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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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흙 작성일2015-08-12 18:25 조회1,856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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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다.
68.
나(우용각) 역시 철창 속에 갇혀있을 때 전향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야만적인 고문을 당하였다. 대전《교도소》와 광주《교도소》, 전주《교도소》 등에 끌려 다니면서 나는 파쇼 교형리(사형을 집행하는 간수)들에 의하여 《통닭구이고문》과 《물고문》 그리고 방바닥에 쓰러뜨리고 온몸을 여러 겹으로 꼰 밧줄로 콩 타작하듯 내리치는 《타작고문》, 손발을 등 뒤로 결박하고 목고채를 목덜미에 끼워 넣고 비트는 고문 등 별의별 고문을 다 당하였다.
그로 하여 무릎관절과 어깨뼈가 탈골되고 왼쪽옆구리갈비뼈가 전부 부러졌으며 목뼈까지 크게 상한데다가 늑막염에 걸려 온몸이 만신창이 되어버렸다. 그때 나에 대해 악착하게 고문을 들이대던 대전《교도소》의 《전향공작전담반》 반장 유종흠과 《교회관》 라석규, 《교화사》 신하균 그리고 광주《교도소》의 《전향공작전담반》 반장 문승호, 《교화사》 리규연, 최한주 등 파쇼교형리들의 잔인하고 험상스러운 몰골은 지금도 저승사자처럼 눈앞에 스산하게 떠오르곤 한다.
살인악마들의 야수적인 고문의 어혈로 공화국의 품에 안겨 행복한 삶을 얼마 누리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난 비전향장기수 신인영은 생전에 자기가 당한 고문만행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전향하겠어? 안하겠어?>. <그걸 말이라고 하나, 세상이 두 쪽 나도 전향을 안 하니 포기해라>. 그러자 떡봉이 셋이 달라붙어 나를 밧줄로 묶고는 얼굴에 물수건을 덮었다. <야 고추가루 탔어?>. <탔어> 숨이 꺽꺽 막혀 내가 몸을 움직이자 한 놈이 내 얼굴을 치며 소리쳤다. <가만있어 빨리 고춧가루 물을 부어!>. 세상에서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의 하나가 코와 입을 통해 고추 가루를 탄 물이 그냥 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숨을 쉴 수가 없어 그저 붓는 대로 물이 들어가는 것이다.
<커억, 쿨럭!>. <계속 부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나를 붙잡고 계속 물을 붓는다. 의식이 혼미해지고 어느새 기절한다. 그놈들이 다시 발로 배를 걷어찬다. 물을 다 게우면 또다시 고추 가루물을 부어댄다. 》
《전향공작전담반》의 교형리들은 고문만행에 살인강도질을 일삼다가 잡혀온 폭력범들까지 동원하였다. 내(조창손)가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있을 때인 1973년 여름 어느 날 폭력배들이 《특별사동》 의 복도를 지나가다가 나를 향해 《야, 11방, 전향 안 해?》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나? 나는 전향 안한다. 》하고 말하자 폭력배들은 《뭐, 너 여기 나와, 이런 쌍놈의 새끼가 다 있어. 》하고 지껄이면서 나를 끌어내어 지하고문실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천정에 거꾸로 매달고 《물고문》, 《불고문》 등을 가하면서 무려 8시간동안이나 몽둥이로 무지막지하게 때리고 발로 차고 짓밟아댔다. 그리하여 나는 머리가 터지고 턱이 삐어지고 입이 째진 처참한 상태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반죽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파쇼악당들의 야만적인 고문만행으로 수많은 비전향자들이 참혹하게 학살당하였다. 대전《교도소》에 있던 비전향자 리선우도 아침 일찍 끌려 나가 캄캄한 밤이 되여 시체가 되여 돌아왔는데 그의 온몸은 고문으로 시꺼멓게 멍들어있었다. 교형리들은 비인간적고문과 학대에 단식으로 항거하는 비전향자들에 대해서는 《강제급식》이라는 고문도 들이대었다.
《강제급식》은 간수 여럿이 달려들어 단식하는 사람을 콩크리트 바닥에 쓰러뜨려놓고는 강제로 입을 벌리고 고무호스로 펄펄 끓는 뜨물 같은 멀건 죽물이나 굵은 소금이 채 풀리지 않은 차디찬 소금물을 마구 목구멍으로 들이미는 고문이었다. 이 무지막지한 《강제급식》고문으로 음식물이 식도가 아니라 기관지나 기도로 들어가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1980년 7월 나(리종)를 비롯한 청주《보안감호소》에 감금된 우리 비전향자들은 야만적인 고문학살만행에 항거하여 집단항의단식을 한 적이 있었다. 집단단식에 들어간 지 나흘째 되는 날 우리는 《강제급식》고문장으로 끌려갔다. 《강제급식》고문장은 우리 먼저 고문을 당한 사람들의 배설물과 구토물로 질벅하였다.
그 질펀한 바닥에 꿇어 앉히다가 나는 주춤하고 말았다. 왼쪽 콩크리트바닥에 김용성이 포승에 꽁꽁 묶인 채로 비스듬히 쓰러져 운명해 가고 있는것이 보였기 때문이였다. 그의 동공은 이미 확산되어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고 반쯤 벌어진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날 《강제급식》고문만행으로 김용성, 변형만 두 비전향자가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
파쇼악당들이 우리들에게 가한 야수적인 고문만행을 꼽자면 끝이 없다. 비전향자 리용운과 황필구처럼 야수적인 고문과 비인간적인 학대에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인간이기를 그만둔 이 야수들의 잔악무도한 고문만행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비전향자들이 처참하게 학살되었다.
교형리들은 우리 비전향자들을 무참히 고문학살하고는 저들의 비인간적 만행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그것을 《자살》로 꾸며놓기도 하였다. 대전《교도소》의 《최석기, 박융서 고문치사사건》은 그 하나의 실례이다. 《전향공작전담반》의 교형리들은 1974년 4월 최석기가 사상전향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를 처참하게 때려죽이고는 목을 매여 《자살》한 것처럼 처리하였으며 같은 해 7월 간수 김진태, 깡패 이돈욱 등은 비전향자 박융서를 몽둥이로 때리고 바늘묶음으로 온몸을 찌르고 나중에는 인두로 지지면서 모진 고문을 가하던 끝에 잔인하게 살해하고는 그의 배와 목을 유리로 마구 난도질 쳐놓고 《자살》로 꾸며놓는 치 떨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파쇼악당들은 고문과 학살로 비전향자들을 굴복시킬 수 없게 되자 고문 끝에 의식을 잃은 사람들을 강제로 《전향》의 손도장을 찍게 하거나 고문으로 학살당한 사람을 《전향자》로 만드는 모략도 거리낌 없이 감행하였다. 당시 광주《교도소》뿐 아니라 대전, 전주를 비롯하여 남조선각지에 널려진 《교도소》 들에서도 이러한 방법으로 《정치범전향 실적 올리기》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이 강제전향책동으로 하여 적지 않은 비전향자들이 《전향자》의 루명을 쓰게 되였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전향》 이라는 구실로 오늘까지 공화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파쇼교형리들은 우리들을 사상 전향시키기 위하여 회유기만책동에도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들은 야수적인 고문만행의 후과로 중병을 만나 생사기로에서 헤매고 있는 비전향자들에게 전향을 하면 약도 주고 치료도 해주겠다고 하면서 얼림 수를 썼으며 그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 죽게 하였다.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다.
68.
나(우용각) 역시 철창 속에 갇혀있을 때 전향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야만적인 고문을 당하였다. 대전《교도소》와 광주《교도소》, 전주《교도소》 등에 끌려 다니면서 나는 파쇼 교형리(사형을 집행하는 간수)들에 의하여 《통닭구이고문》과 《물고문》 그리고 방바닥에 쓰러뜨리고 온몸을 여러 겹으로 꼰 밧줄로 콩 타작하듯 내리치는 《타작고문》, 손발을 등 뒤로 결박하고 목고채를 목덜미에 끼워 넣고 비트는 고문 등 별의별 고문을 다 당하였다.
그로 하여 무릎관절과 어깨뼈가 탈골되고 왼쪽옆구리갈비뼈가 전부 부러졌으며 목뼈까지 크게 상한데다가 늑막염에 걸려 온몸이 만신창이 되어버렸다. 그때 나에 대해 악착하게 고문을 들이대던 대전《교도소》의 《전향공작전담반》 반장 유종흠과 《교회관》 라석규, 《교화사》 신하균 그리고 광주《교도소》의 《전향공작전담반》 반장 문승호, 《교화사》 리규연, 최한주 등 파쇼교형리들의 잔인하고 험상스러운 몰골은 지금도 저승사자처럼 눈앞에 스산하게 떠오르곤 한다.
살인악마들의 야수적인 고문의 어혈로 공화국의 품에 안겨 행복한 삶을 얼마 누리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난 비전향장기수 신인영은 생전에 자기가 당한 고문만행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전향하겠어? 안하겠어?>. <그걸 말이라고 하나, 세상이 두 쪽 나도 전향을 안 하니 포기해라>. 그러자 떡봉이 셋이 달라붙어 나를 밧줄로 묶고는 얼굴에 물수건을 덮었다. <야 고추가루 탔어?>. <탔어> 숨이 꺽꺽 막혀 내가 몸을 움직이자 한 놈이 내 얼굴을 치며 소리쳤다. <가만있어 빨리 고춧가루 물을 부어!>. 세상에서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의 하나가 코와 입을 통해 고추 가루를 탄 물이 그냥 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숨을 쉴 수가 없어 그저 붓는 대로 물이 들어가는 것이다.
<커억, 쿨럭!>. <계속 부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나를 붙잡고 계속 물을 붓는다. 의식이 혼미해지고 어느새 기절한다. 그놈들이 다시 발로 배를 걷어찬다. 물을 다 게우면 또다시 고추 가루물을 부어댄다. 》
《전향공작전담반》의 교형리들은 고문만행에 살인강도질을 일삼다가 잡혀온 폭력범들까지 동원하였다. 내(조창손)가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있을 때인 1973년 여름 어느 날 폭력배들이 《특별사동》 의 복도를 지나가다가 나를 향해 《야, 11방, 전향 안 해?》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나? 나는 전향 안한다. 》하고 말하자 폭력배들은 《뭐, 너 여기 나와, 이런 쌍놈의 새끼가 다 있어. 》하고 지껄이면서 나를 끌어내어 지하고문실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천정에 거꾸로 매달고 《물고문》, 《불고문》 등을 가하면서 무려 8시간동안이나 몽둥이로 무지막지하게 때리고 발로 차고 짓밟아댔다. 그리하여 나는 머리가 터지고 턱이 삐어지고 입이 째진 처참한 상태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반죽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파쇼악당들의 야만적인 고문만행으로 수많은 비전향자들이 참혹하게 학살당하였다. 대전《교도소》에 있던 비전향자 리선우도 아침 일찍 끌려 나가 캄캄한 밤이 되여 시체가 되여 돌아왔는데 그의 온몸은 고문으로 시꺼멓게 멍들어있었다. 교형리들은 비인간적고문과 학대에 단식으로 항거하는 비전향자들에 대해서는 《강제급식》이라는 고문도 들이대었다.
《강제급식》은 간수 여럿이 달려들어 단식하는 사람을 콩크리트 바닥에 쓰러뜨려놓고는 강제로 입을 벌리고 고무호스로 펄펄 끓는 뜨물 같은 멀건 죽물이나 굵은 소금이 채 풀리지 않은 차디찬 소금물을 마구 목구멍으로 들이미는 고문이었다. 이 무지막지한 《강제급식》고문으로 음식물이 식도가 아니라 기관지나 기도로 들어가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1980년 7월 나(리종)를 비롯한 청주《보안감호소》에 감금된 우리 비전향자들은 야만적인 고문학살만행에 항거하여 집단항의단식을 한 적이 있었다. 집단단식에 들어간 지 나흘째 되는 날 우리는 《강제급식》고문장으로 끌려갔다. 《강제급식》고문장은 우리 먼저 고문을 당한 사람들의 배설물과 구토물로 질벅하였다.
그 질펀한 바닥에 꿇어 앉히다가 나는 주춤하고 말았다. 왼쪽 콩크리트바닥에 김용성이 포승에 꽁꽁 묶인 채로 비스듬히 쓰러져 운명해 가고 있는것이 보였기 때문이였다. 그의 동공은 이미 확산되어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고 반쯤 벌어진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날 《강제급식》고문만행으로 김용성, 변형만 두 비전향자가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
파쇼악당들이 우리들에게 가한 야수적인 고문만행을 꼽자면 끝이 없다. 비전향자 리용운과 황필구처럼 야수적인 고문과 비인간적인 학대에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인간이기를 그만둔 이 야수들의 잔악무도한 고문만행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비전향자들이 처참하게 학살되었다.
교형리들은 우리 비전향자들을 무참히 고문학살하고는 저들의 비인간적 만행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그것을 《자살》로 꾸며놓기도 하였다. 대전《교도소》의 《최석기, 박융서 고문치사사건》은 그 하나의 실례이다. 《전향공작전담반》의 교형리들은 1974년 4월 최석기가 사상전향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를 처참하게 때려죽이고는 목을 매여 《자살》한 것처럼 처리하였으며 같은 해 7월 간수 김진태, 깡패 이돈욱 등은 비전향자 박융서를 몽둥이로 때리고 바늘묶음으로 온몸을 찌르고 나중에는 인두로 지지면서 모진 고문을 가하던 끝에 잔인하게 살해하고는 그의 배와 목을 유리로 마구 난도질 쳐놓고 《자살》로 꾸며놓는 치 떨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파쇼악당들은 고문과 학살로 비전향자들을 굴복시킬 수 없게 되자 고문 끝에 의식을 잃은 사람들을 강제로 《전향》의 손도장을 찍게 하거나 고문으로 학살당한 사람을 《전향자》로 만드는 모략도 거리낌 없이 감행하였다. 당시 광주《교도소》뿐 아니라 대전, 전주를 비롯하여 남조선각지에 널려진 《교도소》 들에서도 이러한 방법으로 《정치범전향 실적 올리기》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이 강제전향책동으로 하여 적지 않은 비전향자들이 《전향자》의 루명을 쓰게 되였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전향》 이라는 구실로 오늘까지 공화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파쇼교형리들은 우리들을 사상 전향시키기 위하여 회유기만책동에도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들은 야수적인 고문만행의 후과로 중병을 만나 생사기로에서 헤매고 있는 비전향자들에게 전향을 하면 약도 주고 치료도 해주겠다고 하면서 얼림 수를 썼으며 그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 죽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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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이걸갖고 무슨얼어죽을 북한인권타령? 지나가던 개나줘라~!!!!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마영애, 너 내가 미국으로 가서 네목을 톱으로 잘라주마~!!!! 그리고 네 전남편인 최광철이 북녘에서 버젓이 살아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줘야한다~!!!! 효성이도 빼내간 나쁜여편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