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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안병옥 여사에게 듣는 삶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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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5-07 08:00 조회7,6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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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꾜=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일본 체류중2014세계탁구대회 경기장에서 재일총련 산하조직중  단체인 재일본조선민주여성동맹 고문이며 여성계 원로이며 6.15해외측위원회 명예의장인 안병옥 여사(86) 정희자 여맹부위원장을 만났다.


[인물]안병옥 여사에게 듣는 삶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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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안병옥 6.15해외측위원회 명예의장 

 

[도꾜=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일본 체류중2014세계탁구대회 경기장에서 재일총련 산하조직중 단체인 재일본조선민주여성동맹 고문이며 여성계 원로이며 6.15해외측위원회 명예의장인 안병옥 여사(86) 정희자 여맹부위원장을 만났다.

한분은 방북취재 여러차례 만나 안면이 있었고, 다른 분도 방북취재와 러시아 모스코바 평화심포쥼 취재 만났고 얼마전 중국 심양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문제 다뤘던 남북 해외동포 회의의 일본동포 대표단  단장으로 참가했던 인물이기에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기자는 특히 안병옥 여사의 삶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요요기 체육관에서 진행되는 남북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찻집에서, 식당에서 짧은대화를 나누며 그의 생애 일부를 듣게 되었다.

그는 1929 음력으로 11일생(양력으로는 214)으로 제주도에서 태어나 5살때 부모를 따라 일본에 왔다. 그것을 계산해 보면 1934 일본에 온것으로 된다. 19살에 26 청년과 결혼하여 34녀의 어머니가 되었으니 이국 땅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였겠는가라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남편 강태식 선생이 페암으로 6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여사의 생애가 얼마나 파란만장하였겠는가라고 짐작했다.

안병옥 여사는 요즘에는 친손주가 무려 11명이고 증손자도 3명이라고 하면서 외손자손녀들까지 합치면 20명가량 된다고 말한다.

생애 어떤 사업들을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안병옥 여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남편이 일본 중앙대학을 졸업하고 총련 학교들 설립하는데 많은 힘을 넣으며 총련조직을 확대하고 강화하는데 정성을 쏟았다고 귀띔해 준다. 들어보니 남편은 숨은 공로자혹은 숨은 영웅으로 활약한 인물로 이해되었다.

 그는 남편과 자녀들 뒷바라지 하느라고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것과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이 올바른가에 대해서는 어느 대학교수들 보다 훌륭하게 느껴졌다. 여사의 사회활동 무대는 주로 생계를 위한 각종 사업들을 운영하면서도 재일총련을 위한 사업과 산하 여맹조직과 함께 남북 해외동포들의 3자연대 운동인 범민련 6.15해외측위원회 사업들이었다.

그는 일본 땅에 살면서 젊은 시절에는 식당을 비롯하여 옷장사, 호텔운영, 빠찡고 사업 무려 20여가지 사업들을 하였었는데 그 당시에나 지금이나 앉으나 서나 조국의 통일만 염원하며 동분서주해 인물이다.

통일만 되면 남과 북을 오가며 못할 없지요. 어떤 다른나라들 보다 살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첫째도 통일, 둘째도 통일, 셋째도 통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강조하기도 한다.

기자는 재일총련 회원들 대부분이 남녘 출신들인데 어떻게 북의 공민신분으로 되는 조직에 참여하게 되었는가를 물었다.

남조선은 알다시피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선은 학교도 무료이고, 병원도 무료이고 모든 조선인들이 공평하게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안병옥 여사는 어떤 이론보다도 실제 생활에서 사회주의 제도가 자본주의 삶보다는 낫다는 뜻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해방공간과 이후 해내외 동포들 지향과 정치인들의 움직임에서도 사회주의를 갈망하고 선호하는 현상이 보편적이었다는 뜻으로 쉽게 설명해 주며 길이 진리라고 믿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그는 분단민족이 하나로 되기 위해서는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이 서로 다를지라도 우리민족끼리 손을 잡고 서로의 다른점들을 포용하는 연방제에 의해 통일로 가야 된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기자는 안병옥 여사와의 짧은 대화로 교제하였지만 그의 삶은 진실하고, 소박하고,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삶이며 동시에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뜨겁게 갈망하며 실천하는 열렬한 애국자의 한사람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느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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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병옥 여사와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잠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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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병옥 재일조선민주여성동맹 고문과 정희자 여맹 부위원장이 담화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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