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30]강산 방북기-정기풍교수와의 대담 > 통일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4월 24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통일

[연재-30]강산 방북기-정기풍교수와의 대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12-09 14:53 조회7,060회 댓글4건

본문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 땅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강산 시애틀 동포는 이번 방문에서는 자신이 하와이에서 농부생활을 직접 해 본 사람으로 특히 북녘의 농장을 비롯하여 토지개혁 등에 관한 농업분야에 한층 더 관심을 가졌다. 농장을 돌아 본 이후 북의 박식한 학자인 김철주사범대학의 사회정치학 강좌장인 정기풍 교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토지개혁과 함게 북녘의 농업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의 방문기 30번째를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30

 

 

*글:강산(시애틀 동포)



토지개혁은 농민들에게 천지개벽이었다.


강당에서 응원연습을 하는 농장원들을 잠깐 들여다보고는 왼편에 위치한 제법 넓은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그 방의 사방 벽면은 사진과 그림과 도표들로 가득한데 바로 이곳 만경대협동농장의 지난 역사를 잘 설명해놓았다.  나처럼 북부조국의 농촌을 제대로 공부하려는 마음으로 찾은 사람에겐 아주 중요한 자료들이어서 사진으로 그 현장을 잘 남겼다.





만경대협동농장은 이름 그대로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만경대 주변에 위치한 농장이다.  이곳 농촌이 김 주석의 고향이라는 조건과 농민들의 자발적인 개혁의지는 해방후 처음부터 이곳이 전체 북부조국 농촌의 혁명적인 변화를 선도해서 이끌어나간 모범이 되는 역할을 하였던 것 같다.  김 주석이 이곳을 1945년부터 1985년까지 40년 동안 모두 44차례나 현지지도를 한 것으로 보아 농촌의 발전과 농민들의 생활 향상을 위한 김주석의 깊은 관심과 배려의 정도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곳을 모두 15번 찾았고, 김정숙 여사도 6번을 찾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서 1985년 이후엔 북의 지도자가 이곳을 방문하지 않은 것을 고려해보면 이때쯤은 이곳 만경대협동농장이 이미 북부조국의 모범이 되어 이후의 30년 동안은 다른 필요한 곳을 현지지도한 것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 


김 주석은 해방 후 일이 바빠 고향을 바로 찾지 못하고 1945년 10월 14일에야 만경대를 찾아 조부모님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고 그 다음날인 10월 15일에 남리 인민들과 상봉하였다고 한다.  내가 만경대 고향집에서 마주하지 못했던 자료들도 여기에 있다.  당시의 신문기사로 인민들이 열렬히 환영한 것과, 김주석이 인민들에게 만경대를 살기좋은 고장으로 만들고 새나라를 세우는데 힘써주길 당부하는 내용, 만경대 고향집을 1946년 크게 보수한 것과 1959년 5월 9일에 원상대로 복구한 내용, 그리고  김형직 선생과 강반석 여사의 유해를 고향땅으로 이장한 내용도 적혀있다.






내가 크게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싶은 부분은 1946년의 토지개혁이었다.  토지개혁은 북부조국 전역에서 동시에 결정되고 실행되었는데 1946년 3월 한 달 동안에 모든 지주의 땅을 무상으로 몰수해서 인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였다고 들었는데 그 현장 가운데 핵심적인 곳을 지금 찾아와 당시의 상황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이곳 만경대 일대의 지주가 소유한 토지는 전체의 85%가 되었고 그외 부농, 중농, 빈농, 반소작 반자작으로 구분되는 토지가 나머지를 차지했는데 그 가운데 지주 소유의 562정보를 포함하여 578 정보를 무상으로 몰수하였다고 한다.  몰수한 토지 가운데 570 정보를 380여 농가에 무상으로 분배하였으니 이건 천지개벽과도 같은 일이다.   조상 대대로 지주의 땅을 붙이며 가혹한 지대와 세금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절을 살아왔던 농민들이 해방이 되고 바로 다음 해인 3월 한 달 동안 이렇게 나라에서 농사지을 땅을 주었으니 그 기쁨이 어떠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라.  이제 새봄이 와서 논밭에 씨뿌릴 때가 되었는데 지금까지와는 달리 지주의 땅이 아닌 자신의 땅에 파종할 수 있게 된 것이니 농민들은 그야말로 해방의 기쁨과 동시에 새로 땅을 갖게 된 기쁨까지 함께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 토지개혁이야말로 북부조국 농민들에겐 천지개벽을 맞이한 것과 같은 기쁜 일이 아니었을까?  




한 농가당 대략 1.5 정보의 땅을 분배받았는데 이는 4,800 평에 해당한다.  논으로 환산하면 200평이 한 마지기니 한 농가당 24마지기의 땅이다.  내가 어렸을 때 보통으로 사는 친구들의 세대당 보통 10마지기 정도의 땅을 갖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의 땅을 갖게 되는 것은 중농 혹은 부농에 속한다.  북부조국 전체로 보아서 만경대는 인구밀도가 높았으므로 인구밀도가 낮은 지방에선 더 많은 땅을 분배받았을 것이다.  우리 역사상 나라에서 이렇게 넓은 땅을 인민들에게 그저 준 적이 있었던가?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일이 아닌가?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몰수당한 지주들에게도 일반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그 토지는 똑같은 넓이로 공평하게 다시 분배했다고 한다.


이런 토지개혁이 위에서 지시한다해서 저절로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도표에서 그 비밀을 얼마간 알 수 있어 여기 옮겨본다.  먼저 당세포와 인민위원회를 조직한 것이다.  1946년 1월에 남리에 공산당세포를 조직하였고, 이후 1946년 3월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였다고 적혀있다.  이어서 추자리, 송산리, 내리에도 당세포와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였다고 되어있다.  또한 도표에 의하면 1946년 3월 8일에 6명의 위원으로 농촌위원회를 조직하였고, 토지개혁을 실질적으로 집행한 것은 농촌위원회에 의한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농촌위원회가 그 일을 할 수 있기까지는 김주석의 뜻을 받들어 온 나라의 당세포와 인민위원회가 뒤에서 받쳐주었고 저 도표에서 '토지개혁을 위한 투쟁'이란 제목이 보여주듯 그 일에는 인민들의 단합과 투쟁이 있어 가능하였을 것 같다.  새로 나라를 세워나가면서 이렇게 미리 온 나라의 토지를 지주들로부터 몰수하는 일은 제법 큰 저항이 따랐을 것이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을 한 달만에 이뤄낼 만큼 이미 북부조국 전역에서 김주석은 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임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토지개혁이 이뤄진것이  46년 3월이니 이 시기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된 지 겨우 7달 만의 일이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소련의 군대가 주둔해있는 상황에서 소련식이 아닌 김주석의 뜻대로 북부조국이 토지개혁을 달성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부조국은 처음부터 그곳 인민들에 의한 참 민주주의를 이뤄나가도록 소련은 도와주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군정하의 남한에서는 혼돈으로 가득한 시절이었고 이런 토지개혁은 꿈도 꾸지 못한데다 이후 유상으로 몰수하고 유상으로 분배하려했던 것마저도 흐지부지된 것과 크게 비교해볼 만하다.  




내가 만경대협동농장을 방문한 지 며칠 후에 김철주사범대학의 정기풍 교수가 평양호텔로 찾아와 면담을 하였다.  정기풍 교수로부터 내가 들은 북부조국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토지개혁에 관하여 대화한 것을 여기 미리 옮겨본다.  정기풍 교수에 의하면 북부조국이 해방후 토지개혁을 실시할 때 처음부터 소련식의 꼬르주라 부르는 집단농장으로 하자는 의견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김일성 주석은 우리나라의 농민들이 조상대대로 자기 땅을 소유하지 못하고 지주의 소작농으로 한많은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 농민들에게 새나라는 무상으로 땅을 주어서 일단은 그 한을 풀게 하자고 했다고 한다.  당시 제대로 각성하지 못한 농민들의 입장을 헤아린 것이었다.  아무런 농자금도 없고 농사를 지을 도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농민들에게 낮은 이자로 나라에서 돈과 비료를 대부해주고 농사를 지을 도구들도 제공해주었는데 자신의 땅이 생기자 농민들은 그야말로 열심히 농사를 지어 크게 수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해 가을의 작황에 따라 나라에 20%-30%만 바치고 나머지로 곳간이 가득하게 되자 모두들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정기풍 교수가 토지개혁과 협동농장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름이 김재원이라는 한 농부는 너무 기쁘고 고마운 나머지 소달구지에다 쌀을 가득 싣고는 김일성 장군의 집으로 찾아갔다고 했다.  그 집에서 어떤 여성이 맞아주어서 함께 그 많은 쌀을 모두 내려놓고는 그 농부가 말하기를 나는 여기까지 온 김에 꼭 김정숙 여사를 만나뵙고 가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자신과 함께 힘들게 쌀을 옮겨놓은 분이 바로 김정숙 여사였다는 것을 알고는 이렇게 겸손한 분이 있는가하고 감동하였다면서 여기저기 그 일을 알렸는데 거기서 '애국미'가 탄생했다고 하였다.  '나라가 우리 인민에게 이렇게 잘 살도록 해주는데 우리 인민이 가만히 있어서는 되겠는가?  지금 나라를 새로 건설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많고 할일도 많은데 우리들이 먹고 남는 쌀을 나라에 바치자'면서 애국미 운동이 전국적으로 불타올랐다는 것이다.  인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일으킨 이 애국미 운동이 새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토지개혁을 통하여 농민들에게 땅을 무료로 나눠주어서 개인농으로 시작한 북부조국의 농촌은 이후 농민들 각자의 필요와 나라의 권유에 의하여 협동농장으로 바뀌게 된다.  이 부분은 내가 미국 땅에서 개인농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있었고 개인농의 한계를 너무도 잘 알기에 협동농장으로 진화하고 발전해나간 북부조국 농촌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다음 회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하자.


아래 링크에서 방문기 29회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seattle.com/main/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1614

 

 

[연재-29]강산 방북기-농민들의 삶의 현주소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5120

 

[연재-28]강산 방북기-노동자들의 삶의 현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5112

 

[연재-27]강산 방북기-행복한 노동자들의 복지제도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5104

 

[연재-26]강산 방북기-홍동근목사 부인 홍정자여사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5096

 [연재-25]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5092


                                          [연재-24]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5087


[연재-23]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5085

[연재-22]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5084


[연재-21]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6277

 

 [연재-20]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연재-19]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http://www.hanseattle.com/main/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1527


[연재-18]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5073


[연재-17]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연재-16]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연재-15]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연재-14]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연재-13]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연재-12]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연재-11]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연재-10]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녘땅

   *[연재-9]시애틀 동포:”25년만에 다시 밟은 북녘 -방문기:

*[연재-8]시애틀 동포:”25년만에 다시 밟은 북녘 -방문기:
 
*[연재-7]시애틀 동포:”25년만에 다시 밟은 북녘 -방문기:
 
*[연재-6]시애틀 동포:”25년만에 다시 밟은 북녘 -방문기:
 
*[연재-5]시애틀 동포:”25년만에 다시 밟은 북녘 -방문기:
 
*[연재-4]시애틀 동포:”25년만에 다시 밟은 북녘 -방문기:
 
*[연재-3]시애틀 동포:”25년만에 다시 밟은 북녘 -방문기:
 
*[연재-1~2]시애틀 동포:”25년만에 다시 밟은 북녘 -방문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우하하님의 댓글

우하하 작성일

김정일이 1941 ~ 1942 년 생 인데

1946 년 5 월 12 일에 만경대 협동 농장을 현지 지도 하였다면

김정일의 나이가 4 살 ~ 5 살 에 불과한 나이에 현지 지도 했다는 말이네요

세계 최고의 개그 콘서트 감이네요

하하하

훨훨님의 댓글

훨훨 작성일

어릴 때 김정숙 여사를 따라 간 거지.

짭새가 달리 짭새냐...새 대가리니 짭새지.

ㅋㅋ님의 댓글

ㅋㅋ 작성일

어릴때 코흘리개가 엄마 따라 간 것도 현지 지도 한 거냐 ? 으하하하하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닭그네나 김정일이나 그게 그거다~! ㅡㅡ;;;;;;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