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만도 못한 인생아! 넌 이런걸 봐도 키득거리고 웃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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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진우 작성일2016-03-31 05:02 조회1,571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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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증언 "죽은 엄마 배에서 아기가 젖 먹으려…"
등록 일시 [2016-03-30 16:44:03]
【제주=뉴시스】 고동명 기자 = 30일 오후 제주시 문예회관에서 열린 '제주 4·3 68주년 기념' 4·3 증언 열 다섯번째 본풀이 마당에서 4·3 피해자 고완순씨가 당시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흐느끼고 있다.2016.03.30. kdm80@newsis.com 1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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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뉴시스】 고동명 기자 = "학살에서 도망가다 3살 된 아기가 죽은 엄마 배 위에서 젖을 먹으려고 더듬거리는 데 얼떨 결에 손으로 탁 짚었어요"
제주 4·3 피해자 고완순(77·여)씨가 68년 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러나 머릿 속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기억을 끄집어내며 흐느꼈다.
고씨의 이 경험담은 훗날 강요배 화가의 '젖먹이'라는 작품의 소재가 된다.
30일 오후 제주시 문예회관에서 '제주 4·3 68주년 기념' 4·3 증언 열 다섯번째 본풀이 마당'이 열렸다.
1939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서 태어난 고씨는 4·3 사건 당시 11살이었다. 4·3 사건이 시작되고 이듬해인 1949년 1월17일 군인들이 집을 불태우며 마을사람들에게 학교로 모이라고 했다.
고씨는 어머니와, 언니, 남동생과 겁에 질려 학교로 향했고 그곳에는 기관총 2개가 설치돼 있었다.
순식간에 "타타타"하는 기관총 소리가 들렸고 주민들이 학살당했다. 그 중에는 임신부 부부도 있었고 아기를 업은 엄마도 있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고씨의 회상은 이어졌다.
【제주=뉴시스】 고동명 기자 = 30일 오후 제주시 문예회관에서 열린 '제주 4·3 68주년 기념' 4·3 증언 열 다섯번째 본풀이 마당에서 4·3 피해자 고완순씨가 당시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설명하고 있다.2016.03.30. kdm80@newsis.com 16-03-30
군인들은 고씨 가족을 대표적인 4·3 학살터인 너븐숭이로 끌고갔다. 흙은 피로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총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갔고 고씨 가족 차례가 왔을 때 "사격중지"라는 소리가 들렸다.
구사일생으로 고씨와 어머니, 남동생은 너븐숭이에서 살아남았지만 남동생은 무서워서 울다가 군인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그 후유증으로 2년 정도 있다 죽었다.
고씨는 "가족 형제 자매 중 피해를 안 본 사람이 없어요. 외가집 삼촌은 학교 갔다가 잡혀가서 어디서 죽은지 몰라요.물에 빠뜨려 죽였데요. 작은 외삼촌은 군인부대에 감금됐다가 지금은 행명불명입니다" 라며 눈물을 흘렸다.
4·3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평생 마음속에 쌓아온 기억을 풀어내 치유하고, 4·3의 진실을 후세대들에 알리는 자리인 4·3증언 본풀이는 지난 2002년 시작돼 올해로 열 다섯번째를 맞고 있다.
본풀이를 주관하는 제주 4·3연구소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증언자들이 본풀이에 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여건이 허락하는 한 본풀이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kdm80@newsis.com
등록 일시 [2016-03-30 16:44:03]
【제주=뉴시스】 고동명 기자 = 30일 오후 제주시 문예회관에서 열린 '제주 4·3 68주년 기념' 4·3 증언 열 다섯번째 본풀이 마당에서 4·3 피해자 고완순씨가 당시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흐느끼고 있다.2016.03.30. kdm80@newsis.com 1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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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피해자 고완순(77·여)씨가 68년 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러나 머릿 속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기억을 끄집어내며 흐느꼈다.
고씨의 이 경험담은 훗날 강요배 화가의 '젖먹이'라는 작품의 소재가 된다.
30일 오후 제주시 문예회관에서 '제주 4·3 68주년 기념' 4·3 증언 열 다섯번째 본풀이 마당'이 열렸다.
1939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서 태어난 고씨는 4·3 사건 당시 11살이었다. 4·3 사건이 시작되고 이듬해인 1949년 1월17일 군인들이 집을 불태우며 마을사람들에게 학교로 모이라고 했다.
고씨는 어머니와, 언니, 남동생과 겁에 질려 학교로 향했고 그곳에는 기관총 2개가 설치돼 있었다.
순식간에 "타타타"하는 기관총 소리가 들렸고 주민들이 학살당했다. 그 중에는 임신부 부부도 있었고 아기를 업은 엄마도 있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고씨의 회상은 이어졌다.
【제주=뉴시스】 고동명 기자 = 30일 오후 제주시 문예회관에서 열린 '제주 4·3 68주년 기념' 4·3 증언 열 다섯번째 본풀이 마당에서 4·3 피해자 고완순씨가 당시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설명하고 있다.2016.03.30. kdm80@newsis.com 16-03-30
군인들은 고씨 가족을 대표적인 4·3 학살터인 너븐숭이로 끌고갔다. 흙은 피로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총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갔고 고씨 가족 차례가 왔을 때 "사격중지"라는 소리가 들렸다.
구사일생으로 고씨와 어머니, 남동생은 너븐숭이에서 살아남았지만 남동생은 무서워서 울다가 군인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그 후유증으로 2년 정도 있다 죽었다.
고씨는 "가족 형제 자매 중 피해를 안 본 사람이 없어요. 외가집 삼촌은 학교 갔다가 잡혀가서 어디서 죽은지 몰라요.물에 빠뜨려 죽였데요. 작은 외삼촌은 군인부대에 감금됐다가 지금은 행명불명입니다" 라며 눈물을 흘렸다.
4·3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평생 마음속에 쌓아온 기억을 풀어내 치유하고, 4·3의 진실을 후세대들에 알리는 자리인 4·3증언 본풀이는 지난 2002년 시작돼 올해로 열 다섯번째를 맞고 있다.
본풀이를 주관하는 제주 4·3연구소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증언자들이 본풀이에 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여건이 허락하는 한 본풀이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kdm80@newsis.com
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이라이자 니일남매같은 울 남녘 기득권자들~!!!! ㅡㅡ;;;;;;
참고님의 댓글
참고 작성일
벌레만도 못한 인생은 우리 민족을 갈라놓지 못해 피눈이 되여 발버둥질하는 악질 쪽발이 아니면 쪽발이 개라고 봅니다.
이런 비루스는 하루빨리 없애야 민족통신에 해가 없지요.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다음에는 이라이자 니일남매 그림 좀 올려줘요~!!!! 얼마나 사악한지를 우리가 봐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