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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12신]리인모 선생 손녀 오보람 기자와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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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3-09-22 01:00 조회17,792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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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리인모 선생 외손녀인 오보람 기자를 찾아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분단과 전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생을 해온 한 생을 살아 오다가 그의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외손녀인 오보람 기자는 "고생이 뭔지도 모르며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고 그의 삶의 배경을 들려준다.   

[평양-12]리인모 선생 손녀 오보람 기자와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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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리인모 선생 외손녀인 오보람 기자를 찾아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분단과 전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생을 해온 한 생을 살아 오다가 그의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외손녀인 오보람 기자는 "고생이 뭔지도 모르며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고 그의 삶의 배경을 들려준다.
  
그의 30대 중반의 삶을 통해 그는 학비때문에 걱정한 적이 없었고, 병원비 때문에 걱정한 적이 없었고, 의식주 때문에 걱정한 적이 없었고, 직업때문에 걱정한 적이 없었고, 세금때문에 걱정한 적이 없었고, 결혼비용 때문에 걱정한 적이 없었고, 아이를 기를때 탁아소, 유치원 비용때문에 걱정한 적이 없었던 생활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아 왔다는 뜻으로 이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0대 중반 나이에 외할아버지가 평양으로 온 이후에  남녘에서 겪은 그 고생과 고초에 대해 들으면서 너무나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사우스 아프리카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데라가 옥중생활 27년이라고 세계가 최장 장기수라고 말한적이 있었지만 그의 외할아버지는 34년 옥중고초를 겪은 애국자라고 지적하면서 조국통일을 위해 오로지 한길을 걸으며  노력해 온 사람을 그렇게 탄압하고 고문할 수가 있었느냐고 지금도 그 고통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 하는 표정이다. 그리고 남녘 청년학생들의 생활을 상기시키며 자신은 참으로  행복한 삶 속에서 자라났다고 돌이켜 준다. 
 
리인모 선생하면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래서그는남녘동포들이나 해외동포들, 그리고북녘동포들이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정도로 해내외 동포사회와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져왔다
남녘 감옥에서무려 34년동안 옥중 투쟁한 비전향장기수로이름난  리인모 선생은 76되던 지난 1993년 319일 판문점을 통해 북에 송환되어 모진 고문과 탄압후유증으로 고생하며 치료를 받던중 2007616향년 90세를 일기로 서거해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그는조국통일상과  공화국영웅  메달을 수여받았다.
 
기자는 이번 방북취재 과정 중  고인의 손녀가 되는 오보람 기자(35)만났다 기자는 지난 2001년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부 보도과(전에는 신문과)를 졸업하고 박사원에서 언론문제를공부한 다음에 평양출판사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동안  일제시대 언론탄압사를 연구하여 언론, 통일을 말하자라는책을  비롯하여 색깔론변종인 종북론과 관련하여 종북론을해부한다’(2013년 610일 평양출판사 발행)라는등 몇권의 도서들을 출판해 주목 받는 젊은 기자로 알려져 왔다. 할아버지의 손녀로느껴진다.
오보람 기자는출판계 단위에서 일하는사람과 결혼하여 지금은3살짜리 딸을 두고있다. 그의외할머니는 생존해 있으나그의어머니 리현옥 여사는범민련 북측위원회 중앙위원으로그리고  평양의 개선중학교 교장으로 일하다가지난2009 종양()으로세상을 떠났다고 밝힌다.
 
오보람 기자는 외할아버지가 되는 리인모선생이 판문점을 넘어때 15살이었다고 회고하며 때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자신을 포함하여 3형제자매가 함께 판문점에 가서 고문탄압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되어윌체어에 실려 넘어오는 외할아버지를 맞이했다고 설명하고북송되어 14동안 평양에서 생활한 이모저모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는 먼저 남녘에서 외할아버지를 도와준 농민 김상원 선생을 포함하여 외할아버지에 관한 글을 언론인 신준영 선생, 북 송환을 해외에서 도와준 독일의 신옥자 선생 등 여러분의 이름들을  열거하며 외할아버지를  보살펴 해내외동포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다.
 
그의 외할아버지  리인모 선생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려는특별했다고 귀띔해 주면서 처음에 남녘에서 넘어 올때는 살아 있어도죽은분이나 같을 정도로 건강이 아주 쇠약했다고 설명한다. 나라에서는 좋은 독채집을 마련해 주고, 승용차, 버스등 도선물로 안겨주어 언제나 집 앞에는 차들이 있어 병원에 갈때나 나들이 갈때 사용할 있도록하여 주었고, 외할아버지 고향, 양강도 풍산에 있는 소학교를 리인모 소학교라는 명칭도 만들어 주었고, 애국열사릉에 묘자리도 시기별로 안장되는 자리인데 이미오래 전에  열사릉이  시작하는 줄  두번째 줄에 이례적으로 자리를 사전에 정해주었고, 평양의  봉화병원’ 의로진이 온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었다고 설명해 주면서 모든 것이 우리 장군님의 특별한 배려에 의해 이뤄졌다  오보람 기자는 밝힌다.
 
오보람 기자는 외할아버지가   평양에 와서 쓴 노래작사  신념과 의지찬가포함하여 여러 노래들의 작사들이 주로 이름난 리종호 음악예술인에 의해 작곡되어 불리어왔다고 설명하고, 자신도 이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중이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외할아버지인 리인모 선생이 생전에 조국통일에 대한 열망이 대단히 강했다고 강조하면서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이루는 것은 북의 최고영도자들의 염원인 동시에 외할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이었다고 상기시켜 준다.
 
오보람 기자의 외할아버지 리인모 선생이 북녘의 품에 안겨 느낀 김정일 위원장의 영도력에 감동한 나머지 쓴 시에서도 조선의 영도자에 대한 사랑의 배려를 엿본다. 북에 송환되어 쓴 리인모 선생의 시귀 한 구절을 여기에 소개한다.
"...
내 숨쉬는 공기에 
내 몸에 비치는 해빛에 
당신의 사랑이 꽉 찼습니다
내 집 안방에도 당신의 사랑
뒤 방에도 당신의 사랑
웃층에도 아래층에도 
당신의 사랑이 겹겹이 쌓였습니다
...
제 놀랐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랑도 있는가고
사랑밖에 밀려났던 이 몸
70고개를 넘어 선 오늘에야
당신의 사랑이 무엇인지
늦게나마 알고 옵니다
...
아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이시여
열렬한 사랑의 인간 당신은
위대한 사랑의 화신이시옵니다"

이 한편의 리인모 선생의 시 구절에도 리인모 한사람이 아니라 북녘 동포들의 운명을 책임지고 지켜주고 보살펴 주는 그분의 사랑에 대한 전인민적인 감사와 칭송의 감정이 깊숙히 배여있다.
 
리인모 선생은 언제나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소망하면서 한시도그 소망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외할아버지의 생전에 통일을 보지못하고 눈을 감은 것이 못내 아쉽다고 지적하면서 외손녀로서  외할아버지의 몫을 다하기 위해 부족하지만 온 정성을 다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굳은 결의를 보인다.
 
비전향장기수 선생 두분과도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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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이번에도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의 소식을 듣기위해 리공순 선생(80)과  리경구 선생(83)을 만났다. 선생들은 63명의 북송 장기수선생들 가운데 31명이 생존해 있다고 밝힌다.
 
우선 남녘의  동포가 부탁한 사안을 질문했다. 비전향장기수 리종 선생의 서거연도와 날자를 물었다. 이들은  2011년 719일 오후130분에 세상을 떠났다고 답변한다.
 
이들은 이어 지금 생존해 있는 북송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은 31명인데 이중 연령별로는 70대가 7, 80대가  16, 90대가 8명이라고 대답한다.
 
이들 선생들은 주체사회주의 나라, 조선이 세워진지 65돌이 되어 감회가 깊다고 말하면서 동안 일제 40, 분단 60여년 하여 한세기 이상  지나면서 두 제국주의를 상대로 투쟁하여 왔으나 그야말로 백전백승의 승리역사를 아로새겨왔다고 회고한다.
 
조국해방전쟁에 기여하기 위해 남녘으로 내려가 활동하다가연행되어 30여년 옥중에 갇혀  고생하면서 별별 유혹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그러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조선의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 주석님과 김정일 장군님이 계셨기때문이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응답한다.
 
이들과 대담하면서기자가 느낀 것은 이들이 전향하지 않고 숱한 고문과 탄압, 회유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이겨낸 원동력이 무엇인진 궁금해 질문했다. 
 
이들의 대답을 통해 그리고 생의 체험을 통해 그 원동력은 바로 조선의 영도자들이 준 영향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있었다. 이들은 조선이 일심단결로 굳게 뭉친 것을 비롯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첨단과학기술강국, 음악예술강국 등을 이뤄놓은것도  조선의 최고지도자들의 위대한 영도력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들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은 자신들이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한것이 없는데 이처럼 뜨거운 사랑으로 보살펴주는것이 황송한 마음이 든다고 겸손하게 말하면서 리인모 선생이 말처럼  수령님과 장군님이 신념과 의지의 최고화신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최고지도자들에 대해 다함없는흠모와 존경심을 나타낸다.
 
한때 세계사람들은 남아프리카 넬슨만델라가  27 감옥생활을 한데 대하여 세계최장기수라고 격찬했는데 이들 비전향장기수들은 보다 훨씬 많은세월을 감옥에서 투쟁하며 말할 수 없는고난과 고통을 이겨냈다. 세상에 이런 장기수들은전무후무 할것이라고 느껴진다.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습을대변한 것은 리인모선생이 감옥에서 시 그대로가 된다고 생각된다.   

움푹하게 패인 두눈에선
그렇게도 아름답던
지난날 젊은빛을 찾을길 없고
튀여 나온광대뼈 기여든
거칠게 금이간  주름살 속에
불타오르는 청춘의정열
찿을 없나니
이제 청춘은갔다
그러나 그 청춘을 너는
헛되이 보내지않았다
조국과 민족을위한 싸움속에
그것을 바친것이다
…”

  리인모 선생을비롯한 비전향장기수들은 세상에 어디에도 없는  ‘신념과 의지의 화신들이다. 이들의 절개와 지조, 투쟁의 발자취는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진보 역사에서 영원히 기록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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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리인모 선생님의 영전에 민족적인 양심을 정중히 올립니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이인모선생님의 외손녀이신 오보람기자님~! 앞으로 훌륭한 기사 많이써주었으면 좋겠네요?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다시한번 악질탈북자들에게 경고하는데 북녘 최고위층들이 사는 저택들을 보고 초호화저택이라고 말을 했다가는봐라~!!!! 그날로 너희들은 그야말루 제삿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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