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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창보박사는 생애 10차례 그림 전시회 개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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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07-25 04:39 조회3,5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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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통일운동 대원로인 96세의 지창보박사는 63년의 미국생활을 하며 사회학자로 지내오면서도 동영화(조선화) 그림에 취미를 갖고 활동하면서 1960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화랑에서 자신의 그림들을 무려 10차례나 전시한 경험을 갖고 있다그는 1970년대부터 한국민주화운동과 그 이후 통일운동에 참여해 왔지만 그가 대화백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그의 생애를 통해 그는 사회학 아시아학을 강의하는 교수였지만 미술이론과 실기이론에도 강의했다. 지창보박사에 대한 이야기 두번째를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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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창보박사(96)가 중년시절인 1960년초부터 시작해 독학으로 대화백으로 부상 


 

 

 

뉴욕 지창보박사는 생애 10차례 전시회 개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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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헌팅턴=노길남 민족통신 편집인]뉴욕지역을 방문하여 미주 민주통일운동 대원로인 지창보박사(96) 찿아 뵈었는데 이번에는 사회학자나 통일운동 원로로 알려졌던 지창보박사가 미술계에 대화백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지창보박사는 자신이 자신이 미술학교에 간적도 없고 그렇다고 화백스승 밑에서 지도받다 일도 없는 화가 아닌 그림쟁이일 뿐이다라고 말하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이미 대화백 수준으로 평가받아 왔고, 그리고 그의 미술을 비롯한 예술철학 또한 심오한 경지에 들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22 평양에서 태어나 1942 평양광성고등보통학교 당시 5년제를 졸업하고 일찌기 1944 일본중앙대학 예과 문학부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학도지원병으로 중퇴하고중퇴하고 1955  한국으로 돌아와 1948 서울에 있는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전신) 대학원 문과를내퍼빌 일리노이스 소재 North Center College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1959 Durham, North Carolina 소재 Duke University에서 사회학, 아시아전공분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이후 윈스턴 살렘에 소재한 노스 캐롤라이너에 있는 Wake Forest University에서 1963년까지 사회학 아시아학을 강의했다.  이어서 뉴저지 소재 Drew University에서 교수겸 동서문화연구처 처장으로 3년동안 일하다가 1966년부터 1994년까지 뉴욕소재 롱아이랜드 대학에서 사회학교수 아시아학을 강의했고, 동시아 아시아 미술사를 지도하면서 미술의 회화창작도 겸해서 가르친 경험을 갖고 있다. 이후 롱아이랜드 대학에서 2014년까지 10년동안 Korea Center 창설하여 소장으로 일하면서 코리아문화에 주력봉사해 오면서 전통문화 프로그램, 젊은 예술인들의 작품전시회를 양성하고 이들의 작품들을 발표하는 사업을 통하여 코리아 문화를 증진시키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지창보박사는 자신의 작품들을 전해 배경들을 살펴보면 1960년부터 9년동안 대학들에서 4차례 진행하여 왔고, 1970년부터 1979년까지 뉴욕 오이스터 베이 도서관에서 한차례 전시회, 롱아이랜드 대학의 Setauket 에서 한차례, 센트루이스 콘코디아 신학대학에서 한차례, 미쉬건 칼라마조아에 있는 웨스턴 미시건주 대학에서 한차례 4차례 전시회를 가진바 있다. 그리고 2004 롱아이랜드 대학내 허친스 Gallery에서 한차례, 그리고 2013 917일부터 28일까지 롱아이랜드 대학내 허친스 화랑에서 한차례 전시회를 가진바 있다.

 

지창보 박사는 한생을 살아오면서 유능한 사회학 학자일 뿐만 아니라 동양문화 전문 학자로서 그리고 동양화(조선화) 직접 창작해 화가서 심오한 예술철학을 가지고 활동해온 대화백으로 칭송받을만 인물이다. 이것은 그의 화집에 담은 작품들이 말해주고 있다.

 

이날 지창보박사  댁을 심방한 유태영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기자는 그를 친가족 처럼 돌봐주는 아그네스 김선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3 건강한 몸으로 백세잔치를 친지들관 함께 가질수 있도록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지창보박사 연락주소:

4 Middle Hollow Rd., Huntington, NY 11743

*전화연락은 (631)423-2532


노길남 편집인은 뉴욕지역을 방문하고 교외지역에 거주해 온 미주 민주통일운동 대원로인 지창보박사(96) 댁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지창보박사가 96세임에도 불구하고 통일운동진영 원로일 뿐만 아니라 미국사회에서 시와 그림을 그려온 화백겸 시인이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탐방 그 첫재 글을 여기에 게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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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창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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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창보박사(오른쪽)와 유태영박사가 민족통신 8개국 탐방취재기를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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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창보박사가 자신의 그림들을 모아 펴낸 <화집>에 많은 작품들이 담겨있다.



미주통일운동 대원로 지창보박사는 대화백(1)


 

[뉴욕 헌팅턴=노길남 민족통신 편집인]뉴욕지역을 방문하면 미주 민주통일운동 대원로인 지창보박사(96) 찿아 뵙는 것이 최근년의 일정으로 되었다.

 

이번에는 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인 유태영박사가 경미한 접촉사고 때문에 그의 차가 바디숍에 들어갔다. 그래서 기자는 다른 분이 차를 빌려주어 차를 몰고 전화기에 있는 GPS(운전방향 지침기) 이용하여 2시간 정도 운전하여 그의 자택(4 Middle Hollow Rd., Huntington, NY11743) 찿아갔다.

 

꼬불꼬불 가는 길이 복잡하다. 산속의 좁은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자 그의 주소가 나타났다. 2에이커 넓이의 그의 자택은 오래된 집이었지만 분위기가 전원속의 주택이어서 마치 소설에 나오는 시골집 분위기로 느껴졌다.

 

현관에 들어서자 오른 방에는 서재의 책들이 책꽂이와 바닥에 놓여있다. 지창보 박사는 이제는 소장한 책들을 목록을 만들려고 정리중이라고 말한다. 이제 3년정도 지나면 100 잔치를 치뤄야 연세이기 때문에 집안 하나 하나 인생 마지막 정리를 하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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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창보박사 자신의 서재들에 꽂힌 책들을 하나 하나 목록을 만들어 정리중이다.

 

기자는 노트북 인터네트를 열러  최근에 민족통신 성원들이 지구촌 8개국을 탐방하며 <4.27판문점 선언>  <조미정상회담> 관한 국제사회 반응들을 취재하기 위하여 중국-일본-아랍 에미레트-뉴질랜드-호스트랄리아-독일-스웨덴-덴마크 8개국을 순회하며 취재한 현지 소식들을 설명해 드리고 지금 남북화해협력 분위기와 조미관계에 관한 문제들과 관련한 정세들을 보고해 드리는 한편 그의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관한 염원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그의 최근 생활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는 최근의 통일운동진영의 이러저러한 소식들을 듣고 <자주시보 애국언론인 이창기 기자돕기운동>에 대하여 쾌유를 바라는 염원들을 전하면서 성금도 해주는 한편 격려의 말씀도 전했다. 


그런데 이번에 지창보 박사에 대한 새로운면을 발견했다. 1953 2월에 도미하여 듀크대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창보 박사는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웨이크 포리스트대와 뉴저지주 드루대 교수를 거쳐 1966년부터 롱아일랜드대 사회학과 교수로 30 넘게 재직하면서 1970년대부터 한국의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가담한 사회학 학자이며 동시에 통일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그가 미술을 비롯하여 문학과 미술에 뛰어난 예술가라는 사실은 국내외 통일운동 진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방문에 지창보박사는 기자와 유태영박사에게 삼석 지창보 화집이 발행된 (158

) 한권씩 선물로 주었다. 화집에 담긴 작품들은 정말로 훌륭한 동양화(혹은 조선화) 그림들이었다고 기자와 유태영박사는 감탄했다.




지창보박사가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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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8세때 그림 그리던 중년의 지창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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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 <화집> 참조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1960 초엽 어느 , 미국인 교수가 나를 찿아와서 자기는 1950~1953 코리아 전쟁에 참여한 귀국하는 길에 기념품으로 들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용도가 무엇인지도 몰라서 자기에게 것이 붓이었다.” 회고했다. 수만리 수천리 타향에서 우리 붓을 보니 그리운 고향애 돌아간 듯이 무척 기뻤다고 한다. 하늘 따지 등을 소리내며 서당에서 공부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고 때의 감정을 돌이켜 보며 모필로 그림을 그렸던 시절을 올리며 흥분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동양화는 생명체의 삶의 율동을 단순 명백하게 표현한다 묘사하면서 살아있는 생명력 넘치는 삶의 모습을 표현하기 때문에 전통적 동양화에서는 죽은 것들을 없었다고 말한다.

 

지창보교수는 미국생활을 하면서 미국인 교수가 붓으로 중년이 넘은 나이에 늦게 그림을 그리고 시작했다. 처음에는 4군자 필법으로 습득하면서 간단한 새해 축하 연하장 정도의 미숙한 그림부터 그리기 시작했으나 주변 미국인 친지들이 특색있어 좋다고 하며 흥미를 보이는 바람에 화실에 없는 방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애써 가며 한점 두점 그려나갔다. 과정에서 예술창작에 일종의 영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돌이켜 본다.

 

그는 동양화의 특징과 서양화의 특징이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서도 알게되었다. 철학적 관점에서도 차이점들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그림 그리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된 점들이 많았다고 고백하면서  주변대학에서 요청받아 <아시아 미술사> 강의할때 자신이 제도로 미술사를 공부하지 못해 독학을 하면서 가르친 적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공부했던 자료들은 역대 가가 화백들의 작품들이 있는 조선, 중국, 일본의 화첩들을 많이 입수하여 음미 감상하며 공부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 당대 중국 최고의 화백인 장대천 화백과 함께 뉴욕에서 조우하며 아시아 미술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눈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해 준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낙관이 필요하여 자신의 호를 그의 가정에서 셋째 아들이라서 셋째 돌이라는 뜻으로 < 3>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어딘가에 고향을 그리는 향수들이 반영된다. 지창보 박사는 이에 대해 공감하면서 단신으로 남한으로 갔고, 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살면서 오는 고향에 대한 향수, 자신도 모르게 외로움과 고독감에 사로잡힌적이 많았다고 밝힌다.

 

그는 그림도 그리면서 때로는 시도 창작해 왔다. 그래서 그는 시와 그림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준다. <시는 그림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없는 >라고 소개해 준다.

 

그동안 틈틈히 그림들을 그려왔고 그림들이 쌓여왔기 때문에 주변에서 <화첨> 만들자고 권유해 왔지만 변변치 못한 졸작을 하며 사양해 왔다. 그러다가 몇년전에 주변 친지들이 화첩을 만들자고 간절하게 제언하여 마지못해 그렇게 하자고 동의하게 되어   화첩이 나오게 되었다고 배경을 소개해 준다.

 

그는 특히 자기 작품들을 사진으로 찍어 화첩에 담아 임경오 사장, 사진예술가인 조샘씨, 편집구성에 참여해 이흥남씨 부부, 그리고 양희열씨께 감사를 드린다고 강조하는 한편 축사를 보내준 로광욱박사(지금은 작고한 통일운동 원로이며 통일음악 작곡가)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다. (다음에 계속~)

 

 

[인물]지창보박사와 병상에 있는 송학삼선생 심방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8496

 

[기획-12]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br><br>뉴욕근교 지창보 박사 회고록 집필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othernews&wr_id=4672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18-08-02 04:08:03 통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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