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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특한 절, 《국평사》의 윤벽암 애국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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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11-18 07:03 조회14,01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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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소재한 사찰, 《국평사》는 남과 북을 하나로 잇는 애국적 절로 이름나 있다. 이 사찰의 윤벽암 주지스님을 만났다. 《조선대학교》창립60주년기념행사에 초청받은 해외동포들은 일본에 방분기간중 일본사회에서 독특한 절로 알려진《국평사》를 방문하여 윤벽암 스님의 안내를 받고 이 사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국평사》측에서 마련한 저녁식사를 나누면서 친교시간을 가졌다. 이 사찰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본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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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특한 절, 《국평사》의 윤벽암 애국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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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꾜=민족통신 편집실] 《조선대학교》창립60주년기념행사에 초청받은 해외동포들은 일본에 방분기간중 일본사회에서 독특한 절로 알려진《국평사》를 방문하여 윤벽암 스님의 안내를 받고 이 사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국평사》측에서 마련한 저녁식사를 나누면서 친교시간도 가졌다

 

윤벽암 주지스님은 이날 일본 사람들은 종교를 믿든 안믿든 죽으면 모두 한곳으로 모인다. 그곳이 바로 사찰이다. 다시말하면 죽으면 누구나 절간으로 가서 등록을 하게 된다. 결혼은 교회에서 할지라도 죽으면 반드시 불교를 거쳐 무덤으로 가게되는 것이 일본의 문화로 되어 있다.”라고 설명한다.  

 

지난 시기에는 매장을 했으나 이제는 법적으로 화장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국평사》의 윤벽암 주지스님도 이 사찰에는 250여 세대의 가족묘도 있고 1천여명의 개인들을 화장한 납골당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가족도  연고자도 없는 화장한 조선인들의 잿가루도 방한칸에 무수하게 보관되어 있어 조국이 통일이 되면 코리아반도 땅에 가져가야 할 생각이라고 그는 말한다.

 

벽암스님은 또  산자들에게는 재일동포들의 모임마당이자, 죽은자들에게는 좋은 땅에 묻혀야 할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하면서 국평사는 산자나 죽은자 모두에게 사랑방이자 고향과도 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국평사는 문자 그대로 나라의 평화를 기원하는 절인데 이곳은 특히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사찰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절은 일본 도쿄도 히가시무라야마시(東村山市) 하기야마조(萩山町)에 있는데 그 규모는 888평이나 된다. 이 주변에는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의 최고봉인 조선대학교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있다.이 절은 377년 전에 세워진 절로서 일본 사원이었다. 도꾸가와 막부(德川幕府) 8대 장군인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 1684 ~ 1751)의 청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절의 지붕에는 도꾸가와 가문임을 뜻하는 기와 문양이 보인다.

 

벽암스님에 따르면 이 절은 은퇴한 스님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수양하던 곳이었는데 이 절을 이어받을 스님이 일본에 없었다. 고승(高僧)에 해당하는 일본 스님이 없었다. 그래서 이때 이 절을 이어 받은 스님이 있었는데 그 분이 다름아닌 일본에 온 한국의 유종묵 스님이다.

 

유종묵 스님은 이 절에다 조선인 유골을 한 자리에 모았다. 통일될 때까지 유골을 모으고자 했다. 아주 먼 홋카이도와 오키나와까지 가서 조선인 유골을 다 모아 이 절의 지하로 옮겼다. 그렇게 해서 스님은 절 이름을 국평사(國平寺)로 지었고, 이때 제일 먼저 지은 게 유골을 모신 납골당이었다.

 

스님은 이곳 국평사에다 1965년에 3층으로 된 납골당을 지었는데 그 모양은 불국사 다보탑 모양으로 지었다. 지금 이 납골당 안에는 모형 다보탑이 있다. 원래 이 모형 다보탑은 북조선이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의 민족학교인 조선대학교에 보내준 것이다. 그런데 남한이 조선대에다 다보탑과 석가탑의 모형을 보내주자 조선대에 있던 이 모형 다보탑이 국평사로 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국평사는 크게 보아 법당과 납골당으로 되어있다. 법당은 원래 지하에 납골당이 있었는데 다보탑 모양의 납골당이 세워지자 모두 이리로 옮겨졌다. 법당 지하에는 지금 석묘가 있다. 놀라운 건 이 법당과 납골당이 마치 산자와 죽은자가 서로 교류하듯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법당에서 남과 북이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으로 만난다. 남측에서는 동양불전연구회가 편찬한 축소판 <고려대장경>(1972)을 보내왔다. 이 책은 합천 해인사의 ‘고려대장경’을 한 자 한 자 적어서 축소, 인쇄해서 만든 것이다. 모두 1천부를 인쇄했다고 하는데, 유종묵 스님에게 78번째를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북측이 보내온 것은 <팔만대장경해제> 15(사회과학출판사, 1992. 평양)이다.

 

남과 북이 제3국인 일본의 한 사찰에서 고려시대 <고려대장경> <팔만대장경>으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윤벽암 스님은 국평사에 납골당이 생긴 것은 1965년이다. 국평사에 있는 유골은 모두 1500기다. 그중 일본에 유가족이 있어 찾아오는 게 1,200기이고, 300기는 가족, 친지, 소식도 없는 이른바 임자 없는 유골이다.”고 밝히면서 법당 건물과 다보탑 형태의 유골 건물, 두 군데에는 모두 유골이 있다. 법당 지하에는 독립된 유골이 있다.”라고 설명하고 국평사를 얘기하면서 유종묵(柳宗默, 1893.1.12-1983) 스님을 빼 놓을 수 없는 인물로 꼽는다.  

 

유종묵 스님은 일제시대 때인 40대에 조선에서 일본 교토대학에 철학공부를 하러 왔다. 일본에서 해방을 맞았고 1945년에는 교토에 있는 만수사에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이후 총련과 민단 간부들이 유종묵 스님께 공부를 배웠다. 그러다가1965년 교토에서 도쿄로 와서 이곳 국평사 주지가 되었다. 일본에는 불교가18개파가 있는데 국평사는 어떤 종파에도 속해있지 않다.

 

유종묵 스님의 지론은 “통일되면 국평사는 없앤다”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유골들을 갖고 조국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은 국평사의 후계자 생각을 안했고 또 직접 지은 책도 없다. 유종묵 스님을 중심으로 사제간의 계보를 설명할 수 있다. 유종묵 스님의 스승은 한암 스님이다. 그리고 유종묵 스님의 바로 아래 제자는 윤일산(尹一山) 스님이다. 윤일산 스님은 지금 국평사 주지인 윤벽암 스님의 부친이라고 한다. 순서로 보면  한암 스님-유종묵 스님-윤일산 스님-윤벽암 스님, 이렇게 계승되어 온 것이다.

 

여기에서 한암(漢岩) 스님(1876-1951)은 한국 조계종의 초대 종정으로 1925년 오대산에 들어온 뒤 입적할 1951년까지 27년 동안 상원사에 있으면서 오대산문을 나서지 않아 수행자의 귀감이 되고 있다. 한암 스님은 참선만 했다. 일본 총독부가 금으로 만든 가사를 한암 스님에게 드렸는데 그 가사를 안 입었다고 한다.

 

한암 스님에게는 특별한 제자가 셋이 있었다고 한다. 보문(普門), 난암(煖岩), 탄허(呑虛) 스님인데 여기서 난암(煖岩)이 유종묵 스님이다. 세 제자 중 유종묵 스님이 일본에 온 것이다. 그리하여 국평사를 매개로 하여 지금의 윤벽암 스님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1114일 늦은 오후 이 절을 찾은 해외동포들은 국평사(國平寺)의 분위기는 사찰이고, 무덤이고, 산자들과 죽은자들의 만남의 공간이지만 이 사찰에 비치된 도서들, 그리고 그 정신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봉사하는 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절을 이어온 스님들은 물론 지금의 윤벽암 주지스님도 훌륭한 애국자들 중에 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윤벽암 스님은 이외에도 6.15일본지역위원회를 비롯하여 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추진위원사업 및 남북화해 협력사업 등을 정열적으로 지원하며 협력해 왔다. 일본 도쿄 소재 국평사를 비롯, 일본 전역에 퍼져있는 100만구에 달하는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하는 사업도 추진했다.

 

종교신문 2016715일장 따르면,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산하 일제강제징용희생자유해봉환추진위원회(사무총장 윤승길·이하 유해봉환추진위)는 지난 4150여구의 유해를 모신 일본 국평사에서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윤승길 사무총장은 “그동안 아베 총리의 사죄와 조속한 유해봉환을 촉구해왔고, 10년째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위령제를 지내왔다”며 “오랜 시간 유해봉환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이제야 조금이나마 후손된 도리를 할 수 있는 단초가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분들이 원하는 것은 조국의 평화통일일 것으로 생각되기에 그 뜻이 잘 반영될 수 있는 곳에 봉환되도록 해야 한다”며 “양측은 각기 유해봉환을 위한 세부적인 절차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소홀함이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 소재한《국평사》는 해외동포사회에 있는 애국적 절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윤벽암 스님의 정열적인 활동은 해외통일운동사에서도 귀중한 재보로 알려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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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유학생님의 댓글

유학생 작성일

벽암스님 존경합니다.

남북화해 만세!

조국통일 만세!

아구동님의 댓글

아구동 작성일

일본에 이런 좋은 절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더욱이 애국자들스님들이 몇대를 이어 왔다는 것이 새삼스럽습니다.

억압받고 차별당하는 우리동포들에게 큰 위안과 큰 희망을 주리라 믿습니다.

상처받은 우리민족에게 안식처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벽암스님  감사합니다.  취재하신 노선생님께도 감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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