있었다. 산림이 우거진 수림속으로 뛰여든 순간 내앞에는 아름드리 진대나무들이 가로세로 넘어져있었다. 힘이 진한 나는 그것들을 넘어설수가 없었다. 나무통밑으로 기여들었다. 그리고 가랑잎들을 와락 가슴에 그러안고 납작 엎디였다. 나는 걷잡을수 없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안정시키며 귀를 기울였다. 어지러운 군화소리와 지껄이는 소리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까딱않고 숨을 죽이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숨은 더욱 가빴고 숨소리는 자꾸만 높아지는것만 같았다. 놈들은 수림속으로 밀려와서 내가 숨은 나무통을 넘어서 사냥개들처럼 싸다니다가 몰켜가고말았다.

나는 위험한 고비를 넘긴 안도의 숨을 저도 모르게 내쉬였다. 한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나는 또 산막집쪽에서 들려오는 놈들의 징그리운 웨침소리를 듣고 귀를 도사리였다.

그것은 분명 사람을 치는 우악스러운 소리였으며 간간이 그 소리에 항거하는듯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누굴가?)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을 느꼈다. 그 목소리는 틀림없는 우리 군의동무의 음성이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는 환자들을 먼저 대피시키고 되돌아서다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놈들에게 붙들렸던것이였다. 《다들 어디로 달아났느냐, 대라. 대지 못할테냐?》

련이어 몸서리치는 채찍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를 갈며 참는 비통한 신음소리만이 들릴락말락할뿐이였다. 나는 두손이 부르르 떨리는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군의동무는 끝내 한마디의 말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놈들은 굳게 닫긴 철문은 열수 있을지언정 혁명가의 입만은 열수 없었던것이다.

이윽고 한방의 총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조선혁명 만세!》하고 부르는 군의동무의 비통하고도 우렁찬 만세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를 더는 들을수 없었다.

나는 당장 뛰여나가 놈들과 결판을 내여 군의동무의 원쑤를 갚고싶었다. 그러나 나혼자의 몸으로 무기도 없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영원히 기억해두리라. 천백배로 복수하리라.)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삼키며 거듭거듭 맹세를 다지였다.

놈들은 초막에 불을 지르고 되돌아갔다. 나는 불타는 산막집근방에서 군의동무와 《애기어머니》의 시체를 발견했다.

죽음을 초월한 준엄한 얼굴모습과 원쑤에 대한 다함없는 증오의 불길을 뿜는듯 부릅뜬채 감지 않은 그의 눈에는 고결한 혁명정신과 불굴의 투지가 어려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아니 바로 점심때까지만 해도 함께 웃으며 즐기였고 미래의 조국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손목을 맞잡던 다정한 전우들이였다.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그들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러자 나는 가까스로 견디던 다리맥이 한꺼번에 풀리여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앞이 캄캄했다. 전우들을 잃고 깊은 수림속에 홀로 남은 나는 어쩔바를 몰랐다. (모두 어디로 갔을가?) 전우들은 필경 환자들을 데리고 멀리 딴곳으로 피했을것이였다.

두 전우를 잃은 비통한 마음과 앞으로 어떻게 동무들을 찾아갈것인가가 막연한 나는 안타까운 심정에 휩싸였다.

한동안 넋잃은 사람처럼 맥없이 앉아있던 나는 번쩍 얼굴을 쳐들었다.

얼마전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곳 미혼진에 들리시여 우리에게 가르치시던 말씀이 가슴깊이 안겨왔던것이다.

주저앉지 말라. 어떤 곤난일지라도 뚫고나아가야 한다.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뚫고나가 싸움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 이겨야 한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전우들을 찾는것, 이것이 곧 싸움의 길을 찾는것이다. 나는 어떤 곤난이라도 극복하겠다고 사령관동지앞에서 똑똑히 맹세하지 않았던가? 원쑤를 갚아야 한다.

나는 힘을 모두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무가지들을 꺾어서 두 전우의 시체를 덮어준 다음 이미 어둡기 시작한 수림속으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캄캄한 수림속인지라 방향을 종잡을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무가지들을 헤치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따금 뭇짐승들의 굶주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주저앉지 않고 피로와 무서움을 뿌리치며 걷고 또 걸었다.

나는 온밤을 깊은 산속에서 헤매였다. 내가 캄캄한 수림속을 벗어났을 때는 이미 아침이였다. 이때에야 나는 비로소 자기가 아직도 치마폭에 참도시깨를 싸들고있다는것을 깨달을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냥 싸들었다. 환자들은 적들의 추격을 피했다 하더라도 아직 굶주리고있을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나물을 흘릴세라 나물을 싼 치마폭을 더욱 단단히 쥐였다.

나는 끝내 전우들을 찾아갈수 있었다. 내가 그들이 있는 곳에 기진맥진한 몸으로 간신히 당도했을 때 전우들은 환성을 올리며 나를 맞아주었다. 나도 그들에게 몸을 던지다싶이 와락 안기였다. 그 바람에 앞에 쌌던 나물이 땅바닥에 쏟아졌다.

《네가 이걸 끝내 가지고 다녔구나.》하며 전우들은 나를 힘껏 그러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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