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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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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영전 작성일04-08-24 10:08 조회2,76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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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지구상에 마지막 분단국가인 우리 땅에 근간 미국은 많은 최신형전투기를 배치하고 신형무기로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다. 그들은 주한미군의 공백에 따른 합동훈련이라고 하나 이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대선에 전략적일수도 있다고 하지만 어찌 보면 막무가내가 아닌가?

이라크 전쟁이 2년을 훌쩍 넘기면서 제2의 베트남처럼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잘못된 침략전쟁은 평화를 거부한 반역의 역사다. 나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직접경험하고 보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알았었다. 이제 우면산 자락을 산책하면서 다시 한번 내가 직접보고 느낀 가슴 아픈 상흔들을 기억하면서 우리에게는 평화만이 살길이라고 여기면서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꽃샘추위에 잔설이 내려도 버들가지에 움이 트고 개나리 진달래꽃이 핀다. 완연한 봄이다. 이어 철쭉이 피고 라일락향기가 사라지기전에 모란이 화들짝 피면 여름이다. 아카시아 꽃향기에 이어 순박하고 하얀 찔레꽃 향기가 그윽하다. 이제 한여름이다. 매미들이 우렁찬 합창을 들으며 나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우면산을 오르고 있다.

산 중턱에 이르니 애벌레가 나뭇가지에 늘어진 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지나치면 벌레가 죽을 것만 같아 나뭇가지에 올려주고 몇 발자국을 옮기고 있을 때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저편 골짜기에서 들리는 총소리였다. 평화롭게 날던 산세들이 날개를 접고 노래하던 매미들도 소리를 멈춘다. 총성은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오랜 기억을 떠 올리게 했다.

내가 열 살 때였다. 분단은 민족의 아픔이었다. 6.25 전쟁 전후에 내 눈으로 여러 차례 억울한 주검을 보았다. 전쟁이 일어나기 일년 전에 분단 아닌 통일을 원한다며 군청에서 근무했던 22살의 맏형이 i기는 신세가 되었다. 얼마 후에 붙잡혀서 모진고문을 당하면서 끝내 조직을 불지 않는다고 재판도 없이 총살당하고 말았다. 어디 형뿐인가? 당숙이 그랬고 전쟁 전 후에는 마을 뒷산에서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갔다. 인공때 반동으로 몰릴까봐 살기위해서 부역을 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었다.

무등산이 멀리보이고 태봉산이 바로 보이는 평화로운 마을이 내 고향 효골이다. 밤 낯을 가리지 않고 동네 개들이 앙칼지게 짖어대면 그때는 부역자들을 잡아갔다. 순진하고 선량한 농민과 머슴이었던 사람들이 좌익으로 가장한 사복경찰에 쫓기다가 붙들렸고 마을 뒷산에서 총성이 울리면 어김없이 죽어간다. 그렇게 죽어간 양민들의 가족은 빨갱이라고 쉬쉬하고 숨죽이면서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전방보다 후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탕작전은 장성 산골에서도 수백 명이 집단으로 학살된 현장에 나도 당숙모를 따라가 목격했었다. 시신이라도 찾으려는 가족들의 통곡에 함께 울었다. 억울한 죽음들을 휴전 때까지 계속되었고 목도했기에 각인되어 잊을 수가 없다.

집안에서 여러 사람이 죽어갔지만 유일하게 목숨을 부지한 재종당숙이 검거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무기 징역형을 받았다. 인공 때 반동으로 몰려 죽을까봐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부역한 것뿐인데 무기징역이라니! 너무도 가혹한 형량이었다. 모범수였기에 감형되어 25년을 장기수로 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자주 면회를 갔었다. 장기수였지만 출소하면 오직 처자식과 단란한 가정생활을 꿈꾸며 수형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숙은 아들이 하나였는데 10년째 교도소에서 모범수로 단 하루 외출에서 생긴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이렇게 두 아들이 튼실하게 자라는 모습을 면회 때마다 보면서 가족과 가정에 애착을 갖고 옥살이를 다 마치고 만기출소를 하였다.

청년에서 환갑이 넘은 초로의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나는 그동안 당숙모가 수십 년간 눈물겨운 옥바라지를 보면서 자주 찾아가 위로해 드렸다. 당숙이 출소해서 잉꼬부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유와 평화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았다. 그런데 십여 년을 사시다가 감옥에서 얻은 지병이 재발되어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당숙모도 몇 년 후 운명하였다. 두 아들은 아버지와 화목한 가정생활을 맛보면서 오래도록 함께 살고 싶었는데 너무도 빨리 양친을 잃고 말았다. 분단 때문에 또 한 가족이 슬픔만을 안고 살아야 했다.

나는 친인척들과 주위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있기에 4년 전부터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에 유족이며 회원으로 동참하였다. 지난 16대 말 국회에 법이 제출되었으나 수구냉전 세력들의 방해로 부결되었고 17대 국회에 법률제정 제1호로 상정되고 있기에 조속히 법률이 통과되기를 염원한다. 그 법이 통과되면 맏형과 당숙, 외삼촌과 이숙의 억울한 죽음에 진상규명과 명예를 회복 할 터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이면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이웃의 유족들에게도 명예를 되찾게 할 것이다. 이것이 민족화해의 길이고 공동체 정신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남기고 간 후유증이 55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못한 것은 그동안 위정자들이 정권 안보와 기득권에 안주해 과거사 청산은 뒷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 백년 만에 정권교체와 역사적 6.15선언이 있었기에 민족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가고는 있으나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의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해 4월에 제2의 베트남이라는 이라크에 서희. 제마부대를 파병하고 이제 추가파병을 하고 있다. 파병이 평화를 해치는 일이고 한국은 휴전협정으로 전쟁이 잠시 멈춘 분단국이기에 어느 나라보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갈망하고 추구해야 하는데, 미국의 침략전쟁에 파병을 한단 말인가? 미국과 동맹이며 국제신뢰를 쌓고 나아가 경제이득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결코 명분이 되지 못한다. 나는 40년 전, 전선 없는 베트남 전에서 전쟁과 평화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제 전쟁이 우리에게 남겨준 역사를 되돌아본다.

베트남은 프랑스와 오랜 전쟁 끝에 제네바 협정에 의해 17도선을 경계로 북은 월맹이라는 호치민 수반이 이끄는 정부가 서고, 월남은 고딘디엠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절대적인 후원정부가 들어섰다. 그런데 17도선 이남인 월남에 ‘베트남인민해방전선연맹’이라 칭한 베트콩 세력이 3분의 1을 장악하고 있었다. 미국은 동남아 패권주의 일환으로 개입하였다. 그러나 정글전과 지하루트 특수한 지형작전에 미국은 실패하면서 동맹국들을 끌어들였다. 여기에 한국은 6.25 참전 때 도와준 우방이고, 월남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심는다는 명분으로 참전하여 상시 주둔인원이 5만 명이나 되었다.

이라크 전쟁과 유사하게, 처음에는 붕타우에 1964.10월에 이동외교병원과 태권도 교관요원을 파견하고 이어서 평화의 사도라 칭한 비둘기부대를 이듬해 2월에 파병했다. 그리고 그해 9.10월에 맹호와 청룡의 전투부대가 파견되었다. 이어서 백마부대가 파견되어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이었다. 우리는 미국용병으로 공조하고 베트콩 소탕작전에 참여했는데 지형과 전술전략도 부족했으며 무리한 작전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아울러 월남 민간인들을 베트콩 첩자와 협조자라고 살상하기도 했다. 그 숫자는 우리 한국군 전사자와 거의 같은 숫자였다.

베트남은 오랜 전쟁으로 지쳤으며 특히 외세를 배척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그 어느 것도 아닌 민족끼리 못살더라도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한다고 했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 안에 월남 민간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처음에는 비둘기부대를 좋아했다. 전쟁이 아닌 평화의 비둘기라며 다이안 넘버원 이라 했다. 그런데 청룡과 맹호가 파병되어 작전 중에 양민들이 죽어가면서부터 다이안 넘버 텐이 되었다. 월남에서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한다면 그들은 해방이고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남루한 생각이 들어 자괴했다. 사실 내나라 분단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베트남 통일에 방해꾼으로 참전한 사실을 알고서부터였다.

미국은 많은 병사와 군비를 투입하고도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다. 베트남에는 국부적인 호치민과 전략가 지압장군이 있었고 특이한 지형조건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무모한 동남아 패권주의 침략전쟁이었다. 전쟁 후유증으로 많은 미군과 한국군이 죽고 부상당했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모두가 낙엽작전에 뿌린 고엽제로 인하여 본인은 물론 2.3세까지 후유증이 유전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한국군이 10년 동안 33만 명이 참전했고 6천명이 죽었고 2만 명이 중부상자고 8천명이 고엽제로 치료를 받고 있다. 2차대전히로시마에 투한된 원폭 피해자도 아직 고통 받고 있고 베트남 전쟁으로 언제까지 상처를 안고 살아갈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해부터 이라크 전쟁에 또다시 파병하고 있다.

세계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심지어는 미국도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라 자책하고 있는데 정부는 이제 전투병과 맞먹는 3천6백 명이나 되는 추가파병을 단행 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파병반대 촛불을 들고 항의하고 단식하며 장비와 병력을 실은 군함출항을 반대하고 있다. 한번 냉정히 생각해 보자. 16대 국회에서 파병을 결의했다지만 17대에서 재론할 여지가 충분하고 당연히 재검토했어야 했다. 우리 헌법에도 분명 침략전쟁을 반대하고 있다. 지난 베트남 전쟁 때도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하여 오점의 역사가 되었는데 또다시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야 말로 바보짓이고 치욕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 자명한 일이다.

그런대도 정부와 기득권 수구세력은 미국과 혈맹이요 국익을 위해 파병을 주장하고 있다. 침략전쟁으로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사람에게 아픔과 슬픔을 주고 있는데, 또한 한반도가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으로 전쟁 아닌 평화만을 주장해야 하는데, 침략전쟁을 추종해야 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 하다. 부시의 거짓평화를 믿고 따라가야 한단 말인가? 이제 한국도 깨어날 때가 되었다. 지구촌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공동체 정신을 살려야 한다. 지난 분단의 역사도 자주적 우리 역량과 노력이 부족했기에 외세가 기세를 펴고 있지 않는가?

지금 우리의 화두는 평화다.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이라크에서 대형 폭판 테러가 발생하여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 기독교회에도 폭탄이 계속되고 있다는 뉴스다. 부시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평화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인데도 자이툰 부대 환송식을 비밀리에 거행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전쟁의 수렁에 빠져 들어가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에 화가 치민다. 내년이면 분단 된지 환갑에 이른다. 60년이면 너무도 긴 세월이 아닌가? 반세기가 넘고 두세대가 되도록 외세극복을 못하고 있는데 언제에나 자주적인 나라가 될 것인가.

혹자는 이 모두가 미국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의 초강국 미국이 벌이는 침략전쟁의 파병요구에 노(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정부와 국민이란다. 평화에 반하는 전쟁에 참전했기에 후세대에 준엄한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40년 전에 패전한 베트남전쟁을 경험하고 아픔을 안고 있으면서 잘못된 역사의 길을 다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시는 다음 선거에 대통령이 되면 4년은 평화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쩍하면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외치곤 한다. 그런데 과연 그의 말은 진실일까? 그는 기독교 신자로써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성서에 손을 얻고 선서를 했다. 인류의 평화와 자유와 평등을 위해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시가 믿는 하느님은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러기에 침략전쟁을 마다않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자유를 억제하고 인류에 고통을 주고 있다. ‘하느님은 세상과 우리에게 평화를 주러왔다’ 우리는 이제 미국을 극복해야 한다.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정립하고 자주적이고 대등한 동맹관계이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한반도가 전쟁의 연습장처럼 생각하고 있는지 많은 신종무기와 전투기를 한국에 배치한다고 한다. 정부는 아무런 제지도 못하고 수수방관하는 듯 하다. 또다시 전쟁을 유발하는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전쟁불감증에 걸릴지도 모른다. 설마 한반도에 왠 전쟁을 하겠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부시의 재선작전을 위한 정책적 행동일수도 있다.

그러나 판단착오를 일으켜 전쟁이라도 불사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전쟁소용돌이에 평화를 잃고 말 것이다. 이제 휴전협정이 아닌 평화협정으로 가야하는 이때에 전쟁패권국인 미국이 오판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지상과제는 이 땅에 전쟁이 아닌 평화이기에 정부와 국민들은 이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반백 년이 넘도록 분단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정치권은 과거사 청산을 정쟁으로 몰아가고 역사바로세우기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만들어준 정권이고 국회인가? 지난날의 잘못된 역사바로잡기는 우리의 지상과제다. 정부와 국회는 국민의 뜻을 저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치권은 주도권 싸움으로 끝이 보이지 않고 한반도의 전운이 감돌지도 모르는 이런 때일수록 나는 전쟁 아닌 평화만이 살길이다 고 왜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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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수필가/ 서예초대작가/ {평화연대}의 공동대표.

[평화만들기 2004.8.22 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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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상호방위 조약 개폐를 (12): 상호 방위조약 관련 자료 모음-6
 
한국측의 강력한 요청에 의하여 마지 못해 안보조약을 체결하기로 한 미국측은 처음부터 NATO나 Rio형식 보다는 美 ‧ 比條約 혹은 ANZUS조약의 형태를 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미국측의 의도에 대하여 한국측은 다음과 같은 점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① 당사국 일방에 대한 무력공격을 타방(他方) 당사국은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여야 한다.
② 어느 당사국이라도 공격받은 측에 대하여 무력의 사용을 포함한 즉각적인 행동을 취함으로써 지원을 해야 한다.
③ 이러한 대응책은 국제연합의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 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한국의 案을 검토한 미국은 한국측 案中 제2조의 압록강, 두만강까지를 한국의 영토로 한다는 구절과 제5조의 간주조항 및 자동개입 조항을 문제삼아 더 이상의 협의를 뒤로 미룬 채 협의를 위해 來韓하였던 로버트슨을 귀국시키게 된다.

귀국한 로버트슨은 본국에서 상호방위조약안이 검토되고는 있으나 아무래도 美 ‧ 比條約이나 ANZUS, 美 ‧ 日條約의 형태가 될 것 같다는 서신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오게 되며, 국무장관 덜레스도 7월 24일 헌법상의 절차에 의한다고 하더라도 의회는 단지 전쟁선언만을 할 뿐이며 대통령의 권한에 의해 즉각적인 원조가 가능하다는 서신을 보내왔다.

이에 대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국무장관에게 보낸 7월 25일자 서신에서 이미 우리의 강토에 대규모의 敵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므로 6.25와 같은 또 다른 기습공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필리핀과 같은 조약은 반대한다. 한반도에서 분쟁이 다시 발생하게 될 경우 미 의회가 검토를 거쳐 모든 문제를 결정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수시간 내에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1953년 8월 5일부터 서울에서 개최된 상호방위 조약을 위한 회담에서 덜레스 미 국무장관은 미국측안의 수락을 강요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북한이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있는 한 한국은 통일되지 않고는 지탱해 나갈 수가 없다. 만약 미국이 한국의 통일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 한국을 도울 의사가 없다면 미국은 그러한 공약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국이 생존해 나갈 수 있다”라면서 즉각적이고도 자동적인 행동(immediate and automatic action)을 삽입하도록 요청했으나, 덜레스는 “미국 국민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를 결정할 책임은 미국에 있다. 미국은 이대통령이나 한국정부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결정한다거나 어떠한 행동을 취하겠다고 한 우리의 판단을 이대통령이나 한국정부가 번복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미국의 진실과 책임감을 받아들이라고 강력히 요구하였다.

결국 자동개입 조항 포함을 요구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항의와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최초에 의도했던 대로의 한 ‧ 미 상호방위 조약을 8월 8일 가서명하게 된다.
<정준호 『한 ‧ 미 상호방위 조약의 국제법적 비교분석』국방연구원의 정책연구 보고서 89-13(1990.3) 16~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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