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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65] 제3세계 눈으로 식민지 한국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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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4-12 09:12 조회6,367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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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은 " 민족분단 70년 역사는 오직 미국이 무조건적으로 지원해주는 배경하에서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근혜로 연결되는 불법적인 탈취행태의정치가 연결되고 있을 뿐이다. 그럼으로 대한민국의 70년 역사는 <반민중적 정치> <반민족적 정치>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을뿐이다." 고 지적한다. 유태영박사의 글전문을 싣는다. [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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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65] 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박근혜는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가

                

4개 재단이 말해주는 박근혜의 정체

 

 

 

*글: 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정수장학회의 근원은 박정희 5.16 군사쿠테타 정권하의 중앙정보부가 1962년에 김 지태의 막대한 재산을 강제로 몰수하여 명색이 국가에 헌납이지 사실은 박정희 일가의 사유재산으로 만든 것이 바로<정수장학회>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의 회고록에서 정수장학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박정희는 김지태의 재산을 부정축재척결의 수단으로 탈취하였으며 걷으로는 공익으로 포장하였지만 내막으로는 은닉하고 사유화 했다. 박정희는 중앙정보부를 이용하여 강압적 수단으로 재산을 착복하고 그 재산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박정희의 자녀들은 마치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처럼 소유하고 있다>라고 전김영삼 대통령은 사실을 밝혔다.

 

그러면 박정희에게 전재산을 탈취당한 김지태는 누구인가?  김지태는 일제하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말단직원으로 근무했으며 또 그는 퇴직금과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울산에토지2만평을 사들인 것이 훗날 큰 기업가로 발전하는 계기가 됬다.  김지태는 절대로 친일파가 아니며 부정축재자도 아닌 자수성가한 실업인 이었다.

 

김지태는 성공한 사업가로서 한때 이승만 정권하에서 정치활동을 했으며 국회의원까지됬다.하지만 김지태는 이승만 정권하에서 정치에서손을 떼고 대기업가로 성공하였는데 그 때 당시 경남 부산에서 최대 최고의 사업가로 명성을 높이 날리고 있었다.

 

김지태는 부산일보 사장시절에 이승만 정권의3.15 부정선거와 총격사건 등을 사실대로 보도하여 4.19혁명으로까지 연결되게하는 정의로운 언론인이었다. 또 김지태는 이승만 정권이 강요하는 정치자금3억원을 완강히 거절한 청백한 사업가이었다.

 

진실조사위원회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박정희는 <5.16쿠테타 직전거사자금준비>를 위하여 김지태에게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지태는 박정희의 요청을 모른척하고 거절했다.김지태는 박정희 정권에비협조한 반역죄를 범한 죄인이 됬다.

 

1961년에 박정희는5.16 쿠테타에 성공한 군부의 막강한 세력을 과시하면서 이병철과 김지태를 비롯하여 대기업가15명에게 <부정축재척결>이라는 혐의로 구속했다. 박정희 쿠테타군인들은한국의 대기업가들을 체포하면서이렇게 주장했다.

<우리 군인은 목숨을 걸고 혁명을 했는데 대한민국 모든 국민재산은 우리 것이다>

 

1962327일에 박정희 정권은 김지태에게 <부정축재처리법, 외환관리법, 산도피법> 등의 9개의 혐의를 뒤집어 쒸우면서 강압적으로체포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박정희 군부는 5 24일에 김지태에게7년형을 선고 했다.

 

그런데 김지태는 한달 후6 20일에 계엄사령부 법무관 실에서 쇠고랑을 찬 손으로법무부가 강요하는 <서류>에 본의 아니게 날인을 했다. 김지태가 도장을 찍은 서류는 김지태 소유의 전재산을 국가에 헌납한다는 <기부승낙서>이었다. 

 

김지태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하에서 전재산을 빼앗기고 마는 약자일 뿐이었다.  김지태는<기부승낙서>에 도장을 찍은 덕택으로 6 22일에 석방되었다.

 

박정희가 김지태의 사유재산을 강탈한 장물 재산은 어떤 것들인가?  부산일보, 국문화방송, 부산 문화방송,  부산시내 토지10147평 등을 박정희에게 강제로 빼았겼다.이 재산은 당시 시가로 54570만 환에 해당되는 거액이다.

 

그외에도 김지태의 소유인 거대한 <부일장학재단>을 빼았겼다.부일장학회를 박정희가 탈취한 후에<5.16장학회>라고 개칭했으며또 그 후에<정수장학회>가 되여 박근혜의 소유가 되였다. 그런데 박근혜 남매 형제들간에 정수장학회의 소유권때문에 발생한 집안싸움이 수십년간 계속해 유명한 실화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박정희가 탈취한 것은 김지태의재산외에 또 있다. 그것은 영남대학이다. 영남대학의 전신은 <대구대학><청구대학>으로 사립대학이었다.  그런데 삼성의 이병철 1966넌에 이른바<삼성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크게 걸려들어 회사 전체가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병철은 박정희 군사정권에게 밀수사건 무마용으로 청구대학을 국가에 헌납했다.

박정희는 <대구대학> <청구대학>을 탈취하고 통합하여 <영남대학>으로 개명하였다.

 

박정희는 탈취한 영남대학의 운영권을 임시로 <사학재단 운영규칙>을 적용하여 영남대학의 운영권을 중앙정보부 부장인 이후락에게 전적으로 위임하여 영남대학을 운영하도록 했다. 그러는 동안에 박정희는 영남대학의 <교주>로 등록이 됬다.

 

하지만 1980년 이후부터 박정희는 자기의  딸인 박근혜를영남대학 재단 이시장으로 임명했다.  이 때에 박근혜-최태민의 비밀관계로 인히여 문제가 복잡해 졌다.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보고하여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끊토록 건의를 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의 말보다 박근헤-최태민의 주장을 더 신임하였으며결국 박근혜를 영남대학 이시장으로 임명하여 1989년 까지 9년 동안 계속했다.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는 더욱친밀해졌으며 최태민은 박근혜의 멘토 역할을 했다.

 

그후에 영남대학의 이권문제로 인하여 박근혜-박지만-박근령 3인의 재산 싸움이 계속됬는데 집안 싸움이 한때 법정문제로 까지 비약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박근혜는 집안 싸움 무마용으로1983년에 박근혜의 동생 박근령을 이사의 자리에 앉게함으로서 집안 싸움은 임시로 무마됬다.

 

영남대학<교주 박정희>로 확인된 사립대학은 그동안 운영 비리가 여러번 폭로되여 국정감사를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경우등사회적 물의를 계속하여 이르키고있었다.

 

민족분단 70년이라고 말들 한다. 하지만 엄밀이 말하자면 민족분단 70년 역사는 오직 미국이 무조건적으로 지원해주는 배경하에서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근혜로 연결되는 불법적인 탈취행태의정치가 연결되고 있을 뿐이다. 그럼으로 대한민국의 70년 역사는 <반민중적 정치> <반민족적 정치>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을뿐이다.

 

1.누구를 위한 대통령인가? 국민인가, 박근혜 5개 재단인가

 

민족분단 70년 동안에 주요한 역사적 맥락으로 등장한 박근혜 일가의불법적인 탈취의 배경에는 박근혜의생명줄인 5개의 재단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박근혜 일가의 도둑질 정치를 70년 동안이나 계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일가의 도둑질 정치를 살펴봄으로서분단 70년 역사에 있서서 5개의 불법적 재단들의 인맥들과상호 연결되여 있는부정부패의진상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  육영재단.

육영재단은 1969년에 박정희의 부인 유영수가 어린이 복지사업으로설립한 재단이다.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투철한 애국심과 문화예술 그리고 과학지식을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설된어린이 복지재단이다.

 

하지만 1974년에 육영수가 사망한 뒤에 박근혜가 대표 이사장을 맡으면서 문제가발생하기 시작됬는데 그것은 <박근혜 이사장-최태민 고문의 밀착>으로 인하여 발생하는정치문제와 사회적 기강문제가 확대되고 노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로 인하여 육영재단의 비리가 국가적 문제와 사회적 여론의 위기에 이르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보고를 묵살하고 무조건 박근혜-최태민을 면접하고 그들의 변명의 말만 신임하고 둘의 관계를 문제삼지 않았으며 김재규의비리에 대한 보고를 모르는척 했다.

 

박정희 사망후 육영재단은 박근혜-박근영-박지만 3남매의재산싸움이 시작됬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박근혜를 전적으로 도와줌으로 박근혜는 이시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박근혜는 16년 동안 유영재단 이사장 자리를 고수해 오다가 1990에 동생 박근령에게 육영재단의 이사장 자리를 이양해 주었다.

 

박근령이 육영재단의 이사장에 취임한 후에 박지만이 등장하여 박근령-박지만 싸움이시작되여 경찰이 동원하는 법정싸움이 계속되여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집안 싸움의 원인은 육영재단의 막강한 기금때문에 3남매의 3각관계가 서로 물고 물리는 집안싸움으로 끝을 모르게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2008 10월에 박근령이 신동욱과 결혼하는 결혼식이 있었는데 박근혜와 박지만은 동생과 누나의 결혼식에 모두 첨석하지 않을 정도로 박정희-육영수가 없는 자녀3남매들의 관계는 최악의 험악한 지경이 계속하고 있었다.

 

박근혜 3남매가 물고 물리는 재산 싸움의 핵심은 어린이 회관의 토지 4만평의 시가는 부동산업자의 판단으로(2008년 현재) 3조원이 넘는 다고 했다.

 

1980년대 부터 지속된 박씨 3남매의 끝을 모르는 법정 집안싸음은 <청부살인>진위공방설까지 등장하고 있었다.  박지만과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 사이의 치열한분쟁으로 인하여 <청부살인> 진위공방 분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육영재단의 내막비밀을 제일 많이알고 있으며 특히 박근혜- 최태민의 비밀관계를폭로할 수 있는조짐을보이고 있는 박근혜의5촌 조카인 박용철은 갑짜기 의문사로 피살됐다.

 

하지만 역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여당의 집권하에서 육영재단은 정권의 감싸기와 집중포화속에서 무사안일하게존속될 수 있었다. 다만  제는 박씨 가문3남매들의 재산 싸움이 자체내분으로계속되고 있는 것뿐이었다.

 

) 정수장학회

 

정수장학회의 획심적 문제는 정수장학회 출신들이<막강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정수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은 장학회 출신은 38,000-40,000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은 오늘 박근혜 정권의 각계각층에서 <그물망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박근혜는 정수 장학회 이야기만 나오면 도둑놈이 제발이 저린다는 격언처럼 자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라고 철면피적으로 선을 긋는다.  하지만 박근혜는 10년 넘게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년봉으로 해마다1억원-2억원을 지급 받은 것이 기록되여 보존되고 있다.

 

정수장학회 출신이 청와대,행정부,법조계와 학계, 언론계와 문예계에 가득차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비서실장 1대 허태열,  2대 김기춘, 3대 이병기 등 3인 이 모두 정수장학회 출신들이며 그리고 서울시 교육감 조희연도 정수장학회 출신이다.

 

심지어 개독교 목사라고 욕을 먹고 있는 뉴라이트장로교 두례교회 김ㅇ홍 목사는 정수장학회 출신이며감리교 목원대학 김ㅇ배 총장은 바른말하는 교수들과 직원 그리고 이사들까지도 목을자르기로 유명한데 그도 역시 정수장학회 출신이다.

 

정수장학회 출신들의 모임인 <상청회>가 있다. <상청회>의 회원중 400명이 현직 대학 교수들이다.  정수장학회 출신400명 교수들이 한국의 명문 대학에서 조직적으로 박근혜 정권을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정수장학회의 장학금을 현재 받고 있는 재학생들의 모임을 <청오회>라고 한다. 그런데 이 <청오회>의 회원들은 박정희에게 죽도록 총성을 맹서해야만 정수장학회의 돈을 받을 수 있다.  정수장학회 장학금을 받은 38,000-40,000명들은 매년 박정희와 육영수의 추도식에 참가한다.

 

2004년에 정수장학회의 장학금 수혜자 수는 31천명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그 10년이 지난 2015년에는 정수장학회 장학금 수혜자 수는 38,000-40,000명으로추산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박근혜를 절대로 지지하는 정치적 기반이며 <코드인사>들이라고 한.  지면상 제한으로 <코드인사>들을 일일히 기록할 수 없음으로 오직 대표적 인사 몇사람을 살펴본다.

 

법조계 신승남 전 경찰총장, 주선희 전 헌법재판관, 허만 전 서울고등법원판사, 영훈 전 대검찰청 판사, 행정관료계 대표로 서준석 전 경제부 총리, 안병영 전 교육부 총리, 임상규 전 농림부 장관, 송광용 전 서울대 총장 그리고 문화 방송국과 체육, 신문사, 건설회사, 병 원 원장, 대학 총장, 주식회사와 무역계 사장들,회계사 등<코드인사>들이 정부와 사회의 구조들 속에 골고루 깊숙히 정수장학회 출신들로<그물망 인맥>으로 침투되여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수장학회와 아무 관계 없다>라는 황당한 거짓말을 하면서 <민족반역> <미국에 충성>하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박정희 장물재단 영남대학교

 

박정희는 군사쿠테타를 이르켜권력을 확립한 후1967년에 12월에 <청구대학><대구대학>을 탈취하고 합병하여 영남대학을 세웠다.  돈 한푼 안들이고 대학을 설립하고 <영남대학의 교주>가 됬다말이 대학이지 사실은 박정희 장물유산이었다.

 

박정희는 언젠가 군복을 벗고 퇴역한 후에 영남대학 총장이 될것을 꿈꾸면서 장물유산인 <대구대학> <청구대학>을 합병하여 영남대학을 창설했다고 전해진다.

 

박정희는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이후락으로 하여금 영남대학 창설과 운영을 책임지도록 했다.  이후락은 영남대학의 설립위원으로 이동년이효상김성곤성상용이후락최 준한석동신현확서정귀백남억신기석여상원김 인오일룡이상근등 박정희와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은 15명을 선출하여 영남대학 설립위원으로 임명했다하지만 15명 설립위원중에서 실질적 역할의 책임자는 이효상과 이후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정희에게 탈취를 당한 <대구대학>은 어떤대학이었나?

대구대학의 역사는 눈물겹다대구대학 설랍자 최 훈 선생은 일정 때부터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대주는 애국자이었다.  8.15 해방후에 한국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의지로 사재를 투자하여 대구대학을 창설하고 1947년에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구대학은 1960년 대에 들어서서 박정희5.16군사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지식인들을 조정할 목적으로 <대학정비사업>을 강행했는데 대구대학은 경제난으로 정부의 요구사항을 다 충당할 재력이 없었다.

 

최 훈선생은 할 수 없이 서울의 대기업가 삼성의 이병철에게 대구대학을 넘겨주면서 인재양성 사업을 계속하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이병철은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의 압력을 무마하기 위하여 대구대학을 박정희에게 헌납했다박정희는 대구대학을 탈취하고 이병철의 밀수사건을 덮어 주었다.

 

그러면 청구대학은어떻했는가?

청구대학은 1948년에 독립운동가 최해청 선생이 새나라의 인재양성을 꿈꾸면서 사재를 투자하여 대구에서 야간대학을 창설했다. 1950년에 청구대학으로 개편하고 재단법인으로 등록됬다청구대학도 박정희 정권의<대학정비사업>에 걸려들었으며 도저히 정상운영을 계속하기 어렵게 됬다.

 

청구대학 이사회는 박정희 정권의 압력에 못이겨 청구대학의 운영권을 포기하고 대학재단을 박정희 대통령측에 넘겨버렸다.  그리하여 박정희는 청구대학의 창설자 최해청과 구면인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돈 한푼 안들이고 독립운동가 최해청의 인제양성을 위한 고귀한 정신을 짓밝고 청구대학을 탈취했다.

 

<대구대학> <청구대학>을 합병하여 <영남대학>이 되여 이후락이 이효상을 중심하여 영남대학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박정희는 <영남대학 교주>로 확정되었다.

 

그런데 박정희는 살아저 없어졌고 누구도예상치 못한 <전두환 시대>가 출현됬다.

1980 3월에 전두환의 배경으로 박근혜는 29살 나이로 영남대학의 이사장이 된다짜고치는 꼬스톱의 정치적 흉계가 전두환과 박근혜 사이에 연출되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의 물결속에서 박근혜는 이사장에서 물러나 겨우평이사의 자리를 8년 동안 유지하고 있으면서 동생 박근령도 이사로 끌어 드렸다.이 모든 것이 전두환의 권력을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박근혜가 영남대학 이사회를 좌지우지할때 중요한 이사4명중에서 2명이 최태민의 친인척이었다.

 

1987 6월항쟁 이후에 정국은 <여소야대>시대가 전개되여 국회는 영남대학에 대한 엄격한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배경하에서 무법천지를 누리던 박근혜박근령 이사는 29명의 학생들을 불법으로 입학시킨 사실이 폭로됬는데 그  29명중에 최태민의 친인척들이 다수 포함된것 까지 밝혀졌다.

 

박근혜는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수 없게되여1988 11월에 박근혜는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여러 문제로 인하여 돌아가신 분의 뜻아버지 박정희)을 빛내는데 도움이 않되는 것 같아 학교일에 손을 떼기로 했다>고 떠나가는 성명을 발표했다.

 

박근혜는 29살에 영남대학 이사장이 됬으며 8넌만에 퇴임했다떠나갈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박근혜는 영남대학을 떠나갈 때 아버지의 유품들과 서류들을 모두 다 가지고 떠나갔는데 트럭으로 6-7 대의 분량을 싣고 학교 당국도 모르게 야간에 도주하듯 영남대학을 떠나갔는데 아무런 반성이나 사죄가 없었다>라고 묘사했다.

 

박근혜가 1988년에 영남대학을 떠난 후 20년이된 2009년에 이명박근혜 시대가 도래했다.  박근혜는 또 다시 영남대학에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박근혜는 우선 영남대 이사회에 박근혜의 측근 유력인사 4명을 이사로 추천하였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는 영남대학에 <새마을 대학원><박정희 대학원><박정희기념관등을 설립했다.

 

그런데 지금 2015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됬으니 그 무엇이던지 마음대로 어떠한 불법이라도 정당화할 수 있는 영남대학이 되고 있는 것이다지면상 제한으로 영남대학 스토리는 이것으로끝친다.

 

박근혜 재단들중에 또 하나의 비밀 <한국문화재단>

 

육영재단정수 장학희영남대학 등 비리 문제에 대한 관심때문에 한발 비껴 있는 곳이 바로 <한국문화재단>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근혜는 <한국문화재단이사장으로1980년에 취임하여 박근혜가 대통령에 출마하는 2012년까지 32년 동안 이사장을 계속했다.  32년 동안이나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있었다는 사실은 수상한 일이다.

 

한국문화재단은 어떻게 시작됬나?   <삼양라면>의 창업자인 전중윤은 박정희정부가 지원해주는 5만 달러로 라면제조기 1대를 구입하여1964년 부터 본격적으로 라면을 생산하여 전국적으로 호평을 받아 유명한 창업자가 됬으며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얻는 창업자가 됬다박정희 대통령은 삼양라면을 매우 좋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급서한 후에 전중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명덕문화재단>을 박근혜에게 기증했다.  박근혜는 1980 7월에 <한국문화재단>으로 개칭하고 이사장이 되여 2012년 대통령 후보자로 출마할 때까지 32년 동안 줄곧 이사장을 계속했다지금( 2015-2018)은 서도식 서울대 교수가 <한국문화재단이사장이다.

 

<한국문화재단>의 주소는 강남구 신사동이다.  절대로 간판을 붙이지 않으며 인터넷 검색도 어렵다.  하지만 박근혜가 관리하는 육영재단, 정수장학회영남대학과관련이 있는 유명인사들 모두 <한국문화재단>의 이사들이 되여 겸직하고 있으며 또한 한국의 유명한 정치인과 기업인들 학계의 주요 인사들 22명이 순환임명으로 <한국문화재단>의 이사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문화재단>이 제공하는 장학금 수여지는 1,000명정도 인데 75%이상이 경남 달성지역 박근혜의 선거구에 국한되여 있다.

 

<한국문화재단>을 운영하는 인물에 대한 의심이 심각하다왜냐하면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불렸던 문제의 최태민의 다섯째 부인의 딸인 최순실의 남편 정윤희가 주동 인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최태민과 그의 딸과 사위 정윤회는 박근혜의 4 개 재단중에서 어느 곳에서나 관여하지 않는 곳은 없다.

 

<한국문화재단>의 외형은 숨어 있는 작은 단체처럼 보이지만  박근혜의 정치활동을 지원해주는 인맥과 재정은 막강한 박근혜 정치의 중요한 축이다.  정수장학회의 수혜자가 38,000-40,000 명이돤다는 외형적 모양이다하지만 <한국문화재단>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박근혜의 손발이 되는 역할이 초점을 맞추고 작용하고 있다.

 

 박근혜는 육영재단정수장학회영남대학한국 문화재단 외에도 수없이 많은 크 고 작은 조직과 단체들이 대통령 주변에 가득차 있다.

 

구국봉사단새마을봉사단국민행복캠프국민미래연구원새마을 운동새마을 대학원친박교수모임바른사회 하나로연구원 등 이루다 추적할 수 없이 많은 단체들과 조직들이 박근혜의 주변에서 다양성보다는 오히려 복잡성을 나타내고 있다.

 

박근혜의 이러한 복잡한 조직들에 대하여  <찌라시 공작소이다>라고 평가한다.

 

박근혜는 국민을 위한 대통령인가?  정수장학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을 위한 대통령인가?  국민들의 마음은 박근혜는 과연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박근혜는 극민들의 질문에 정직한 대답을 해야한다.

 

이 글을 끝 맺으며,

 

한국의 순진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축출하는데만 목적이 있는 것 아니다.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은 박근혜의 장물유산에 대하여 솔찍 하게 시인할 것은 시인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국민은 애원하고 있다

 

애국적인 사과와 애국적인 용서가 있는 극적인 사건이 양편에서 발생해야 하겠다는 말이다.

 

국민들은 나라와 민족의 유일한 삶의 길은 오직 우리가 스스로 힘을 합해서 자주적으로 여야가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제 분단 70년에 절실히 깨닫고 있다

 

그럼으로 야당이던 여당이던 서로 용서를 구하고 또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대동단결의 극적인 사건이 발생해야 하겠다.

 

70년 계속되는 서로가 망하고 죽는 핵전쟁의 위협이 하루하루 가까히 닥아오고 있는데 그 무엇 때문에 저질은 과오를 사과하고 시정하지 못하고 있는가?  또 그 무엇때문에 용서하고 포용하지 못하고 나라가 이모양이 되고 있는가?

 

오늘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오직 필요하고 또 오직 유일한 희망은 강대국들의 대결 틈에 끼어 있으면서 <어느편에 설것인가>를 저울질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이제는 우리 민족끼리 남과 북이 용서하고 화해 하고 단합하고 단결하여 자주하는 민족이 어서속히 되야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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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준경님의 댓글

김준경 작성일

박정희는 부정으로 개인의재산을 빼앗고
딸은 그재산갖고 호의호식하고
그런딸이 또 부정으로 대통령 자리에있으니
나라꼴이 이렇게 엉망이됬군요.

그리고 계속 있지도않은 종북 종북몰아내자 하는데
그에 뇌화부동하여 설쳐대는 보수꼴통들
언제 정신차릴지...ㅈㅈㅈㅈ

조선민족님의 댓글

조선민족 작성일

박근혜 족속들은 돈에 찌들어 민족이고 통일이고 전혀 안중에 있는것 같지 않다.자기들만 잘먹고 잘살고 하면 그만인것 같다.
사람이 일정하게 경제적으로 고생도 해 보아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려줄도 알고 정의감도 생기고 하겠는데...
이런 비리들이 권력을 잡고있으니 나라가 말그대로 개판이고 개한민국사회 전체가 인정이란 거의  매말아 버리고 돈에 허우적거리는 병들고 썩어 빠진 사회로 밖에 될수없는것일것이다.

언제면 저 5개 재단이 남조선인민들의 공동재산으로 되겠는지...
그날이 올때만이 남조선사회는 비로서 정상사회로 돌아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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