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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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통 신 작성일04-09-06 17:09 조회2,5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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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통일의 지름길을 걷는 분들에게
사람들은 어떤 큰 변화가 생기면 흔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오늘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두고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변화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된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으나 나는 그것이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다음부터라고 생각한다.
아래에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발표 직후에 최초로 북부조국의 김정일국방위원장님과의 단독인터뷰를 진행한 재미교포 언론인 문명자 여사가 쓴 회견기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전세계가 지금 <김정일 쇼크>에 빠져 있다. 그런데 과연 누가 변한 것인가. 그가 이번에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 것일까. 그는 원래 그런 모습이었는데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변함으로 인해 그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아닌가. 분명한 것은 북의 지도자 김정일을 제대로 읽기 위한 연구가 새롭게 시작돼야 한다는 점이다.』(『월간 말』2000년 8월호)
문명자여사의 말대로 6.15공동선언 이후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한 세인들의 인식은 180도로 바뀌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내외의 매스콤이나 자칭 『전문가』 또는 『증인』들의 선전 때문에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발표이후 김정일국장위원장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실상 그대로 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 남한에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실상그대로 볼 수 있는 자료들이 극히 제한되여 있으며 있다 해도 국보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조건에서 마음 놓고 진지하게 연구할 수가 없고 외세와 그에 추종하는 자들의 인위적인 방해책동으로 인해 겨레의 가슴속에 오해와 불신, 대립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잠재해있다.
겨레의 가슴속에 잠재해 있는 이러한 오해와 불신, 갈등과 대립의 감정을 가시는 것은 통일을 앞당기는 하나의 지름길이다.
나는 오늘 우리 남한민중들이 북한을 바로 알고 또 북한을 영도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남한 민중들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모습을 그나마 정확하게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불과 3박4일 동안, 그것도 TV 화면을 통해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모습을 본 것뿐이다.
나는 90년대에 북한바로알기 운동이 벌어졌을 때부터 북한에 대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님에 대하여 여러 경로와 가능성을 이용하여 지금껏 꾸준히 연구하여 왔으며 적지 않은 사료들도 수집하였다.
오늘부터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내가 알고있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사료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저 한다. 이 사료들이 통일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을 바란다.
아래에 소개하는 글은 재일 평론가인 이광이 쓴 책 『김정일리더십』중에서 부제목 『군인김정일』이라는 글이다.
<나도 군인이요>
김정일은 항상 자신을 군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언제나 군인들속에 있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긴다. 김정일의 실력과 리더십은 그의 군사활동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김정일은 어째서 군인이 되었고 군사에 대한 특별한 애착과 헌신을 자신의 생활방식으로 삼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그가 벌여온 활동의 매 시기 조성된 역사적 환경과 관련된다.
김정일은 백두산에서 태어났으며 거기서 유년기를 지냈다. 북조선에서 백두산이라고 하면 김일성이 항일빨치산을 조직해서 맹렬한 조국광복전을 벌인 성지로 되어 있는 곳이다. 김정일은 세상에 알려진 위인이나 명장들처럼 번화한 도시나 아늑한 농촌에서가 아니라 천연수림에 둘러싸이고 눈보라 울부짓는 백두밀영의 귀틀집에서 고고성을 터치었다.
김정일의 부친 김일성은 세계에 명성 높은 항일빨치산 사령관이었고 모친 김정숙 역시 이름난 빨치산 지휘관이었다. 김정일은 백두의 두 영장의 품속에서 항일전의 총포성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가 태어나서부터 입은 옷은 항일빨치산 군복을 줄여서 만든 국방색 군복이었고 손에 쥐어진 것은 빨치산 대원들이 만들어준 나무권총 놀이깜이었다. 그리고 그의 귓전에 들려온 자장가는 아늑한 요람을 지켜주는 여인의 다정하고 조용한 노래가 아니라 빨치산 전가였다. 참으로 김정일에게 있어서 번쩍거리는 총대와 붉은 깃발이 그의 요람을 지켜준 전부였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군사와 혁명에 특별한 애착심을 품게 되었고 총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김정일은 혁명적 군인가정의 산아이고 그 믿음직한 계승자였다.
노동계급의 수령으로 일컬어지는 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은 군인이 아니라 학자였다. 그들은 학문으로 혁명의 진리를 밝혔고 학문적 진리로 혁명을 이끌었다. 마르크스는 한때 군에 복무한 경력을 가진 엥겔스를 『나의 국방부장』이라고 했지만 엥겔스는 결코 군인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마르크스에 대해서 『서제에서 그를 만났을 때 내 옆에 나타난 그는 불요불굴의 걸출한 사회주의 선동가가 아니라 학자였다.』고 회상했다. 그만큼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저명한 학자, 문필가였다는 것이 세인의 인식이다. 레닌 역시 소비에트 국가의 지도자로 되었을 때 이력서의 직업란에 자필로 『문필가』라고 썼다.
김정일은 항일전의 전장에서 군인기질을 타고 태어나 성장했고 군함을 타고 조국에 개선했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낼 때 조선에서는 해방된 조국을 지키기 위한 군대를 창건하는 일이 한창이었는데, 이 나날에 그는 늘 부모를 따라 군부대들을 찾군했다. 김정일은 6.25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늘 김일성이 있는 최고사령부 작전대 옆에서 전법을 익혀나갔다. 준엄한 전쟁의 시련과 가열처절한 대격전들은 어린 김정일을 군사적 안목과 지략을 겸비한 군사가로 성장케 했다.
김일성은 김정일이 11살 되던 해에 그 에게 권총을 선물로 주었다. 어째서 김일성은 전쟁이 한창 가열처절했던 전화의 그날, 김정일에게 권총을 선물로 주었겠는가. 여기에는 총대로 개척한 위업을 대를 이어 총대로 완성해야 한다는 김정일의 숭고한 뜻이 담겨져 있었다.
군인으로서의 김일성의 기질은 벌써 그가 10대의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본다.
1952년 여름의 어느 날, 인민군 포병사령관이 최고사령관 김일성의 부름을 받고 작전실에 들었을 때었다. 그때 김일성은 아직 10살의 어린 김정일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김일성은 작전대 위에 두 자루의 색연필을 따로 따로 놓으면서 김정일에게 물었다.
《이쪽 연필은 사람이고 이쪽 연필은 총이라고 한다면 너는 어느 것을 가지겠느냐?》
김정일은 심중한 표정으로 두 자루의 연필을 번갈아 쥐었다 놓았다 하며 생각했다. 포병사령관은 분명 김정일이 총을 가지려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정일의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저는 사람을 가지겠습니다》
《그건 왜?》
《싸움에서 사람이 제일이 아닙니까. 사람만 있으면 총이란 생길 수 있지만 사람이 없이 총만 있어가지고서는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총을 쏘는 것은 사람이고 병법을 만들어 내는 것도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이라고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까?》
이 한가지 사실을 통해서도 김정일의 특이하고 재능 있는 군인적 지능과 지략이 어려서부터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때로부터 수십년간 김정일은 군사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 역사의 나날에 김정일은 총대의 중요성과 위력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군인혁명가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 군대를 중시하고 군대와 함께 혁명을 해나가는 김정일의 특출한 리더십은 이렇게 형성되었다.
김정일이 정치가임에도 군인 직분에 역점을 두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선군정치를 기본정치방식으로 삼는 그의 독특한 영도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김정일은 북조선의 국방위원회 위원장이고 인민군 최고사령관이다. 군대를 최우선시하고 중시하는 북조선의 정치체제는 김정일을 최고수반으로 해서 굳게 다져졌다. 총대로 개척한 위업을 총대로 완성하려는 김정일의 의지대로 그가 영원히 군인, 최고사령관으로 활동해 나가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새형의 정치방식>
지금까지 인류역사에는 1만 4천 600여차례의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는데 역사의 흐름속에서 전쟁과 평화의 시간적 비율은 4 : 1로 된다. 이렇게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사는 전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후 반세기동안에만도 지구상에서는 160여차례의 무장충돌과 국지전이 벌어졌다. 이 기간 미국은 전쟁을 『합법적 정치도구』로 간주하면서 『가동적 국경론』과 『확대전략외교』를 추구하면서 세계적 범위에서 전쟁을 일삼으며 타국을 항식적으로 위협해왔다. 이것은 매개 나라들로 하여금 군사력 강화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1940년 4월 9일, 독일군은 덴마크를 불의에 공격했는데 그때 덴마크에는 이를 막을 힘이 없어서 4시간만에 항복했다. 또한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은 정권을 쥐기는 했으나 군대를 『비정치화』, 『중립화』했던 탓으로 피노체트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참으로 군대를 틀어쥐지 못하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이같은 피의 교훈은 북조선의 선군정치가 어떻게 되어 출현했는가를 알게 하는 하나의 사례로 된다.
선군정치는 김정일이 새롭게 내놓은 정치방식이다. 김정일이 창시하고 구현하고 있는 독특한 정치방식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김정일식 선군정치라고도 한다. 김정일의 정치적 성공과 세계를 놀래우는 리더십, 만인을 그러안는 카리스마, 이 모든 것은 선군정치에 바탕하고 있으며 또한 선군정치를 통해서 발휘되고 있다.
그러면 선군정치란 무엇인가. 선군정치란 군사를 선행시키고 군대의 역할을 높여 경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국사를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이다. 선군정치로 전당, 전군, 전민을 이끄는 김정일식 선군영도는 군사를 국사중의 제일국사로 간주하고 군사력 강화에 최우선적인 힘을 기울이며 군대를 나라의 기둥, 혁명의 기둥으로 삼고 군대에 의거해서 혁명을 전진시키는 독특한 영도방식이다.
세계가 알고 있는 정치방식으로서는 공화정치, 독재정치, 금융과두정치, 민주정치, 프롤레타리아정치 등이 있으며 계급위주로 보면 부르죠아 민주주의정치와 그에 대립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정치가 있다. 상례에 따르면 사회주의정치는 대체로 노동계급과 근로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프롤레타리아정치, 노동계급의 정치로 인정되어 왔다. 북조선의 정치도 그 사회정치체제로부터 프로롤타리아정치에 속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정치로 알려져 왔다. 그 내용인즉 민중을 정치의 주인으로 내세우고 사회의 모든 것을 민중을 위해 복무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정일이 새롭게 제시한 정치는 기성의 모든 관례를 뛰어넘는, 다시 말해서 그 어느 정치사에도 있어본 적이 없는 독특한 정치이다. 그것은 군대의 주도적 역할에 의해서 국가사업 전반을 발전시키는 선군정치이다. 김정일은 『선군정치는 나의 기본정치방식이며 혁명승리를 위한 만능의 보검』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군대라고 하면 나라를 방위하는 수단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래서 나라를 방위하기 위하여 일정한 수의 병력과 장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서는 군대를 혁명적 폭력, 정치를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간주하면서 군대를 강화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레닌은 자본가계급을 전복하기 위해서 폭동을 일으켜야 한다면서 폭동에 관한 전략과 전술을 제시했고 무장철폐는 제국주의가 있는 한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선군정치는 군대를 단지 나라를 방위하는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력 강화를 국사중의 제일국사로 여기는 정치이며 또한 일관하게 군사중시정책에 최우선적인 힘을 넣으면서 군대의 역할을 높여 정치, 경제, 문화, 사상과 도덕의 모든 분야에서 전진을 일으켜 나가는 정치이다.
선군정치방식이 창조됨으로써 사회를 이루는 계급들의 지위와 역할에서나 사회생활 전반을 발전시켜 나가는데서 일련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사회주의국가들에서 노동계급이 영도적 계급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그들에 의거하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북조선에서는 『선군후로』(先軍後勞)라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확립되게 되었다. 즉 군대의 영도적 역할, 혁명의 기둥으로서의 역할이 더 우선시되었다. 또한 지난 시기에는 노동계급이 가장 혁명적인 영도계급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사상과 정신, 문화를 따라 배우는 문제가 강조되었으나 선군정치에서는 군인들의 정신과 기풍, 군인문화가 더 중시되고 전국, 전민이 이를 따라 배울 문제가 강조된다.
이같은 선군정치는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군대이자 곧 당이고 국가이고 민중이라는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김정일은 군대를 사회적 집단과 분리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군대이자 곧 당이고 국가이고 민중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북조선과 같은 작은 나라가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들로부터 끊임없이 고립압살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조건에서 군대가 강해야 나라도 존재할 수 있고 당도 있을 수 있고 민중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제시한 하나의 철학적 근거이다.
선군정치는 또한 김정일식 총관(銃觀), 다시 말해서 총에 대한 견해와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이 자기의 생존권을 영위하고 보위하기 위한 요구로부터 총을 만들어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총에 대한 철학적 지론이란 없었다. 김정일의 총관이란 『총은 혁명의 동행자』이며, 『총은 주인을 알아보며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총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총탄을 발사하는 무기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같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제기하지 못했던 총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면 이같은 총관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 그것은 총대를 사랑하고 총대와 함께 혁명을 해나가려는 김정일의 혁명관과 관련되어 있다. 김정일이 말하는 총이란 곧 그가 이끄는 인민군대이다. 그리고 총이 혁명의 영원한 동행자라고 하는 것은 인민군대가 자기의 주인인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하며 영원히 변질을 모른다는 뜻이다.
실지로 오늘 북조선의 군대는 최고사령관 김정일의 슬하에서 자랐고 오늘도 그의 영도밑에 혁명을 보위하는 강유력한 무기로 되어 있다. 또한 선군정치가 실시되는 오늘의 북조선에서 인민군대는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위력한 무기로 사회주의건설을 떠미는 강력한 부대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본분을 수행하고 있다.
북조선이 그 어떤 강적도 범접 못하고 나라의 자주권을 튼튼히 지키는 세계적인 강군을 가지게 된 것은 김정일의 선군정치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선군정치에 대해서 『군국주의를 고취』하고 『전쟁준비만을 중시』하는 정치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선군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이며 새 사회건설이다. 북조선과 같이 작은 나라가 그처럼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자기를 지키고 강성대국 건설에 진입할 수 있은 비결은 선군정치를 실시한데 있다. 나라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경제건설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선군정치의 취지이고 김정일의 지론이다.
선군정치는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
1994년에 김일성이 서거 한 후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들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 북조선에 대한 정치군사적 공갈과 위협을 노골화했고 경제적 봉쇄환을 좁히기 시작했다. 때마침 이 당시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로 북조선에 대한 국제적 지지기반도 사실상 없어지고 경제적인 교류도 막히게 되었다. 게다가 혹심한 자연재해까지 들이닥쳐 북조선은 말 그대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위기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이때 북조선의 붕괴가 이미 시간문제라고 하면서 쾌재를 부렸다.
이 엄혹한 시련은 사회주의 북조선을 지켜내기 위한 사생결단의 비상대책을 요구했다. 바로 이 역사적 시기에 『고난의 행군』을 돌파할 결연의 의지를 지닌 김정일이 국난타개의 묘안으로 제시한 것이 선군정치였다.
김정일은 1995년 정월 초하루 새벽에 김일성의 영안이 안치되어 있는 곳에서 경의를 표한 다음 새해 첫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인민군대의 고사포 구분대였다. 다박솔이 무성한 곳에 있는 포병 구분대라고 해서 『다박솔초소』라고 불리우는 이 구분대를 김정일이 시찰한 것이 바로 선군영도의 시작이었으며 선군정치의 시작이었다. 그후 김정일은 연이어 인민군 분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을 진행했다.
선군정치로 하여 북조선은 그 어떤 침략자도 쳐부실 수 있는 강력한 국방력을 가지게 되었다. 강력한 군사력의 마련, 만단의 전투태세의 준비, 그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조선에 감히 손을 댈 수 없게 한 요인으로 되었다.
김정일은 선군영도의 나날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선군정치를 하는 한 우리 나라는 끄떡 없다고 세상에 대고 선포했다.
<장군 김정일이 이끄는 조선인민군>
장군 김정일이 이끄는 북조선의 인민군대가 막강하다는 것은 세계가 공인하는 바이다.
1890년에 차리 러시아 재정성에서 발행한 책자에는 『조선 군대의 특징은 훌륭한 지휘관을 만나면 무서운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씌어졌다. 또한 6.25전쟁에 참군해서 인민군대의 전투생활을 목격했던 오스트라리아의 기자 버쳇트는 『조선인민군이 그처럼 강대한 적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은 것은 첫째로 위대한 영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때부터 50여년, 100여년이 지난 오늘의 인민군대는 세계의 어느 군대와도 비길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무적필승의 군대로 성장했다.
북조선은 1950년대에 1천 120여일간의 전쟁에서 미국을 비롯한 16개국 군대와 싸워 이긴 때로부터 일관해서 군대를 강화하는데 주력해왔으며 김정일 시대에 와서 현대적 장비를 갖춘 강군이 되었다.
1984년부터 1995년 사이의 10여년동안에만도 미국과 한국군에 의한 도발 건수는 43만 600건이나 되었는데 이것은 시간당 평균 5차례의 군사적 도발이 있은 셈이 된다. 그러나 북조선은 언제나 이를 단호히 물리쳤다.
1993년에 미국이 북조선『핵의혹』을 떠들고 이를 구실로 대북 정치, 군사적 압력을 가해나서자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정세가 조성되었다. 이때 최고사령관 김정일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자 불과 10일 어간에 북조선 청년들이 군 입대를 청원해 나섰는데 그 수는 현역사단들에 150개 사단을 새로 편입시킬 수 있는 역량이었다. 그러니 북조선 인민군대를 『100만군대』니 뭐니 추측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북조선 인구가 2천만이라고 볼 때 노인과 어린이, 가정 주부들을 제외해서도 1천여만이 유사시에 총을 잡을 수 있는 상태에 있다고도 한다.
북조선 인민군대의 막강함은 무엇보다도 세계의 그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사상의 강군, 신념의 강군이라는데 있다.
인민군대는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철저히 지키며 자기의 영도자를 목숨 바쳐 지키려는 사상적 준비에 있어서 완벽하다. 그들은 자기 위업의 정당성을 잘 알고 있으며 최고사령관의 두리에 일심단결해서 나라를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신심에 차 넘쳐 있다. 인민군대에서 흔히 『결사옹위』, 『총폭탄』, 『자폭정신』, 『육탄영웅』이라는 구호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은 어느 병사이건 일단 유사시에는 죽음으로 적에 대응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김정일은 강군의 첫째가는 기질은 신념의 강군으로 되는데 있다고 하면서 병사들로부터 군종, 병종, 사령관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결사대』로 준비시켰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군대들에서 볼 수 있는 동성애자, 마약중독자, 군 기피의식에 빠진 군인은 인민군대안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김철진, 정광선을 비롯한 나어린 인민군 병사들이 뜻하지 않는 사고로 한국군에 억류된 적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군의 귀순공작을 단호히 물리치고 『아버지 김정일 최고사령관동지의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연히 선언하고 끝내 귀환했다. 이 한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인민군대의 정신상태를 알 수 있다.
클레우제비츠는 『군대의 정신적 능력은 병기의 발달에 좌우』되며, 『승리의 최후 결전이 신병기에 의해 이루어지』며, 『새로운 군사기술이 새로운 군사 이데올로기를 낳』는다고 했다. 그의 이론은 한마디로 말해서 전쟁수행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새로운 군사기술이나 병기에 있다는 것인데 북조선의 인민군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사상적 우월성, 신념의 강인함이 군대의 위력을 규정하는 근본요인이라는 김정일의 군강화전략이 관철된 북조선 인민군대의 사상정신상태는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이다.
인민군대의 위력은 다음으로 그 장비의 주체화, 현대화 수준에서 세계 그 어느 나라 군대도 따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인민군대는 수십년간에 걸쳐 진행된 무장장비의 주체화, 현대화 전략에 따라 최첨단수준에 이른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사정거리가 대륙을 넘나들 수 있는 다단계 미사일로부터 자주포에 이르기까지 그 위력은 대단하다. 공개된 자료에 의해도 인민군대는 휴전선 전역에 자체로 개발한 자주포만 해도 1만 3천문을 배비하고 있는데 그 것이 포성을 터뜨리면 서울은 물론 주한미군 기지가 일시에 초토화된다.
북조선의 무기들은 다 자체로 개발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위력과 능력에 대해서 알 수 없다. 그러나 북조선이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미사일기술을 갖고 있으며 그를 세계 각국에 대량수출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그 타격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은 과히 짐작할만하다. 인공위성 『광명성1호』의 발사는 그에 대한 뚜렷한 입증으로 된다.
북조선 인민군대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전후에만도 여러 차례 대북공격을 시도했다가 그때마다 포기하고 말았다. 1993년에 『핵사찰』문제를 걸고 미국이 호전성을 보였을 때 프랑스 국방성이 미국의 군사적 행동은 『매우 위험한 것』이며 미국은 인민군대 앞에서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인민군대가 세계적인 강군이라는 근거는 또한 그 전략전술의 독특성에 있다.
북조선 인민군대의 병법을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사시에 인민군대가 어떤 병기, 어떤 전략, 어떤 반공격을 보이는지 미 국방성 전략가들이나 중앙정보국도 알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민군대의 공격과 방어 전략 및 방법은 안개속에 쌓인 상황이다.
인민군대는 기성의 전법이나 전술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전법과 전술을 가지고 있다. 인민군대의 이같이 독특한 전쟁수행 전략과 방법은 천재적 예지와 아이디어를 소유한 김정일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다. 일제 100만군을 타승한 김일성 항일빨치산의 신출귀몰한 전법이 김정일에 의해서 더욱 창조적으로 승계되고 심화발전됨으로써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따를 수 없는 신비스러울 정도의 전쟁전략과 수법이 준비되고 있다.
북조선에서는 9.11테러사건 이후에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전쟁의 맛을 모르는 아이들 장난이라고 매우 우습게 여겼다고 한다. 그런즉 북조선이 2003년 7월 1일부 조선인민군 판문전대표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 만일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아직 세계가 알지 못하는 가장 치열하고 혹독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미국에 대고 내린 경고를 절대로 빈 말로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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