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꼼꼼히 보세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다물흙 작성일2015-03-30 21:19 조회2,152회 댓글5건관련링크
본문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로 너무도 훌륭하여 퍼왔다.
13.
1949년 11월 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 ‘노랜드’가 이승만이 차린 초대연에서 이렇게 발언 하였다. 『나는 한국에 와서 반공태세가 정립된 것에 대해 만족하게 생각한다. 특히 국군이 잘 정비되고 훈련되어 마음이 든든하다. 이 군대를 가지고 북진 통일하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내가 미국에 돌아가면 한국에 대한 원조를 더욱 증가하여 북진준비에 만전을 가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전쟁인 만큼 만일을 생각해서 새로 50만~60만 명의 청장년들을 준군사적 조직에 망라하고 더 훈련시키는 것이 좋겠다.』
1950년 1월 미 극동군사령부 외교국장 시볼드가 이승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준비가 다 되었으면 북진은 하루라도 속히 하는 것이 유리한데 와서 보니 국군의 준비를 좀 더 빨리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더 준비하여 개전하면 국군의 승리는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에 대처하여 미군이 원조 또는 직접 참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1949년 10월에 있은 국군사단장회의에서 주한 미 군사고문 단장인 로버트는『38선 이북지역에 대한 공격은 나의 명령에 의하여 진행되었으며 금후에도 진행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정세를 악화시켜 전쟁발발을 도모하기 위한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는 발언이다,
6.25전쟁당시 내무부장관 김효석은 채병덕이 다음과 같이 얘기 했다고 하였다. 『당시 국군참모총장 채병덕의 말에 의하면 1949년 7월부터 1950년 5월까지의 기간에 38선 일대에서 1천 여회 가까이 북한을 공격 하였으며 수백 명에 달하는 이북주민들을 살해하고 수천 호 민가를 소각했다. 이것은 「국군의 강대성을 시위하며 이북주민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주라」는 로버트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해군참모총장 이용운은 75년 6월 일본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1949년 8월 10일에 있은 몽금포기습작전을 계기로 6.25전쟁으로 확대되었 으며 전쟁은 한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유엔군사령관 맥아더가 1951년 5월 미 상원 외교군사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 하였다.
『북한군은 38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배치돼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방어를 위해서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공격을 위한 배치는 결코 아니었다. 반면에 한국군은 자기의 모든 물자와 장비를 38선에 집결시켰다.』 50년 6월 19일 미국대사와 주한미군과 이승만 정권 수뇌들과 가졌던 회담에서 덜레스는 다음과 같이 얘기하였다.
『내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것은 북진준비상황을 직접 보고 미비한 점이 없으면 곧 북진을 단행하자는 트루먼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왔다. 와서 보니 준비는 이만하면 족하다. 전기는 왔다. 우선 남한에서 먼저 개전하라. 개전후의 모든 일에 대해서는 미국을 믿으라. 만일 그 기간에 전국이 불리하게 되면 방어태세로 넘어가 2주일간만 유지하라. 그러면 미국의 참전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1949년 6월 5일부 뉴욕 헤럴드 지에 실린 서울특파원의 보도에 의하면 한국주둔 미 군사사절 단 단장 로버트 장군은 <5백 명 이상의 미국 군사교관들을 가지고 북한을 공격하기 위하여 남한군을 열심히 훈련시키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표현 하였다.
≪1949년 10월 육군사령부에서 열린 사단장회의에서 로버트는 확실히 38도선 이북지역에 대한 많은 공격은 나의 명령에 의하여 수행되었으며 또한 앞으로도 더 많은 공격이 수행될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부대는 제 마음대로 공격하고 아무러한 성과도 없이 막대한 양의 탄약을 써버렸으며 게다가 치명적인 손해를 입었다. 앞으로는 38도선 이북지역에 대한 국방군의 진공은 오직 미 군사절단의 명령에 의하여서만 수행되어야 한다. 라고 말하였다.≫
일본도서 ≪미국은 패하였다≫, 14쪽 에서 38도선 시찰을 끝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덜레스는 6월 18일 이승만에게 <북조선에게 먼저 침입했다는 선전과 동시에 북조선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라.>고 언명하였다. 일본도서 ≪미국은 패하였다. 16쪽≫
6월 20일 덜레스는 이승만에게 보낸 서한에서 남한에 부과된 역할은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르기 위한 일을 조작해 내는데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위대한 사건 가운데서 당신의 나라가 맡아야 할 결정적인 역할에 대하여 나는 지극히 중대한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고 하였다. 미국도서 ≪한국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 일문판, 41
1950년 6월 26일부 아사히신문에 다음과 같은 보도가 게재되었다. 한국군은 23일 밤10시 돌연히 북조선 군진지에 맹렬한 포 사격을 시작하여 24일 오전 4시까지 105미리 포와 81미리 포 204발을 발사하였다. 계속하여 24일 오후 12시 25분부터 6시 30분까지 300발을 쏘았으며 세 번째는 25일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 사이에 200발을 북한군 진지에 쏘았다.
백선엽도 6.25는 6.23일 북을 먼저 침략해서 일어났으니 6.25가 아니고 침략은 6.23이 북침이 맞다고 실토했다. 림씀.
한국전쟁은 사실상 남으로부터의 도발로써 시작 되었다. - ≪교도통신≫ 1975년 8월 25일 북한군이 남한군으로부터 대대적인 불의의 공격을 받고 38도선 전선에서 2-3키로미터 후퇴하였다가 반격으로 넘어갔다.
미국도서 ≪아메리카 현대사≫ 일문판, 160 남한이 옹진반도를 먼저 공격하고 북한이 반격할 때 일부러 계속 밀려 국제여론을 환기시킨 다음 만주지역까지 점령하려는 것이 미국의 의도이다. ≪중앙일보≫1989년6월23일 북한은 무려 천 회 공격에도 남침을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발발을 위해서는 남한군이 중화기까지 동원해서 대대적인 공격을 함으로써만 가능한 일이었다.
댓글목록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이게 오늘에 진리다.
이 진리를 대한민국 동포들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
꿔꾸로 알고 있다.
반대로 알고 있다.
그것은 침략 대 살인 강도 미국의 교육과 선전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진실들은 침략 대 살인 강도 대 악마 흠혈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나라는 당연히 망해야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물론 이런 흡혈귀 미제와 같이 망할 수 밖에 없는 나라가 바로 잘못 건립된 대한민국이다.
그게 하늘의 뜻이다.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이 진실을 매도하는 자가 혹 있다면 그는 민족에 정의에 대 역적일 것이다.
또 양심을 속이는 것이 되므로 인간쓰레기라 할 것이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메조소프라노 백남옥선생님의 큰아버지이기도 한 저 노친네~!!!! 제발 하늘나라로 떠나주시죠~!!!!! 백남옥선생님이야 할말없는 분이시겠지만요~!!!!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날강도 미제가 침략한 1950.6.25는 사실 1945년9월8일부터이고
멀리보면 1900년부터고
더 머리보면 1866년 셔먼호 침략 때부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1945.8.9일부터 - 1950.6.25일 전에 이 5년 동안에 이미 벌써 대한민국 양민들은 미군정의 명령에 의해서 이승만 졸개들 그 친일, 친미 사대 매국 역적들인 군. 경찰들과 기독교 청년단체인 서북청년단체에 의해서 약 1백만이 학살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