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애]북에 간 노수희 동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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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천재 작성일12-04-06 01:04 조회1,78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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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희 동지
일요일 아침 버릇처럼 된 일정으로 컴퓨터를 열고 통일뉴스를 보고서야 동지의 방북 소식을 알게 되었소.
전날 싸구려 점심을 게눈 감추듯하고 왜 그렇게 자리를 떠야 했는지가 야속했오.
늘 해오던 버릇처럼 소주잔이라도 주고받으면서 갑론을박을 나누었던들 뭔가 낌새를 느낄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으로 실소를 했고, 또 한편으로는 책임 있는 자기행위에 모질 정도로 감내할 줄 아는 동지의 그 반듯한 운동가다운 모습에 더 할 수 없는 존경심을 느낀 것도 사실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더라면 낯값으로라도 이런저런 조언쯤 주고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요.
과정이 어찌됐든, 당신 특유의 뚝심과 의리 그 두둑한 배짱 덕분에 늙은 망국노로 하여금 칡 씹듯이 하는 자조와 치욕의 감정을 툴툴 털어낼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고맙고 고마울 뿐이요.
노수희 동지
동지의 평양도착의 소식을 접한 우리는 처음으로 창끝에 찔린 맹수처럼 기민한 동작으로 뛰기 시작했고 조직의 역할, 자신의 역할을 확인하면서 경향신문 13층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보고회의와 기자회견을 하였소.
물론 여기에서도 사안에 대한 소수의 이견도 없지않았소만 그게 뭐 대수롭겠소.
동지도 알다시피 1948년 4월 애국자 김구선생이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받아 평양을 갈 때도 자동차 앞에서 몽니를 부리는 함량미달의 젊은 애국자도 있었고, 1989년 5월,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 후에도 목사님의 방북이 공안탄압을 불러왔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동지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요.
그러나 역사는 분명하오. 50여 정당사회단체와 언론인을 대동하고 평양을 방문한 애국자의 결단으로 해서 모든 애국자들의 민전적 단결을 촉매하는 역사적 성과를 가져오게 했고, 조국분단의 반민족 범죄를 더욱 분명하게 역사에 각인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장한 일이었소.
어디 그뿐이요? 민족주의가 민족주의로서의 애국적 완성의 의미라는 것이 고독한 구호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연공연북 민족대단결을 같이했을 때 비로소 너와 나의 영예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요, 반제자주의 길이 여기 있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준 것이요. 제국주의 침략이 상존하는 조건에서 민족대단결은 모든 애국의 기초강령이요 행동지침이라는 것을 확인한 게 아니겠소. 그래서 김구선생은 전민족의 애국자가 아니요.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만해도 그 얼마나 장한일이였소.
그 엄혹했던 시기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정중히 받아들였고 방북 후에는 자신의 느슨한 연방제와 김일성 주석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 안음으로 해서 오직 연방제 통일만이 통일이요 연방제 통일만이 자주적 통일, 평화적 통일일 뿐, 일체의 사이비 통일론의 그 기만성이 까밝혀진 게 아니오.
노수희 동지
동지의 조문방북의 의미를 말하기에 앞서 여담을 한자락 늘어놓겠소.
하늘만 빠꼼한 산간 벽촌에서 화전밭이나 가는 농부도 어른의 부음을 접했을 때는 쇠비 쟁기에 책념할 것도 없이 손발이나 씻고 의관정제를 하고는 백리길 멀다않고 조문을 가는거요. 이게 우리의 미풍이고 도덕이고 고인에 대한 예의 일 뿐만 아니라 소상 대상의 기간 내에 조문을 올 사람이 오지 안았을 때는 평생을 두고 의절하는 법이요.
저자바닥의 망난이도 이 정도의 인식은 있어야 사람 축에 끼는 것이지 애통하는 눈물로 강산을 적시는 상가 집에다 주먹질이나 하는 깡패야 그게 어디사람이요.
사리가 이러하거늘 작년 12월 1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어른의 부음을 접하고서도 우리는 조문을 못가고 속수무책으로 북녘하늘만 바라보았소. 여기서 군계일학 그 용기를 거듭 존경하오.
노수희 동지
인류가 기록할 수 있었던 역사의 진실은 오늘의 문명이 만들어지기까지 1,400회 정도의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오. 그 대부분은 강자의 침략이고 약탈의 전쟁이었다고 하오. 서구제국주의 세력이 종횡무진 학살과 약탈로 얼룩진 15세기말 16세기 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 범죄는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겠거니와 문명세대 최후의 제국주의 미제가 태평양과 대서양의 사이에서 영광의 고독을 즐기는 전쟁상인으로의 역할만으로 모자라서 제국주의 전쟁의 주범으로 전쟁특수로 배를 불리더니 급기야는 전 세계 200여 국가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자는 게 아니겠소.
그러니 서방세계 주류언론에서부터 전 세계 내노라하는 학자들 정치인들 종교인들 입 붙은 놈은 너나할 것 없이 미국의 전횡은 억제되어야 한다거나 자유민주주의는 대안이 아니라거나 혹은 미국은 조락하고 있다거나 미국은 몰락하고 있다거나 혹은 미국은 로마제국의 망국사를 답습하고 있다고 하질 않소.
나아가 이 같은 분분한 세론에서 전 세계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지배와 착취를 거부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 등 이 같은 지고지순한 시선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화국을 주목한다는 것은 선군정치를 따라 배우고자 하는 바 아니오?
그것은 두말할 것없이 김일성 주석 때문에 생긴 인류사 유례없는 현상이지요. 19세기 후반의 맑스 엥겔스의 과학적 세계관이 이 이전의 일체의 계몽사상의 관념적 허상을 까밝힌 조건에서 시작된 레닌의 역사, 쏘비엗의 노농권력의 실험적 과정을 거치는 중에 전혀 다른 차원에서 철학과 변혁의 시원이 생긴 것이 아니겠소. 기성철학의 시대적 한계와 제한성에 대한 김일성 주석의 실천적 자각의 결과가 아니겠소.
이런 시대 상황에서 동트는 하늘을 연 이가 바로 김일성 주석이오.
나이 20세에도 미치지 못한 청년혁명가 김일성 주석이 혁명의 국제적 연대를 원칙적으로 존중하면서도 조선의 혁명은 조선 사람이 하는 것이지 결코 종주국 혁명에 부종하는 게 아니라는 대원칙과 대중 속에 들어가 대중과 함께하는 혁명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대원칙을 세웠으니 참으로 감탄할 바요. 그로부터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놓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놓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놓고 다 같이 단결할 것을 제시하니 그 또한 얼마나 식민지 인민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였겠소.
반제 반봉건 민주조국건설을 호소한 1930년 카륜회의 보고연설에서 보여준 탁월한 통찰력과 그 지도사상이 더욱더욱 대중 속에 젖어들면서 또 얼마나 많은 모범적 사례들이 우리 앞에 펼쳐졌소. 하나를 분석하면 곧 이어 더욱 넓게 일반화하고 유격조건에 맞는 군사리론, 현장사업 대중사업에서 얻어진 소중한 경험과 모범적 사례에를 통하여 리론과 실제를 구체적으로 결합해내는 각고의 노력, 창조적 사색을 통한 그야말로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주체사상은 체계화했고, 인민대중을 하늘처럼 섬기는 애민사상으로 하여. 종횡무진 항일역량의 국제적 민족적 통일전선적 단결을 발전시켜 나가는데서 비로소 김일성주석은 소위 일제가 말하는 창해일속의 소수병력으로 하여금 세계 제일이라 떠벌이던 100만 대군이라는 관동군을 연전연승으로 몰아부쳤고 급기야는 일제를 패망케 하였으니 이는 전적으로 사상,리론,방법을 전일적으로 완성한 주체사상의 위력이었다 할 것입니다.
이로부터, 이에 근거해 김일성 주석 시대를 대표할 수있는 민족의 해방. 노동계급을 영도계급으로 하는 혁명적 민주주의, 전후 복구건설의 과도적 과정에서부터 시작해서 1994년까지의 과학적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 이 과정에서 당,군,정의 여러분야에서 지도자수업을 쌓으면서 김일성주석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한 김정일 위원장의 역사적 업적은 가히 주체혁명의 신기원 (新紀元)을 열어놨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일성대학에 학생시절부터 만인의 관심을 집중케하는 론문에서부터 시작해서 158편에 이르는 노작은 그 내용의 심오함과 함께 참으로 광범하다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국방, 문화예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체철학의 바른 이해와 해석을 위한 교시적 논문 혹은 혁명사업에서 주체의 문제라거나 혁명적 요구에 맞는 전통문화 예술에 대한 연구와 재창조 등 그 깊이와 폭이 참으로 심오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건강까지도 돌볼 새 없는 왕성한 활동은 실로 국정전반을 어느 한 곳도 소흘함 없이 전일적으로 통일적으로 직접 지도한 것입니다.
탁월한 예지와 열정, 왕성한 활동력과 남다른 탐구력으로 혁명가적 자질과 역량을 고루 갖춘 김정일 위원장이 80년대 말 동구권의 붕괴와 쏘련의 해체, 중국혁명에서 드러난 이런저런 편향과 수정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한 게 아니라 연구되고 분석됐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선로후군의 일반적 공식을 따르지 않고 인민유격대를 먼저 건설하고 유격항쟁의 성과와 함께 검증된 역량을 축적하면서 혁명단계의 요구에 맞게 대중적 통일전선을 건설하는 것과 함께 당건설을 준비해온 김일성 주석의 주체혁명의 발전선상에서 현실정세의 반영으로 선군혁명의 새 시대를 열어 제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혁명에서 나서는 군의 위상이 그저 단순한 혁명의 문지기가 아니라 수령과 주체를 보위하는 군이어야 하며, 사상을 보위하고 사회주의를 보위하는 군이어야 하며, 규율과 질서로 완성된 집단주의 최고의 정예로서 인민을 보위하고 조국을 보위하는 군이 아니고서는 주체혁명의 보위도 불가능할 뿐아니라 반제자주의 국제적 사명도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군사정책은 모든 정책에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당의 영도를 받아 총대로 혁명을 보위하자는 것이지만 이는 수령의 혁명역사의 요구, 변화된 시대, 변화된 조건에 대한 과학적 해답이었다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선군정치의 위력은 당연히 주체혁명을 한 단계 높이 세웠으며 자주와 평화, 정의를 위해 싸우는 모두의 모범이요 혁명교과서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 260여 곳에 선군정치 선군혁명을 연구하는 단체와 학회가 만들어졌고, 미쏘대결의 냉전시대는 자주와 예속, 조선과 미국의 대결로의 변화가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문명을 주고받고 침략과 약탈이 국제화한 500-600년의 역사에 오늘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신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이 주동의 지위에서 피동의 지위로 굴러 떨어졌고, 미국이 자랑하는 항공모함이 바다에 떠있는 고철덩어리가 돼가고 있다는 사실이요. 이는 누가 뭐래도 선군혁명의 기적일 뿐만 아니라 선군혁명이 시사하는 의미야말로 반제평화의 인류적 강령이요 교과서가 아니겠소.
여기서 우리는 각각의 처한 처지와는 무관하게 조선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당당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고 푸른 조국의 하늘을 우러러 가슴을 펼수있는 행복이 있다는 것이요. 사리가 이럴진대 우리가 떳떳하고 당당하게 조문방북을 함께 하지 못했고, 이를 대표한 당신이 얼마나 고맙소.
노수희 동지
남쪽의 이런저런 걱정하지 마시오. 지도자들과 책임일꾼들의 비워진 자리가 있기로 서니 일상의 이런저런 일에 아무지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려울 때 더욱 단결하여 역경을 순경으로 바꿔 내는게 우리사상이지 어렵다고 주저앉는 패배주의는 우리사상이 아니잖소. 편한 일상의 평정으로 많은 것을 보고 오시오.
어린아이들을 그토록 재간둥이로 키워내는 인민학교 선생님도 만나보고 고급간부의 아들딸로 태어난 젊은이가 농촌이요 광촌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주체적 자기인생을 열어나가는 그 똑똑한 젊은이도 만나보고, 군사과학기술의 경지에서 최첨단을 돌파하는 기적을 연발하는 젊은 과학자들도 만나보시고, 국운이 왔다갔하는 대미외교전에서 그 넉넉한 여유를 보여주는 외교관도 만나보시고, 상대가 일본이라 생각하니 딴 힘이 솟았다던 스포츠 애국자 계순희도 만나보시고, 군의 핵심간부인 중대장님도 한 분 만나 보자고 하시오.
그리고 이 모든 분들에게 남쪽의 압도적 다수의 민중은 오늘의 북을 적의로 바라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가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 반미반전평화의 자각이 들불처럼 번져나고 있다는 사실을 애국자의 책임으로 전해주시오.
강은 얼어붙을망정 강물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시오.
이만 불비례하오. 환하게 웃으며 다시 만나서 개선장군 같은 당당함으로 그 감동의 시간들을 설명해 주시오. 고맙소. 다시 만납시다.
2012년 3월 31일
당신의 동지 이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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