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C, 5.18기념재단 <코리안스트릿저널> 전산화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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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성동포 작성일2015-11-13 04:02 조회1,64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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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C, 5.18기념재단 <코리안스트릿저널> 전산화 추진
19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 전두환 군사정부의 철저한 언론탄압으로 한국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언론이 통제되던 1980년대 로스안젤레스에서 발행돼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코리안스트릿저널>(발행인 조재길)을 폐간된지 25년만에 인터넷을 통해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한국 5.18기념재단 김양래 상임이사와 USC한국전통도서관 조이 김관장은 지난 10월 20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미주한인민족운동자료의 수집과 보존에 상호 협력하기로 합의하고 우선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코리안스트릿저널>을 조속한 시일내에 전산화해 USC윕사이트에 게제하기로 했다.
<코리안스트릿저널>은 1981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주간광고>로 출발했으나 창간호를 준비하다 전두환방미반대 데모에 뛰쳐나가야만 했던 시대상황과 언론자유에 목말랐던 독자들의 열망으로 종합주간지로 거듭나 1991년 2월까지 10년 동안 한국민주화운동의 일익을 담당했다. 한국에서는 철저하게 언론이 통제돼 모든 언론기관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반독재민주화운동을 여과없이 보도한 <코리안스트릿저널>은 독자들로부터는 바른 신문으로 찬사를 받았으나 한국정부와 총영사관으로 부터 반정부신문으로 낙인찍혀 온갖 탄압을 받았다.
<코리안스트릿저널>은5.18민주화운동기념사업 및 위령탑건립모금운동을 시작으로 1980년대 말까지 해마다 연말에 양심수를 위한 담요보내기운동을 비롯해 분신학생치료비보내기 등 민주화운동 수감자, 가족, 단체를 돕는 운동을 여러 민주운동 단체들과 함께 계속해 민주화운동의 대변지 역할을 했다. 1986년 직선제개헌을 위한 미주동포양심선언대회와 평화의 댐 모금운동 반대, 직선제개헌청원천만명서명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1987년 한국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6월항쟁에 호응해 ‘전미주한인시국선언대회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라는 임시기구를 조직해 동부의 뉴욕평화대행진 준비위원회와 함께 6월21일 로스앤젤레스 서울국제공원에서 시국선언대회를 개최했다.
<코리안스트릿저널>이 민주화운동의 전면에 나서자 한국정부와 총영사관의 탄압은 더욱 거세지고 용공논쟁이 법정공방으로 비화돼1989년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런 한국정부의 <코리안스트릿저널>에 대한 탄압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가 1986년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연재한 한국문제특집기사를 비롯해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세크라멘토 비>, <내셔널가디언> 등 미국신문들에 보도되었으며 총탄이 <코리안스트릿저널> 사옥에 날아들는 사건으로 미 연방하원에서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던 중 6.29선언과 한국대통령직접선거 실시로 중단됐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과 제6공화국 출범으로 한국에서 어느 정도 민주화와 언론자유가 진전을 보이며 <코리안스트릿저널>은 오히려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시대변화에 맞추어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위해 노력했지만 통일문제를 비중있게 다루자 오히려 친북, 용공이란 의혹의 눈초리가 더 심해졌다. 고착된 반정부신문이란 이미지로 인한 광고시장에서의 어려움에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내외 정세변화와 노태우정부의 언론통제 완화로 투지와 동력을 상실한 <코리안스트릿저널>은 1991년 2월 창간10주년 기념행사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런 <코리안스트릿저널>의 역사적 의의를 주목한 남가주대학(USC) 한국전통문화도서관이 한국계 신문으로는 유일하게 창간호부터 전 호의 원본과 마이크로휘쉬로 소장하고 있었다. 2013년 <코리안스트릿저널> 조재길 전 발행인이 소장하고 있던 원본과 필름을 5.18기념재단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전산화를 추진해 11월 중에 완료될 예정이다. 5.18기념재단에서는 내년 5월 광주항쟁자료전시회를 통해 <코리안스트릿저널>을 공개하고 국제학술세미나도 개최할 계획이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 전두환 군사정부의 철저한 언론탄압으로 한국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언론이 통제되던 1980년대 로스안젤레스에서 발행돼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코리안스트릿저널>(발행인 조재길)을 폐간된지 25년만에 인터넷을 통해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한국 5.18기념재단 김양래 상임이사와 USC한국전통도서관 조이 김관장은 지난 10월 20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미주한인민족운동자료의 수집과 보존에 상호 협력하기로 합의하고 우선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코리안스트릿저널>을 조속한 시일내에 전산화해 USC윕사이트에 게제하기로 했다.
<코리안스트릿저널>은 1981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주간광고>로 출발했으나 창간호를 준비하다 전두환방미반대 데모에 뛰쳐나가야만 했던 시대상황과 언론자유에 목말랐던 독자들의 열망으로 종합주간지로 거듭나 1991년 2월까지 10년 동안 한국민주화운동의 일익을 담당했다. 한국에서는 철저하게 언론이 통제돼 모든 언론기관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반독재민주화운동을 여과없이 보도한 <코리안스트릿저널>은 독자들로부터는 바른 신문으로 찬사를 받았으나 한국정부와 총영사관으로 부터 반정부신문으로 낙인찍혀 온갖 탄압을 받았다.
<코리안스트릿저널>은5.18민주화운동기념사업 및 위령탑건립모금운동을 시작으로 1980년대 말까지 해마다 연말에 양심수를 위한 담요보내기운동을 비롯해 분신학생치료비보내기 등 민주화운동 수감자, 가족, 단체를 돕는 운동을 여러 민주운동 단체들과 함께 계속해 민주화운동의 대변지 역할을 했다. 1986년 직선제개헌을 위한 미주동포양심선언대회와 평화의 댐 모금운동 반대, 직선제개헌청원천만명서명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1987년 한국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6월항쟁에 호응해 ‘전미주한인시국선언대회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라는 임시기구를 조직해 동부의 뉴욕평화대행진 준비위원회와 함께 6월21일 로스앤젤레스 서울국제공원에서 시국선언대회를 개최했다.
<코리안스트릿저널>이 민주화운동의 전면에 나서자 한국정부와 총영사관의 탄압은 더욱 거세지고 용공논쟁이 법정공방으로 비화돼1989년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런 한국정부의 <코리안스트릿저널>에 대한 탄압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가 1986년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연재한 한국문제특집기사를 비롯해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세크라멘토 비>, <내셔널가디언> 등 미국신문들에 보도되었으며 총탄이 <코리안스트릿저널> 사옥에 날아들는 사건으로 미 연방하원에서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던 중 6.29선언과 한국대통령직접선거 실시로 중단됐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과 제6공화국 출범으로 한국에서 어느 정도 민주화와 언론자유가 진전을 보이며 <코리안스트릿저널>은 오히려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시대변화에 맞추어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위해 노력했지만 통일문제를 비중있게 다루자 오히려 친북, 용공이란 의혹의 눈초리가 더 심해졌다. 고착된 반정부신문이란 이미지로 인한 광고시장에서의 어려움에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내외 정세변화와 노태우정부의 언론통제 완화로 투지와 동력을 상실한 <코리안스트릿저널>은 1991년 2월 창간10주년 기념행사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런 <코리안스트릿저널>의 역사적 의의를 주목한 남가주대학(USC) 한국전통문화도서관이 한국계 신문으로는 유일하게 창간호부터 전 호의 원본과 마이크로휘쉬로 소장하고 있었다. 2013년 <코리안스트릿저널> 조재길 전 발행인이 소장하고 있던 원본과 필름을 5.18기념재단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전산화를 추진해 11월 중에 완료될 예정이다. 5.18기념재단에서는 내년 5월 광주항쟁자료전시회를 통해 <코리안스트릿저널>을 공개하고 국제학술세미나도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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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전두환 29만원짜리를 옹호라는 어르신들 당장 자폭이나 해라~!!!!! ㅡ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