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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8신]:비전향장기수 선생들 남측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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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08-31 12:15 조회8,444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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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일행은 "70번째 방북취재기간에는 전북 고창이 고향인 고광인 선생(81)댁을 찿았다그의 부인 승정희여사(41)부엌에서 열심히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었다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전향장기수 함세환 선생(84,황해남도 옹진이 고향) 이들의 생활위원장으로 활약해  비전향장기수김동기 선생이 자리를 함께했다."고 밝히면서 이날 취재담을 정리해 보냈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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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광인 선생(81)과 그의 부인 승정희 여사(41)는 행복한 부부삶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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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광인 선생(81)과 그의 부인 승정희 여사(41)는 행복한 부부삶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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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광인 선생(81)댁 서재와 영도자가 선물로 준 기념품의 상자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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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광인 선생은 남한 당국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를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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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광인 선생(81)과 그의 부인 승정희 여사(41)는 행복한 부부삶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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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의 생활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동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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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함세환 선생(84)은 북녘생활의 행복감을 고백하면서 남녘에 대한 걱정은 태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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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정때문에 잠시 들렸는데 고광인선생 부인께서는 상을 차렸다.



[평양-8]:비전향장기수 선생들 남측 걱정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6.15시대를 맞아 2000 9 북녘으로 송환된 63명의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은기자가 만날 때마다북녘생활에 대해서는 언제나  북녘 영도자들의 크나 배려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왔다고 말하면서 남녘에 대해 질문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걱정스러운 이야기만 꺼낸다.  16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은 노환으로 혹은 남녘 감옥에서 얻은 병환으로 39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후대들이 영원히 기억할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고, 지금 24명의 생존자들은 연일  안락한 생활을하고 있다.   


 그러나생존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은 남녘에 대해 몹시 걱정하면서  특히  이명박과 박근혜정권 대한 반감과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이들의감정을 읽을 있었다. 생각하는 사람들의정세를 보는 관점은남이나 북이나 해외동포사회나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전북 고창이 고향인 고광인선생(81)댁을 찿았다. 그의 부인 승정희여사(41) 부엌에서 열심히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전향장기수 함세환선생(84황해남도옹진이 고향) 이들의 생활위원장으로 활약해 비전향장기수 김동기선생이 자리를 함께했다.



고광인 선생 부부는 부부생활에 대해 묻자, 이 세상에 우리같이 행복한 부부는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면서 이 모든 것이 이 나라 영도자의 크나큰 사랑의 덕분이라고 대답한다.이들은 "250평방메터(약500평)의 주택을 마련해 주시고 식의주 일체와 문화생활 등 모든 것에 대하여 세심하게 배려하여 주시는 김정은 원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고 고마워 한다. 이어서 함세환 선생도 아름다운 부인과 결혼하게 되어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시고 "옥중생활 30~40년 했다고 해서 부족한 저희들의 신념과 지조를 높이 평가하여 주시어 이렇게 생각도 할 수 없는 대우를 해 주신 조선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과 경애하는 김정은 윈수님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라고 힘주어 강조해 말했다.  


 

기자는 생존자 가장 연로한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은 뉘시냐고묻자 김동기 선생은장호 선생이 97세이고, 박문재선생이 94세로 가장 원로들이라고 대답해준다.

 

기자는 인터네트 검색을 통해 장호 선생과 박문재 선생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장호 선생:

장호(1920 11 2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언론인이며 한국에서 30년 감옥생활하다가 석방돈 비전향 장기수이다. 그는  서울 마포구에서 태어났다정미소 운영하는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사회주의사상 공부하면서 1935 집을 나왔다. 이때부터 토목 노동자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일제 강점기 중화민국 등지를 오가면서 생활하였다.[2] 10년간 여러 곳을 떠돌다가 1945 집으로 돌아왔고 직후에 태평양 전쟁 끝났다. 그러나 군정기 시작되자 미군정을 반대하여 곧바로 삼팔선 이북으로 월북했다. 특수 교육받고 강원도 지역으로 들어왔으며남조선로동당 불법화되자 입산하여 조선인민유격대 입대하였다코리아 전쟁 거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평양 정착하고 로동신문》에 입사하여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였다.

1958 통일사업 임무를 띠고 선발되어 남파되었다. 남파 체포되었으나 전향하지 않고 비전향 장기수가 되어 대구교도소 위시한 여러 교도소에서 30 년간 수감 생활을 하였다.1991  30 이상 수감된 70 이상 고령자로 분류되어 석방되었다. 그는 출감한  경기도 과천시에서 안영기 위시한 다른 장기수들과 헌책방을 함께 운영하면서 생활하였다.[3][4] 사진작가 신동필 송환 직전 비전향 장기수들의 모습을 작품화하였을 모델이 되기도 했다.[5]

2000 6·15 남북 공동선언 의거해 비전향 장기수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될 있게 되었다. 장호 선생에게는 부유하게 사는 여동생이 있는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과 달리 생계 걱정이 없는 유복한 환경이었으나 스스로 송환을 택했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약혼녀가 혼인하지 않고 장호를 기다리면서 생존해 있어 다시 만났고 조국통일상 받았다.

 

*박문재 선생:

 

박문재 선생은 1922 914생으로 경기도 개성 출신이다. 어릴 부모와 헤어져 외가에서 성장하다가1937 중국 지린  창춘으로 건너갔다. 곳에서 4년제 신징실업학교를 다녔다. 이때 만주에서 활동 중이던 언론인 시인 박팔양 만나 그의 양자가 되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직전에 학병으로 징집되었으나 달아났고, 이때문에 개성형무소 수감되어 있다가 전쟁이 일본 제국 패배로 끝나자 풀려났다. 이후 박문재는 평양으로 들어갔다. 양아버지인 박팔양은 로동신문 전신인 정로의 초대 편집국장을 거쳐 로동신문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박문재는 김일성종합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로동신문 기자가 되었다.

그는 1950 625 코리아 전쟁 발발하자, 사흘 후인 628 조선인민군 소속인 8·15유격부대의 정치장교로 발탁되어 참전했다. 한국영역으로 들어왔다가 전세가 역전되어 후퇴길이 막히면서 계룡산 일대에서 빨치산 활동을 벌이던 중 1953 3월에 체포되었다. 비상조치령에 따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8 동안 복역하고 1963 특사로 출소하여 가정을 이루고 3남매를 낳았다. 그러나 1979 재일교포 간첩 사건이 적발되면서 주범과 서신을 주고 받은 것이 밝혀져 간첩죄 다시 수감, 사형을 선고받았다. 박문재는 재일교포가 자신의 중학교 은사였기에 개인적인 편지 왕래였다고 주장했다.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되어 1993 다시 출소했다. 번째로 감옥에 들어간 사이 부인과는 이혼하고 자녀들의 외면을 받아 부산 양로원에서 혼자 지냈으며2000 6·15 남북 공동선언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고 조국통일상 수여받았다. 그는 애국렬사릉 묻힌 박팔양과 함께 대를 이어 충성한 인물로 크게 선전되었고, 〈사랑도 대를 이어 충성도 대를 이어〉라는 제목으로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생존사 24명중 최연로자 장호 선생과 박문재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고 24명의 생존자들의 근황에 대하여 질문했다. 이들은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것도 과분한 대접을 받으면서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겸손한 자세로 설명한다.

 

고광인 선생과 함세환 선생은 지난 7 29일부터 813일까지 원산 송도원에 가족들과 함께 놀러다닌 이야기들을 비롯하여 고성, 금강산 유람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면서 경애하는 우리 김정은 원수님의 크나 배려라고 가슴 뜨꺼운 감정을 담아 진심을 말해준다.

 

그런데 기자가 요즘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보느냐고 묻는 질문을 하자 이들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의 표정은 갑자기 달라지면서 지금 남북관계는 최악이라고 규정하고  그러한 관계를 풀어보려고 고심끝에 제기한 조선 정부당국의 애국적인  ‘연석회의제안을 해외 각지역준비위원회들이 결성되고 남측 단체들이 지지하고 성원하는데  유독 박근혜 정부 당국이 이핑게 저핑게 둘러 대면서 거부하는 것은 반민족, 반평화, 반통일적 자세라고 거침없이 지적하면서 한편으로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평화의 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이런 시기에 한미합동군사훈련까지 벌이며 아무 필요도 없는  싸드를  배치한다고 하여 이제는 중국이나 러시아까지 비판의 소리를 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박근혜정권이 하는 일은 모두가 걱정스럽다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기자는 이들에게 같은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해보았다. 비전향 장기수선생들은 생각할 시간도 갖지 않고 단숨에미제국주의 세력과  일본같은 교활한 외세, 그리고 앞잡이 허수아비 정권 장애물이며 걸림돌이라고 대답했다.

 

정곡을 찌르는답변이었다. 기자는 이어서그러면 우리 해내외 동포들은어떻게 하여야 비극적민족분단 70여년을 끝장내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이룰수 있겠는지요?”라고 질문하자 비전향 장기수선생들은 우리가 남측 당국에 대해 걱정하며 분노 왔지만 우리들과 조선인민들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경애하는김정은 원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반드시 조국의 자주통일이 실현됩니다. 원수님만 계시면 우리는 승리합니다.”라고 확신성 있게 대답한다.

 

조선의 영도자, 김정은 위원장께서는 이를 이미 간파하였는지 초강대국 미국과  맞대결할 무장력들(수소탄 시험성공, 탄도탄수중발사시험 성공, 고공미사일발사와 재돌입시험 성공, 크고작은핵잠수함 개발, 그리고세상이 알지 못하는기상천외한 무장력을 소유하고있다는 것을 숨기지않는다고 언급) 갖추고 있어  미국본토 타격발언을 비롯하여 선제타격은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세계 어느나라들도 발언하지못하는 강경한 발언으로 미국을 향해 꽝꽝 쏟아낸 어록들이 적지 않다. 조선은 빈말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되어 왔다. 조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과 남한,일본과같은 추종나라들이 동안 얼마나 거짓말과 중상모략을 반복하여 왔는가. 특히 1990년대에 들어와  소련붕괴, 미국의 고립압살정책으로 조선의 국내외 사정이 매우 어려웠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였을 때 그들은 입반 열면 “세달이면 망한다”, “3년이면 망한다 노래부르던 미국과 추종나라들은 자신들의 노래가 거짓말이었다고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기자는 이들 장기수 선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아파트를 떠나오면서도 많은 생각들을  올렸다. 그런데 요즘들어와 남녘방송들과 신문들은 또다시 기획탈북자들을 내세워 <북의 붕괴론>을 또 다시 조작하며 북의 현실과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진실을 말하고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들과 조선을 잘 아는 해내외 동포들은 "조선의 미래는 밝고 창창할 뿐"이다. ‘붕괴 조선에서 있을 없는 어휘이다. 조선은 백전백승하여 왔지만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것은 조선을 와보면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래서 이곳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을 만나면 누구도 예외없이 밖에서듣던 조선과 실제와 보니 다르다”고 반응하는 것은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 방문자들이 하나같이 똑같이  반응하는 소리들이다. 이번 방문에서도 똑같은 반응들을 경험했다.

 

매번 방북할 때마다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을 만났다. 이들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을 만날때맏자 이들의 지조와 의리를 느낀다. 이들만 보아도 조선의 영도자들이, 그리고 조선의 인민들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그리고 인류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훌륭한가를 있다


지난 시기에는 세계 평화애호인들이 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레라가 27 감옥생활을 하였다고하여 그를 무척 존경해 왔다. 그래서 세계가 존경을 표시해 오면서 그를 <기네스 북>에 올렸다. 그러다가 조선의 투사들이 그 보다 훨씬 긴긴세월을 감옥에 있으면서 변모하지 않고 투쟁한 소식들이 세게에 전해지자 비전향장기수들의 옥중생활에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고 기네스 북에 오르게 되었다.

 

 비잔향장기수 선생들 상당수가 30년이상 감옥생활을 했고, 중에 일부는 40 이상 감옥생활을 하면서 오로지 자기 수령(최고지도자) 신뢰하고, 믿고, 따르는 절대적 충직성을 보였기 때문에 이들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은 세계적인 모범죄수들로 존경을 받게 것이다. 그래서 보수층 사람들도 이들을 높이 평가해  것이다.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은 역시 <신념의 화신들>이다. 신념의 화신들이 절대적으로 흠모하고 따르는 분은 조선의 최고지도자들이다. 조선의 영도자들이 이들의 흠모뿐만 아니라 전체 인민들의 존경을 받고 절대적 충직성을 받것은 조선의 지도자들이 이민위천 사상을 국정의 좌우명으로 삼아 인민들을 하늘처럼 생각하고 인민을 위한 희생적인 국사를 운영해 왔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비전향장기수 선생을 취재하고  자리를 나와 차창 밖을 내다 보면서 수많은 생각들을 올렸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서거하신 원인들은 모두 겹쌓인 과로와 스트레스로  판명되었다. 주석께서는 서거 하루 전인 1994 77 통일관계 문건을 다듬고 다듬느라고 과로한 업무 때문에 순직하신 것으로 밝혀졌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는 인민들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에서 그것도 달리는 열차에서 순직한 지도자로 밝혀졌다. 이러한 지도자들이었는데 미국과  추종나라들 정치인들과 그에 편승한 언론들은 얼마나 왜곡하고 중상모략해 왔는가를 돌이켜보면 미국언론들과 추종나라 언론들이 얼마나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왔는가를 알게 된다. 같은 사실 왜곡과 거짓말 보도는 지금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 왔다. 이것은 인류역사가 보여준 교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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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장기수 선생들 관련 민족통신 특별대담 내용들:

비전향장기수선생들 우표발행.jpg

비전향장기수선생들부부-2014년금수산태앙궁전.jpg
[사진]기자는 2015년 금수산태양궁전서 선생들을 만나 그 주차장에서 잠시 기념촬영



[평양13]이공순,김용수 대담:”생애 최대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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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16신]비전향장기수 선생들도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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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17]비전향장기수 선생들과 자녀

리재룡선생 , ‘축복양이 김정일소년영예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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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14]‘평양 비전향장기수 부부들 행복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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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재룡(68),김영달(78),리경구(82)선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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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KimChaek님의 댓글

KimChaek 작성일

위대한 분들입니다.
그분들 만한 의지력과 충성심이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유학생님의 댓글

유학생 작성일

민족통신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비전향장기수선생님들 소식 계속 보도하여 주셔서 한국에서 뵙던 선생님들 얼굴을 보니
넘 반가워요. 그런데 저희 한총련 학생들이 좋아하던 윤희보 선생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셔서 넘 서운하였어요. 이제 24명이
생존자들이군요. 이분들이 생존하여 계실때 통일의 그날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더 열심히 투쟁, 투쟁,투쟁으로 가야할것 같아요. 청년학생들이 투쟁의 앞장에 서야하는데 정권탄압, 사회구조변경, 외세지배전략등으로 고심하고 있는데 네트워크와 뼈대는 이어져 있습니다. 노농 동력과 청년학생 동력이 결합하여 큰 힘을 낼것입니다.

우와님의 댓글

우와 작성일

81 살 남편과  41 살 아내

자주꽃 물고님의 댓글

자주꽃 물고 작성일

지도자와 국민이 하나된 사회-북조선은 지구촌 유일한 일심단결의 나라가 아니가요.

맞지요.

국민이 지도자를 떠받들고, 지도자가 국민을 위해 희생적으로 헌신하는 나라가 북조선이 아닌가요.

한식솔이라는 말이 나오는것도 그런 사회이기에 가능한거로 보여요.

조국통일이 진짜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의 하염없는 념원이며 소원일진데 어찌 통일애국인사들이

수수방관하겠습니까. 비전향장기수는 우리민족의 절절한 애국자이며 신념의 화신이십니다.

오래 오래 사셔서 좋은 세상 즐기며 후대들에게 많은 걸 가르침주시기 기원합니다.

건강하세요! 24명 생존자 선생님들과 남녘의 생존자들 함께 만수무강 기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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