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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rown>[촌평]《부마항쟁》30돌 기억하자</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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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9-10-14 00:00 조회1,8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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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30년 전, 즉 1979년 10월 중순 마산에서 발생하여 부산으로 확산된 민중투쟁,《부마항쟁》은 한국 민주주의 운동을 촉진시키는 불꽃이 되었다.



대학생 중심으로 시작된 반 군사독재 투쟁이 노동자와 일반시민의 주동으로 발생한 민중투쟁은 마산과 부산에서 처음 발생되어 민주화 운동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979년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탄압이 절정에 달하고 있을 때였다. 이에 대한 민중의 항쟁은 10월16일에 시작하여 5일간의 투쟁으로 지속되었고, 이를 막기 위한 군사정권은 계엄령과 함께 탱크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부마항쟁》은 10.26정변, 그리고 그 다음해에 질풍과 같이 일어났던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과 연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마항쟁》은 한국민주화운동에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서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마항쟁이 한국민주화 투쟁역사에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부마항쟁》이 주는 교훈은 독재정권의 부패된 권력은 절대로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시대는 박정희 유신독재로 국민을 탄압하던 시대였다.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수립하여 종신집권을 보장받고자 했다. 박정희 정권의 이른바 현대화 정책은 자본주의적 생산확대로 계급갈등을 비롯하여 여러 측면에서 사회갈등을 발생시켰지만 박정권은 오히려 군부와 관료, 독점재벌의 지배적 체계를 수립하여 계급갈등, 사회갈등을 심화시키며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를 포함한 민중탄압 정책으로 맞섰다.



이러한 박정희 정권의 정책은 민중생활을 위기에 몰아 넣었고 민중은 이에 대해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결국 《부마항쟁》이 터지게 되었다.



이처럼 《부마항쟁》이 한국현대사에서 갖는 의미는 먼저 박정희 군부독재 18년 동안 쌓아 온 정책을 국민들이 받아 들이지 않고 거부한 것이다. 여기에서 부마항쟁이 갖고 있는 특수한 성격은 과거 대학생 중심의 반 군사독재투쟁에서 민중이 중심이 된 투쟁으로 변모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대학생 운동의 보조가 아니고 민중자신들이 직접행동으로 반 군사독재체제에 정면으로 맞서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계기가 광주의 5.18항쟁과 그 이후 전개된 80년대의 민중운동으로 연결되어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부마항쟁은 그 이후 일어난 민주화 운동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즉 이 《부마항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민중의 힘을 확인하게 해 준 것이다. 그 영향으로 다른 지방에서도 반독재투쟁이 연속되었다.



이 《부마항쟁》의 영향력은 또 재미동포 운동가들에게도 파급되었다. 한국에서 보통 큰 사태가 터지면 미연방수사국 요원들이 동포운동가에 찾아와 사태정세에 대한 반응을 알아 보곤하였는데 이 《부마항쟁》경우에는 연방수사국 요원이 아니라 중앙정보국 요원들이 동포운동가들에게 접근하여 그 반응을 알아보는 이례적인 현상도 있었다. 그 만큼 부마항쟁이 미국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태로 보았던 것 같다. 이들이 동포운동가를 만나 주고 받은 대화를 종합하면 미국은 더 이상 박정희 정권을 지원하지 않고 무언가 대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 몇 일 되지 않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자기 오른팔인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죽고 말았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어떤 술좌석에서 “백만 명이 희생된다 해도 유신체제가 계속돼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듣고 그를 없애야 민족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여 사살했다고 말했지만 그 후 재판을 받으면서 “내 뒤에 미국이 있다”고 말해 그 사건의 배경이 아직도 의혹을 남겨두고 있다.



아무튼 《부마항쟁》이 지난 우리 역사에서 차지한 역할과 그 영향력은 한국민주화운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 항쟁은 6.15시대에 살고 있는 해 내외 동포들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지만 국민 대다수의 뜻을 수렴하지 않고 반민주의 길을 고집해 온 이명박 정권에게도 거부할 수 없는 교훈들을 던져주고 있다. 《부마항쟁》30돌을 맞으며 이명박 정권도 그리고 우리 해 내외 민중도 그 사건이 준 교훈들을 되새기며 한국 민주화 운동사는 물론 한국진보운동, 그리고 조국통일운동사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기를 당부한다.




2009년 10월14일


선우학원 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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