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권연구소>미군강점관련 3월 5일-11일 주요일지 > 투쟁속보란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4월 26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투쟁속보란

<한국민권연구소>미군강점관련 3월 5일-11일 주요일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작성일05-03-04 11:03 조회1,507회 댓글0건

본문




주한미군 강점관련
3월 5일 - 11일 주요일지


한국민권연구소 제출


  본 일지는 미군강점 60년을 맞은 올해를 주한미군이 없는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본 연구소가 만든 교양자료입니다.
미국과 주한미군이 한국사회를 예속화하고 강제점령해온 역사적 증거와 사건들을 정리하여 짧게 모았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매 주 금요일 오전에 1주일 단위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자료의 오류가 발견되거나 수정, 보완, 첨부 및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연구소 대표 이메일 minkwonyun@hanmail.net로 메일을 주십시오.

1947년
3월 10일    미국무장관 힐드링, 미국 남한단독정부 계획 시사  

1948년(2.7 구국투쟁/4.3항쟁)
3월 7일    인천에서 행인 살인

1958년
3월 5일    한국전쟁 참전 16개국, 이북과 중국의 외국군대 철수 제의 반대

1966년
3월 7일    브라운 주한미대사 한국군 추가파병에 대한 미국의 보상 조치 "브라운 각서" 14개 항 발표

브라운 각서(설명있음)

1981년
3월        전두환 대통령 미국방문

역대 한국 대통령과 미국(설명있음)

1987년
3월 9일   미국무성, 미국 외교관과 이북 외교관의 초보적 접촉 허용 발표 [외교 접촉 지침]

1990년
3월 8일    팀스피리트 "90 한미연합군사훈련 시작

팀 스피리트 훈련(설명있음)  

1991년
3월 6일   리처드 솔로몬(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한반도 비핵지대화" 공식 거부.

1993년
3월 8일    이북, "준전시 상태" 돌입 선포.
3월 9일    한미합동 "93팀스피리트훈련 돌입.  
3월 11일   이북, 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핵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 결의안" 채택 비난.

이북의 준전시상태 선포(설명있음)

1995년
3월 11일   이북 외교부, "한국형 경수로 강요 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와의 협상 거부" 표명[대변인 기자회견].

1996년
3월 8일    [(조선인민군)판문점 대표부] , 비망록 발표

이북이 제의한 `평화협정 체결이전의 단계적 조치로서 잠정협정 체결`에 미국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정전체계를 새로운 장치로 바꾸기 위한 최종적이고 주동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북측은 1994년 5월 기존의 정전체제를 부정하면서 `정전위대표` 대신 `조선인민군판문점대표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

2002년
3월 9일   미<핵태세 검토 비밀보고서>, 이북, 중국, 러시아,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을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로 지정하고 이들 국가들에 대한 핵무기 사용 계획 수립

핵태세 검토 비밀보고서(설명있음)

**설명

1) 브라운 각서
이른바 ‘브라운 각서’는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에 한국정부(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동참하는 것에 대한 보상성격의 각서이다.
1966년 한국정부가 2만명의 국군을 추가 파병할 것을 결정하자 같은 해 3월 7일 브라운 주한미대사는 한국군의 추가파병에 대한 미국의 보상 조치로써 14개 항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브라운 각서이고 몇 가지만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추가파병에 따른 모든 비용은 미국정부가 부담한다.
1. 한국군 육군 17개 사단과 해병대 1개 사단의 장비를 현대화한다.
1. 베트남 주둔 한국군을 위한 물자와 용역은 가능한한 한국에서 구입한다.
1. 베트남에서 실시되는 각종 건설, 구호 등 제반 사업에 한국인 업자를 참여시킨다.
1. 미국은 한국에 추가로 AID차관과 군사원조를 제공하고, 베트남과 동남아시아로의 수출 증대를 가능케 할 차관을 추가로 대여하며, 기타 경제개발 목적에 사용하기 위한 신구차관을 제공한다.
1. 한국이 탄약생산을 늘리는 데 필요한 자재를 제공한다.

내용을 보면 그 동안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이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문제인식이 어느 정도는 타당했음이 입증된다.
후에 밝혀진 일이지만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대가 참전해서 얻은 경제적 가치는 미비하며 그나마 5만 5천 명의 사상자로 인해 발생된 사회적 비용과 책임은 그 당시에 벌어들인 달러의 수 백 배에 달한다고 한다.

2) 역대 한국대통령과 미국
한국 대통령은 당선 후 미국방문을 통해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한국사회의 발전방향과 대북문제, 그리고 한미간의 정치, 경제, 군사적 합의를 맺어왔다. 이는 양국 정상간의 외교적 형태를 띠나 내용상으로는 미국의 대 한반도 지배체제의 전달 및 수용과정으로 되어왔다.
특히 대북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한미군사동맹문제는 대통령간의 합의와 국방장관간의 구체적 합의를 통해 집행이 되어왔는데 이는 한국사회가 미국의 사실상 식민지임을 드러내는 극명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추후 한국 대통령과 미국과의 수직적 관계에 관한 구체적 내용과 예시를 찾아 글로 발표하도록 하겠다.

3) 팀스피리트 훈련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한반도에 비상사태가 일어날 경우, 한국군과 협력해서 침략군을 격퇴한다는 목적 하에, 미 본토와 해외기지에 배치하고 있는 육·해·공군부대를 가급적 신속히 한국에 투입시키고, 그 부대들로 하여금 한국군과 연합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훈련이다.

주한 미 제7사단의 철수로 인해서 이북의 무력남침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을 근거로 1969년부터 "포커스 레티나" 훈련이 시작되었으며 1976년부터는 "팀스피리트"이라고 하였다.

1978년 훈련부터는 참가 병력이 10만 명을 넘어섰고 동원 병기도 B-52 중폭격기 편대, 랜스 미사일 대대 등 핵공격 능력을 갖춘 부대가 동원되는 등 그 양상이 달라졌으며, 더욱이 1984년부터는 참가 병력이 20만 명을 넘어섰고 훈련기간도 50∼90일로 크게 늘어나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 되었다.

특히 1982년 1월 28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제410차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는, 이 훈련을 전쟁도발을 위한 준비라고 주장한 이북측은 주장하였으며 이후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일반적으로 군사훈련은 적의 공격에 대항해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적을 격퇴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실시하는 것인데 비해, 팀스피리트 훈련의 경우는 방어 훈련은 거의 하지 않고 공격, 반격훈련으로 짜여 있다. 상륙작전, 도하훈련, 적 방어선 타격훈련, 적 후방 침투훈련 등이 바로 그것이다.
팀스피리트 훈련의 성격에 관한 의문은 1963년 이래 ‘공지입체전’개념이 훈련에 도입되면서 더욱 분명해 졌다.
공지입체전이란, 전쟁이 발발하는 즉시 공중과 지상에서 적의 정면과 후방의 심장부 및 보급로를 동시에 공격한다는 개념이다.
공지입체전은 휴전선에 전선이 형성되었을 경우 ①한미 양군은 공군력으로 융단폭격을 가함과 동시에 핵지뢰를 폭파시킴으로써 밀집된 북한의 방어선을 뚫고 ②지상군은 무너진 방어선을 통해 신속히 진격하여 ③한편에서는 미군 특수부대가 북한 지역의 중심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핵배낭으로 파괴공작을 하고 ④한국의 특전사 및 특공연대가 교란을 유도하며 상륙부대가 북한 동해안으로 상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팀스피리트 훈련이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팀스피리트 훈련이 핵전쟁 연습이 아니냐는 의혹은 팀스피리트 훈련에 항공모함 ‘미드웨이’나 ‘엔터프라이즈’,  "F-111폭격기", "B-52 전략폭격기" 등 핵무기 탑재 병기들이 등장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러던 중 미 육군의 대표적 핵보병 부대인 제 25보병 사단과 미국의 핵전쟁 지휘통제기인 E-4B가 훈련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팀스피리트 훈련이 핵전쟁을 상정한 훈련이라는 것이 분명해 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점은 핵배낭을 사용하는 오키나와 주둔 미 공수부대가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또 다시 확인되었다. 공지입체전 개념에 의하면 소형 핵배낭을 짊어진 특수부대는 적의 후방에서 파괴공작을 수행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한편 팀스피리트 훈련으로 표현된 공격적인 미국의 군사전략은 즉각적으로 한국군의 편제와 훈련에 영향을 주었다. 적 후방침투를 기본임무로 하는 특공부대가 1개 군단에 1개 연대 꼴로 창설되었고, 방어선 개념도 제1방어선, 제2방어선 등 여러 개의 방어선을 설정했던 종래의 작전 개념에서 휴전선을 유일한 방어선으로 삼으면서 즉각 반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훈련은 또한 특공부대의 경우, 장거리 작전에 대비한 400킬로미터 행군이 정기적으로 실시되었으며 일반 부대에서도 북한의 기상과 지형 조건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극한상황 극복훈련’이 행해졌다. 극한상황 극복훈련은 혹한의 한 겨울 눈 쌓인 산악 250킬로미터를 행군하는 것으로서, 1985년 겨울 처음으로 이 훈련을 실시한 세칭 맹호부대에서는 수많은 중상자를 내기도 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팀스피리트 훈련은 대북  핵공격을 전제로 하는 한미연합훈련으로써 한반도의 통일과 긴장완화에 역행하는 미국의 대 한반도 군사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4) 이북의 준전시상태 선포
당시 북미는 ‘핵문제’를 두고 전쟁 접경까지 가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클린턴 정부의 북폭계획이 가시화 되고 있던 시점에서 3월 9일부터 미국은 핵공격 훈련인 팀 스피리트 훈련을 재개시켰다.
이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에 주동적으로 맞서기 위해 하루 전인 3월 8일 인민군에 준전시상태에 들어갈 명령을 내리고 주한미군을 포함한 해외미군부대에 대해 임의의 시각에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만단의 태세를 갖추도록 하였다. 이후 3월 12일 이북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당시 준전시상태 조치는 이북에서 수차례 밝혀온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하겠다"는 이북의 일관한 군사적 대응방침을 그대로 구현한 것으로 이러한 군사적 조치는 이후 북미의 정치외교대결을 이북의 승리로 귀결시키는데 기본 담보가 되었다.
  

5) 핵태세 비밀 검토보고서
미국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여기는 일곱 국가들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검토한 보고서
해당국가는 이북, 중국, 러시아,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이다.

미국의 핵무기 정책이 그 동안은 ‘핵무기 보유를 통한 전쟁억제력강화’였다면  핵태세 검토 보고서는 부시 정부의 핵정책이 “실질사용” 정책으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밀 보고서이다.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은 미국이 핵기득권을 유지하면서 핵무기 미 보유국에 대한 핵공격 및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공언을 깨는 행위로 세계적 차원에서 지탄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대상국 중에는 이북도 포함되어 있어 이북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바 있다.

당시 이북에서는 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우리 행성과 인류를 핵 참화에 몰아넣기 위한 위험천만한 핵전쟁 준비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하면서 “부시 행정부는 핵무기의 전쟁억지력을 내세웠던 이전 행정부와는 달리 핵무기 사용을 현실적 정책으로 전환시켰다”며 “우리(북)의 자위적 국방력 강화 노력이 얼마나 정당했는가를 다시금 실증해준다”고 덧붙였다.

이 핵태세 보고서 이후 미국은 전술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지난해 이북의 지하 시설물 공격을 염두에 둔 지하공격용 핵벙커버스터 실험에 성공한 했다고 발표한바 있다.
부시 정부의 미사일방어체계와 그 호전성을 보여주는 극명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1(박세길/돌베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2(박세길/돌베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박세길/돌베개)
침략의 역사 항전의 역사(김희일/기획출판 한)
인터넷 <통일뉴스> http://www.tongilnews.com/index.asp
각종 인터넷 포탈싸이트 자료모음 및 기타자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