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민보 이창기 대표 옥중서 법원에 와 모두 진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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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주민보 작성일2012-05-05 14:05 조회1,9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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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재판에 있은 모두 진술서
[다음은 지난 2월 9일 서울 자택에서 체포 구속된 이후 국정원과 검찰 조사를 받고 현재 검찰에 의해 국가보안법상 회합 통신 및 고무 찬양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서울구치소에 있는 이창기 자주민보 대표가 지난 4월 25일에 재판정에서 한 모두진술을 편지로 보내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_편집자]
존경하는 재판장님!
계절의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조국강산을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벚꽃으로 곱게 단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남과 북은 동족임에도 화합과 통일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짙어가는 전운에 휴전선 철책은 끊어질 듯 팽팽한 긴장감을 더하고 있어 무거운 마음 안고 몇 마디 올리고자 합니다.
본인은 학창시절 국사책을 공부하면서 민족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국력을 키우지 못하면 결국 강대국의 침략과 식민지배, 동족상잔을 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분단된 한반도는 미국과 북한이 50년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여 여전히 전쟁 중, 즉 잠시 전쟁을 쉬고 있는 휴전 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주민보 창간을 준비하던 99년도는 98년 북의 광명성1호 위성로켓 발사로 북미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이어 2000년 6.15정상회담은 그런 한반도 전쟁위기를 남과 북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99년 페리보고서에 따르면 93~94년 ‘라면사재기’ 전쟁위기의 경우, 전쟁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어 개전 수 시간 전에 미국에서 중단 결정을 내렸다는 것인데, 주한미군 수 만 명에 국민은 물론 국군 수십 만 명이 희생된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고 내린 결정이라고 합니다. 만약 전쟁이 터졌다면 우리 국민들은 왜 죽는지도 모르고 비참하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 아차하면 일어날 뻔 한 것입니다.
그 때 자주민보를 창간했습니다. 언제든 전쟁이 발발할 수 있기에 그것을 예리하게 감시하고 분석 전망하여 전쟁을 막고, 만약의 사태에 국민들의 피해를 그나마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주민보 창간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10년 넘게 한반도 문제, 정세전문 언론사로서 그리고 남북화해와 협력을 추동하는 언론사의 길을 부족하지만 변함없이 걸어왔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런데 이렇게 법정에 서게 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회합통신, 찬양고무 등을 위반했다는 것인데, 사실 국가보안법이 뭔지 잘 몰라서 처벌을 받았던 2001년의 경험이 있어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 회합통신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2001년 재판 이후 법에 따라 일본 총련이나 북을 취재할 때 북 주민접촉신청서를 통일부에 꼭 신고하였습니다. 본지에 걸려 온 전화 중에 총련 교포로 의심되는 경우 아무리 짧은 통화라고 해도 통일부에 사후 신고를 하였습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그 정도 단순 통화는 신고 안 해도 된다”고 말했는데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소장에 나온 225국이 도대체 무엇인지, 제가 225국과 만나서 뭘 했다는 것인지, 자주민보와 225국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신성한 법정에서 감히 말씀 올립니다. 자주민보는 누구의 지시도 없이 각 기자들의 의지와 판단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점을 분명히 확언드립니다.
최근 기자가 1명 충원되고 객원기자들이 조금 결합하기는 했지만 사실 2005년 본인이 편집장을 하면서부터 그간 쌓인 경제적인 어려움, 각자의 전망, 결혼 등으로 한 명 두 명 그만두다보니 실질적으로 거의 본인 혼자 글을 전담해왔습니다. 거의 정세분석 기사에만 집중했습니다. 그것도 사건이 터진 직후, 늦어도 다음날 오전 9시 이전까지 분석 기사를 올리는 것을 경쟁력으로 생각했기에 거의 밤을 세워 자료를 찾아 분석하고 글을 써야 했습니다. 여기에 누가 끼어들 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생활이 7년입니다. 이는 감시해온 수사기관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런 언론활동에 북의 공작원과의 회합통신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직 밤잠 안자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분석하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물론 중국 현지 취재를 간 건 사실입니다. 항일유적지 취재와 한반도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중국이 과연 어떻게 변해 갈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서 취재한 내용 중 김일성 주석과 관련된 사실들은 공안기관이 어떻게 볼지 몰라 몇 편 기사로 올리지도 못하고 자료로 가지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북에 잘 보이기 위해 한 것도 아닙니다. 2008년 이후 분석글이나 외부필진의 글 중에는 “북을 군사만능국”, “호전국”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독자들의 비판을 받은 글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제타격은 미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는 식의 북 성명, 논평에 남해고속도로까지 탱크를 몰고 내려오는 훈련까지 공개하는 북을 보며, 달리 분석할 수 없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찬양고무 지적에 대해서도 참 할 말이 많이 있습니다. 2001년 검찰의 공소장에서 지적한 북에 대한 찬양조의 표현, 북과 남의 대조, 북의 성명이나 발표를 따옴표도 없이 기자의 주장처럼 보도하는 등의 글쓰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2001년 재판 당시에도 이런 지적은 본지 기자들의 글이 아닌 모두 외부 필진들의 글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편집장 일을 할 때는 외부필진의 글도 철저히 검토하고 때론 거부도 했습니다. 어떤 기고가에겐 “밴댕이속”이니 “겁쟁이”니 하는 비난도 들었습니다. 모든 제 기사들은 오직 한반도 정세와 평화정착 및 평화통일의 길을 찾아 분석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다만 최근 올린 김정은 후계자에 대한 기사의 경우엔 찬양은 아니고 이런저런 기질을 가진 인물인 것 같다는 평가는 조금 곁들였습니다. 갑자기 부상했는데 미국에서도 인정했듯이 너무나 정보가 없어 전문가들, 정부, 언론인, 국민 그리고 미국 관계자들에게 제가 알고 있는 북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내린 평가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이적표현물 소지에 대해서는 저도 거의 본 적이 없는 자료라서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사무실을 집으로 옮기면서 짐을 그대로 가져다 놓았는데 저도 사실 뭐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디스켓, CD 등의 경우, 언제 열어 본 것인지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저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수사기관에서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딱 하나 김일성 주석의 항일 유적지 취재를 하며 참고자료로 회고록은 일부 내용을 보았음은 인정합니다. 그것이 이적표현물인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김상일 교수님 등이 언론에 자주 소개하고, 인터넷에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사실 2008년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정세분석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 때 북은 공식적으로 북미대결전을 ‘대화의 방법’에서 ‘힘의 대결’ 방식으로 바꾸었다고 공식 선언하였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물론 국방부 장관까지 “설마 북이 연평도를 그렇게 불바다가 될 정도로 공격할 줄은 생각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본지에서 북이 ‘무력시위에서 직접타격으로’ 대미압박 방식을 바꾸었다고 분석 보도하였는데 그 후 미국 유명 정세전문가의 입엣 그 말이 나왔습니다. 본지에서는 연평도 포격전과 같은 사건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변화된 북의 흐름, 미국의 처한 상황, 국제적 경제위기, 북.중, 북.러 관계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누차 우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북,미 평화협정만이 해법이라는 점, 그와 별개로 남과 북은 6.15, 10.4선언 이행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고 피해를 최소화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이 평화로운 시대에 무슨 전쟁이냐’고 할 수 있습니다. 허나 유고 시민들도 폭격당하기 직전까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북부 여러 나라가 전쟁에 휘말려들었고 중동의 시리아, 이란도 위기입니다. 이라크, 아프간은 여전히 총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군이 있는 곳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전쟁위기가 고조되던 93년 공수부대와 전방 포병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공수특전단 병사들은 정말 건강한 체력에 성실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훈련받을 때 보면 펄펄 날았습니다. 특전 하사관에 지원한 청년 중에서 골라 선발했으니 어련하겠습니까. 연평 포병부대 병사들도 대부분 대학을 다니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정말 이들이 우리 민족의 동량이고 미래구나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나면 전방지역에 포탄이 3m에 하나씩 떨어진다는 소문이 부대에 쫙 나 있었습니다. 전멸이라고 선임병들이 말해주었습니다. 전방에 국군 60%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에서 이 땅의 군인들이 얼마나 착한 아들이고 또 어진 아버지이자 남편인지, 그래서 가족들이 그 주검 앞에서 어떻게 몸부림치며 통곡하는지 똑똑히 보았습니다. 전쟁이 나면 수십만의 군인이 개전한지 얼마 안 되어 희생된답니다. 미국 페리 전 국방장관의 말입니다. 전쟁이기에 시민들도 많이 다칠 것입니다. 엄마의 시신을 앞에 두고 발발 떨던 50년 그 날의 어린이의 그 공포와 고통을 어떻게 또다시 이 땅의 아이들에게 들씌울수가 있단 말입니까.
미국은 이 땅 전 국민이 다 죽어도 북을 이길 수 있다면 전쟁을 할 나라입니다. 그런 미국이기에 북도 군사력을 키우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며 선군정치를 내놓고 해왔습니다. 두 힘이 자칫하다가는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북을 잘 모릅니다. 군사적으로 압박하면 굴복할 것으로 여길 수 있는데 그러면 불꽃은 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지는 그 충돌을 막고자 북에 대해 분석하고 해설을 해 왔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정말 우리 민족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황우석 박사의 특허를 지키기 위해 2~3일씩 밤을 세워 글을 쓰기도 했고, 30개월 이상된 광우병 위험소로부터 우리 국민들과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글을 쓰다가 과로로 간질환에 걸려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아내에게 걱정스런 남편이었고 딸에겐 학교생활기록부에 아빠 직업을 지어서 쓰느라 마음 아프게 한 못난 아빠, 돌아가신 두 부모님도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오직 이 셋째의 걱정을 품고 가게 한 불효자였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찬란한 미래가 제 가슴엔 이미 꽉 들어차버렸기 때문입니다.
몇 십 년 전 일본이 탱크 비행기까지 만들 때 달구지도 잘 못 만들던 우리 민족이 자동차, 반도체로 세계를 석권하고 있습니다. 북도 같은 핏줄이라 위성까지 자체 로켓으로 막 쏘아 올린다고 합니다. 또한 지금은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법 없이도 살았던 옛 고향의 그 따뜻한 이웃 간의 정의 문화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운 문화라는 것을 외국에 나가 볼수록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영리하고 지혜롭고 정의로우며 고상한 문화를 가진 우리 민족은 인류의 등불이라고 저는 자부하고 있습니다. 전쟁없이 통일만 이루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우리 민족 앞에 열릴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저를 이 길로 이끌어 왔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이기에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국가보안법 없이도 형법으로 얼마든지 나라의 안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현행법이니 합법적인 언론사로서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긴 것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고 합당한 처벌이 꼭 필요하다면 달게 받으며 판결문, 공소장을 통해 연구하고 배우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사실 국가보안법은 기준이 너무 애매하여 어디에다 맞추어야 할지 참 어려운 문제이지만 어쩌겠습니까, 현행법이 아닙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모든 국민이 다 저처럼 나라 걱정에 나설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민족의 운명이 기로에 서 있음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핑계로 자주민보에 전념하지 못하고 학원사업, 주식투자 등에 많은 시간을 써버렸습니다. 돌이켜보면 후대들과 민족 앞에 죄를 지었다는 후회가 듭니다. 특히 천안함 희생 장병들을 보며 정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옥중이라고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료검색 등 한계가 많습니다. 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또 써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말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부디 제 마음을, 진심을 헤아려 현명하고 사려깊은 판단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저의 말을 들어주신 재판장님과 여기 계신 여러 관계자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상 모두 진술을 마칩니다.
2012. 4. 25 자주민보 대표 이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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