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5권 18. 밝아올 래일을 위하여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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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6-06 10:06 조회1,99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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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아올 래일을 위하여
리 영 숙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은 일이다.
1939년 9월이였다.
요하지방의 9월이면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초겨울이나 다름없다.
우리 재봉대는 그때 부대에서 동복을 만들라는 전투적과업을 받았다.
5명으로 구성된 우리 재봉대는 요하현 쓰빠산즈부근의 밀영을 향하여 떠났다. 우리에게는 손재봉기 한대와 옷을 만들 광목, 솜, 물초롱 그밖에 변변치 못한 살림도구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꾸려지고 밀림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뒤에 험한 산이 서고 앞으로 자그마한 개울이 흐르는 수림속 평퍼짐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잠잘수 있는 2개의 풍막을 꾸려놓고 그사이에 우등불을 피웠다.
우리의 책임자는 왕동무였다. 그외 남동무가 또 한명이 있었는데 남동무들은 부대련락과 후방사업을 맡아 보았다. 녀동무들은 나까지 모두 3명이였다. 그중 한 동무는 왕동무의 안해였고 또 한 동무는 18살 나는 어린 처녀였다. 우리 녀동무들은 옷만드는 임무를 맡았는데 녀성들에 대한 책임은 내가 졌다.
우리는 동녘하늘이 훤해오자 일을 시작하여 바늘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옷을 만들었다. 왕동무의 안해는 재단을 하고 나는 재봉을 하였다. 처녀동무는 솜을 누비고 단추구멍을 내였다.
하루종일 이 일을 하고나면 허리가 쑤시고 손끝이 아팠다. 그러나 우리는 아픔을 참고 밤에도 일을 해야 하였다.
그때 우리에게는 등잔기름이 없었다. 그래서 밤에는 주로 흰광목에 보호색물을 들이고 그것을 말리워펴는 작업을 하였다.
천에 물을 들이기 위하여 우리는 5~10리 떨어진 곳에 가서 황양즈, 도토리나무껍질들을 벗겨다가 자그마한 물초롱에 담아서 삶았다. 그 다음 그 물에 흰 광목을 넣고 끓였다. 여기는 깊은 산골이라 아침저녁으로 꽤 랭랭하여졌건만 파리만큼씩한 큰 모기가 많았다. 모기는 채 어둡기도전에 살가죽에 달라붙어서는 피를 빨았다. 우리는 모기등쌀에 더욱 지치였다.
식사라는것은 호박과 호박덩굴을 삶은 국이였건만 그나마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였다. 그런데다 이글거리는 불길앞에 서면 땀이 온몸에서 물흐르듯 하였다. 허기증이 나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앞이 캄캄해지군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한발자국도 물러설수 없었다.
밝지 못한 우등불앞에서 천에 물을 들이다나니 자칫 잘못하면 귀중한 천을 태우거나 얼룩이 져서 못쓰게 만들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우리 유격대원들이 피를 흘려 적과 싸워 얻었으며 인민들이 허리를 졸라매고 모은 돈으로 사서 유격대에 보내온 천이라는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어찌 한순간이라도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소한 부주의로 이처럼 귀한 천을 못쓰게 만들수 있겠는가.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일을 다그쳤다.
어느날 밤 왕동무의 안해는 우리와 함께 광목에 물을 들이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우등불앞에 쓰러졌다.
이때 처녀동무가 재빨리 그를 잡아일으켰다. 하마트면 큰 일이 날번했다.
그러나 우리의 일손은 쉬지 않았다. 서로 힘든 일을 앞을 다투어 자기가 하려고 생각했다.
겨울은 점점 닥쳐오는데 한시바삐 부대동무들에게 옷을 만들어보내야겠다는 한가지 생각에서 우리는 모든 괴로움을 견디여나갔다. 그후 우리에게는 호박덩굴마저 떨어졌다. 하늘을 가리운 밀림사이로 싸늘한 늦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온다는 좋은 세월은 언제나 오겠는가?》
왕동무의 안해가 추운 겨울이 닥쳐온다는것을 감촉하였던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그가 그럴수 있다는것을 짐작하고있었다.
본래 그의 남편인 왕동무는 위만군에 있었다. 우리 유격대의 활동에 의하여 어느 길이 옳은가를 깨달은 왕동무는 안해와 함께 유격대에 넘어왔던것이다.
나는 당원이였다. 때문에 그를 당적으로 옳게 교양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항상 호박국만 먹겠나요, 좋은 세상은 꼭 오고야말거예요. 오늘 우리가 먹는 호박국은 래일의 흰쌀밥으로 될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날을 위하여 싸우고있지 않아요.》하고 이야기를 시작한 나는 그에게 우리가 수행하는 혁명의 승리를 확고히 믿도록 많은 이야기를 하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때문에 우리가 이러한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싸워야 하는가, 우리 같은 무산계급이 겪는 그 고초의 화근이 어디 있는가를 이야기하면서 내가 유격대에 입대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해주었다.
나의 아버지는 일제의 《토벌대》놈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했다. 그후 나는 왕수평골안 밀림에서 재봉대 대원으로서 역시 동복을 만들고있었다. 그때 우리 재봉대는 5명이였는데 모두 녀자들이였다.
그러던 1936년 10월이였다. 원쑤들의 불의의 습격에 의하여 우리는 놈들에게 체포되였다. 놈들은 우리를 감옥에 가두고 악독하게 고문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유격대의 비밀을 대지 않았다. 고문으로써는 도저히 비밀을 알아낼수 없다는것을 알게 된 놈들은 우리를 감옥에서 내놓고 성안에서 나가지 못하게 감시하였다. 놈들은 우리를 속여서 비밀을 알아내려 했다. 우리가 체포된 그때로부터 근 1년이 되는 1937년 7월 우리는 성밖으로 나오는데 성공하였다. 성밖에는 남새밭을 가꾸며 혼자 사는 한 로인이 있었다. 우리는 그 로인한테 가서 구원해줄것을 말했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던 로인은 《유격대를 찾지요?》하고 우리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것이였다. 우리가 그렇다고 하자 그는 서슴없이 길안내를 해주며 자기를 따라오라는것이였다.
내가 극도로 몸이 쇠약해지고 지쳤다는것을 알아차린 로인은 나의 아이까지 받아 업고 성큼성큼 걸었다. 그는 25리가 넘는 길을 걸어 우리를 노배커우라는 골안에 있는 반일회회장네 집에 데리고갔다. 여기에서 유격대가 있는 곳을 안 그 로인은 다시 우리를 부대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때 부대장동지는 우리를 얼마나 반가이 맞아주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로인더러 집에 내려가지 말고 부대에 있으라고 권고했다. 그것은 로인이 우리를 빼돌렸다는것을 원쑤들이 알게 되면 그를 총살해버린다는것을 부대장동지는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부대에 있겠다고 약속한 로인은 집에 가서 가장집물을 대충 걷어가지고 오겠다고 하면서 내려갔다. 그러나 악독한 원쑤들은 그 로인을 체포해다가 유격대를 도와주었다는 죄로 무참히 학살하고말았던것이다.
그 이듬해 12월 나는 젖먹이애를 남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던 왕동무의 안해는 나의 손을 꼭 잡아쥐며 눈물을 흘리는것이였다. 그의 눈물은 자기의 의지가 너무나 약했다는 반성의 눈물이였으며 동시에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눈물이기도 했다. 한참후 그는 흥분해서 말하는것이였다.
《알겠어요. 나는 영숙동무가 무엇때문에 그처럼 싸우는지 알았어요. 우리는 아이들에게까지 그런 불행을 안겨주어서는 안돼요. 우리는 원쑤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해요. 우리는 승리할거예요. 정말 새날이 밝아올거예요.》
그 이튿날 아침이였다. 늘 처녀동무나 나보다 늦게 일어나던 왕동무의 안해는 어둑컴컴한 새벽에 일어나서 식사준비를 하는것이였다. 그리고 그는 더욱 신바람이 나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일은 날이 갈수록 더욱 긴장해졌다. 날이 춥기전에 동복을 하루속히 만들어 부대에 보내야만 하였기때문이다.
우리는 밤이면 우등불옆에서 거의 밤잠을 자지 않고 일손을 다그쳤다.
우리가 이곳에 온지 한달이 잡히는 어느날 아침이였다. 나는 여느날보다 더 일찌기 잠에서 깼다. 우리는 서로 다른 동무들을 조금이라도 더 쉬게 하려고 했던것이다. 내가 잠에서 깨여 식사를 지으러 개울가로 나간 때는 아직 어둑어둑한 때였다. 그 순간 저쪽에서 나무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혹시 왕동무가 부대에 갔다가 돌아오는것이 아닐가 생각했다. 나는 숨을 죽여가며 그곳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스레한 어둠속으로 분명히 누런 옷을 입은 일제놈들이 기여오고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다급히 풍막으로 뛰여가면서 소리쳤다.
《적이다.》
나의 이 다급한 소리에 놀란 두 동무는 후닥닥 일어났다. 나는 그들을 먼저 피하도록 했다. 만약 적들과 맞다들게 되면 다 희생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나는 적들에게 발견되지 않기 위해서 우선 풍막에 사람이 있었던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서둘렀다.
그런데 나의 행동을 살피던 그들은 자기들이 할테니 나더러 먼저 피하라는것이였다.
《영숙동무, 동문 우리보다 혁명에서 더 귀중한 사람이예요. 어서 피하세요.》하며 왕동무의 안해는 나의 앞을 막아섰다.
《아니요. 우리는 다 귀중해요. 나에게는 총이 있지만 동무들에게는 총이 없지 않아요. 어서 …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피하세요.》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였다.
사실 나의 심정은 목숨으로써 그들을 구하고싶었다. 이러한 심정은 그들 역시 같았다.
우리는 원쑤들이 코앞에 밀려드는데 더 어물거리고있을수는 없었다.
나는 생명으로써 지켜내야 할 재봉기를 안았다. 왕동무의 안해는 만들던 옷가지와 솜을 보에 싸서 들고 처녀동무는 그밖의 물건들을 꾸려들고 먼저 나섰다. 우리는 풍막뒤로 빠져 험준한 뒤산으로 기여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짐이 무거워 뛸수가 없었고 나무가지에 걸려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사태는 매우 위급했다. 나는 재봉기를 얼른 진대나무밑에 파묻으면서 한편 동무들을 빨리 산 웃쪽으로 피신하게 했다.
나는 장탄을 한 싸창을 빼들고 맞다들면 싸울 전투태세를 갖추고는 놈들의 눈에 띠우지 않도록 뒤로 올려달렸다. 좀 안전하다 할만한 곳에서 우리는 밀림사이로 놈들의 행동을 살폈다. 원쑤들은 우리의 풍막을 발견했다. 놈들은 풍막을 잡아 들추며 풍막에다 불을 지르며 사방을 발끈 뒤졌다. 놈들은 사방에 대고 총질을 마구 하였다.
풍막이 불에 활활 타오르는걸 바라보고 선 우리의 심장은 원쑤에 대한 증오로 높뛰였다.
놈들은 풍막에 불을 질러놓고는 총창을 곤두세워가지고 사람이 은신할만한 곳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가슴은 덜렁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부대에 보내야 할 동복과 솜들을 풍막앞 개울가 건너편 바위돌짬에다 감추어두었기때문이였다.
동복을 목숨으로 지켜내야 했다.
나는 결심하였다. 만약 놈들이 그쪽을 들추기 시작만 한다면 총을 쏴 놈들을 이쪽으로 유도할 작정이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동무들을 더 피하게 했다. 그런데 놈들은 우리가 감추어둔 곳으로는 접어들지 않았다. 놈들은 왁자지껄 뒤지다가는 아무것도 얻어낼수 없었던지 웅게중게 몰려내려갔다.
풍막은 재가 되고 국을 끓여먹던 남비며 양재기는 못쓰게 되여버렸다. 놈들은 그것에 분풀이를 하고 간것이였다.
갑자기 흐리기 시작하여 음산해지던 날씨는 종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도 락심하지 않았다. 도리여 원쑤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하여 몸에서는 힘이 더 솟구쳤다.
우리는 놈들이 짓밟아 못쓰게 만든 남비며 양재기를 돌로 두드려 펴며 식사준비를 했다.
이날밤도 우리는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빛에 서로 얼굴을 비치며 밝아올 래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는 한 우리는 반드시 일제침략자들을 쳐부시고 조국의 광복을 이룩할것이라고.
리 영 숙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은 일이다.
1939년 9월이였다.
요하지방의 9월이면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초겨울이나 다름없다.
우리 재봉대는 그때 부대에서 동복을 만들라는 전투적과업을 받았다.
5명으로 구성된 우리 재봉대는 요하현 쓰빠산즈부근의 밀영을 향하여 떠났다. 우리에게는 손재봉기 한대와 옷을 만들 광목, 솜, 물초롱 그밖에 변변치 못한 살림도구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꾸려지고 밀림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뒤에 험한 산이 서고 앞으로 자그마한 개울이 흐르는 수림속 평퍼짐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잠잘수 있는 2개의 풍막을 꾸려놓고 그사이에 우등불을 피웠다.
우리의 책임자는 왕동무였다. 그외 남동무가 또 한명이 있었는데 남동무들은 부대련락과 후방사업을 맡아 보았다. 녀동무들은 나까지 모두 3명이였다. 그중 한 동무는 왕동무의 안해였고 또 한 동무는 18살 나는 어린 처녀였다. 우리 녀동무들은 옷만드는 임무를 맡았는데 녀성들에 대한 책임은 내가 졌다.
우리는 동녘하늘이 훤해오자 일을 시작하여 바늘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옷을 만들었다. 왕동무의 안해는 재단을 하고 나는 재봉을 하였다. 처녀동무는 솜을 누비고 단추구멍을 내였다.
하루종일 이 일을 하고나면 허리가 쑤시고 손끝이 아팠다. 그러나 우리는 아픔을 참고 밤에도 일을 해야 하였다.
그때 우리에게는 등잔기름이 없었다. 그래서 밤에는 주로 흰광목에 보호색물을 들이고 그것을 말리워펴는 작업을 하였다.
천에 물을 들이기 위하여 우리는 5~10리 떨어진 곳에 가서 황양즈, 도토리나무껍질들을 벗겨다가 자그마한 물초롱에 담아서 삶았다. 그 다음 그 물에 흰 광목을 넣고 끓였다. 여기는 깊은 산골이라 아침저녁으로 꽤 랭랭하여졌건만 파리만큼씩한 큰 모기가 많았다. 모기는 채 어둡기도전에 살가죽에 달라붙어서는 피를 빨았다. 우리는 모기등쌀에 더욱 지치였다.
식사라는것은 호박과 호박덩굴을 삶은 국이였건만 그나마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였다. 그런데다 이글거리는 불길앞에 서면 땀이 온몸에서 물흐르듯 하였다. 허기증이 나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앞이 캄캄해지군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한발자국도 물러설수 없었다.
밝지 못한 우등불앞에서 천에 물을 들이다나니 자칫 잘못하면 귀중한 천을 태우거나 얼룩이 져서 못쓰게 만들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우리 유격대원들이 피를 흘려 적과 싸워 얻었으며 인민들이 허리를 졸라매고 모은 돈으로 사서 유격대에 보내온 천이라는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어찌 한순간이라도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소한 부주의로 이처럼 귀한 천을 못쓰게 만들수 있겠는가.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일을 다그쳤다.
어느날 밤 왕동무의 안해는 우리와 함께 광목에 물을 들이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우등불앞에 쓰러졌다.
이때 처녀동무가 재빨리 그를 잡아일으켰다. 하마트면 큰 일이 날번했다.
그러나 우리의 일손은 쉬지 않았다. 서로 힘든 일을 앞을 다투어 자기가 하려고 생각했다.
겨울은 점점 닥쳐오는데 한시바삐 부대동무들에게 옷을 만들어보내야겠다는 한가지 생각에서 우리는 모든 괴로움을 견디여나갔다. 그후 우리에게는 호박덩굴마저 떨어졌다. 하늘을 가리운 밀림사이로 싸늘한 늦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온다는 좋은 세월은 언제나 오겠는가?》
왕동무의 안해가 추운 겨울이 닥쳐온다는것을 감촉하였던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그가 그럴수 있다는것을 짐작하고있었다.
본래 그의 남편인 왕동무는 위만군에 있었다. 우리 유격대의 활동에 의하여 어느 길이 옳은가를 깨달은 왕동무는 안해와 함께 유격대에 넘어왔던것이다.
나는 당원이였다. 때문에 그를 당적으로 옳게 교양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항상 호박국만 먹겠나요, 좋은 세상은 꼭 오고야말거예요. 오늘 우리가 먹는 호박국은 래일의 흰쌀밥으로 될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날을 위하여 싸우고있지 않아요.》하고 이야기를 시작한 나는 그에게 우리가 수행하는 혁명의 승리를 확고히 믿도록 많은 이야기를 하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때문에 우리가 이러한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싸워야 하는가, 우리 같은 무산계급이 겪는 그 고초의 화근이 어디 있는가를 이야기하면서 내가 유격대에 입대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해주었다.
나의 아버지는 일제의 《토벌대》놈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했다. 그후 나는 왕수평골안 밀림에서 재봉대 대원으로서 역시 동복을 만들고있었다. 그때 우리 재봉대는 5명이였는데 모두 녀자들이였다.
그러던 1936년 10월이였다. 원쑤들의 불의의 습격에 의하여 우리는 놈들에게 체포되였다. 놈들은 우리를 감옥에 가두고 악독하게 고문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유격대의 비밀을 대지 않았다. 고문으로써는 도저히 비밀을 알아낼수 없다는것을 알게 된 놈들은 우리를 감옥에서 내놓고 성안에서 나가지 못하게 감시하였다. 놈들은 우리를 속여서 비밀을 알아내려 했다. 우리가 체포된 그때로부터 근 1년이 되는 1937년 7월 우리는 성밖으로 나오는데 성공하였다. 성밖에는 남새밭을 가꾸며 혼자 사는 한 로인이 있었다. 우리는 그 로인한테 가서 구원해줄것을 말했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던 로인은 《유격대를 찾지요?》하고 우리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것이였다. 우리가 그렇다고 하자 그는 서슴없이 길안내를 해주며 자기를 따라오라는것이였다.
내가 극도로 몸이 쇠약해지고 지쳤다는것을 알아차린 로인은 나의 아이까지 받아 업고 성큼성큼 걸었다. 그는 25리가 넘는 길을 걸어 우리를 노배커우라는 골안에 있는 반일회회장네 집에 데리고갔다. 여기에서 유격대가 있는 곳을 안 그 로인은 다시 우리를 부대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때 부대장동지는 우리를 얼마나 반가이 맞아주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로인더러 집에 내려가지 말고 부대에 있으라고 권고했다. 그것은 로인이 우리를 빼돌렸다는것을 원쑤들이 알게 되면 그를 총살해버린다는것을 부대장동지는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부대에 있겠다고 약속한 로인은 집에 가서 가장집물을 대충 걷어가지고 오겠다고 하면서 내려갔다. 그러나 악독한 원쑤들은 그 로인을 체포해다가 유격대를 도와주었다는 죄로 무참히 학살하고말았던것이다.
그 이듬해 12월 나는 젖먹이애를 남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던 왕동무의 안해는 나의 손을 꼭 잡아쥐며 눈물을 흘리는것이였다. 그의 눈물은 자기의 의지가 너무나 약했다는 반성의 눈물이였으며 동시에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눈물이기도 했다. 한참후 그는 흥분해서 말하는것이였다.
《알겠어요. 나는 영숙동무가 무엇때문에 그처럼 싸우는지 알았어요. 우리는 아이들에게까지 그런 불행을 안겨주어서는 안돼요. 우리는 원쑤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해요. 우리는 승리할거예요. 정말 새날이 밝아올거예요.》
그 이튿날 아침이였다. 늘 처녀동무나 나보다 늦게 일어나던 왕동무의 안해는 어둑컴컴한 새벽에 일어나서 식사준비를 하는것이였다. 그리고 그는 더욱 신바람이 나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일은 날이 갈수록 더욱 긴장해졌다. 날이 춥기전에 동복을 하루속히 만들어 부대에 보내야만 하였기때문이다.
우리는 밤이면 우등불옆에서 거의 밤잠을 자지 않고 일손을 다그쳤다.
우리가 이곳에 온지 한달이 잡히는 어느날 아침이였다. 나는 여느날보다 더 일찌기 잠에서 깼다. 우리는 서로 다른 동무들을 조금이라도 더 쉬게 하려고 했던것이다. 내가 잠에서 깨여 식사를 지으러 개울가로 나간 때는 아직 어둑어둑한 때였다. 그 순간 저쪽에서 나무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혹시 왕동무가 부대에 갔다가 돌아오는것이 아닐가 생각했다. 나는 숨을 죽여가며 그곳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스레한 어둠속으로 분명히 누런 옷을 입은 일제놈들이 기여오고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다급히 풍막으로 뛰여가면서 소리쳤다.
《적이다.》
나의 이 다급한 소리에 놀란 두 동무는 후닥닥 일어났다. 나는 그들을 먼저 피하도록 했다. 만약 적들과 맞다들게 되면 다 희생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나는 적들에게 발견되지 않기 위해서 우선 풍막에 사람이 있었던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서둘렀다.
그런데 나의 행동을 살피던 그들은 자기들이 할테니 나더러 먼저 피하라는것이였다.
《영숙동무, 동문 우리보다 혁명에서 더 귀중한 사람이예요. 어서 피하세요.》하며 왕동무의 안해는 나의 앞을 막아섰다.
《아니요. 우리는 다 귀중해요. 나에게는 총이 있지만 동무들에게는 총이 없지 않아요. 어서 …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피하세요.》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였다.
사실 나의 심정은 목숨으로써 그들을 구하고싶었다. 이러한 심정은 그들 역시 같았다.
우리는 원쑤들이 코앞에 밀려드는데 더 어물거리고있을수는 없었다.
나는 생명으로써 지켜내야 할 재봉기를 안았다. 왕동무의 안해는 만들던 옷가지와 솜을 보에 싸서 들고 처녀동무는 그밖의 물건들을 꾸려들고 먼저 나섰다. 우리는 풍막뒤로 빠져 험준한 뒤산으로 기여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짐이 무거워 뛸수가 없었고 나무가지에 걸려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사태는 매우 위급했다. 나는 재봉기를 얼른 진대나무밑에 파묻으면서 한편 동무들을 빨리 산 웃쪽으로 피신하게 했다.
나는 장탄을 한 싸창을 빼들고 맞다들면 싸울 전투태세를 갖추고는 놈들의 눈에 띠우지 않도록 뒤로 올려달렸다. 좀 안전하다 할만한 곳에서 우리는 밀림사이로 놈들의 행동을 살폈다. 원쑤들은 우리의 풍막을 발견했다. 놈들은 풍막을 잡아 들추며 풍막에다 불을 지르며 사방을 발끈 뒤졌다. 놈들은 사방에 대고 총질을 마구 하였다.
풍막이 불에 활활 타오르는걸 바라보고 선 우리의 심장은 원쑤에 대한 증오로 높뛰였다.
놈들은 풍막에 불을 질러놓고는 총창을 곤두세워가지고 사람이 은신할만한 곳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가슴은 덜렁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부대에 보내야 할 동복과 솜들을 풍막앞 개울가 건너편 바위돌짬에다 감추어두었기때문이였다.
동복을 목숨으로 지켜내야 했다.
나는 결심하였다. 만약 놈들이 그쪽을 들추기 시작만 한다면 총을 쏴 놈들을 이쪽으로 유도할 작정이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동무들을 더 피하게 했다. 그런데 놈들은 우리가 감추어둔 곳으로는 접어들지 않았다. 놈들은 왁자지껄 뒤지다가는 아무것도 얻어낼수 없었던지 웅게중게 몰려내려갔다.
풍막은 재가 되고 국을 끓여먹던 남비며 양재기는 못쓰게 되여버렸다. 놈들은 그것에 분풀이를 하고 간것이였다.
갑자기 흐리기 시작하여 음산해지던 날씨는 종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도 락심하지 않았다. 도리여 원쑤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하여 몸에서는 힘이 더 솟구쳤다.
우리는 놈들이 짓밟아 못쓰게 만든 남비며 양재기를 돌로 두드려 펴며 식사준비를 했다.
이날밤도 우리는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빛에 서로 얼굴을 비치며 밝아올 래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는 한 우리는 반드시 일제침략자들을 쳐부시고 조국의 광복을 이룩할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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