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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공작에 놀아나는 언론[200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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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3-05-27 00:00 조회3,5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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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ㆍ26 사태 뒤 일본 정보기관이 신군부의 집권을 돕기 위해 “북한이 남침태세를 강화했다”는 거짓정보를 언론에 전파한 내막을 규명한 학자가 있었다. 요지경 속 같은 얘기로 들리지만, 정보기관들이 쉼 없이 펼치는 ‘역정보’(disinformation) 공작에 서로 공조하는 것은 현실에서 흔한 일이다. 나라 안팎 정세가 격동하는 때면 으레 난무하는 센세이셔널한 북한 관련 정보는 그만큼 냉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언론은 음험한 역정보 공작에 여전히 바보스러울 만치 취약하다. 이를테면 최근 잇따르는 북한 요인 망명설을 흘리는 쪽에서는 황당무계한 얘기조차 쉽게 먹혀드는 것에 흐뭇해 하다못해 비웃을 법도 하다. 언론으로서는 실로 참담한 노릇이다.

망명설은 예외 없이 허술한 구석이 많다. 핵전문가라는 경원하란 인물은 실제 망명 여부를 떠나 북한 핵개발에 핵심 역할을 했는지가 의심스럽다. 그가 북한이 만들었다는 조잡한 핵폭탄의 실용화에 필수적인 고난도 기폭장치 전문가란 확실한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제시된 근거는 공교롭게도 90년 대초 핵위기 때 보수적 월간지가 그에 관해 보도하면서 인용한 국내 학자의 증언이다. 그러나 이 학자는 정부가 공인하지 않은 민간의 남침땅굴 탐사에 관여하는 등 신뢰성이 부족하다. 이런 까닭에 경원하가 미국에 망명했더라도 정보가치가 크지 않아 묻혀 있었고, 북한 핵이 다시 이슈화하자 어디선가 낡은 자료를 꺼내 재탕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

어쨌든 경원하 망명설은 아직 실체를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김정일의 측근이라는 길재경 망명설은 애당초 설득력이 없었다. 그는 마약 밀수혐의로 호주에서 나포된 북한 배에 타고 있다가 적발되자 문책이 두려워 망명했다는 보도였지만, 그만한 인물이 79세 고령을 무릅쓰고 밀수선을 현장 지휘한다는 것은 몰상식했다. 그가 처음부터 망명을 계획, 배가 북한을 떠나면서 줄곧 호주 당국과 교신했다는 엇갈린 보도 내용은 도무지 요령부득이었다. 김정일의 측근이라도 수천톤 급 화물선을 온통 장악해 망명 길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결국 그가 이미 여러 해 전 사망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허무맹랑한 거짓으로 드러난 망명설 소동을 단순한 오보(誤報) 사태로 치부할 수는 없다. 처음 오보를 생산한 통신사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을 사과했지만, 이런 정도 허황된 얘기를 곧이 믿었다는 것은 언론의 상식 밖이다. 여러 정황에 비춰 역정보로 의심해야 마땅한 얘기를 전파한 것이 고의성 없는 오보(misinformation)라고 주장하려면, 취재 경위를 공개하고 검증받아야 한다.

이건 언론자유나 취재원 보호와는 다른 차원이다. 선의든 악의든 간에 언론이 역정보를 전파하고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관행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 역정보가 국민의 판단을 흐려 여론을 오도할 뿐 아니라, 정보 공작이 흔히 명분 삼는 공공의 이익을 거꾸로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망명설 소동은 겉만 보면 북한의 범죄성을 부각시켜 해상봉쇄 등 압박 명분을 강화하려는 외부의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망명설의 진위가 가려지지 않는 동안, “정보기관이 개혁 파도에 휩쓸려 대북 정보능력이 흔들린 탓”이라고 특히 정보기관의 인적 청산작업을 겨냥한 비판이 나온 것은 주목된다. 이에 따라 격변기 흐름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안팎의 세력이 혼란스런 역정보 공작에 공조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에서는 CIA가 국내외 언론인들에게 돈까지 주면서 역정보 공작을 편 사실을 상원 청문회로 밝혀 낸 적이 있다. 우리 언론도 역정보 공작을 스스로 경계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청문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강병태 편집국 부국장 btkang@hk.co.kr

[출처:한국일보 칼럼란 200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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