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4권 24. 동지의 뜻을 이어 - 리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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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3-25 06:03 조회2,1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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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뜻을 이어
리 정 인
다음의 이야기는 1932년 봄에 있은 일이다.
이 시기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동만 각 현에서 반일유격대가 조직되던 때이다. 추수투쟁과 춘황투쟁을 통해 단결하여 원쑤들과 싸우면 이길수 있다는것을 깨달은 인민들의 혁명적기세는 유격대가 조직되고 무장투쟁에로 넘어가자 더욱 앙양되였다.
그때 나는 피눈물나는 민며느리살이의 고초를 겪다못해 하루밤은 가만히 빠져나와 연길현 남시거우에 있는 삼촌의 집에 갔다.
삼촌은 나의 가련한 처지를 생각해서 내가 불편을 느낄세라 극진히 돌보아주었다. 그러나 앞길이 캄캄한 나는 불안과 번민을 덜수 없었다.
괴로운 나날이 지나갔다. 그사이에 나는 이 마을에서 손우벌 되는 한 녀동무와 리광복이라는 청년을 알게 되였다.
그들은 놀러오기도 하고 가끔 밭에까지 찾아와 일손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그 녀동무와 퍽 친해졌다. 그래 서로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기로 했다.
그도 역시 13살 때에 민며느리로 팔려간 일이 있었던것이다. 하루는 그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서럽던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있겠어요. 우리가 민며느리로 팔려간것은 무슨 팔자가 그래서 그런게 아니예요. 일제놈들이 행세하는 세상탓이구 봉건탓이라는걸 알아야 해요.
그러니 우리 녀성들도 이제는 남자들과 같이 혁명을 해야 돼요. 그래야 행복하게 살수 있어요. … 》
그는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싸워야 하며 우리같이 돈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한데 뭉쳐야 한다는것을 말해주었다.
나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뜻을 잘 몰랐으나 그런 이야기를 여러번 듣는 과정에 차차 눈을 뜨게 되였다.
그는 나에게 《녀성해방가》를 비롯한 혁명가요와 글도 배워주었다.
그후 나는 그 녀동무가 바로 이곳 부녀회위원이며 리광복동무는 공청책임자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그들의 교양을 통하여 앞으로 내가 나갈 길은 오로지 혁명의 길밖에 없다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 두 동무의 보증으로 공청에 들어갔다.
그들은 내가 공청원이 된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정인이, 공청원은 첫째로 조직이 주는 임무에 충실해야 해요. 그렇게 하자면 공청원이란 자랑을 잊지 말아야 하며 조직의 리익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쳐싸우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어야 해요.》
그는 몇번인가 이런 말을 했고 짬짬이 나에게 하나라도 더 배워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는 얼마후 주구들의 밀고로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놈들은 혁명조직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갖은 야만적인 고문과 별의별 회유수단을 다 썼으나 끝끝내 그의 혁명적절개를 꺾지 못했다.
그 동무는 자기의 장렬한 최후를 마치면서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혁명 만세!》를 소리높이 웨쳤다.
…우리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나를 그렇게 극진히 사랑해주었고 가르쳐준 혁명동지를 잃은 비분으로 하여 가슴이 미여지는듯했다.
《…우리는 귀중한 동지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설음을 참고 눈물을 닦읍시다. 그 동무는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최후승리를 위해 마음을 더욱 튼튼히 가다듬고 그의 뜻을 이어 끝까지 싸워야 하겠습니다.》
공청책임자 광복동무는 목이 메여 다음말을 얼른 잇지 못했다. 추도식장은 원쑤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과 동지를 생각하는 비분에 넘친 엄숙한 분위기에 싸였다.
(그렇다. 눈물만 흘리고있을 때가 아니다. 원쑤놈들에게 백배의 복수를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리는것을 씻으며 두 주먹을 부르쥐고 그의 뜻을 이어 혁명의 길에서 끝까지 용감히 싸울것을 굳게 맹세했다.
그후 얼마안있어 수리날이 왔다. 이때 남시거우에서 10리가량 되는 로두구시가지에서는 큰 운동회가 열리게 되였다.
교활한 일제놈들이 주구들을 시켜 운동회를 열어 민심을 사보려고 꾀하는것을 안 혁명조직에서는 도리여 이운동회를 반일사상의 선전무대로 만들어 놈들에게 타격을 줄것을 결정하였다.
운동회가 열릴 전날 저녁에 우리는 회의를 하였다. 광복동무가 제기된 임무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 과업을 공청원들이 수행하기로 되였다고 말하였다. 우리들은 저마다 무엇이든 임무만 맡겨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수행하겠다는것을 토론하였다.
회의 뒤끝에 각자가 개별적으로 임무를 받았는데 나는 군중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씨름판에 삐라를 뿌릴 어려운 과업을 맡았다. 나의 4촌동생도 그네터에 가서 삐라를 뿌릴 과업을 맡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우리 형제는 얼른 잠을 이룰수 없었다.
물론 삐라살포공작이 처음은 아니나 이때부터 놈들의 발악이 각별히 심해졌기때문이다. 그런데다 더우기 대낮에 원쑤들의 코앞에서 그러한 일을 한다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희생된 그 동무가 나더러 공청원이란 첫째로 조직이 주는 임무에 충실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던 말을 명심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맡은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야말리라고 다짐했다. 나는 온밤 삐라를 어떤 방법으로 건사해가지고 어떻게 뿌릴가에 대해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흐리고 비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운동회를 못하게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안타까왔다. 그러나 조반을 먹고나니 비가 멎고 구름이 한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동생과 함께 삐라를 건사하는데 편리하도록 우정 포대자루를 쓰고 광복동무를 찾아가 삐라묶음을 받았다.
우리는 그것을 허리춤에 감추어가지고 운동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로두구로 가는 길가에는 벌써 사람들이 하얗게 늘어서고있었다.
거리에 당도하니 거의 한낮이 되였다. 우리는 서로 길을 달리하여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씨름판에서는 벌써 경기가 시작되였다.
나는 사람들이 겹겹으로 싸여 서로 밀치고닥치고 하는 짬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씨름판에는 룡정사람들도 오고 멀리 라남선수들까지 와서 황소를 상으로 걸고 승부를 다투고있었다. 구경군들은 1,000명도 더 되였다. 맨앞줄에서는 응원하는 사람들이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기세를 돋구고있었다.
그 맞은켠에는 풍을 친 주최자들의 시상석이 자리잡고있었는데 거기에는 일제놈들과 그 주구놈들이 제노랍시고 거드름을 피우고 앉아있었다. 거기에는 상품과 함께 전화통까지 놓여있었다.
(이제 보자, 이놈들.)
나는 놈들을 쏘아보면서 관중들의 복판까지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사방을 조심히 둘러보며 기회만 엿보고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쉽사리 목적을 이룰수 없었다. 나는 가슴을 울렁거리면서 궁리하였다.
그때 씨름군의 어느 한쪽이 용을 쓰자 사람들이 《와!》 고함을 지르면서 들끓었다.
(옳다. 이런 때를 리용해야겠다.)
마침내 세번째 맞붙은 선수들이 서로 상대편을 넘어뜨리려고 용을 쓰자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나는 재빨리 삐라묶음을 끄집어내여 치마폭밑에 감싸쥐였다.
이때에 한쪽이 배지개를 떠 상대편을 공중 들었다메쳤다.
《와.》운동장이 떠나갈듯 함성이 터지고 북소리, 나팔소리가 요란히 울리였다. 이긴 편의 사람들은 좋다고 껑충껑충 뛰기까지 했다.
바로 이때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삐라묶음을 내던졌다.
순간 삐라는 아래켠에 앉은 사람들의 머리우로 흩어져나가더니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다.
방금전까지 씨름판에만 정신이 팔렸던 군중들이 머리우에 떨어지는 삐라를 서로 먼저 잡으려고 덮치는 사람, 받아쥔 삐라를 읽는 사람으로 벌둥지처럼 웅성거리고있었다. 삐라에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라는 글발이 씌여있었다.
시상석에서는 눈이 휘둥그래서 《총기립》을 하고 북채를 들어올리던 사람과 나팔을 입에다 댔던 사람도 멍해 삐라가 흩어지는것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호각소리가 나자 시상석에 앉았던놈들이 다급히 군중들이 있는데로 달려들었다.
군중들은 왁작 떠들어대고 아이들은 무슨 큰일이 난듯 서로 이름을 부르고 운동장복판을 궤뚫고 달리는 등 운동장은 복새판이 되고말았다.
(이런데서 누가 그랬는지 알게 뭐야 ? )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 나는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놈들은 군중들에게서 삐라를 빼앗으려고 애를 썼다. 손에 쥔것을 낚아채기도 하고 땅우에 흩어진것을 모으려고 사람들의 틈새기로 네발걸음으로 기여다니기도 했다.
그렇지만 군중들은 걷어쥔 삐라를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놈들은 등이 달아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며 발광했다. 놈들은 미처 전화걸 생각도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다급히 전화통을 집어들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밀리여 놈들의 앞에 가있었다. 그러나 일본말을 한마디도 모르는 나는 놈들이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수 없었다. 아마 씨름을 계속하라는 지시를 받은 모양으로 그자는 수화기를 놓더니 심판원들을 보고 빨리 선수들을 모아다가 씨름을 시키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나 이런 판에 잘못 걸리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선수들은 좀체로 씨름판으로 되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형세가 좋지 못한것을 깨달은 군중들은 흩어져가기 시작했다. 나도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자리를 뜨는데 갑자기 운동장으로 경관놈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왔다.
놈들은 닥치는대로 사람들의 뺨을 치고 몸을 수색하면서 날뛰였다. 운동장은 란장판이 되였다.
군중들은 서로 밀치면서 경관 한놈을 땅바닥에 깔아놓았다. 군중들의 뭇발에 실컷 짓밟히다가 겨우 빠져나온 놈은 다시는 그들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이렇게 얼마동안 행패를 부리던 놈들은 마침내 자기들의 눈에 거슬려보이는 사람들을 덮어놓고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같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미처 주의를 돌리지 못했다.
이날 운동회는 결국 이렇게 끝나고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길에서 사람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는것을 들었다.
《거, 오늘 씨름판이 뒤집혔다는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씨름판뿐이 아니지, 그네터에서도 굉장했다우. 일본놈들을 반대하고 조선독립을 찾자는 선전문이 하얗게 날렸다우.》
《허, 그거 수리날운동회가 참 잘된셈이군요. 그런데 그게 누군지 놈들에게 잡히지나 않았소.》
《글쎄요, 그처럼 싸우는 사람들이 그리 쉽게 잡힐리 있나요.》
뒤에서 걸어가는 내 마음은 한량없이 기뻤다.
나는 언제인가 그 동무가 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정인이, 우리가 나갈 길은 오직 혁명의 길뿐이예요. 이 길을 굳게 믿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곤난도 두려움도 있을수 없어요.》
(그렇다. 혁명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자. 나는 아직 첫걸음을 내디딘데 불과하다.
더 열심히 배우고 더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
이렇게 결의한 나는 앞날의 투쟁에 대하여 더욱 확신을 가졌으며 그후 마침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영광스러운 유격대에 입대하게 되였다.
리 정 인
다음의 이야기는 1932년 봄에 있은 일이다.
이 시기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동만 각 현에서 반일유격대가 조직되던 때이다. 추수투쟁과 춘황투쟁을 통해 단결하여 원쑤들과 싸우면 이길수 있다는것을 깨달은 인민들의 혁명적기세는 유격대가 조직되고 무장투쟁에로 넘어가자 더욱 앙양되였다.
그때 나는 피눈물나는 민며느리살이의 고초를 겪다못해 하루밤은 가만히 빠져나와 연길현 남시거우에 있는 삼촌의 집에 갔다.
삼촌은 나의 가련한 처지를 생각해서 내가 불편을 느낄세라 극진히 돌보아주었다. 그러나 앞길이 캄캄한 나는 불안과 번민을 덜수 없었다.
괴로운 나날이 지나갔다. 그사이에 나는 이 마을에서 손우벌 되는 한 녀동무와 리광복이라는 청년을 알게 되였다.
그들은 놀러오기도 하고 가끔 밭에까지 찾아와 일손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그 녀동무와 퍽 친해졌다. 그래 서로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기로 했다.
그도 역시 13살 때에 민며느리로 팔려간 일이 있었던것이다. 하루는 그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서럽던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있겠어요. 우리가 민며느리로 팔려간것은 무슨 팔자가 그래서 그런게 아니예요. 일제놈들이 행세하는 세상탓이구 봉건탓이라는걸 알아야 해요.
그러니 우리 녀성들도 이제는 남자들과 같이 혁명을 해야 돼요. 그래야 행복하게 살수 있어요. … 》
그는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싸워야 하며 우리같이 돈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한데 뭉쳐야 한다는것을 말해주었다.
나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뜻을 잘 몰랐으나 그런 이야기를 여러번 듣는 과정에 차차 눈을 뜨게 되였다.
그는 나에게 《녀성해방가》를 비롯한 혁명가요와 글도 배워주었다.
그후 나는 그 녀동무가 바로 이곳 부녀회위원이며 리광복동무는 공청책임자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그들의 교양을 통하여 앞으로 내가 나갈 길은 오로지 혁명의 길밖에 없다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 두 동무의 보증으로 공청에 들어갔다.
그들은 내가 공청원이 된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정인이, 공청원은 첫째로 조직이 주는 임무에 충실해야 해요. 그렇게 하자면 공청원이란 자랑을 잊지 말아야 하며 조직의 리익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쳐싸우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어야 해요.》
그는 몇번인가 이런 말을 했고 짬짬이 나에게 하나라도 더 배워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는 얼마후 주구들의 밀고로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놈들은 혁명조직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갖은 야만적인 고문과 별의별 회유수단을 다 썼으나 끝끝내 그의 혁명적절개를 꺾지 못했다.
그 동무는 자기의 장렬한 최후를 마치면서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혁명 만세!》를 소리높이 웨쳤다.
…우리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나를 그렇게 극진히 사랑해주었고 가르쳐준 혁명동지를 잃은 비분으로 하여 가슴이 미여지는듯했다.
《…우리는 귀중한 동지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설음을 참고 눈물을 닦읍시다. 그 동무는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최후승리를 위해 마음을 더욱 튼튼히 가다듬고 그의 뜻을 이어 끝까지 싸워야 하겠습니다.》
공청책임자 광복동무는 목이 메여 다음말을 얼른 잇지 못했다. 추도식장은 원쑤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과 동지를 생각하는 비분에 넘친 엄숙한 분위기에 싸였다.
(그렇다. 눈물만 흘리고있을 때가 아니다. 원쑤놈들에게 백배의 복수를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리는것을 씻으며 두 주먹을 부르쥐고 그의 뜻을 이어 혁명의 길에서 끝까지 용감히 싸울것을 굳게 맹세했다.
그후 얼마안있어 수리날이 왔다. 이때 남시거우에서 10리가량 되는 로두구시가지에서는 큰 운동회가 열리게 되였다.
교활한 일제놈들이 주구들을 시켜 운동회를 열어 민심을 사보려고 꾀하는것을 안 혁명조직에서는 도리여 이운동회를 반일사상의 선전무대로 만들어 놈들에게 타격을 줄것을 결정하였다.
운동회가 열릴 전날 저녁에 우리는 회의를 하였다. 광복동무가 제기된 임무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 과업을 공청원들이 수행하기로 되였다고 말하였다. 우리들은 저마다 무엇이든 임무만 맡겨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수행하겠다는것을 토론하였다.
회의 뒤끝에 각자가 개별적으로 임무를 받았는데 나는 군중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씨름판에 삐라를 뿌릴 어려운 과업을 맡았다. 나의 4촌동생도 그네터에 가서 삐라를 뿌릴 과업을 맡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우리 형제는 얼른 잠을 이룰수 없었다.
물론 삐라살포공작이 처음은 아니나 이때부터 놈들의 발악이 각별히 심해졌기때문이다. 그런데다 더우기 대낮에 원쑤들의 코앞에서 그러한 일을 한다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희생된 그 동무가 나더러 공청원이란 첫째로 조직이 주는 임무에 충실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던 말을 명심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맡은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야말리라고 다짐했다. 나는 온밤 삐라를 어떤 방법으로 건사해가지고 어떻게 뿌릴가에 대해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흐리고 비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운동회를 못하게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안타까왔다. 그러나 조반을 먹고나니 비가 멎고 구름이 한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동생과 함께 삐라를 건사하는데 편리하도록 우정 포대자루를 쓰고 광복동무를 찾아가 삐라묶음을 받았다.
우리는 그것을 허리춤에 감추어가지고 운동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로두구로 가는 길가에는 벌써 사람들이 하얗게 늘어서고있었다.
거리에 당도하니 거의 한낮이 되였다. 우리는 서로 길을 달리하여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씨름판에서는 벌써 경기가 시작되였다.
나는 사람들이 겹겹으로 싸여 서로 밀치고닥치고 하는 짬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씨름판에는 룡정사람들도 오고 멀리 라남선수들까지 와서 황소를 상으로 걸고 승부를 다투고있었다. 구경군들은 1,000명도 더 되였다. 맨앞줄에서는 응원하는 사람들이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기세를 돋구고있었다.
그 맞은켠에는 풍을 친 주최자들의 시상석이 자리잡고있었는데 거기에는 일제놈들과 그 주구놈들이 제노랍시고 거드름을 피우고 앉아있었다. 거기에는 상품과 함께 전화통까지 놓여있었다.
(이제 보자, 이놈들.)
나는 놈들을 쏘아보면서 관중들의 복판까지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사방을 조심히 둘러보며 기회만 엿보고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쉽사리 목적을 이룰수 없었다. 나는 가슴을 울렁거리면서 궁리하였다.
그때 씨름군의 어느 한쪽이 용을 쓰자 사람들이 《와!》 고함을 지르면서 들끓었다.
(옳다. 이런 때를 리용해야겠다.)
마침내 세번째 맞붙은 선수들이 서로 상대편을 넘어뜨리려고 용을 쓰자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나는 재빨리 삐라묶음을 끄집어내여 치마폭밑에 감싸쥐였다.
이때에 한쪽이 배지개를 떠 상대편을 공중 들었다메쳤다.
《와.》운동장이 떠나갈듯 함성이 터지고 북소리, 나팔소리가 요란히 울리였다. 이긴 편의 사람들은 좋다고 껑충껑충 뛰기까지 했다.
바로 이때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삐라묶음을 내던졌다.
순간 삐라는 아래켠에 앉은 사람들의 머리우로 흩어져나가더니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다.
방금전까지 씨름판에만 정신이 팔렸던 군중들이 머리우에 떨어지는 삐라를 서로 먼저 잡으려고 덮치는 사람, 받아쥔 삐라를 읽는 사람으로 벌둥지처럼 웅성거리고있었다. 삐라에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라는 글발이 씌여있었다.
시상석에서는 눈이 휘둥그래서 《총기립》을 하고 북채를 들어올리던 사람과 나팔을 입에다 댔던 사람도 멍해 삐라가 흩어지는것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호각소리가 나자 시상석에 앉았던놈들이 다급히 군중들이 있는데로 달려들었다.
군중들은 왁작 떠들어대고 아이들은 무슨 큰일이 난듯 서로 이름을 부르고 운동장복판을 궤뚫고 달리는 등 운동장은 복새판이 되고말았다.
(이런데서 누가 그랬는지 알게 뭐야 ? )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 나는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놈들은 군중들에게서 삐라를 빼앗으려고 애를 썼다. 손에 쥔것을 낚아채기도 하고 땅우에 흩어진것을 모으려고 사람들의 틈새기로 네발걸음으로 기여다니기도 했다.
그렇지만 군중들은 걷어쥔 삐라를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놈들은 등이 달아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며 발광했다. 놈들은 미처 전화걸 생각도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다급히 전화통을 집어들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밀리여 놈들의 앞에 가있었다. 그러나 일본말을 한마디도 모르는 나는 놈들이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수 없었다. 아마 씨름을 계속하라는 지시를 받은 모양으로 그자는 수화기를 놓더니 심판원들을 보고 빨리 선수들을 모아다가 씨름을 시키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나 이런 판에 잘못 걸리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선수들은 좀체로 씨름판으로 되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형세가 좋지 못한것을 깨달은 군중들은 흩어져가기 시작했다. 나도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자리를 뜨는데 갑자기 운동장으로 경관놈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왔다.
놈들은 닥치는대로 사람들의 뺨을 치고 몸을 수색하면서 날뛰였다. 운동장은 란장판이 되였다.
군중들은 서로 밀치면서 경관 한놈을 땅바닥에 깔아놓았다. 군중들의 뭇발에 실컷 짓밟히다가 겨우 빠져나온 놈은 다시는 그들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이렇게 얼마동안 행패를 부리던 놈들은 마침내 자기들의 눈에 거슬려보이는 사람들을 덮어놓고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같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미처 주의를 돌리지 못했다.
이날 운동회는 결국 이렇게 끝나고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길에서 사람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는것을 들었다.
《거, 오늘 씨름판이 뒤집혔다는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씨름판뿐이 아니지, 그네터에서도 굉장했다우. 일본놈들을 반대하고 조선독립을 찾자는 선전문이 하얗게 날렸다우.》
《허, 그거 수리날운동회가 참 잘된셈이군요. 그런데 그게 누군지 놈들에게 잡히지나 않았소.》
《글쎄요, 그처럼 싸우는 사람들이 그리 쉽게 잡힐리 있나요.》
뒤에서 걸어가는 내 마음은 한량없이 기뻤다.
나는 언제인가 그 동무가 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정인이, 우리가 나갈 길은 오직 혁명의 길뿐이예요. 이 길을 굳게 믿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곤난도 두려움도 있을수 없어요.》
(그렇다. 혁명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자. 나는 아직 첫걸음을 내디딘데 불과하다.
더 열심히 배우고 더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
이렇게 결의한 나는 앞날의 투쟁에 대하여 더욱 확신을 가졌으며 그후 마침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영광스러운 유격대에 입대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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