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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69]북 음악예술 통해 북을 알아본다//<br><br>민족악기《어은금》을 대중악기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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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7-21 18:41 조회2,5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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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준무 지휘자(뉴욕 우륵교향악단 단장)은 69번째 연재 "북 음악예술통해 북녘을 알아본다" 에
민족악기《어은금》을 대중악기로 만든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어은금은 김정일총비서가 김일성종합대학에
재학당시 평양시 룡성구역 어은동에서 군사야영훈련을 하던 기간(1962년 8월~10월)에 이 악기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고 전하고 있으며 어은금이란 악기이름도 이 악기를 만든 지명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하고
기타와 만돌린의 장점을 살려 개량한 악기라는 설도 있는데 어쨌던 어은금은 그 두 악기에서는 전혀 들어
볼 수 없는 아름답고 우아한 음색을 만들어 낸다고 설명한다. 그의 글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연재-69]북 음악예술 통해 북을 알아본다


민족악기《어은금》을 대중악기로 만들다




*글:리준무 지휘자(뉴욕 우륵교향악단 단장)


<##IMAGE##> 7월6일(2012년)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아주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 진행되었었다. 신문들마다 이 한여름 밤의 시원한 공연을 무게 있게 다루었으며 TV방송사들도 이에 질세라 공연실황자료를 앞다투어 방송에 내보냈다. 이 공연장에는 김정은제1위원장이 청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입장하였고 수행원들도 그 뒤를 따라 음악회에 참석하였다. 당연히 공연내용들에 관심을 돌려야 할 방송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공연에 대한 관심보다는 최고사령관과 동행한 미모의 젊은 여성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만 분분한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이북은 무엇을 해도 조선 식, 우리 식을 높게 내세운다. 김일성주석 때도 김정일총비서 때도 그랬던 것처럼 주체를 높이세우는 기풍은 김정은시대에도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발랄한 젊은 여성 연주가들이 펼쳐가는 공연을 보고 반북정서는 어디로 갔는지 보수성향을 띤 인사들까지도 찬사일색이었다.

서양식 자본주의 문화를 받아드리려는 “파격적인 행보”니 “개혁 개방으로 나가려는 신호”라느니 하며 자기들 입맛에 맞는 평가를 아무렇게나 쏟아내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엄지손가락을 치겨세워 보였던 최고사령관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백두산에서 시작한 조선혁명의 자신감을 보았을 것이다.

혁명의 꽃으로 피어난 어은금


이북에서는 김정일총비서가 당 사업을 시작하던 1960년대 초부터 민족악기의 현대화가 없이는 민족음악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 내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통감하고 악기 개량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몇백년 동안이나 침체되어 있던 민족악기의 제한성을 과감하게 극복하고 민중들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민족악기의 세계화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었다.

김정일총비서는《민족악기를 현대적으로 개량발전 시키는 것은 민족음악을 시대적 감각에 맞게 발전시키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라고 지적 하였다. 이 시기에 아름다운 음색과 맑고 처량한 소리를 내는 민족적정서가 짙은 수많은 악기들이 현대적 요구와 입맛에 맞게 훌륭히 개량 되어 나왔는데 이들 개량악기 중에는 어음금도 있었다.

이북의 자료들에 따르면 어은금은 김정일총비서가 김일성종합대학에 재학당시 평양시 룡성구역 어은동에서 군사야영훈련을 하던 기간(1962년 8월~10월)에 이 악기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고 전하고 있으며 어은금이란 악기이름도 이 악기를 만든 지명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다. 기타와 만돌린의 장점을 살려 개량한 악기라는 설도 있는데 어쨌던 어은금은 그 두 악기에서는 전혀 들어 볼 수 없는 아름답고 우아한 음색을 형상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은금은 구조와 모양에서부터 민족적이다. 울림통은 농촌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롱박 모양으로 되어있고 악기의 머리부분은 조선여성들의 머리단장을 할 때 사용하던 비녀모양과 아주 흡사하게 닮았다. 소리색깔은 맑고 부드러우며 농현(弄絃)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서 민족적 색채를 더욱 짙게 해주는데 4도조 현 체계로 되어있는 어은금은 세계 어느 나라의 음악도 훌륭히 연주할 수 있게 과학적으로 고안되어 있다.

4개 줄을 가지고 있는 이 악기는 기타와 같이 어떠한 화성음들도 자유자재로 연주 형상할 수 있다. 악기의 연주는 손가락과 피크로 하는데 피크에 의한 트레몰로(떨림음)를 연주할 때 나오는 소리는 지금껏 다른 악기에서는 전혀 들어볼 수 없었던 신비한 음색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리고 어은금은 연주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음량과 음색을 마음대로 조절하게 되어있다.
이 악기는 형태와 모양이 민족적이고 아름다운데다가 성능과 음색까지 흠잡을 데 없이 우수하여 전문예술단체들과 민중들의 사랑 속에서 널리 연주되고 있다.

어은금은 이렇게 제작되었다


김일성주석은 1962년 학생들 속에서 군중문화 활동을 널리 전개하며 모두가 악기를 다룰 수 있게 준비할 데 대하여 교시하였다. 전국적으로 이 운동은 활발하게 펼쳐나가게 되었으며 이 운동을 좀더 효율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학교에서는 웅변모임, 음악감상모임 등 여러 가지 군중문화 운동을 활발하게 벌여나갔다.

그러던 그 해7 월 김정일총비서는 김일성종합대학의 한 기숙사를 방문하였다. 그곳 학생들은 학습을 위주로 공부한다는 핑계로 문화생활을 소홀히 하고 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김정일총비서는 주석님의 교시인 군중문화사업을 활발히 벌이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되겠다는 판단을 하고 학생들과 이 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하였다.

토의에서 악기를 제작해 보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 이 운동은 결코 악기가 없어서 자체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악기와 음악에 대한 파악을 더욱 깊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연주도 더 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김정일총비서는 강조하였다.

그러나 잠시 의욕적으로 불이 붙었던 악기제작사업은 8월부터 시작된 군사야영훈련 소집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총비서는 군사훈련이 시작된 10여일 후에 협의회를 다시 소집하였다. 학생들은 주석님의 가르침을 관철하자고 하면서도 토론만했지 조직사업은 제대로 하지않고 있는 것을 지적해 주며 악기를 자체로 만드는 사업이 왜 중요한지를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아직도 자기의 의중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김정일총비서는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간고했던 항일혁명시기 유격대원들 속에는 작가도 없었고 작곡가도 없었지만 가사를 쓰고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으며 6.25전쟁시기 인민군용사들은 총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속에서도 화선악기를 만들어 연주 하였다》고 상기시켜 주면서《사상적으로 힘을 합쳐 악기를 만들자》고 격려해 주었다.

이러한 총비서의 간곡한 말을 듣고 용기를 얻은 학생들 중에서는 바이올린이나 첼로도 만들어보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이 말을 들은 총비서는 웃으면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동무(학생)들은 무슨 일이던지 과학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 결함이라고 지적하면서 먼저 단소나 퉁소 같은 구조가 간단한 악기를 만들다가 경험을 얻고 재료가 해결되는 데에 따라 만돌린이나 기타 같은 악기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자상하게 말해주었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서 만들어진 악기들에는 제법 소리가 구슬프게 나는 피리도 있었는데 총비서는 ‘이 밤나무골에서 피리소리가 나니 사람 사는 고을 같다고 하며 무척 대견스럽게 생각하였다. 총비서는 점심참, 휴식 참을 이용하여 가파른 벼랑에 까지 올라가 거기에 있는 오동나무, 박달나무, 홍송 등 악기재료로 쓸만한 나무들을 구해다 주고, 전쟁시기 대피호로 쓰던 석수가 흘러내리는 굴속에 까지 들어가 통신선도 구해다 악기재료로 써보도록 하였다.

여기에 한없이 고무된 대학생들은 단소와 피리도 만들고 만돌린과 비슷하게 생긴 현악기 등 30여 종이나 되는 창작 악기들을 만들어 내놓았는데 김정일총비서는 하나하나 친히 악기들을 보아주면서 만돌린 비슷하게 만든 악기의 현 줄을 하나하나 튕겨보기도 하였다.

이윽고 총비서는 아직 우리가 바라는 소리는 내지 못하지만 처음 만든 현악기치고는 모양도 좋고 보기도 좋으며 소리도 그만하면 괜찮다고 하였다. 그리고 민족적 정서가 넘치는 악기 줄을 고를 데 대한 기술적 문제의 방도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대학생들은 총비서의 악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여 마지않았다.

학생들은 이 새로 태어난 악기에 이름을 붙이자고 야단들 이었다. 만돌린을 닮았다고 “신형만돌린”이라고 하자는 의견도 나왔고 신형기타라고 부르자는 학생도 있었는데 끝내 결론이 나지않고 있자 학생들은 총비서님께 결론을 내어달라고 하였다.

총비서는 웃으면서 새 악기가 모양이 만돌린과 비슷한데가 있지만 같지는 않다고 하면서《현악기가 만돌린과 같지 않은 것만큼 악기의 이름을”어은금”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확신에 넘치는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학생 여러분들은 악기이름을 새 기타나 새 만돌린이라고 부르자고 하는데 이 악기는 서양악기가 아닙니다. 이 악기는 완전히 우리 식의 악기이며 우리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남의 나라 이름을 본 따겠습니까?》 라고 하는 것이었다.

《군사야영을 하면서 어은동 골 안에서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어은금”이라고 부르는 것이 의의가 있습니다》라고 가슴에 와 닿는 말을 하였다.


대중악기로 되고 있는 어은금


어은금은 크기와 음역 및 음량에 따라 소(小)•중(中)•대(大)•저(低) 어은금으로 구분된다. 선율과 화음연주를 쉽게 할 수 있고 우리민족의 음악은 물론 어느 나라의 어떤 음악도 연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해서 어은금을 배우고 싶어하는 희망자들은 날로 달로 늘어나고 있으며 일터와 가정 어디서나 민족적 색채가 짙은 이 악기소리는 아름답게 흐르고 있다.

나라의 중요한 공연무대에서 나오는 어은금은 부드러우면서도 유순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작품의 예술성을 한층 높여주고 그 신비하고 매혹적인 소리는 독특한 효과를 나타낸다.

10년 전부터 각도와 지방의 예술교육기관에도 어은금을 전문으로 교육하는 학과를 신설했으며 평양의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등 학생들의 과외활동을 담당하는 기관에서는 어은금 서클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평양음악대학에서는 어은금전공학과를 새로 개설하고 어은금 전문연주가를 본격적으로 양성하였으며 연주기법을 과학화하고 체계화하였다.

김정은시대에도 대를 이어가며 빛나게 발전하고 있는 음악정치는 강성할 조선의 새 100년을 향하여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김정은제1위원장은 금년에도 광명성절음악회《태양을 따르는 마음》을 비롯하여 3.8국제부녀절기념 음악회, 인민극장에서 진행된 5.1절 경축 은하수음악회, 6.6 조선소년단 창립 66돌 경축 은하수관현악단 음악회 "미래를 사랑하라!" 등 여러 공연들을 참석하면서 정력적인 현지지도활동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 음악회들에서도 어은금의 신비하고 매혹적인 소리는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동영상 보기---김정은 최고사령관 참석하에 진행된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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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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