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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68]북 음악예술 통해 북을 알아본다<br><br>《결전의 길로》김옥성 작곡 석광희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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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7-09 10:06 조회3,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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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준무 지휘자(뉴욕 우륵교향악단 단장)은 68번째 연재 "북 음악예술통해 북녘을 알아본다" 에
"전시가요《결전의 길로》는 김일성주석이 좋아하는”우리 수령님이 사랑하신 노래’중의 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주석은 음악을 이렇게 지적하였다.“혁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장중한 교향곡이고
노래를 낳는 터전”이라고 하였으며”노래를 떠난 혁명이란 있을 수 없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혁명의
승리가 있다“는 고전적 명제를 내놓고 혁명을 승리와 영광으로 이끄는데 음악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았다".
며 조선최고의 작곡가 김옥성이 작곡 석광희가 작사한 <결전의 길로>을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연재-68]북 음악예술 통해 북을 알아본다

<결전의 길로> 김옥성 작곡 석광희 작사




*글:리준무 지휘자(뉴욕 우륵교향악단 단장)



<##IMAGE##>전시가요《결전의 길로》는 김일성주석이 좋아하는”우리 수령님이 사랑하신 노래’중의 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주석은 음악을 이렇게 지적하였다.“혁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장중한 교향곡이고 노래를 낳는 터전”이라고 하였으며”노래를 떠난 혁명이란 있을 수 없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혁명의 승리가 있다“는 고전적 명제를 내놓고 혁명을 승리와 영광으로 이끄는데 음악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았다.

김일성주석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인민군협주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창작가들에게 전시가요 창작을 더 힘있게 벌릴 데 대한 중요한 과업을 주면서 한편의 노래를 지어도 전쟁승리에 적극 이바지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절절하게 당부하였다.

그때 인민군협주단 창작가들은 침략자 미제를 쳐부숴야 할 처절한 전쟁에서 군대와 민중의 숭고한 애국심을 구체적이고도 심오하게 형상해야 한다고 한 교시를 가슴속에 새기고 총 포탄이 비오 듯 쏟아지는 최전방의 결전장으로 달려나가 인민군용사들과 피땀을 같이 흘리며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였다. 그런 나날에 많은 노래들을 창작하게 되었는데 그 창작품들 가운데 하나가 전시가요《결전의 길로》 이었다.

그런데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혁명대오에 기어들었던 반혁명종파분자들의 방해책동에 의해 이 노래의 보급에 문제가 생기었다. 이자들은 전우들의 죽음을 강요하는 것은 슬픔만 안겨주는 불량한 노래라는 딱지를 붙이고 부르지도 보급하지도 못하게 해버렸다.

바로 이런 때에 모란봉지하극장에서 사상과 혁명정신이 투철하게 반영된 이 노래를 들어본 김일성주석은 인민군협주단이 군대특성에 맞게 공연을 잘하였다고 치하한 다음<결전의 길로>는 전쟁의 노래인데 가사도 좋고 곡도 좋다고 하면서 싸움판에서 진짜 훌륭한 노래가 나왔다고 대단히 만족해 하였다. 사실 그 당시 이 노래는 전쟁승리를 앞당기려는 병사들과 민중들의 가슴속에 필승의 신심을 더 굳게 심어주는 명곡으로 전선과 후방에서도 널리 애창되었다.

김일성주석은 해외공연을 떠나는 연주단체들에게 가요《결전의 길로》는 ‘싸우는 조선’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노래인 만큼 외국방문연주회에서도 이 노래를 꼭 공연종목에 넣어서 조선의 기상을 온 세상에 떨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준엄했던 전쟁의 불길 속에서 태어난 승리의 노래 《결전의 길로》의 타오르는 생명력은 오늘도 군대와 각계각층의 근로자들 사이에서 남김없이 발휘 되고 있으며 59년 전, 군대와 민중들을 영웅적 투쟁에로 떠밀어 주었던 이 노래는 승리의 7.27을 맞이하는 오늘 더욱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

전시가요”결전의 길로”와 김옥성


김정일위원장은 가요‘결전의 길로’를 아니라 세계적인 작곡가라고 평가하였다. 그는 우리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합창《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교성곡《압록강》 《녀성의 노래》 《전호속의 나의노래》등 우리민족이 예술적 재부로 귀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음악들을 창작해 낸 재능 있는 작곡가이다.

이 노래들은 지금도 국가적으로 이루어지는 중요한 음악회에서 청중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곡목들로 뽑혀 자주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전시가요’결전의 길로”는 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1951년에 창작되었다.

김옥성은 1916년 황해남도 과일군에서 출생하였다.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지만 1947년 조선인민군협주단에 입대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옥성은 음악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대단히 강한 창작가였다. 독창적이고 개성이 뚜렷한 그의 창작세계는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백두산》 등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김옥성의 창작품은 선율이 민족적이고 대중적 색채가 짙은 것이 특징이다.

6.25전쟁 중에는 종군작곡가로 활동했으며 이후 1965년 사망할 때까지 음악가동맹 부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1951년 석광희가 작사하고 김옥성이 작곡한 결전의 길로는 독창곡으로뿐만 아니라 중창, 합창, 협주곡으로 편곡되어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다. 김옥성은 가요’결전의 길로’의 악보에 느리고 장중하게 연주하라는 요구를 하였다. 종군작곡가로 전장 터의 치열하고 처절했던 장면들을 직접 목격한 김옥성은 그날의 치열했던 결전장의 장면 장면들을 악보에 옮겨놓았던 것이다.


결전의 길로


1. 가열한 전투의 저기 저 언덕
피 흘린 동지를 잊지 말아라
쓰러진 전우의 원한 씻으려
나가자 동무여 섬멸의 길로

<후렴>
만세 만세 만세 높이 부르며
원수의 화점을 짓 부시며 앞으로
나가자 동무여 결전의 길로

2. 원수의 불구멍 몸으로 막은
전우의 죽음을 헛되게 말라
구령은 내렸다 탄우를 뚫고
나가자 동무여 섬멸의 길로

<후렴>

3. 피로써 승리해 가는 이 길이
그리운 고향에 뻗치고 있다
수령께 맹세한 붉은 맘으로
나가자 동무여 섬멸의 길로

<후렴>



피아노협주곡 《결전의 길로>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그리고 지휘를 할 때마다 천재적인 작곡가 윤충남이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대해 안타깝고 애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충남은 끓어오르는 애국심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협주곡‘결전의 길로’에 쏟아 부었다. 그 뜨거운 열정과 아름다운 꿈은 음악적으로 승화된 피아노협주곡으로 나오게 되었다.

수령의 통일정책과 주체적 민족음악을 바로 세울 데 대한 당의 방침을 높이 받들어 피아노협주곡’조선은 하나다’와 《결전의 길로》를 작곡한 윤충남을 `우리 식 협주곡의 개척자`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결전의 길”은 우리가 아는 다른 전시가요처럼 행진곡풍으로 작곡된 노래로 비장한 결의와 씩씩한 기상이 넘치는 노래이다. 《결전의 길로》는 《조선은 하나다》에서처럼 협주곡으로 편곡하는 데 선율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곡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에도 윤충남이 전시가요《결전의 길로》를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기법과 선율에서 특출한 실력을 발휘하여 피아노협주곡으로 우수하게 편곡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지난 70년대 피바다 가극단에서 활동했던 작곡가 윤충남은 작곡하는 데에서 제기되는 서양식 형식주의와 기교위주의 창작 관습을 과감히 탈피하여 `민족적`인 것과 `통속적`인 것을 추구했다고 하였다 그는 피아노협주곡 《조선은 하나다》, `결전의 길로`를 창작하면서 `우리식’ 협주곡창작의 새 방향을 제시하고 길을 열어놓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통일에 대한 염원과 열망과 필승의 의지가 담겨있는 윤충남의 피아노 협주곡 《결전의 길로》는 피아노협주곡 《조선은 하나다》가 나온 2년 후에 보다 높은 수준에서 완성 되었으며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지난 1978년 7월 이 곡을 들어보고 난 후 `이제는 우리식 피아노 협주곡도 국제무대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수준에 올라 있다고 대단히 만족스럽게 평가하였다.

유적들을 답사하는 길에서


1995년 백두산에서 있었던 해방50돐 경축행사에 초청되어 참가하였다. 국토를 종단하며 판문점에서 있는 경축행사와 예술공연에도 참가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들은 정전협정이 채결되었던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분단의 상징물로 세계가 알고 있는 판문점이 휴전협정이 체결 된 장소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조인에 서명한 곳은 공동경비구역의 판문점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장소였다.

김일성주석은 정전협정조인을 앞둔 어느 날 해당일군들에게 다음과 같이 정전협정 조인 장소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정전협정에 조인하는 것은 우리가 전쟁에서 미제를 패배시키고 놈들로부터 항복서를 받아내는 것으로 되며 우리 인민의 위대한 승리를 온 세상에 보여주는 의의 깊은 행사로 될 것 입니다》 《그러므로 정전협정조인을 아무데서나 대강 할 수 없습니다. 적들이 천막을 치고 하자거나 노천에서 하자고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어서”일정한 조인설비를 갖추고 위신 있고 의의 있게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한편 정전협정에 조인한 《유엔군》사령관 클라크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정부의 지시를 수행함으로써 역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라는 영예롭지 못한 이름을 띠게 되였다. 나는 모든 것이 실패라는 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선임자들인 맥아더와 릿치웨이 장군들도 동감 이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조인장소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는 《정전협정조인장》이라고 쓴 기념비 하나가 참가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이 비석에는”1950년 6월25일 조선에서 침략전쟁을 도발한 미 제국주의자들은 영웅적 조선인민군 앞에 무릎을 꿇고 이곳에서 1953년 7월27일에 정전협정에 조인하였다.”라고 쓰여 있었다.

6.25전쟁을 다룬 기록영화 《조국해방전쟁》을 보았다. 영화는 코리아전쟁의 정전협정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 집에서 유엔(UN)군의 모자를 쓰고 15개 추종국가와 방대한 무력까지 동원한 미제 침략자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인민군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의 도장을 찍었습니다. 바로 이 집에서 세계의 최강을 자랑해온 미제의 패배가 세상에 공포되었습니다.》라는 해설과 같이 가요‘결전의 길로’가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다.

기록영화의 해설가는《미제를 물리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지켜 싸운 조선인민의 위대한 승리는 오늘도 아니 먼 앞날에도 길이 빛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긍지에 넘쳐 있었다.

찬란하게 펼쳐진 김정은시대


《결전의 길로》의 승리의 정신은 김정은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뜨겁게 이루어지고 있다. 김일성주석의 탄신 100회를 맞는 2012년의 북조선은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신심도 드높은 발걸음에 보폭을 맞추어 힘있게 전진하고 있다.

선대 두 영도자의 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한 새로운 지도자를 수반으로 하는 김정은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나라는 한층 젊어져 있고 군대와 민중들은 새 영도자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있다. 김정은제1위원장을 통일의 광장에 높이 모시려는 인민들의 충정의 결의는 온 나라에 들끓고 있으며 자주적 통일의 숭고한 열풍은 북에서도, 남에서도 그리고 해외에서까지도 뜨겁게 끓어 번져나가고 있다.


*노래 동영상 보기



*동영상 보기- <결전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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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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