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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6]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br><br>스위스 최기환박사 건강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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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6-15 04:11 조회2,7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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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민족통신 노길남/손세영 특파원]그 동안 두문불출했던 스위스 제네바의
최기환박사가 “건강이 좋아졌다”며 밝은 표정으로 손을 내민다. 오랜만의 만남이었기에 반갑다며
어쩔줄을 모른다. 일본 도꾜를 비롯하여 미국 도시들에서 만났던 최기환박사는 지난 10여년 동안
과거처럼 활동할 수 없었던 탓으로 재미동포 통일운동인사들을 포함하여 일본, 카나다, 한국 및
심지어는 유럽지역의 통일운동 인사들도 그에 대해 무척 궁금하게 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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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스위스 제네바=민족통신 노길남/손세영 특파원]그 동안 두문불출했던 스위스 제네바의 최기환박사가 “건강이 좋아졌다”며 밝은 표정으로 손을 내민다.

오랜만의 만남이었기에 반갑다며 어쩔줄을 모른다. 일본 도꾜를 비롯하여 미국 도시들에서 만났던 최기환박사는 지난 10여년 동안 과거처럼 활동할 수 없었던 탓으로 재미동포 통일운동인사들을 포함하여 일본, 카나다, 한국 및 심지어는 유럽지역의 통일운동 인사들도 그에 대해 무척 궁금하게 여겨왔다.

그는 특히 스위스에서 민중출판사를 운영하며 1986년부터 저서 “민족사관의 재정립”, “”민족통일론의 새로운 전개”, “당신들은 북을 잘못 보고 있다” 등 30여권의 민족관계 서적들을 발행하여 국내외 동포들의 관심을 받아 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소식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또한 1993~95년에 범민련 유럽본부 의장을 역임했고, 해외동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개최되어 왔던 통일심포쥼에 참가하여 논문들을 발표하는 등 해외동포 통일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한 장을 담당해 온 인물이다. 그래서 그에 관한 관심도가 높았다.

최기환박사는 1929년 9월1일 서울태생이다.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나와 1956년부터 58년까지 2년동안 서울 중앙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강사로 그리고 조교수로 일하다가 1959년 독일로 유학왔다. 그는 독일의 본 대학의 법정대학을 졸업하고 박사를 받은 후에 연구활동과 사회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IMAGE##> 그는 30대초에 독일와서 하이델베르그 대학에 다닐 때 지금의 부인 미레라 여사(70)가 당시 20살 때 교제가 시작되어 30대 중반에 결혼해 결혼생활 반세기를 넘겼다. 이들 부부는 지금 50세의 아들이 있고, 여기에서 태어난 두 손녀가 있다. 이들 손녀들은 노래를 잘불러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기환 박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동안의 ‘두문불출’ 한 것이 특별한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건강문제가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특히 역사적인 남북정상이 6.15선언으로 세계가 주목하던 그 시점에 병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가슴부터 시작하여 복부아래 부분에 이르는 세뼘정도의 길이가 되는 곳까지 대형수술을 하고 그 것을 치료하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7~8년의 세월이 흘렀다.

병원치료 비용도 엄청나게 들어갔다. 정부의 보조금도 있었지만 지불해야 할 큰 몫은 한국에 살고 있는 형이 지원해 주었다. 지금은 그 형은 세상을 떠나고 누이동생도 아홉이나 되는데 다 세상을 떠나고 둘만 남았다. 누이 동생이 가끔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묻곤한다고 귀띔해 준다.

“건강은 좋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5년전부터 컴퓨터에 글을 찍는데 손가락이 제대로 놀지 않아 이제는 글쓸 때 컴퓨터를 이용하지 못하고 손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쓰고 싶은 글들을 간편하게 컴퓨터에 기록하지 못하고, 종이에 기록해 왔다고 설명한다. 최근에도 20여권의 분량이 되는 글들을 쓰고 있는데 주로 우리나라와 일본관계 문제를 포함하여 조국반도 분단전후사에 해당하는 시기의 내용들이라고 한다.

그 밖에 그의 건강상태는 어떠한가. 그는 이에 대해 “당뇨, 혈압 등 다 좋은데 귀가 잘 안들려 요즘에는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면서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맥주를 권했다. 그리고 자신도 맥주 두세 잔을 연거퍼 마시며 즐거운 표정으로 그리고 자주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주고 받는다. 옆에 앉아 있는 부인은 더 이상 마시지 말라고 눈과 머리로 신호를 보낸다.

<##IMAGE##> 최기환박사는 요즘 옛날에 살던 집을 그대로 두고 의료진들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양로원에 주로 머물면서 집에는 가끔 우편물들을 열어 보기 위해 왔다 갔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부인 미레라 여사는 얼마전 정년퇴직하고 최박사가 없는 집에 혼자 있기 보다는 아들집에 주로 거처하면서 손녀들과 함께 지내왔다. 그는 매일 한번씩 최기환박사가 있는 양로원에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미소도 자주짓고 대화도 밝게 하는 최기환 박사의 얼굴에는 다른한편에는 뭔가 고독함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자는 물었다. “선생님 혹시 지난 시기에 가슴에 맺힌 사연들이 있지는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주저하면서 선뜻 반응하지 않는다. 맥주를 서너 목음 마시고 지나가는 이야기로 “옛날 동지였는데 매듭을 짓지 못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그게 부담이 된다”고만 표현할 뿐 누구와 무슨일이 있었는지 밝히지 않는다.

언젠가 그의 아들 최일(50)이 20대 중반이었을 때 결혼문제가 주위 사람들에게 화제가 된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결혼이 성사되지 않아 최기환 박사가 무척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곤 했는데 혹시 그런 문제 때문에 그 이후 마음고생이 심하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그 문제로 고민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심한 오해지…”라고 대답하며 아들은 중국계 며느리와 결혼하여 손자손녀들 낳고 행복하게 잘산다며 며느리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최기환박사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유한 집안출신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점들은 비교적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혼자 재산을 관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그 시대에 세금을 아주 많이 내는 정도로 부자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기환박사는 사회정의감이 강했고, 독일에 유학온 이후에는 조국의 통일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왔다.

그는 요즘의 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산책도 하고 글도 쓰며 건강도 관리하고 있다”고 하루 일과를 설명하고, “우리 조국이 하루라도 빨리 분단의 아픔을 끝장내야 하는데 너무길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지배와 간섭에서 탈피하여 6.15남북공동선언이 제시한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IMAGE##> 최기환박사는 이어 “우리민족은 미제국주의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며 동시에 일본이라는 나라와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는 과제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일제의 교활한 역사를 되새기며 그의 어머니가 일제시대 관리들에게 피아노를 포함하여 재산을 빼앗기며 설움받았던 역사, 우리 민족이 우리말까지 빼앗기고 40년 암흑생활로 고통받았던 그 역사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또 일제때에 일본관리들의 횡포도 화가 나지만 이들 횡포에 가세하여 친일매국하며 우리 동족을 못살게 굴었던 그들의 앞잡이가 된 변호사들이나 친일 지식인들이 더 증오스럽다고 얼굴을 붉힌다.

최기환박사, 그의 애국열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건강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으려고 조용하게 지냈던 지난 시간들은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그의 인품이며 성격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작별순간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동시에 멀리서 와준데 대해 감사했다.


*연락주소: 3. Rue De Fribourg 1201 Geneva Switz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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