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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한 짧은 이야기] 금의환향(錦衣還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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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광선 작성일2014-03-24 22:12 조회1,5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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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완도와 대덕 관산 등지에 흩어진 잔류병들이 천관산에서 모여 노령산맥을 타고 지리산쪽으로 갈 것이라는 정보에 의해 그쪽에 대대적인 토벌대가 출동했다.
남해안의 금강산이라는 천관산 바위들이 늦가을 폭풍우와 함께 몰아친 피소나기를 맞았다.
해질녘에 시작된 피소나기는 보름달의 도움을 받아 한 밤중까지 그칠 줄 몰랐다.
바람이 어디서 어디로 몰아치며 구름은 또 어디서 몰려오는지 알 수 없다.
알았으면 소나기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래도 바위들은 무심히 자리를 지키면서 몰아치는 소나기에 피융피융 부서지고 꺾여나가 서러운 상처만을 끌어안고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흐느끼는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그랬다.
자정이 넘어서야 소나기는 그쳤다.
바람이 어디서 어디로 밀고 갔는지 모르지만.
큰 상처는 아니지만 아마도 튀어나온 바위의 파편에 다쳤을 것이다.

전경장은 불편한 다리를 끌고 죽을 힘을 다하여 바람을 따라 흘러가고자 했다.
피비에 온통 젖은 어느 바위에 미끄러져 전경장은 몇 바퀴나 굴러 바위틈에 박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 누군가의 무릎이 머리를 바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동상, 정신잔 드는가?”

“아니, 성님. 성님이 어찌께....”

“넘어져 있는 자네를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것능가?
다들 떠났응께 맘 놓고 있다 기운 차려서 내려가소.”

“성님. 내가 참말로 성님한테 또 죽을 죄를 지었구마니라.
지는요, 등록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을적에 참말로 몰랐구마니라.
어찌께 죽일라고 그런 꽤를 다 쓴다요.
일본놈 시절에사 일본놈이니께 그랬어도....
지 나라 백성을 그러코롬 척살하기 위해서 그러코롬 악락하게 거짓뿌렁이를 하는 놈들일줄은 누가 알엇것소잉.
누구 덕에 나라를 찾았다고 지놈들이 쥔행세 함서 그러코롬 악랄하다요?
나라를 찾자고 그러코롬 고상한 성님같은 분덜 상주고 나라일 매끼지는 못헐망정 그러코롬 쥑여 없애야 쓴강가요?
이런 것이 성님이 그토록 죽을 고생고생 해감시로 찾은 나라라요?
지는 참말로 몰르고 천천만년 일본놈시상이 될줄만 알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지 몸 하나 펜하자고 성님을 못살게 굴었는디.......
참말로 몰랐어라.
성님을 쥑일라고 등록시키락 한지 참말로 몰랐어라.”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끄억끄억 흐느낀다.

“알고 있네.
웃녘 어딘가서는 경찰서장이 등록해서 들어온 사람들 풀어줬다가 총살당하기도 했다는구먼.
그러니 자넨들 워쩌것능가?
그래도 나는 자네 덕에 도망하지 않았능가.”

“같이 가던 사람들 소식은 아요?”

“모르제마는 그날 저녁에 모다 가마니를 씌워각고 추럭에 태우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몰아가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다등만.”

“식구덜은 성님 도망한 거 아요.
아버님께 지가 알려드렸어라.
누가 알먼 절대로 안 되니께 발설은 말고 너머 걱정들 마시라고.”

“고맙구만.”

“그란디 인자 으짤라요?”

“올라가사제.”

“올라갈 수 있것소?
엔간하먼 어디 쬐끔만 숨어 계시먼 또 이놈의 빌어먹을 시상이 뒤집힐란지 누가 압디까?”

“그래서 올라가야 안 쓰것능가?
세상을 뒤집드라도 올라가야 뒤집제 숨어서야 어찌께 뒤집는당가.”

“올라갈 수는 있것소?
다 맥혔다는디.”

“어찌께든 꿇고 가봐사제. 죽더라도 가봐사제.”

다리를 상한 덕택으로 전경장은 토벌대에서 벗어나 지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냥 지서에 머무는 것은 아니었고 급히 모집된 순사보조원들을 이끌고 대목대목 매복을 서는 일을 할당받았다.
그런 일이란 게 어디나 할 것 없이 보고는 착실하게 밤 세워 눈 뜨고 서리 맞았다는 것이지만 사실은 어느 민가에서 실컷 민폐를 끼치는 일이니까 모두 부러워하는 일거리다.
전경장은 범골저수지 위에 매복지를 정하고 대원들을 여기 저기 배치했다.
해가 떨어지기 바쁘게 대원들이 졸라댄다.

“주임님. 인자 들어가잔께요.
보는 사람 암도 없응께 이 아래 말에 가서 닭이나 한 마리 잡아서 막거리나 마십시다.”

“그라먼 슬슬 내려가 볼까?”

소총을 거꾸로 둘러메고 막 자리를 뜨려던 전경장의 눈에 심상찮은 무언가가 잡혀들었다.
보름을 넘어 기운달이 아직 오르기 전 어둠 속 댓 마당 위쪽에서 육중한 물체가 움직이며 둔한 소음을 날려 온 것이다.
대원들을 엎드리게 한 전경장은 배를 착 깔고 뭉그적이며 소음이 날아온 쪽으로 기어올라 무엇인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수풀 속에 총구를 쑤셔 넣었다.

“동상. 날세.”

살랑이는 바람 따라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전경장에게 전해진 소리는 이랬다.

“동무, 날래!”

전경장은 겨누고 있던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대원들은 고개를 풀 속에 처박고 하늘을 향해 열심히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무엇을 향해 쏘는지는 고사하고 총알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를 알 필요도 없다.
그냥 손가락만 까딱까딱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만 하면 된다.
전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급히 모집한 보충병들과 순사보조원들은 총소리가 들리면 그렇게 한다.
운 좋게 부상당한 전경장같은 사람 말고는 한 번이라도 조준하고 총을 쏘아 본 경험이 있는 자는 지서 같은 곳에 남지 못한다.
싸움이 치열한 전선으로 데려간 보충병들도 지서에 남은 보충병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직 총을 들기에는 모자라거나 넘치는 나이의 사나이들에게 아무도 사격훈련이란 것을 시켜볼 생각도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다만 부대를 이루기 위해 끌고 다니면 그만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이 방패가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과를 기록하기 위한, 그리고 어쩌다 교전이 붙어 속절없이 쓰러지면 적군의 무자비함을 입증해 줄 필수품인 것 같았다.

수풀 속에서 신음소리와 함께 몸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전경장은 거듭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사방이 다시 고요해진 다음까지 대원들은 여전히 머리를 풀 속에 묻고 하늘을 향하여 빈 방아쇠를 당겨댔다.
조심스럽게 자기가 쓰러뜨린 물체를 뒤집었다.
산머리를 비집고 올라온 희미한 달빛에 얼굴이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전경장은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것도 아니구마.
기냥 바람에 풀이 흔들린 것을.
그랑께 그라고들 있지 말고 얼릉 일어나 모두.
집에 들어가서 푹 쉬었다가 동 트기 전에 지서로 모여, 알것제?”

여전히 고개를 풀 속에 처박고 하늘을 향해 빈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대원들을 두드려 일으켰다.

“하이고, 간 떨어진지 알었네.
암것도 아닌디 무담시 주임님만 고생시키네.
내려가서 막걸리로 목이나 축입시다잉.
내가 집집이 뒤져서 닭 한 두어 마리 줒어올 모양인께.”

“다리 다친데가 겁나게 거시기하구마.
그래서 나는 집으로 갈랑께 자네들도 모두 집으로 가서 자고 나오란 마시.”

그렇게 대원들을 돌려보낸 전경장은 헐레벌떡 생왕의 집으로 뛰었다.

“아버님, 주무신가라우?”

다급하게 방문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에 할아버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식경 전에 인사하고 떠난 놈이 무슨 일로 돌아와서 다급하게 부르는가!
허겁지겁 일어나 방문을 연 할아버지는 다시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자네는, 자네는.....”

“아버님 큰일 났소. 얼릉 나오랑께요.”

“뭔 일잉가, 뭔 일인디 그라고 서두른당가?”

“얼릉 오랑께요.
삽하고 곡갱이잔 찾어각고 가잔께요.”

할아버지는 더 묻지 못하고 불안한 가슴을 억누르며 헛간에서 삽과 곡괭이를 찾아들고 나왔다.
시끌벅적하여 놀란 할머니도 어머니도 부랴부랴 뒤따라 뛰었다.
그 바람에 잠이 깬 생왕은 무엇 때문에 무서운지 알 수 없는 무서움과 아무도 그 무서움으로부터 보호해줄 사람이 남아있지 않은 텅 빈 집안의 무거운 공기의 무서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칠흑어두움의 무서움, 온통 무서움에 푹 젖어 쭈그러지는 가슴을 쓸어안고 떨었다.
덩달아 깨어나 악을 쓰는 동생들과 뒤엉키자 드디어 무서움은 울음이 되어 밤을 지새워 목이 온통 갈했을 것이다.

시체를 부여안고 통곡하는 할머니와 어머니 곁에서 할아버지는 그냥 산마루를 벗어난 희미한 달 그늘을 쪼갰고 전경장은 텅텅 곡갱이를 내리쳐 땅을 쪼갰다.
곡괭이가 자갈에 부닥쳐 날카로운 섬광을 흩뿌리고 있었다.

 11

“전경사님 무장공비가 나타났다는 신고인디요.”

“야 이새끼야, 무신놈의 무장공비냐? 지금이 어짠 땐디 무장공비 타령이냐고오?”

“신고가 들어왔당께라.
직접 받아보실라요?”

“직접이고 간접이고 때려 쳐.
워뜬 정신빠진 미친새끼가 또 지이랄발광이 나서 장난치는 것을 각고 너까지 지이랄이냐?
낼 모래면 나 정년이다 정년.
조용히 좀 마치자 잉!”

“현역 육군병장이라는디요?”

“참말로 미치게 하네. 일 조바.”

수화기를 잡아챈 전경사도 차츰 얼굴이 굳어져 갔다.

“알았소. 곧 출동할 것잉께 놓치지 말고 추적하란 말이오!”

보고를 받는 서장도 믿지를 못했다.

유치 장평 그리고 천관산 토벌이 끝난 후 지난 오십여년 간 관내에 간첩이 신고 된 기록이 없었다.
그런데 남북장성과 장관들이 오며가며 회합을 하고 열차가 휴전선을 넘나들고 금강산 나들이가 한라산 나들이보다 쉬워졌으며 정상이 오느니 가느니 하는 마당에 느닷없이 무장공비라니!

“전경사님 은퇴하시기 전에 마지막 무공을 세워주려고 그러는가 봅니다.
서둘러서 출동하세요.
필요하면 지원병력을 요청하겠지만 절대로 놓치지 않게 철저히 대처하십시오.”

공비가 자울재를 넘어 산 속으로 잠적해 간다는 김병장의 다급한 보고가 이어졌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해변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리산처럼 전통적인 빨치산 유격지도 아니다.
어쩌면 이런 곳이 그들에게 활동하기 더 유리한 지역인가보다.
눈에 띄지 않는, 아무나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는 어쩌면 이런 곳이 가장 노리기 쉬운 허점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난 오십여년 신고가 한 건도 없던 관내에서도 이런 허점을 근거지로 잡고 활동해온 공비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그랬다지.
전국적으로 지금 활동하고 있는 고정간첩이 오만명이나 된다고.
그런데 그 오만에서 붙잡힌 간첩이 있었던가?
사회적으로 쟁쟁한 영향력을 가진 그 목사님이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설교에서 허튼 소리를 지꺼릴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간첩들은 어디에 어떻게 숨어 있기에 흔적을 찾지 못하는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는 바로 이런 곳에 근거지를 틀었다면 그럴 것이다.
여기서 무장공비를 사로잡게 된다면 잡히지 않은 오만명의 간첩을 색출해 낼 절대적인 단서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서장님 말씀처럼 은퇴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공을 세울 기회를 주신 것이다.
한 계급 아니 두 계급 특진?
번쩍이는 계급장과 무공훈장이 눈앞에 시계추처럼 달랑거린다.

자울재를 넘어 범골저수지 밑에 다다랐을 적에 한 청년이 숲에서 뛰어 내려와 트럭을 멈추게 하더니 경례를 붙이며 김병장이란다.

“바로 저 위입니다.
방금 공비가 저 수풀 속에 숨어 한 참을 지체하는 것을 감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본거지와 교신을 한 것 같습니다.”

김병장의 손가락은 저수지 위 유난히 짙은 소나무 숲을 가리켰다.
전경사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묘한 일이다.
저곳이란 말이지.
무덤에 묻혀 이미 흙이 되었을 아버지가 홀연히 부활하여 고뇌에 찬 눈으로 산등성을 바라본다.
마른 갈대 같던 아버지가 이십대 청년처럼 팔팔 뛰어 오르시던 바로 그 능선이 아닌가?
아무리 보아도 틀림없이 그 지점이다.
아버지가 찾아가시던 그 무덤.
참 묘한 일이다.
하필이면 그 무덤이 있는 곳에 공비가 숨어 있다니.
그럼 혹시.....
임자 없다는 그 무덤에 임자가 찾아온 것인가?

아버지는 이 한 마디를 위해 태워야 할 마지만 에너지를 발산한다.
꼭 찾아야 한다! 찾아서 사죄해야 한다, 네가 내 아들이라면, 사람 새끼라면!


“저기에 말이야, 무덤이 있을 것인데....”

“그건 잘 모르겠고요, 암튼지 저 솔숲 속에 한 참을 틀어박혀 있습니다.
주변이 좀 휑해서 빠져나가면 보였을 터인데.”

“맞어. 틀림없이 그 무덤이 있던 자리야.
혹시 무덤의 임자가 성묘하러 온 건 아닐까?”

“에이, 성묘객이라면 좋은 길 놔두고 왜 길도 없는 숲 속으로 숨어다니겠어요?
이 길로 버스도 다니는데 자울재 너머에서부터 길도 아닌, 아무도 발 딛을 수 없이 험하게 뒤엉킨 가시덤불을 젖히며 수풀 속으로만 숨어서 기어 왔을 턱이 없잖아요?
그리고 틀림없이 장총을 가지고 있다니까요.”

듣고 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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