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들을 설복시킨 김일성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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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하 작성일2019-10-26 01:49 조회1,2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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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 15회 가운데 한 장면을 옮겨봅니다)
...마침내 장군님께서 《계시문》에서 눈길을 떼고 홍목사를 바라보시였다.
《이것은 반동놈들의 조작이 틀림없습니다. 왜 그런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례배를 보는 외에 무리를 지어 다른 잡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길림에 있을 때 손정도목사님한테서 들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데 대해서는 장려한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이 기억나지 않습니까?》
《옳소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나이다.》
안식교 장로 민로인이 소리치며 일어나더니 눈을 감고 복음을 외웠다.
그리고는 눈을 뜨고 목사, 장로들을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면 모두 생각해보십시오. 11월 3일에 실시하는 도, 시, 군인민위원회 위원선거가 사람들에게 리로운 일인가 해로운 일인가. 이것은 의심할바없이 좋은 일입니다. 왜 좋은 일인가? 이 선거는 지난 기간 선거를 거치지 못한 림시적인 인민정권이였던 림시인민위원회를 법적으로 공고시키기 위한 선거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인민정권이 한 일들을 돌이켜보십시오. 모두다 인민에게 리로운 일만을 하였습니다. 토지개혁을 해서 우리 나라 인구의 70~80프로의 비중을 차지하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었고 로동법령을 발포해서 지난날 마소처럼 천대받던 로동자, 사무원들을 자본가들의 착취와 억압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주었습니다. 남녀평등권법령은 일제와 봉건제도의 2중적인 억압을 받던 녀성들을 해방시켜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사회사업에 참가할수 있게 하였고 산업국유화는 중요공장, 기업소와 철도, 운수, 체신 일체를 인민의것으로 되게 하였습니다. 소학교, 중학교, 전문학교를 많이 늘이고 종합대학을 창설하여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이 공부하게 되였는가 하면 병이 나도 약 한첩 써보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던 로동자, 사무원들이 약값근심을 모르고 치료를 받을수 있게 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눈으로 본 보통강개수공사도 인민정권의 령도밑에 진행된것입니다. 지난 수백년세월 해마다 장마철이면 물란리에 집을 잃고 목숨을 잃군 하던 평양주민들이 이제는 보통강물란리걱정을 하지 않게 되였습니다.
물론 아직 우리 인민들의 생활이 유족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인민정권의 령도밑에 날을 따라 인민생활이 높아지고있으니 머지 않아 살기 좋고 문명한 새시대가 이 땅에 찾아오게 되리라는것은 불보듯 뻔합니다. 그래서 지금 남조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북조선으로 넘어오고있습니다. 남조선으로 넘어갔던 사람들도 미제와 리승만역도들이 하는짓을 보고 도로 북조선으로 넘어오고있습니다. 혹시 여기 앉아있는분들중에도 남조선으로 갔다가 넘어온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있습니다. 제가 바로 해방직후 남조선으로 갔다가 지난 8월 김일성종합대학으로 찾아가는 서울법정대학생들속에 섞여 평양으로 돌아온 남산재례배당 장로 리승환입니다.》
연미복모양의 제낀옷에 나비넥타이를 맨 신사풍의 중년사나이가 일어나서 하는 말이였다.
《남조선은 지옥이라면 북조선은 천당입니다. 장군님께서 계시는 이 방에서 제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해방전에 그렇게 많던 평양거지가 지금은 다 없어졌는데 서울에는 거지아이들이 욱실거립니다. 밝은 대낮에도 미군병사들이 길가는 녀자들을 겁탈하는가 하면 죄없는 사람들을 감옥으로 끌고갑니다. 왜정때보다 감옥이 더 많아졌습니다. 학교의 많은 교실들을 미국군대가 차지하고있습니다. 미군정은 교육의 자유까지도 억제하고 저들의 식민지교육을 강요하고있습니다. 서울에서 일어난 〈국대안사건〉이란 량심적인 교수, 학생들이 미국의 식민지교육을 반대하여 일으킨 정치운동입니다. 그래 지난 여름 법정대학 학생 수십명이 떼를 지어 북조선으로 넘어온것입니다.》
그는 목사, 장로들을 돌아보며 《예수의 계시문》은 선거를 파탄하기 위해 반동놈들이 꾸며낸것이 틀림없다고 하며 거기에 속아넘어가지 말자고 하였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있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께 문의해보는 모양이였다.
김책은 리승환장로옆에 앉아있는 팔자수염을 기른 중늙은이를 주의깊이 바라보았다. 그는 안식교 목사로서 제일 못되게 놀던 교직자였다.
그는 종교는 우주의 최고원인으로서 신을 주장한다, 따라서 유신론은 유물론과 피차 용납되지 않는다, 한편은 신이고 한편은 무신, 한편은 그리스도교, 한편은 비그리스도교인데 어떻게 용납되겠는가, 북조선에서 하도 많은 날중에 안식일을 택해서 선거날을 정한것도 종교에 타격을 주려는것으로밖에 해석할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지금도 맞갖잖아하는 표정으로 팔자수염을 손으로 비틀고있었다. 그러나 장군님앞에서는 감히 도전해나서지 못하고 속을 썩이고있는것 같았다.
《나는 목사, 장로님들이 교인들의 모범이 되여 선거에 참가하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교인이라면 마땅히 선거장에 나가야 할것입니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을 보십시오. 그들은 임진왜란때 위험에 처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승병을 조직하여 왜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승병지휘관이였던 사명당의 시 한편을 제가 읊어보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맞은편 벽에 시선을 보내며 조용히 한시를 읊으시였다.
10월 의병을 거느려 물을 건너매
호각소리 기발모습 강성을 흔드네
칼집안의 장검 밤하늘에 부르짖노니
원쑤를 무찔러 나라에 보답하리
《오늘까지도 조선인민은 누구를 물론하고 서산대사와 사명당을 무한히 존경하고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불교를 믿어도 조선을 위해 믿었고 교리를 지켜도 조선을 위해 지킨 애국자들이였기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슨 종교를 믿든 조선을 위해 믿어야 하고 어떤 주의를 하든 조선을 위해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후손대대로 인민의 사랑을 받을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미움과 저주를 받을것입니다.》
목사, 장로들의 얼굴에 강한 파문이 일어나고있었다. 조용히 울리는 장군님의 저력있는 목소리가 그들의 가슴에 계속 충격을 일으켰다.
《나라가 없으면 종교의 자유도 없습니다. 독실한 교인들인 안창호선생과 평양의 주기철, 최봉석목사들이 다 왜놈들때문에 희생됐지요. 내가 알고있기에도 여기 평양에서 일제말기에 29명이나 되는 목사, 감로, 녀전도사, 평신도들이 신사참배에 응하지 않은 죄로 체포되여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여러분들의 신앙도 짓밟힙니다.
목사님들, 어떻습니까? 나라와 인민을 위한 선거에 참가하여야 되겠습니까, 하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나라를 배신하면 그짓 또한 유다입니다.》
《여러분!》
불현듯 홍목사가 응접탁을 짚고 일어서며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교직자들을 불렀다. 그는 웬일인지 가쁜숨을 쉬며 가슴을 여러번 문지르더니 두팔을 쭉 벌리며 《우리 다같이 일어나 참회의 기도를 올립시다.》 하고 교직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숙연한 얼굴들을 하고 술렁술렁 일어섰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교직자들과 따뜻한 눈인사를 나누며 작별하시였다.
홍목사는 눈을 내리감고 흐느끼는듯 한 목소리로 기도를 올리였다.
《거룩하고 자비하신 주님이시여? 일시 사탄의 꾀임에 들었던 죄많은 어린 양들은 이제 비로소 어리석은 소행을 깨닫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속죄하나이다.
주님의 가르치심을 소홀히 한 죄로 저희들의 눈이 어두워져 사탄의 꾀임을 가려보지 못했나이다.
이제 김일성장군님께서 저희들의 눈을 밝혀주어 온몸이 밝아졌으니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간특한 사탄을 가려볼수 있게 되였나이다.
자비로운 주님이시여! 11월 3일 안식일에 주님의 뜻을 받들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주님의 자식들인 북조선의 전체 교인들을 모두 이끌고 선거장으로 가겠나이다. 아멘.》
이날은 1946년 10월 25일이였다.
그때로부터 꼭 한달이 지난 11월 25일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3차 확대위원회를 소집하시여 민주선거의 빛나는 승리를 총화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날 회의에서 인민위원회를 더욱 강화할데 대한 연설을 하시면서 지난날 일본제국주의가 남겨놓고간 모든 퇴페적인 유습과 생활태도를 없애고 생기발랄하고 약동하는 새 민주조선의 인간다운 풍모와 도덕, 애국적인 전투력을 기르기 위한 전인민적인 사상개조운동,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벌릴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장군님의 연설이 나가자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1946년 12월 하순에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기획국(이날 기획부로부터 기획국으로 승격되였다.)에서 1947년도인민경제발전계획예정장성수자들을 각국에 통보하면서 이렇게 서두를 달았다.
《…1946년 11월 25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3차 확대위원회에서 하신 김일성장군님의 연설은 각계각층 인민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다.
3일후 11월 28일 장대재 홍목사를 비롯한 평양시 목사, 장로들이 주동이 되여 맹원 35 118명으로 구성된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기독교련맹〉(위원장 강량욱, 부위원장 박상수)을 창설하면서 〈건국사상총동원운동에 합류하자!〉라는 구호를 제시한것은 그 하나의 실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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