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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조선반도의 통일: 평화의 꽃은 빙산우에서 활짝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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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ohkilnam 작성일01-01-10 00:00 조회3,1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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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민족통신 독자의 광장 게시판에 올라온 중국교포가 보낸 글입니다. 필자는 상해사회과학원 왕령일로 되어 있는데 이분이 교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글의 내용은 통일을 바라는 한 분의 뜻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을 돌아보며 21세기를 바라보는 내용이 담겨 있어 여기에 자료논문으로 올립니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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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도의 통일은 이루어질수 있을가?
평화의 꽃은 빙산우에서 활짝 핀다

상해사회과학원 왕령일

옹근 2000천년을 통털어 사람들의 심금을 가장 세차게 울려준 시각은 아마 김대중이 손을 내밀어 동일민족 《형제》인 김정일과 뜨거운 악수를 나눈 그 찰나일것이다.

조선반도의 화해협력의 불길은 랭전이 종식되면서 10년후에야 마침내 도래했지만 사실 그 맹아는 랭전대치가 가장 살벌스럽던 나날에 벌써 생성의 조짐을 보였었다. 전 세계와 온 나라 인민들에게 평양정상회담과 민족화해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해주기 위하여 조선로동당은 새로운 세기를 눈앞에 둔 2000년 12월에 《김일성전집》 제 34권을 서둘러 출판했다.

20세기를 마감하며 출판된 이 전집에는 조선의 국부(國父) 김일성이 1965년 1월부터 2월사이에 발표한 25편의 대작을 수록, 이미 별세한 이 령수인물이 당시에 천명했던 조선반도의 통일, 국가건설, 인민생활설계 등 여러면에 관한 사상을 펼쳐보였다. 그중 《워싱톤조선문제연구소 소장에게 보내는 회신》에서 김일성은 련방제형식으로 조선반도의 평화통일을 실현해야 한다는 립장을 밝혔다. 또한 김일성은 조선반도의 통일은 반드시 외계의 간섭이 없는 상황에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원칙하에 평화저긴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김일성은 벌써 조선반도의 북측과 남측이 련방제를 실시하여야 하며 문화의 교류는 통일을 실현하는 합리하고도 공정한 도경임을 강조했던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35년후 조선의 령도자 김정일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과 《6.15 북남공동선언》을 조인하게 된 리론적바탕을 이룬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또한 그 당시 한국 제6기 국회의원이며 민주당 대변인이였던 김대중도 이와 비슷한 어론을 발표하였으며 그것은 70년대 박정희정권이 그를 무단박해한 《북과 내통한 수요한 근거》로 되었었다. 그리고 1972년 10월, 김대중이 박해를 받아 제1차로 해외망명을 시작하여 1987년 7월, 모든 죄명이 해소되고 정치권리를 완전히 회복하기전까지 장장 15년동안 조선의 정당과 민중은 줄곳 김대중에게 강유력한 성원을 보내주었었다. 때문에 김대중이 한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조선반도문제관찰가들은 거의 모두가 《해볕정책》의 실시에 따라 남북관계의 해동은 조만간의 일일것이라고 인정했다.

물론 《해볕정책》은 정주영이 소를 몰고 《3.8》을 넘는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쉽게 리해할수 있는 것이아니다. 시초에는 우선 북측부터 《해볕정책》에 대해 경계의 눈길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후 잠수정사건, 대포동미사일사건, 서해안접전사건 등 남북관계를 충분히 파괴시킬수 있는 엄중한 정황들이 련이어 나타났지만 량측은 모두 노랄운 자제력으로 이를 극복해 나갔다. 이로하여 만인이 선망하던 정상회담은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김정일은 평양백화원호텔에서 금방 행장을 푼 김대중에게 격동된 어조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할 기회가 있게 되었다.

《만약 저의 부친(김일성)께서 살아계셨더라면 친히 당신을 영접했을것입니다.》 그도 그럴듯이 백화원호텔의 옥호는 김일성이 생전에 친히 평양에 와 북남최고위급회담을 하게 될 남측 지도자를 맞기 위한것이였기때문이다. 과연 오늘에 이르러 력사는 이곳에서 새로운 한페지를 펼치게 될것이다.

평양정상회담이후 조선반도의 북남관계는 평화의 궤도를 따라 지속적인 발전을 가져왔으며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지혜와 정열을 아직까지는 어려움이 많은 이 사업에 투입해 왔다. 필경은 수십년을 걸쳐 한 민족을 갈라놓았던 견고한 얼음덩이라 그것을 녹여없애려면 전 민족적인 힘이 일층 더 동원되여야 할것이다. 아니나 다를가 2000년 하반년, 조선반도에서는 사람을 격동시키는 회소식들이 련속부절히 쏟아져나왔다.

대화메카니즘면에서 량측은 우선 판문점군사분계선에서 적대적인 선동방송을 정지했다. 각종 교류활동이 직접 판문점을 넘나들며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순라중의 군인들은 본 민족의 언어로 따뜻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판문점은 이미 적대적인 돌발사건을 위한 교섭장소로부터 교류성사무상담의 우선적인 선택지점으로 변해있었다. 판문점에 설치된 남북련락사무소는 6년만에 다시 가동되였으며 한국 통일부 박재규장관은 북측의 사무담당자에게 첫 전용전화를 걸었다. 량측의 외교부 장관들은 유엔회의, 동남아시아국가동맹회의 등 국제적인 만남의 장소에서 제3국이라는 편리한 여건을 리용하여 여러차례 회담을 가졌으며 필요시 외교부 장관은 아무때건 상대방 수도를 직접 사업차로 방문할수 있다는 약속을 맺었다. 이러한 진척탬포를 근거로 락관적인 예측을 해본다면 김정일의 한국방문도 그렇게 먼 일은 아닐듯 싶다.

민간교류에서 량측은 눈물의 바다를 이룬 력사적인 리산가족상봉을 두차례 실현하였는가 하면 시드니올림픽입장식에서 남북대표단의 공동입장은 당시 개막식의 가장 화려하고 광채를 뿜는 한순간이 되었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형행사외에도 서신교류와 의연금전달은 량측 적십자조직을 통하여 이미 효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조선민족은 문화예술을 무척 즐기는 민족임에 틀림없다. 대형예술단의 상호방문공연이 빈번히 l이루어지고있는가 하면 량측이 련합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일도 이미 실제적으로 착수되고있다. 심지어 김정일본인이 친히 연출을 맡아 김대중의 사적을 영화로 각색하여 전 민족에게 보여주겠다고 표시한바도 있다. 동시에 량측은 교과서에 대해서도 새로운 형세에 부합되는 필요한 수정을 진행, 민족의 화해를 추진하는 참신한 내용들이 첨가되였으며 남북정상회담도 량측의 력사에 기록되였다.

지금도 일부 외래의 간섭이 새로운 걸림돌들을 만들어내고있지만 남북화해의 행정은 막을수 없는듯 하다. 례하면 한미군의 의지를 반영한 한국 2000년도 국방백피서에는 현실에 부합되지 않게 여전히 조선을 《주요한 적》이라고 규정함에 따라 평양측의 강렬한 항의를 불러일으켰으며 조선인민군의 군사훈련열조도 잇따랐다. 그러나 청산이 어찌 록수의 갈길을 막을수 있으랴, 평화의 돛배는 필연코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평양측은 김대중을 접대한후 또 로씨야 대통령 뿌낀과 미국 국무경올브레이트를 맞아들였으며 20세기가 서서히 막을 내릴 무렵 유엔안전보장리사회 첫 서방국가인 영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건립했다.

지구우의 마지막 견고한 빙산이 절망의 신음소리를 내며 바야흐로 무너져내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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