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6.25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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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흙 작성일2015-06-23 01:09 조회2,135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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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흥남부두가 저렇게 폭파가 되여야 했는가!
저 꼴을 당하려고 식민지에서 해방된 건가
등록 : 2015-06-18 21:26. 수정 : 2015-06-19 10:19
한국전쟁 참전 영국군 생존자들 증언
민간마을 무차별 폭격한 미군 비판
반공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중국군의 개입으로 함경도 장진호 부근에서 궤멸 위기에 처했던 미국 해병대 공병들과 영국 특수작전부대 ‘41코만도’ 대원들이 미 공군이 긴급 투하한 고무제품 부교로 파괴된 다리를 건넌 뒤 황초령 고갯길을 넘고 있다. 탈출과정의 ‘지옥불 계곡’ 전투 등으로 영국군은 235명 중 93명이 전사하는 등 전투력을 상실했으며, 미 제1해병사단은 전사 704명, 실종 187명, 부상 3489명 등 모두 6천여명의 인명손실을 입었다. 책미래 제공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
앤드루 새먼 지음, 이동훈 옮김
책미래·2만5000원
“윌로비는 미국 전투기가 폐허가 된 마을에 기총소사를 가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한국인들은 저 꼴을 당하려고 일본에게서 해방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저널리스트 앤드루 새먼의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전에 낙동강전선에 투입된 영국군 부대가 이후 38선을 넘어 북진을 거듭하다 그해 말 중국군 개입으로 패퇴(1·4후퇴)하기까지의 활약상을 담은 책이다. 90명이 넘는 참전병사들 인터뷰와 그들의 회고록, 영국군 전쟁일지 등의 관련 문서들을 토대로 당시 전투와 전쟁 상황을 참전자들의‘휴먼 스토리’ 위주로 재구성해 2011년에 낸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6·25전쟁(한국전쟁)을 영국인 시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해마다 6월이 되면 한국전쟁 관련 책들이 다수 출간되는데,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은 이런 특징만으로도 관심을 끌만하다. 당시 미국이 주도한 ‘유엔군’ 이름으로 참전한 나라들 중에 미국 외의 참전국 군인들 얘기가 대중도서로 출간되고 우리사회에서 읽힌 예가 우선 흔치 않다. 참전 16개국 이름들은 더러 기억할지 몰라도 그 나라들 군인들이 어떻게 파병돼 그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국 제27여단, 그리고 영국 특수부대 ‘41코만도’의 참전 배경과 부산항 입항, 그리고 처음 투입된 낙동강전선 이후 인천상륙작전 때 상륙지점을 감추기 위한 양동작전, 북한군이 그들을 소련군으로 오인했던 사리원 진공, 박천 진주, 그리고 2차대전 이후의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처절했다는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 등에 이르기까지 영국군과 거기에 배속된 오스트레일리아군의 활약상은 그것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을까. 책 내용도 대부분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생존자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한 스토리는 생동감이 있다.
한국전쟁에 대해 지은이는 “냉전기간에 벌어진 분쟁 중 분노의 악마적인 힘이 이만큼 크게 분출된 싸움은 없었다”면서 “자유세계가 공산국가 영토를 침공한 유일한 전쟁” “초강대국 사이의 처음이자 유일한 전쟁” “영국이 2차대전 이후 치른 전쟁들 중 가장 큰 전쟁” “영국과 미국이 참전한 전쟁 중에서 부대 전체가 괴멸된 적이 있는 유일한 전쟁”이라 얘기한다.
그는 그럼에도 이 전쟁에 대해 세상사람들이 베트남전쟁은 물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심지어 포클랜드 전쟁보다도 모르는 전쟁, ‘잊혀진 전쟁’이 돼버린 현실을 지적하면서 재평가를 시도한다. 심지어 한국의 젊은세대들조차 무관심해 뵈는 한국전쟁 망각증은 전쟁 양상과 그것을 전하는 매체 환경이 지금과는 너무 달랐던 데서도 연유하지만, 그보다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현재진행형인데다 당사자들(특히 미국, 중국)이 그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잊혀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책이 북과 중국군을 절대악으로 상정한 스테레오 타입의 반공주의 도서는 아니라는 점, 북과 중국을 증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또 하나의 피해자로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많은 한국전쟁 관련 도서들이 갖고 있는 약점 중의 하나는 북을 절대악으로 몰아가는 시야의 편협성·협소성이다.
한국전쟁을 선악 대결구도로만 바라보면 그 전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평가하기 어렵고, 따라서 그 대응과 극복도 어려워진다. “한국전쟁은 정당한 전쟁이었다”고 하거나 여성의 전쟁참여, 외국군에 대한 한 소년의 저항을 공산주의 세뇌교육, 이념대결 탓으로 보는 듯한 이 책도 외국군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기존 관점을 완전히 벗어던진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 대결도식에서는 좀 벗어나 있다.
폭파되는 흥남 부두. 1950년 12월24일, 중국군 공세에 밀려 퇴각한 미군은 철수 뒤 중국군과 북한군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흥남항을 떠나면서 그 시설들을 모조리 파괴하는 ‘초토화 작전’을 벌였다. 책미래 제공 예컨대 이런 얘기는 어떤가?
“한국전쟁 이전 영국 해병대가 미국 해병대와 합동작전을 한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1900년 중국 의화단의 난을 진압하기 위한 다국적군 투입 때였다. 두 부대는 같은 유산을 물려받았다. (…) 이번에도 두 부대는 1900년에 함께 싸웠던 적과 동일한 적을 상대로 함께 싸울 것이다.”
전 세기의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과 한국전쟁, 이라크·아프간 전쟁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은 모호하긴 하지만 그것을 동일선상에 놓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훨씬 풍성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한국 민간인과 북·중국 병사들 처참한 희생에 대한 시선도 반공주의 도식에선 벗어나 있다.
한국이 저 꼴 당하려고 ‘해방’됐느냐며, 미국의 민간마을 폭격을 안쓰럽게 바라본 사람은 미국의 강력한 참전 요구로 급조돼 급파된 영연방 제27여단의 미들섹스 연대 제1대대 소속 존 윌로비 소령이다. 27여단은 미들섹스 연대 외에 아가일 연대 제1대대와 오스트레일리아 연대 제3대대로 구성돼 있었고, 당시 한국군 육군 제1사단 등과 함께 미 제8군의 선봉인 제1군단 지휘 아래 있던 소규모 여단이었다. 기갑부대도 포병도 없고 수송도 미군에 의존해야 하는 부대였다.
“저는 어느 오시(OC. 중대장)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북한 사람이랑 남한 사람은 구별하기 힘들어.’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우린 신경 안 써. 북한이든 남한이든 다 죽여버리면 그만이야.’”(영국군 제27여단 소속 돈 바레트 하사)
“마을 안으로 돌진해서 건물마다 모두 총을 쏴 갈긴 적이 많았지요. 하지만 아마 그 중 절반 정도는 그 마을에 민간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랬던 거예요. 당시는 누구도 그런 거 신경쓰지 않았어요.”(오스트레일리아 제3대대 소속 렌 오피 병사) “우리에게 저항하는 마을은 불태워버렸습니다.”(아가일 연대 앨런 로더 소위) ‘국(gook)’이라는 한국인·아시아인에 대한 멸칭 사용 등 당시 인종차별적었던 서양 군인들의 얘기를 이처럼 인용한 건 물론 그들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이런 얘기는 또 어떤가?
“어떤 나라에 쳐들어가서 그 나라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게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그 광경을 보고 생겼습니다. 그 사람들은 공산주의니 뭐니 하는 데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저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사는 게 주된 관심사였을 뿐인데 말이지요. 이게 ‘해방’이라면 참 웃기는 해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없었으면 더 잘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미들섹스 대대 군의관 스탠리 보이델)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저 꼴을 당하려고 식민지에서 해방된 건가
등록 : 2015-06-18 21:26. 수정 : 2015-06-19 10:19
한국전쟁 참전 영국군 생존자들 증언
민간마을 무차별 폭격한 미군 비판
반공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중국군의 개입으로 함경도 장진호 부근에서 궤멸 위기에 처했던 미국 해병대 공병들과 영국 특수작전부대 ‘41코만도’ 대원들이 미 공군이 긴급 투하한 고무제품 부교로 파괴된 다리를 건넌 뒤 황초령 고갯길을 넘고 있다. 탈출과정의 ‘지옥불 계곡’ 전투 등으로 영국군은 235명 중 93명이 전사하는 등 전투력을 상실했으며, 미 제1해병사단은 전사 704명, 실종 187명, 부상 3489명 등 모두 6천여명의 인명손실을 입었다. 책미래 제공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
앤드루 새먼 지음, 이동훈 옮김
책미래·2만5000원
“윌로비는 미국 전투기가 폐허가 된 마을에 기총소사를 가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한국인들은 저 꼴을 당하려고 일본에게서 해방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저널리스트 앤드루 새먼의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전에 낙동강전선에 투입된 영국군 부대가 이후 38선을 넘어 북진을 거듭하다 그해 말 중국군 개입으로 패퇴(1·4후퇴)하기까지의 활약상을 담은 책이다. 90명이 넘는 참전병사들 인터뷰와 그들의 회고록, 영국군 전쟁일지 등의 관련 문서들을 토대로 당시 전투와 전쟁 상황을 참전자들의‘휴먼 스토리’ 위주로 재구성해 2011년에 낸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6·25전쟁(한국전쟁)을 영국인 시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해마다 6월이 되면 한국전쟁 관련 책들이 다수 출간되는데,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은 이런 특징만으로도 관심을 끌만하다. 당시 미국이 주도한 ‘유엔군’ 이름으로 참전한 나라들 중에 미국 외의 참전국 군인들 얘기가 대중도서로 출간되고 우리사회에서 읽힌 예가 우선 흔치 않다. 참전 16개국 이름들은 더러 기억할지 몰라도 그 나라들 군인들이 어떻게 파병돼 그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국 제27여단, 그리고 영국 특수부대 ‘41코만도’의 참전 배경과 부산항 입항, 그리고 처음 투입된 낙동강전선 이후 인천상륙작전 때 상륙지점을 감추기 위한 양동작전, 북한군이 그들을 소련군으로 오인했던 사리원 진공, 박천 진주, 그리고 2차대전 이후의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처절했다는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 등에 이르기까지 영국군과 거기에 배속된 오스트레일리아군의 활약상은 그것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을까. 책 내용도 대부분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생존자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한 스토리는 생동감이 있다.
한국전쟁에 대해 지은이는 “냉전기간에 벌어진 분쟁 중 분노의 악마적인 힘이 이만큼 크게 분출된 싸움은 없었다”면서 “자유세계가 공산국가 영토를 침공한 유일한 전쟁” “초강대국 사이의 처음이자 유일한 전쟁” “영국이 2차대전 이후 치른 전쟁들 중 가장 큰 전쟁” “영국과 미국이 참전한 전쟁 중에서 부대 전체가 괴멸된 적이 있는 유일한 전쟁”이라 얘기한다.
그는 그럼에도 이 전쟁에 대해 세상사람들이 베트남전쟁은 물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심지어 포클랜드 전쟁보다도 모르는 전쟁, ‘잊혀진 전쟁’이 돼버린 현실을 지적하면서 재평가를 시도한다. 심지어 한국의 젊은세대들조차 무관심해 뵈는 한국전쟁 망각증은 전쟁 양상과 그것을 전하는 매체 환경이 지금과는 너무 달랐던 데서도 연유하지만, 그보다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현재진행형인데다 당사자들(특히 미국, 중국)이 그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잊혀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책이 북과 중국군을 절대악으로 상정한 스테레오 타입의 반공주의 도서는 아니라는 점, 북과 중국을 증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또 하나의 피해자로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많은 한국전쟁 관련 도서들이 갖고 있는 약점 중의 하나는 북을 절대악으로 몰아가는 시야의 편협성·협소성이다.
한국전쟁을 선악 대결구도로만 바라보면 그 전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평가하기 어렵고, 따라서 그 대응과 극복도 어려워진다. “한국전쟁은 정당한 전쟁이었다”고 하거나 여성의 전쟁참여, 외국군에 대한 한 소년의 저항을 공산주의 세뇌교육, 이념대결 탓으로 보는 듯한 이 책도 외국군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기존 관점을 완전히 벗어던진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 대결도식에서는 좀 벗어나 있다.
폭파되는 흥남 부두. 1950년 12월24일, 중국군 공세에 밀려 퇴각한 미군은 철수 뒤 중국군과 북한군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흥남항을 떠나면서 그 시설들을 모조리 파괴하는 ‘초토화 작전’을 벌였다. 책미래 제공 예컨대 이런 얘기는 어떤가?
“한국전쟁 이전 영국 해병대가 미국 해병대와 합동작전을 한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1900년 중국 의화단의 난을 진압하기 위한 다국적군 투입 때였다. 두 부대는 같은 유산을 물려받았다. (…) 이번에도 두 부대는 1900년에 함께 싸웠던 적과 동일한 적을 상대로 함께 싸울 것이다.”
전 세기의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과 한국전쟁, 이라크·아프간 전쟁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은 모호하긴 하지만 그것을 동일선상에 놓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훨씬 풍성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한국 민간인과 북·중국 병사들 처참한 희생에 대한 시선도 반공주의 도식에선 벗어나 있다.
한국이 저 꼴 당하려고 ‘해방’됐느냐며, 미국의 민간마을 폭격을 안쓰럽게 바라본 사람은 미국의 강력한 참전 요구로 급조돼 급파된 영연방 제27여단의 미들섹스 연대 제1대대 소속 존 윌로비 소령이다. 27여단은 미들섹스 연대 외에 아가일 연대 제1대대와 오스트레일리아 연대 제3대대로 구성돼 있었고, 당시 한국군 육군 제1사단 등과 함께 미 제8군의 선봉인 제1군단 지휘 아래 있던 소규모 여단이었다. 기갑부대도 포병도 없고 수송도 미군에 의존해야 하는 부대였다.
“저는 어느 오시(OC. 중대장)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북한 사람이랑 남한 사람은 구별하기 힘들어.’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우린 신경 안 써. 북한이든 남한이든 다 죽여버리면 그만이야.’”(영국군 제27여단 소속 돈 바레트 하사)
“마을 안으로 돌진해서 건물마다 모두 총을 쏴 갈긴 적이 많았지요. 하지만 아마 그 중 절반 정도는 그 마을에 민간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랬던 거예요. 당시는 누구도 그런 거 신경쓰지 않았어요.”(오스트레일리아 제3대대 소속 렌 오피 병사) “우리에게 저항하는 마을은 불태워버렸습니다.”(아가일 연대 앨런 로더 소위) ‘국(gook)’이라는 한국인·아시아인에 대한 멸칭 사용 등 당시 인종차별적었던 서양 군인들의 얘기를 이처럼 인용한 건 물론 그들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이런 얘기는 또 어떤가?
“어떤 나라에 쳐들어가서 그 나라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게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그 광경을 보고 생겼습니다. 그 사람들은 공산주의니 뭐니 하는 데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저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사는 게 주된 관심사였을 뿐인데 말이지요. 이게 ‘해방’이라면 참 웃기는 해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없었으면 더 잘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미들섹스 대대 군의관 스탠리 보이델)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댓글목록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해방은 무슨 개나발 해방이냐
이 머저리들아 -
미양키에게로 식민지가 인수인계 되여
6.25 가 조작되여
유럽과 왜놈을 부자로 만들어준것뿐이 없는데 말이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맞습니다~!!!! 북녘은 소박하고 훈훈한인민들이 널려있는곳이며 남녘은 상업주의적이고 타락한국민들이 널려있는곳이니 짐작이 가더이다~!!!! 특히 문진혁방송원은 악질 대북선교사들의 유혹에도 절대로 넘어가지않고 지조있고 단호하게 대처할것을 굳게결의하는바입니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미군놈년들 당장 미국으로 떠나가라~!!!! 떠나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