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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해서 5살부터 철저한 반미자가 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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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흙 작성일2015-12-07 07:33 조회1,44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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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해서 5살부터 철저한 반미자가 되였는가?
글쓴이: 다물흙 림원섭

그때가 아마 1948년 가을 날로 기억이 생생하다. 고구마를 가마니로 가득히 케왔을 때였으니 말이다. 난 전북 김제, 감곡 사이 평야에서 논, 밭 농사지며 먹고 사는 농사꾼 집안에서 태여낳다.

이때 이상하게 생긴 키큰 미양키놈이 통역관을 대동하고 강제로 쌀, 보리, 콩 등등 샅샅이 뒤져 글거 갈 때다.  쇠꼬챙이를 들고 다니며 어디고 푹푹 쑤시며, 장둑에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 단지 뚜껑들을 모두 열어보며 곡식을 찾는데 헐안이되였었다. 이들에게 무슨 민주주의가 있었고 인권이 있었겠는가!

이것을 보고 강제 공출이라고 했는데 이때 우리 할머니는 왜놈들 못지 않는 악질 양키놈들이라고 했었고 우리 아버지는 우리나라가 왜놈들이 미양키 식민지로 인수인계되였다고 하셨었다.  이때 우리 동내 사람들은 막 굶어 죽어갈 때다. 그때는 된장까지도 없는 자들은 얼굴이 퉁퉁부어 풀 독으로 막 죽어갈 때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3형제가 살았는가!  참으로 신기하다.

우리 부모님은 장둑 밑을 깊게 파 그 속에 곡식들을 숨겨놓고 그위에 된장, 간장, 고추장 단지를 올려 놓고 우릴 먹여 살렸다고 하셨다.  근 이틀에 한번씩 그 무거운  된장, 고추장 단지를 들어 옮겨 곡식을 퍼 올리는데 아버님께서 언제나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12년만에 만나 큰절하던 이 불초 장남 자식인 나에게 1984년 3월14일에 어머니의 절절한 말씀이였다.

이때 내가 1980년9월에 북녘에 태권도 소개 시범차 북에 갔다 오고 또 1983년1-6월까지 북 태권도를 가르치고 왔더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 목사놈까지도 빨갱이로 날 매도를 할때였다. 그런데 나의 어머님은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했으니 장하다고 하시며 어머님만은 내 편이였다. 지금은 날 보고 빨갱이라고 어느 누구가 말하면 감사하다고 하지만 그때는 빨갱이라는 말이 참으로 싫었었다.  그 내 어머님의 사랑에 그간 고였던 눈물을 다 쏟았다. 

위 글을 계속해서 우리집에 즉 남의 집에 주인 허락도 없이 강제로 즉 침략으로 들어온 날강도 이 악마들은 솥에 죽을 끓이고 있는 것을 마당으로 내 팽게치며 쌀을 내놔라고 – 공갈 협박질로 냅다 고함을 치니 어머니는 미국놈 앞에가서 당당히 쌀이 없다고 하니 통역으로 들은 그 미국 놈은 우리 어머니를 냅다 발로 차니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어머니한테 뛰어 가서 악을쓰며 울었다. 그때 그 악마 미양키놈은 어린 나까지도 발로 찻다.

그후 난 기억이 전혀 없지만 - 한참후 일어나 보니 그 놈들은 없었다.  그러나 키가 큰 그 미국 백인놈이 검은 장갑을 끼고 밀죽 검은 솥단지를 마당에 내 팽게치고  미국놈이 울 어머니를 발로 냅다 차고 내가 어머니 한테까서 을던 그 기억이 지금까지도 신기하게도 아주 생생하다. 그후부터 이상하게 생긴 미국 백인이라면  무조건 미워 저주하게 되였다.

그후 몇년이 지나고 – 왜놈들이 김제평야에 쌀 농사를 잘지어 퍼가기 위해서 정읍군 칠보 발전소 은한강 수리조합이라고 물길을 잘 만들어 놓은 그 물길 언덕을 걸으며 그때가 마침 봄이라 삐비를 뽑으며 교회를 가던 중 갑짜기 우리 바로 옆에  핑 핑 핑 – 핑 핑 핑 B-29 미양키 비행기는  우리에게 계속 사격을 가 했었다.

어느 누구가 시키지 않은 행동으로 아니 훈련이 잘된 병사들 처럼 우리 어린 형제는 즉시 그 언덕 밑 논 바닥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그래서 우린 구상일생으로 살았다.  그때가 아마 내가  8살 되던 해로 기억을 하니까 1951년 어느 날  5살 된 동생 손을 잡고 교회를 가던 중 일어난 기억이 생생하다. 

그후 세월은 한참 가  - 내가 커서 군대에 가 공수부대에 근무를 할 때 매년 봄. 가을로 미군들과 독수리 합동 훈련을 할 때면 난 미군들을 두둘겨 패는데 제일이였다.  그때 나의 중대장은 우릴 도우려 온 미군들을 폭행했다고 날 빠따를 쳤다. 그 중대장이 미워 술을 잔뜻 먹고 또 그 중대장을 난 폭행을 했었다. 그 후로 술이 취해서 전혀 기억이 없다는 날 상관 폭행죄로  자체부대 구치소에서 몇개월 생활도했던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여기에 써 본다.

그래서 나는 5살되던 해부터 키큰 미양키라면 저주하며 산 세월이 어연 70년이 되었는가 보다. 
나 만히 미양키 년놈들을 미워하는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할 정도다.

4348(2015)년1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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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왜놈들과 미양키들은 자자손손 우리민족에 철천지 원수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저도 대한민국 남녘 영원히 떠나고싶어요~!!!!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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