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95세의 신인수 선생과 부인 최선옥(53)여사은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민족통신 특파원 노길남 박사는 지난 2013년 12월11일부터 일주일동안 북녘에 체류하면서 비전향장기수들 3명의 자택을 방문하여 대담시간을 가졌다. 이들의 근황과 함께 정세에 관한 내용들도 서로 주고 받았다. 이들을 만난 소식들을 여기에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평양-12신]비전향장기수들 자택방문
윤희보 선생(96세), 신인수 선생(95세), 최선묵 선생(85세)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이번 방북중 90대 중반에 속한 윤희보 선생(96), 신린수 선생(95), 그리고 최선묵 선생(85)을 각각 방문하고 이들의 근황에 대해 알아보았다.
방북취재를 갈때마다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들과 오랜 기간 사귀었던 남녘동포들은 이들을 그리워하고, 이들은 남녘동포들을 무척 그리워하며 통일의 그날을 학수고대해 왔다.
이들과의 대화 중에는 무엇보다 6.15선언과 10.4선언이 이행되면 지금쯤 통일은 이루어져서 남과 북, 해외동포들이 마음놓고 만나고 그리움을 달랠수 있는데 그만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이 파괴되고 남북관계가 경색으로만 치닫고 있는 것이 북녘의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의 가슴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이들은 특히 박근혜 새누리당이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그 어느때보다 최악상황으로 고조되고 전쟁의 위험성마저 아주 높아졌다면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은 아주 교활한 사대주의 정권이며 매국정권이라고 원색적으로 지적하는 한편 미국 보수세력과 그 추종세력인 남녘의 보수정권, 보수언론들은 틈만 있으면 조선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중상하고 모략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들만 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들이 보는 김정은 시대의 미래는 한마디로 “창창하다”, 그리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강성대국의 시대는 멀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자세이다.
[1]윤희보 선생(96) 방문
[사진]청각이 너무 약해 질문을 글로 써서 하고 대답을 받아 내는 노길남 특파원
그 동안 몇차례 만나 근황을 알아보았던 윤희보 선생(96)은 이번에는 청각이 아주 약해져 대화를 주고받기가 무척 어려웠다. 기자가 종이에 써서 질문하고 답변받는 그런형식으로 짧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것을 지켜보는 딸 윤정혁씨는 60대 중반을 넘은 나이이지만 이날 대담광경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윤희보 선생의 답변하는 모습과 그의 기억력과 말하는 억양은 씩씩하고 우렁차게 들렸다. 63명의 비전향장기수 선생들 대부분이 2000년 9월에 북으로 송환되었지만 100살을 넘긴 선생은 없었다. 윤희보 선생은 100살잔치상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건강상태는 좋아 보였다.
윤희보 선생은 1917년 10월10일 남녘 경기도 광주에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고생하며 성장한 인물이다. 수감, 석방 또다시 수감하여 감옥생활 총 25년을 남녘 철창속에서 지냈지만 출옥하여 특히 한총련 대학생들을 대단히 사랑한 비전향장기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윤희보 선생은 남녘에 있는 딸 희선이가 보고 싶다고 하는 한편 한총련 출신들인 이희철 전 한총련 의장, 범청학련 출신들인 윤기진, 황선 등이 보고싶다며 “앞으로 멀지않아 반드시 조국통일 이뤄진다”며 열심히 일해 역사적인 6.15선언과 10.4선언을 살려 하루 속히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남,북, 해외동포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남녘의 지인들에게 모두 안부를 당부하기도 했다.
기자는 잠시동안 그의 자택을 방문한 다음 근처에 거주하는 신린수 선생(1918년 4월 1일 경북 청도군 화양면 출생)과 최선묵 선생(1928.7.17 인천 강화군 석모도 출생)을 차례로 만났다.
[2]신인수 선생(95)부부 방문
-신린수 선생은 95세의 나이이지만 200년 6.15남북공동선언에 의해 북에 송환하였던 그해 11월 남편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설명한 부인 김선옥 여사(신의주 교원대학 졸업생)는 50대 초반의 교원출신인 미녀이다.
부인은 남편 신린수 선생에 대해 ‘파킨슨’병 때문에 고생 좀 해 왔다고 설명하면서도 그것 외에는 “일없다”고 소개해 주며 기자가 취재하는 동안에도 남편을 무척 사랑하는 자세와 남편에 대한 그의 지극정성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비록 남편이 불구이고 병환중이지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 행복을 말하면서도 자신이 당의 배려에 의해 애국자의 배필이 되었다는 것이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생각해 왔다고 고백해 준다. 이 부인은 젊었을 때 남편이 순직하여 오랜 기간 혼자 살아오다가 신린수 선생과 인연이 되었다고 밝히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신린수 선생은 일제 때에도 김일성 조선인민혁명군과 연계하여 활동하다가 일본군 헌번대에 체포되어 1년8개월 수감된적이 있고, 코리아전쟁 시기에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남녘으로 넘어가 활동하다가 1958년 체포되어 총30년 감옥살이를 했다”고 말하면서 별로 한 것이 없는 사람인데 북에 와서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칭), 원수님(김정은 제1위원장을 지칭)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을 받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부인께서 남편을 대신하여 그의 심정을 알려준다.
신린수 선생은 특히 남녘에서 수감 중 면회를 온 홀어머니가 24년 만에 만난 외아들의 처지를 보고 충격으로 쓰러져 죽는 사건을 겪었고 만기 출소 후 사회안전법으로 재수감되었을 때는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고 치아가 모두 빠지기도 할 정도로 건강이 몹시 약했지만 북송이후 극진한 치료를 받아 많이 회복되었으나 ‘파킨슨’병과 감옥후유증과 연령 관계로 지금은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3]최선묵 선생(85)과 대담
-최선묵 선생도 만났다. 그는 1928년 7월17일 경기도 인천 강화군 삼산면 석모리의 빈농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태평양 전쟁중 징병으로 끌려갔고, 누이는 일본인 선박 자본가의 집에 가정부로 팔려가는 등 몹시 가난한 농가에서 자라났던 인물이다.
“조국해방전쟁 시기(남녘에서는 6.25전쟁이라고 말함)에 월북했다가 남녘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38년의 세월을 감옥생활을 했다”고 밝힌 최선묵 선생은 “전쟁시기 강화도를 점령한 인민군이 토지개혁을 실시했을 때 토지 1,500평을 분배받고 조선인민군에 자원입대하여 월북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래서 북에서 결혼하고 정착하다가 해방전쟁에 참여하여 남녘에 내려갔다가 체포되어 38년을 철창속에서 살았다”고 초기의 상황을 설명해 준다.
그는 체포되어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 여러차례 고문, 회유 등을 당하다가 전향을 권유받았으나 “장군님을 생명”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회유를 단호히 거부하여 비전향 장기수가 되었다. 최선묵 선생은 당시 교도소 재소자로 구성된 전향공작반에게 몹시 악독하게 구타당하면서 모질게 고문받았고 이로 말미암아 죽은 동료도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최선묵 선생은 남녘의 생활 가운데 출감후 대전형제집에 거처했는데 그 때 돌보아 준 천주교 신부님이 보고싶다고 말하면서 남녘에 두 딸이 있는데 한명은 죽고 남은 딸이 그리스도교 전도사로 일한다고 말한다. 손자와 손녀가 셋인데 죽기 전에 통일이 되어 혈육도 만나고 보고싶은이들을 모두 만나는 날을 위해 남은 생애에 서예작품전을 비롯하여 할 수 있는 정력을 다바쳐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굳은 결의를 보인다.
그는 지난 2005년에는 《로동신문》에 수기 〈선군화원에 꽃들은 만발한다〉를 발표하여 김정일 시대의 선군 정치와 여성 정책을 지지호응한다는 문필활동도 했다. 그리고 그의 삶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밭갈이 노래》가 창작되기도 했다.
기자는 이들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을 취재하며 이 세상에 자신의 영도자를 하늘처럼 믿고 떠받들며 하나밖에 없는 생명도 각오하고 수십년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지조를 잃지 않고 오로지 신념하나로 한길을 지켜온 사람들이 과연 몇사람이며 누구인가를 살펴보면 이들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이야 말로 세계적인 혁명가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남과 북, 해외 애국동포들은 이들을 높이 평가하며 존경해 왔다.(끝)
(관련보도자료)비전향장기수 선생들과 민족통신 특파원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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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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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장기수 송환자 명단-2000년 9월2일]
1△강동근/85/군생활로 주소 없음/가족 없음/37년 2△김명수/79/함남 함흥/부인 이순자/37년 3△고광인66/전북 고창/불명/34년 4△김동기/69/평양시 선교구역/부인 김은옥/34년 5△김석형/87/평양시 보통강구역/부인 김옥희/30년 6△김선명/76/경기양평/없음/45년 7△김영달/67/불명/아버지 김중의/30년 8△김영만/72/전남 구례/가족 관계 불명/30년 9△김영태/71/평북 정주/부인 김금옥/34년 10△김용규/평양시 중구/가족 관계 불명/34년 11△김용수/70/자강도 강계시/부인 서종복/27년 12△김우택/81/황해도 봉산/가족 없음/40년 13△김은환/71/평양시 형제산구역/부인 김보배/31년 14△김익진/71/강원도 원산시/부인 한애자/31년 15△김인수/77/황해북도 사리원/부인 한성복/36년 16△김인서/75/평남 덕천/딸 화심/34년 17△김종호/88/평양시 모란봉극장 인근/부인 김경옥/31년 18△김중종/75/평양시 모란봉구역/부인 장성실/29년 19△김창원/67/서울/부인 김복화/31년 20△류한욱/90/평북 철산/부인 차계숙/37년 21△리경찬/66/개성 장풍/부인 박명무/35년 22△리공순/67/함남 함흥시/부인 김덕화/33년 23△박문재/78/평양시 선교리/가족 관계 불명/28년 24△박완규/72/평양시 용정구역 부인 오덕실/33년 25△방재순/84/강원횡성/38년 26△석용화/현재 부산거주 27△손성모/71/평양시 대성구역/부인 방희동19년 28△송상준/70/부산 동래/가족 없음/36년 29△신광수/72/평양시 중구역/부인 리원구/15년 30△신인수/83/함북 김책시 상화동/부인 고목자/30년 31△신인영/72/평양시 순안군/부인 리영화/32년 32△안영기/72/평양시 동대원구역/부인 계용욱/38년 33△양정호/70/함북 청진시/부인 신기자/31년 34△오형식/69/강원도 원산시/부인 리금자/31년 35△우용각/72/평양시 동대원구/부인 한성옥/42년 36△유연철(89/평양시 동성동/부인 김봉희/27년 37△유운형/77/함남 이원/아버지 유영근/34년 38△윤용기/75/강원도 원산시/부인 채규환/40년 39△윤희보/84/황해도 신천군/부인 진순희/25년 40△이경구/71/불명/불명/38년 41△이세균/80/평양/없음/30년 42△이재룡/57/평남 숙청군/형 이재현/30년 43△이 종/90/황해도 안악/부인 김 영/25년 44△이종환/78/경기도 개성/가족 관계 불명/43년 45△임병호/86/평양시 중구/부인 김성녀/32년 46△장병락/67/강원도 고성군/부인 이춘경/38년 47△장 호/81/평양시 모란봉구역/부인 김정희/32년 48△전 진/78/전북 옥구/가족 관계 불명/38년 49△전창기/83/평북 삭주군 삭주면/부인 윤순중/23년 50△조창손/72/강원도 고성군/부인 권순옥/30년 51△최선묵/73/함흥시 중앙동/부인 김서분/38년 52△최수일/62/강원도 통천군/부인 백농녀/35년 53△최하종/74/평양시 외정구역 부인 김재숙/36년 54△한백렬/81/경기광주/25년 55△한장호/78/평남 순안군/가족 관계 불명/39년 56△한종호/84/함북 함흥/딸 두명/15년 57△한춘익/76/함남 함흥/형 춘경/29년 58△함세환/69/황해 옹진/누님 숙녀 59△홍경선/76/함남 단천시/부인 김복실/33년 60△홍명기/72/평양시 순안군/부인 정순녀 61△홍문거/80/평양 선교리/부인 이옥신/37년 62△황용갑/77/경남 하동/가족 관계 불명/35년 |
***2013년 12월 방북취재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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