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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법은 우리한테 철천지원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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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주민보 작성일04-12-07 17:12 조회1,5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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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법은 우리한테 철천지원수야”

<국보법 피해 5>인혁당으로 남편잃고 가슴에 한이 박힌 백발의 미망인들

박준영 기자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가 17대 국회를 뜨겁게 하고 있다. 56년간 건재하며 수많은 간첩과 인권유린을 양산해 왔던 국가보안법.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을 두고 찬반양론이 팽팽하며,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인권유린은 더 이상 없다며 국가보안법의 인권유린을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평범한 국민들과는 상관없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국민생활 깊숙이 칼을 꽂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그 피해당사자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30년 전 그러니까 74년 4월20일쯤에 갑자기 남편이 잡혀갔어요.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한번도 남편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생사람을 잡아다가 면회도 한 번 안시켜주고…. 남편한테 죽이라도, 미음이라도 한 번 해주고 죽었으면 한이나 덜한텐데. 우리는 여기에 한이 콱 박혔어요.”

74년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중정)에 남편을 빼앗긴 여덟명의 부인들은 75년 4월9일 남편들의 형이 확정될 때까지 1년여간 얼굴도, 면회도, 변변한 연락도 취할 수가 없었다.

법정도 가족 중 단 한명만이 들어갈 수 있었으며 들어가서도 남편 얼굴 보겠다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수갑찬 손을 뒤로 결박당한 채 칼검을 찬 헌병들의 감시하에 있는 남편들의 뒷모습이 연행 후 첫 번째 재회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는….” 그러나 모두가 잠든 새벽 남편들은 몰래 죽임을 당했다. 시신이라도 보내달라며 절규하는 그들에게 박정희 정권은 시신탈취로 답했다. 그렇게 남편과의 두 번째 재회는 뼛가루였다.

송산진 선생의 부인 김진생(76, 2남1녀) 여사, 도예종 선생의 부인 신동숙(75, 2남3녀) 여사, 하재완 선생의 부인 이영교(70, 2남3녀) 여사. 30년 세월이 한이 되어 가슴에 콱 박힌 세분은 백발의 노구를 이끌고 지금도 서울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서울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당신들의 한많은 30년을 보상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직 진실이 세상의 빛을 보기를 원할 뿐이다.

집안의 기둥이 어느날 갑자기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후 남은 가족들의 30년 세월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솔직히 기자들을 꼭 그런 것을 물어봐요. 말하고 싶지 않아요. 상상이 안되나? 어땠을지. 동네사람들 앞에서 애 키우면서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 이사는 얼마나 많이 다녀야 했는지. 그리고 아버지가 간첩으로 몰려 죽은 자식들이 동네에서, 학교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뻔히 알면서 자꾸 물어보니 정말 괴로워요.”

도예종 선생은 삼화토론 회장을 맡고 있었으며 하재완 선생은 양조장을, 송상진 선생은 양봉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부유하지는 않을지라도 넉넉한 생활이었으리라는 것이 짐작된다. 집안일하고 자식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다가 남편을 벼락처럼 잃고 그 많은 자식들은 혼자 키워야 했을 여사들의 30년 세월을 묻는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가.

중간중간 터져나오는 그분들의 30년 세월의 한 조각들, 그것만으로도 눈물과 한으로 피멍이 든 그분들의 세월을 짐작케 한다.

이 집에는 누구, 저 집에는 누구 하는 식으로 세 사람씩 경찰들이 상주를 해 일거수일투족을 미행하고, 나이가 어린 자식들은 소풍가서도 나무 뒤에 숨어 혼자 도시락을 까먹어야 했으며, 머리가 좀 굵은 고등학생들은 친구들의 놀림을 참지 못해 싸움질로 치료비 물어준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남편을 잃고 우리들이라도 서로 위로하며 살자는 뜻에서 한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자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여자들을 데려가서는 고문하고 얼마나 악질을 했는지….” 내내 눈물을 흘리던 김진생 여사는 그날들이 떠오르는 듯 말을 더는 잇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편의 구명을 위해 뛰어다니던 그들을 12월 추운 저녁 슬리퍼채로 잡아간 중정은 “남편들이 공산주의를 해서 나라에 누를 끼쳐 미안하다”는 글을 남기라고 했다.

“한이불 덮고 자는 남편이 그런 냄새가 안나는데 어떻게 공산주의자라고 할 수 있나 싶어서 남편을 면회시켜주라, 내 남편이 ‘미안하다. 당신 몰래 공산주의 행위를 했다’고 시인을 하면 써놓겠다고 했지. 그렇게 이틀을 버텼어.”

그 와중에 고문이 없었을까. 생사람도 간첩으로 만드는 중정인데…. 저들의 고문은 육체와 정신을 오가갔으며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들의 요구대로 진술서를 쓰고 이것이 남편에게 해가 될까 중정의 고문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라는 양심선언을 사제단들에게 맡겨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더욱 애처로운 일은 한 가족은 남편 볼 면목이 없어 쥐약을 먹고 일가족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가까스로 이를 말린 친정어머니가 그때의 충격으로 1개월 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인혁당 사형수 8인의 진실-전병용(전교도관)>

“남편들 묘를 쓰고 묘비명으로 ‘민주인사’라고 하면 안되니까 ‘민사, 여기 살아있다’라고 했거든. 근데 그 다음날로 그걸 빼갔더라고. 20주년이 되는 해에야 겨우 묘비명을 다시 세울 수 있었어요.”

이영교 여사의 말 속에는 감춰진 진실과 왜곡된 현실에 대한 한이 서려있다.
눈물과 한의 30년을 살아온 여사들은 한나라당과 박근혜 총재를 향해 여과없는 독설을 내뿜었다.

“박정희 딸이 저러고 있으니 우리가 얼마나…. 친일파 해서 독립운동한 사람 죽인 놈이 18년간 대통령을 해먹고 그 딸이 또 저러고 있으니 이 나라가 얼마나 썩어빠졌냐고.”

“근혜, 저 것은 지 애비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저럴 수 없어. 하루가 멀다 하고 조작사건 만들어 사람 죽이던 민족반역자 아니요. 그런 민족반역자의 딸을 총재로 떠받들고 있는 우리 연배의 한나라당 의원들 보면 정말…. 이런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정말이지 거지발싸개만도 못해요.”

“박근혜가 무슨 자격이 있냐고. 우리를 바보로 알고 끽소리도 못하고 있는지 알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단 말이야. 지들이 쓰레기당인지. 양심이 있으면 스스로 물러나라고 하이소. 지 애비 행적을 알면 국민앞에 서서 지가 어찌 감히…. 민족을 학살한 사람의 딸이 어디 감히 총재 자리를 맡노.”

아무리 참으려 해도 참을 수가 없어 한나라당이나 박근혜 총재를 향해서는 도무지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이해해 달라는 여사들은 “억울한 죽음만도 피가 거꾸로 솟는데 30년동안 우리는 죄인처럼 살아야 했어. 그 세월이 지나 이제야 겨우 국가보안법이 철폐될 것 같아 희망이 보이는데 박근혜 저것이 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설치고 있잖아요. 지가 어떻게, 무슨 낯짝으로…”라며 분개와 흥분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 우리 남편도 자기들처럼(한나라당) 민주주의와 조국통일 같은 거 생각안하고 박정희한테 좋다좋다 했으면 더 편안하고 더 잘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우리 남편과 내 자신은 삶을 바르고 뜻있게 살았다 싶어 지금도 살고 있는 겁니다. 아니면 벌써 죽었지요”라고 전하는 신동숙 여사는 도둑놈들은 잘 살고 바르게 산 사람들은 고생하는 이 현실이 아직도 지속되는 것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자기 하나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희생된’ 남편은 아직도 한으로 가슴속에 박혀 있는데 남편을 죽인 자의 딸은 버젓이 야당의 총재를 하고 있으니 그 현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있겠나.

그래서 이제는 백발의 노구가 되었지만 여사들은 감춰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현장에서 뛰고 있다. 국회 앞에 마련된 과거사진상규명을 위한 천막농성에도 함께 하고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투쟁에도 빠지지 않는다.

300인이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결의한 어제(6일)도 현장에서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쳤다. 여사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는 데는 복잡한 이유가 없다. 반인권, 반민주, 반통일 악법의 근거를 하나하나 조목조목 들 필요가 없다. 오로지 30년 세월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30년 세월이 말해주는 보안법 철폐의 이유다.
“보안법은 우리한테 철천지원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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