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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형식의 자본— 중국 공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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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7-23 20:50 조회2,8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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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의 성격과 경제체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아래 글을 통일타임즈에서 게재한다.  중국의 경제체제를 자본주의라고 규정짓는 주장에 대해 저자 김정호 박사는 선명하게 반박하며 '사회주의적 자본'에 대한 논지를 펼쳐나간다. [민족통신 편집실]



※ 이 글은 현대사상연구소가 편찬한 현대사상 제27호 [자본]에 투고된 글입니다.

저자: 김정호. 북경대 박사.


특수 형식의 자본— 중국 공기업


[목차]

1. 일반적 자본으로서의 중국 공기업

2. 특수 자본으로서의 중국 공기업

3. 논의의 확장ㅡ 중국사회 성격문제

4. 채만수 선생의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양립 불가” 입장에 대해

5. 이정구 선생의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양립 불가” 입장에 대해

6. 결어



중국 1위 공기업 시노펙 로고 사진

1. 일반적 자본으로서의 중국 공기업

자본론에 따르면 자본이란 “자기 자신의 증식과정을 실행할 수 있는 가치”를 말한다.

“자본가는 화폐를 (새로운 생산물을 형성하는 요소 또는 노동과정의 요소로 역할 하는) 상품들로 전환시킴으로써, 그리고 죽은 물체에 살아 있는 노동력을 결합시킴으로써, 가치(즉 이미 대상화된 죽은 과거의 노동)를 자본ㅡ 즉자기 자신의 증식과정을 실행할 수 있는 가치 ㅡ으로 전환시키며 ‘가슴 속에 사랑의 정열로 꽉 차서’ 일하기 시작하는 활기 띤 괴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김수행 번역, <자본론>1권)

이는 자신의 크기를 키워 갈 수 있는 가치(응고된 노동시간)이며, 축적과 확대 재생산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중국 공기업은 완전히 그 조건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에 ‘자본’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2010년 8월 3일 중국 국무원 산하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약칭 '국자위')가 대외 공개한 <국무원 국자위 2009년 회고>의 통계수치들은 중국 공기업이 “자기 자신의 증식과정을 실행할 수 있는 가치”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국유자산의 가치보존과 증식에 있어, 2002년~2009년 8년 기간 중앙 국유기업자산은 7.1조 위안(한국 돈 약1212조 원)에서 21조 위안(3570조 원)으로 연평균 16.7% 증가하였으며, 영업수입은 3.4조 위안에서 12.6조 위안으로 연평균 20.8% 성장하였다. 이를 통해서 실현한 이윤은 2405억 위안(40.9조 원)에서 8151억 위안(138.6조 원)으로 '연평균' 19%의 성장을 이루었다.

또한 2022년 6월 17일 국무원 국자위가 발표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자위가 직접 관리하는 97개 중앙 국유기업의 자산 총액은 2012년 말 31.4조 위안에서 2021년 말 75.6조 위안으로 연평균 10.3% 성장률을 보였다. 2021년 중앙 국유기업의 영업이익률은 6.8%로 2012년보다 1.8%포인트 상승하였다.

​​

2. 특수 자본으로서의 중국 공기업

ㅡ ‘착취’를 배제한 ‘사회주의적 자본’

중국 공기업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하의 자본’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본의 일반적 성격ㅡ자기 자신의 증식과정을 실행할 수 있는 가치ㅡ을 공유하긴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착취를 배제한 특수 형식의 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명제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답하여야 한다. 중국 공기업에 노동자에 대한 ‘착취’, 즉 ‘잉여가치 수탈’이 존재하는가?

이를 위해 중국 공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를 상정해보자. 이 경우 과거 계획경제 하에서는 국가가 직접 그의 일자리를 배정하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시장경제를 실시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노동시장을 통해서 공기업에 채용된다. 즉 노동력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상품’으로 변화되었다.

그렇다면 노동력이 상품으로 존재하는지의 여부, 즉 형식상으로 ‘노동시장’이 존재하는지 여부가 공기업의 성격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공기업 역시도 사적 자본과 마찬가지로 착취 수단으로 변화되는가? 그러나 공기업이든 여타 다른 소유제 형식의 기업이든 간에 ‘임금노동’ 형식으로 노동자를 고용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성격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가 노동시장을 통해 공기업에 취업할 경우, 그 노동자는 시장의 평균임금 수준에서 고용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분명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이라는 ‘노동력 상품’에 대한 가치 규정이 관철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사실만으로 착취관계가 곧바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관건은 그가 공기업에서 자신의 재생산 비용 이상으로 창조한 가치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되는가에 달려있다. 만약 그것이 자본가의 몫으로 귀속된다면 분명히 착취가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실제는 어떠한가?

그가 고용된 직장이 공기업인 이상, 그 공기업의 이윤(잉여가치의 전화형태)은 우선 국가에게 귀속되며, 다시 최종적으로 본인을 포함한 전체 인민에게로 되돌아오게 된다. 예컨대 현재 중국의 경우는, 국유기업→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 (혹은 재정부)→전국인민대표자회의→사회(전체 인민)의 순서를 밟게 된다. 당연히 이윤의 전 사회적 환원을 통해서 애초 그것을 생산했던 노동자 자신도 혜택을 보게 된다. 물론 그것은 자신이 생산한 전체 잉여가치의 일부이겠지만, 그러나 그도 또한 마찬가지로 다른 공기업의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그 혜택은 동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고용형식이 ‘임금노동’인지 아닌지, 또 시장을 통해서 고용되는지와 같은 ‘형식’이나 절차상의 문제보다도 ‘소유관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잉여가치는 생산과정에서 창출되며, 그것을 최종적으로 누가 취득하는지는 소유관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중국 공기업의 이윤(잉여가치)이 최종적으로 인민에게 귀속되는 과정에서, 중간에 일부 관료층과 경영층의 부패가 개입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착취와는 다른 개념이다. 우리는 ‘착취’와 ‘부패’ 두 개념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양자는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한다. 최근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가 보여주듯이, 사회주의는 끊임없이 자체 내부 개혁과 반(反)부패 투쟁의 수행을 통해 사회시스템을 점차 개선하고 완성하여 부패를 제거해 갈 수 있다.

3. 논의의 확장- 중국사회 성격문제

1) 생산관계 측면

위에서 공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발생하는지 여부는 “자신의 재생산 비용 이상으로 창조된 가치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사실상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만약 자본주의 사회라면, 비록 공기업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전체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복무한다. 따라서 착취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2차 대전 직후 서유럽에서는 대대적인 국유화 바람이 불었지만, 국유화된 기간산업들은 일반적으로 민간 독점자본의 제반 비용을 낮추는데 주로 복무하였다. 따라서 그곳의 공기업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 대부분을 자본가계급이 향유하였기 때문에 착취가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 당시 서유럽의 공기업들은 대부분 적자기업이었으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알짜배기’ 기업들은 민간자본에 맡겨졌다. 결국 이 같은 반쪽자리 공기업체계로는 ‘적자’의 누적 때문에 오래갈 수 없음이 판명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그 사회가 사회주의일 경우에는, 공기업은 노동자계급과 전체 인민을 위해서 복무하게 된다. 따라서 그곳의 공기업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포함한 전체 인민이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착취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공기업은 요즘과 같은 물가폭등 시기에 스스로의 이윤을 줄여가면서 제품가격을 낮추어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일정 손해를 보는 부분에 대해선 이윤을 창출하는 다른 공기업을 통해 만회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가 재정은 전체적으로 장기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은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사적 유물론에 입각할 때 한 사회의 성격을 판단하는 기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생산관계의 핵심인 '소유제'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기준 중 여기서는 생산관계(소유제)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 기준에 입각할 때, 공기업이 국민경제 전반에 대한 확고한 주도성을 갖고 있는 중국사회에 대해서 우리는 사회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중국의 공기업은 2017년 기준으로 약 13만3천개이다. 중앙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중앙 공기업이 98개이며, 지방정부 통제하의 공기업은 13만2천개다. 이 같은 중국의 공기업 수는 중국 전체 기업 2,607만개 (2017년 9월 기준)의 약 0.5%에 불과하지만, 고용구성비는 15.4%, GDP 기여도는 약 35% 수준으로 그 집약도가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 공기업이 분포하고 있는 업종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의 공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컨대 전력‧ 에너지‧ 통신 등 국가 기간산업뿐 아니라, 금융‧ 건설‧ 항공운수 등과 같은 핵심 인프라 업종을 포함한다. 그밖에도 기계제작과 소재부품의 생산, 그리고 자동차‧ 조선 등 완성품의 제조 및 심지어는 유통‧서비스업에도 광범위하게 진출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중국 500대 기업 순위에 포함된 공기업은 총 274개(54.8% 비중)이며, 특히 상위 20위권 내에는 평안보험, 화웨이(Huawei), 태평양건설그룹을 제외한 17개 기업(85%)이 모두 공기업이다. 중국의 대표적 민영기업인 알리바바(Alibaba, 103위), 텐센트(Tencent, 109위), 바이두(Baidu, 213위) 등은 100위권 밖에 밀려나 있다.

이들 공기업은 전체 은행 대출의 75%, 본토 주식시장 상장(IPO)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등 중국경제는 공기업을 중심으로 자원배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공기업의 국민경제 내의 ‘지배적 지위’는 또한 헌법을 통해서도 보장받는다. 관련 조항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헌법 제1장 총강>

• 제6조. 중화인민공화국의 사회주의경제제도의 기초는 생산수단의 사회주의 공유제이다. 즉 전인민소유제와 근로인민대중의 집체소유제이다. 사회주의공유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소멸시키고, 각자 자신의 능력대로 일하고 노동에 따른 분배원칙을 실시한다.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 국가는 공유제를 주체로 하고 다양한 소유제 경제가 공통 발전하는 기본 경제제도를 견지하며, 노동에 따른 분배원칙을 위주로 하면서 다양한 분배방식이 병존하는 분배제도를 견지한다.

• 제7조. 국유경제, 즉 사회주의 전인민소유제는 국민경제의 주도적 역량이다. 국가는 국유경제의 공고화와 발전을 보장한다.

• 제12조. 사회주의 공공재산은 신성불가침하다. 국가는 사회주의 공공재산을 보호한다. 어떤 조직이나 개인도 어떤 수단을 통해서도 국가와 집체의 재산을 침해하거나 파괴해서는 안 된다.

혹자는 중국 공기업이 전체 국민경제에서 양적으로 아직 충분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사실을 들어 그 ‘주도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기업 수에 있어서 1%도 채 못 되며, GDP 공헌도에 있어서도 1/3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수치만으로도 다른 전 세계 공기업 수자를 모두 합친 것 보다 많다. 참고로 중국 외에 공기업 수가 비교적 많은 국가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헝가리(370개), 인도(270개), 브라질(134개), 체코(133개), 리투아니아(128개), 폴란드(126개), 슬로바키아(113개) 순이며, 한국은 현재 30개의 공기업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일부 논자들은 박정희 정부 시절에도 공기업이 많이 존재하였다는 점을 근거로, 공기업 수가 많은 것만 가지고서는 중국을 사회주의라고 간주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 시절 공기업 수자가 지금보다 많긴 하지만, 당시 한국경제는 중국처럼 “공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 수준에는 한참 못 미쳤다.

예컨대 당시 은행을 제외한 한국의 비금융분야 공기업을 볼 경우 실제 주목할 만한 기업은 10여 개에 불과하였다. 즉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한국통신, 담배인삼공사, 대한송유관, 한국종합화학, 대한석유공사, 포항제철, 한국기계공업주식회사, 대한통운주식회사, 대한해운공사, 대한항공공사, 대한조선공사, 인천중공업주식회사 등이 그것이다. 또 이 마저도 오래 가지 못했다. 박정희 정부는 1968년부터 일찍이 독점 공기업의 경영부실과 비효율을 타개함으로써 경영합리화와 기술개발 및 전략산업의 육성을 한다는 명목으로 공기업 민영화 조치에 착수하였다. 1968년에 대한조선공사, 대한해운공사, 인천중공업(주), 대한철광, 한국기계, 대한통운 등이 각각 극동해운, 한양, 인천제철, 삼미사, 신진자동차, 동아건설 등에 흡수 민영화되었으며, 1969년에는 대한항공공사가 한진상사로, 1970년에는 석유공사가 선경으로 인수되어 민영화되었다.

다음으로 공기업이 분포하는 영역을 보면, 당시 민간자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는 철강•정유•비료 등 주요 기간산업이나 중화학공업에 집중되어 있어 그 범위가 협소하였다. 이와 비교하면, 아래 <표1>에서 보듯 1971년 한국 ‘10대 재벌’의 진출 업종은 공기업보다도 훨씬 다양하였으며, 또한 국민경제의 관건적인 업종을 포괄하였다.

<표1> 1971년 당시 10대 재벌과 진출 업종

재벌명

대표자

업종

삼성그룹

이병철

무역, 식품, 섬유, 전자, 언론

럭키그룹

구인회

화학, 전기, 전자, 정유

한진그룹

조중훈

항공, 운수, 금융, 건설

신진그룹

김창원

자동차, 기계

쌍용그룹

김성곤

시멘트

현대그룹

정주영

건설, 시멘트, 자동차

대한그룹

설경동

전자, 전선, 무역

한국화약

김종희

화학, 정유,

극동그룹

남궁연

조선, 해운

대농그룹

박용학

섬유, 양곡무역

▲자료: 이한구, 1999년, <한국재벌형성사>, 비봉, p202


또 아래 <표2>에서 보듯,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선 재벌들은 중화학공업 분야에도 적극 진출함으로써, 박정희 정부 시절에 한국경제는 이미 현대•삼성•대우,•LG•롯데•쌍용 등 재벌자본의 주도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표2> 재벌의 중화학공업 참여현황 (1976년 현재)

산업부문

참여 재벌

산업부문

참여 재벌

자동차

현대, 대우, 기아

건설용 중장비

현대, 대우

기관차

대우, 현대

중기계

현대, 삼성, 대우

엔진

발전설비

현대, 삼성,대우, 효성

▲선박용

현대, 쌍용, 대우

전자

럭키, 삼성, 대한전선

▲자동차용

현대, 대우, 기아

섬유

럭키, 쌍용, 한국화학

조선

현대, 대우, 삼성

▲자료: 이한구, 1999년, <한국재벌형성사>, 비봉, p222


2) “질적 지배력을 획득한 생산관계”에 의한 사회 성격의 결정

더욱 관건적인 것은, 한 사회의 성격판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질적 측면’이지 양적 측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어떤 생산관계가 우세하며 지배적인지가 핵심이다. 이는 1980년대 한국사회의 성격과 관련한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대체로 결론이 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논쟁에서 상당 정도 공헌을 한 이진경씨는 자신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하나의 사회는 특정한 본질적 관계에 기초해서 통일적 전체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했을 때, 특히 사회구성체론에서 이 본질적 관계는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토대로서 질적 지배력을 갖는 모순이 전술한 ‘기본모순’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필연성을 획득한,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관철될 수밖에 없는 법칙에 기초하여 그 사회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질적인 지배력을 획득한 생산관계는 그것이 ‘아직’ 정립되지 못한 부분 속으로 침투·확대해 들어가며 그 관계를 재생산하는 제반 재생산영역과 상부구조에까지 확대되어 간다.”

위의 인용문 중 굵은 글씨체의 “필연적으로 관철될 수밖에 없는 법칙에 기초하여 그 사회를 파악하는 것”에 대해 이진경씨는 별도로 다음과 같은 별도의 주석을 달고 있다.

“이는 ‘전개될 수밖에 없는’ 관계이며, ‘(이미) 전개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필연성으로서의 전자는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현실화하며—이것이 발전과정으로 표현된다—그 과정을 통해서 점차 (양적으로도) 지배적인 것으로 된다.”

이진경씨의 이상의 서술은 한 사회를 파악하는데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이 시각에 입각할 때 중국의 공기업은 이미 ‘질적 지배력을 획득한 생산관계’이다. 그 규모와 전략적 중요성 그리고 헌법적 보장을 감안할 경우 아직 “(이미) 전개된 관계”는 아니지만, 앞으로 필연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관계라고 말 할 수 있다.

중국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착취’와 관련된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비슷한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현재 중국에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그에 따른 계급관계가 상당한 영역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당연히 ‘착취’가 객관적 현실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중국이 전반적으로 ‘착취 사회’라거나 계급모순이 ‘주요모순’인 사회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중국에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혹은 외국자본까지도 지배적인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인 국유경제와 집체경제를 보완하고 봉사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마치 자본주의사회인 한국에서 한국전력이나 한국가스공사와 같은 공기업들이 재벌을 비롯한 사적자본의 축적운동에 복무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국에서 민간자본(외국자본 포함)은 세수, 고용창출, 기술개발 등에 있어 공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중국경제의 발전에 복무한다. 또 그 같은 중국경제 내에서의 민간자본의 존재는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주변의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류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매개물이기도 하다.

4. 채만수 선생의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양립 불가” 입장에 대해

지난 2019년 12월 19일 현실사회주의 문제를 둘러싼 토론회가 있었다.이 토론회에서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 채만수 소장과 <노동자연대> 이정구 선생은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결국 ‘사회주의=계획경제’, ‘자본주의=시장경제’라는 등식을 고수한 것인데, 이 두 분의 주장대로라면 한 사회의 성격을 판단하는 기준은 소유관계와 국가의 성격 외에도, ‘시장과 계획’이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다. 과연 올바른 판단일까?

먼저 채만수 소장의 경우를 보자. 그의 주장의 근거는 설령 국가가 최대 주주일지라도 일단 시장경제의 환경 속에 있는 공기업은 그 목적이 ‘이윤창출’에 두어지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의미에서의 공기업이 될 수 없다는 논지였다. 이 때문에 공기업이 많다거나 그것이 시장을 주도한다고 해서 그 사회를 꼭 사회주의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주식시장에 상장된 공기업은 사실상 주주의 기업일 뿐 전체 사회공동체의 기업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일반적 유형의 공기업에 대해선 앞서 많이 다루었기에, 여기선 ‘주식시장에 상장된 공기업’에 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필자는 주식시장에 상장 되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중국과 같은 조건에서는 일단 국가가 최대주주일 경우(즉 공기업일 경우) 그 기업은 사회주의적 성격을 간직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시장 즉 ‘유통과정’에서는 착취가 발생하지 않으며, 그 때문에 시장이 존재하는지 유무를 가지고서 착취가 발생하는지 여부 혹은 그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으며, 오직 생산관계(소유제)와 결합될 때만 ‘가치법칙’은 ‘잉여가치법칙’으로, 노동자가 지출한 잉여노동은 자본가의 몫으로 전화하여 착취가 발생한다는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시장경제를 실시하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한 사회의 경제가 공유제 경제가 주도하는 경제일 경우에는, 공기업이 생산한 잉여가치는 전체 인민이 향유할 수 있기에 착취는 발생하지 않으며 공기업은 사회주의적 성격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점은 공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되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관철된다.

예컨대 국무원 국자위가 2022년 6월 17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무원이 직접 관리하는 97개 중앙 국유기업이 2013년 이래 국가에 납부한 세금은 누계 18조 2000억 위안이었다. 이와는 별도로 최대주주인 국가에 대한 이윤배당으로 1조 3000억 위안을 국가에 상납했다. 지금의 환율로 계산할 경우 약 247조원이다. 그밖에도 공기업은 주식시장에 상장할 경우 국가가 보유한 주식의 10%를 사회보장기금에 이체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규정에 따라 같은 기간 이체한 금액은 1조 2000억 위안에 달한다.

중국 공기업이면서 주식시장에 상장된 공상은행의 경우 2017년 벌어들인 50조원의 이윤은 약 70%의 지분을 가진 국가에게 대부분이 귀속되었으며 (홍콩 자치구정부 산하의 펀드가 소유한 지분을 포함할 경우 약 94%), 국가를 통해서 결국 사회로 환원되었다고 볼 수 있다. (표3 참조)

이와는 달리, 2018년 삼성전자가 벌어들인 동일한 50조원의 이윤은 당시 57% 지분을 가진 외국인 투자가와 약 5%의 지분을 가진 이재용 등 총수일가의 몫으로 많은 부분이 귀속되었다.

<표3> 중국 공상은행 10대 주주 명단 (2022.3.31. 현재)

주요 대주주

지분(%)

성격

中央汇金投资有限责任公司

34.71

국유

中华人民共和国财政部

31.14

국유

香港中央结算(代理人)有限公司

24.17

홍콩자치정부

全国社会保障基金理事会

3.46

국유

中国平安人寿保险股份有限公司-传统-普通保险产品

0.83

민간

中国证券金融股份有限公司

0.68

국유

香港中央结算有限公司

0.38

홍콩자치정부

中央汇金资产管理有限责任公司

0.28

국유

中国人寿保险股份有限公司-传统-普通保险产品-005L-CT001沪

0.12

민간

太平人寿保险有限公司-传统-普通保险产品-022L-CT001沪

0.11

민간

▲자료: sina 사이트. 공상은행의 전체 주주 수: 73만 2155 명.

5. 이정구 선생의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양립 불가” 입장에 대해

<노동자연대>의 이론가인 이정구씨는 한 발 더 나아가 더욱 심오한 발언을 하였다.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가치법칙은 유통에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물건이 어떠어떠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고, 그 안에 잉여가치가 포함되기 때문에 가치법칙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반면 진정한 사회주의라면 가치법칙이 적용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상품의 가치가 그것의 생산에 지출된 필요노동시간으로 결정된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된 상품의 가치 안에 이미 잉여가치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가치법칙은 잉여가치법칙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이것은 참으로 심오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가치설’은 맑스의 이론이 아니며 그에 앞서 부르주아경제학자들인 아담 스미스나 리카르도 등도 이미 이 같은 학설에 입각하여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맑스의 공적은 다름 아닌 ‘잉여가치법칙’을 발견한 데 있다. 즉 시장에서 가치법칙에 따른 등가교환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의 이윤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를 최초로 규명한 것이다. 그것을 규명하기 위해 맑스는 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시장(즉 유통과정)이 아닌 ‘생산과정’에 주목하였다. 자본가는 시장에서 노동자를 구매(사실은 ‘노동력’을 구매)한 후 그를 공장으로 데려온다. 그런 권리를 얻기 위해서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그와 그가 부양하는 가족이 생존할 수 있는 임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여기까지는 가치법칙에 의한 등가교환이 이루어졌을 뿐이고, 이 모든 과정은 ‘시장’ 즉 ‘유통과정’ 내에서 발생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교환 행위만 가지고선 우리는 어떠한 ‘착취’ 행위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 잉여가치의 비밀은 자본가가 이렇게 고용한 노동자를 공장으로 데려온 후 그의 노동력을 실제 사용케 하는 과정, 즉 생산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밝혀질 수 있다. 예컨대 노동자는 원래 4시간만 일하는 것으로도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의무노동을 다한 셈이지만, 자본가는 그런 후에도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초과하는 8시간 일을 시킨다. 여기서 뒤에 행해지는 4시간 노동은 자본가를 위한 것이 되며, 이 지불되지 않은 노동 즉 ‘부불노동(不佛勞動)’이 다름 아닌 ‘잉여가치’이며 자본가의 ‘이윤’의 원천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가치법칙과 잉여가치법칙이 분리하여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실제 양자는 완전히 서로 다른 개념이다. 맑스의 공적은 바로 가치법칙이 아닌 잉여가치법칙을 발견한 데 있다. 이점은 정치경제학에 어느 정도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이정구씨와 같은 분이 ‘시장경제=자본주의’라는 등식을 입증하기 위해 가치법칙과 잉여가치법칙 두 범주를 혼동하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국가자본주의론’을 신봉하는 이정구씨가 이처럼 두 개념을 혼동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토니 클리프를 비롯한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현실 사회주의국가에서 ‘잉여가치’ 범주를 ‘가치법칙’ 범주와 혼동하고, 단순히 가치법칙의 존재를 통해서 현실 사회주의는 착취가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임을 입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가치법칙은 그 자체로서 잉여가치와 동일시 될 수 없으며, 양자는 전혀 별개의 두 개의 범주이다. 가치법칙이 의미하는 것은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등가교환’일 뿐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결합할 때만, 비로소 생산과정에서의 부등가교환인 부불노동의 착복 즉 착취 문제가 발생한다.따라서 한 사회에서 교환가치의 존재, 그리고 상품과 시장의 존재 유무는 그 사회가 사회주의인지 자본주의인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다.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결국 채만수씨와 이정구씨가 앞서 ‘사회주의=계획경제’, ‘자본주의=시장경제’ 등식을 고수하는 것은, 가치법칙이 지배하는 시장경제와 잉여가치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 양자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결과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6. 결어 ㅡ ‘자본주의적 자본’과 ‘사회주의적 자본’으로 자본 의미의 확장

맑스가 생존하던 시기 현실 사회주의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주의는 그동안 한 차례 ‘계획경제’의 실패를 경험한 후, 이제는 새롭게 ‘시장경제’와 결합함으로써 활기를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이 같은 선택은 신생 사회주의에게 있어선 생존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다. 사물에게 있어서 ‘생존’은 지상 명령이자 최고의 가치이다.

사회주의 학설과 정치경제학 이론도 이 같은 현실의 실천적 요구에 조응하여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의 창시자인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경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관계 역시 불분명하였다. 신이 아닌 이상 그들이 스스로 겪어보지 못한 세상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 몫은 온전히 후대의 과제로 남겨졌다.

러시아혁명 이후 잇달아 출현한 현실 사회주의국가들은 그 빈 페이지를 메우기 위해서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간의 실천적 경험은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 중간단계인 사회주의는 결코 ‘상품경제’를 근절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회주의는 자신의 역사적 사명인 고도한 생산력 발전을 완수하기 위해 오히려 ‘시장경제’와 적극 결합하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음 또한 입증되었다. 이에 따라 이제 기존의 경제학의 개념과 법칙 역시 일정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자본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시장경제 하에서 생산력 발전은 결국 자본의 자기증식 운동과 그 확대재생산의 형식을 빌려서 나타나게 된다. 이 때문에 그동안 착취와 혐오의 대상으로만 간주되었던 ‘자본’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제 자본은 사회주의적 자본과 자본주의적 자본으로 구분되어야 하며, 전자는 자본 일반에 대한 ‘특수 범주’로 배치되어야 한다. 이 같은 새로운 범주의 성립은 현실에서 인류해방 과정상의 전진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이론 연구자로선 기껍고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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