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종활 선생 부인 윤기영 여사와 공항대담<br><br>남편 운명한지 1주기 맞아 둘째 손자 혼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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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2-13 04:59 조회2,92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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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나이드신 어머니 한분이 2012년 2월11일 토요일
오후 3시 평양으로 떠나는 고려민항 156번기 대기실에서 기자에게 다가와 인사를 한다.
알고보니 재일동포사회에서 통일운동하시던 원로 리종활 선생(평통협 회장 역임)의
부인 윤기영 여사(84)이다.
오후 3시 평양으로 떠나는 고려민항 156번기 대기실에서 기자에게 다가와 인사를 한다.
알고보니 재일동포사회에서 통일운동하시던 원로 리종활 선생(평통협 회장 역임)의
부인 윤기영 여사(84)이다.
<##IMAGE##> 고 이종활 선생 부인 윤기영 여사와 공항대담 남편 운명한지 1주기 맞아 둘째 손자 혼례식 <##IMAGE##> [심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나이드신 어머니 한분이 2012년 2월11일 토요일 오후 3시 평양으로 떠나는 고려민항 156번기 대기실에서 기자에게 다가와 인사를 한다. 알고보니 재일동포사회에서 통일운동하시던 원로 리종활 선생(평통협 회장 역임)의 부인 윤기영 여사(84)이다. 무척반가웠다. 이들의 미국방문 때에도 뵌 분들이기에 한층 더 반가운 만남이었다. 그러나 슬픈 소식은 이종활 선생께서 지난 해 2월14일 일본도꾜에서 세상을 떠나 이제 곧 1주기가 된다고 한다. 고인의 유골은 지난 해 평양시 인근지역에 위치한 동명왕릉이 있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해외동포 애국자묘’에 묻혔다. 심양공항에서 윤기영 여사를 처음 뵙는 순간 그는 윌체어에 몸을 싣고 안내자의 도움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일본 정부 당국의 반인륜적인 정책 때문에 재일동포들의 고향방문 길도 어려워졌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일본과 원산을 오가는 여객선 만경봉호까지 가로 막아 온 것이 일본 당국이기 때문이다. 공항대기실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리종활 선생과 그 가정에 관한 이야기도 알 수 있었다. 고 리종활 선생(1926.1.25~2011.2.14)은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함흥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가서 와세다 대학을 나왔다. 부인 윤기영 여사는 일본서 의사집안에서 태어난 2세동포이다. 분까다이가꼬(문화대학) 재학시절 동생이 와세다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이종활 선생과 인연이 되었다. <##IMAGE##> 부인은 고인을 돌아보며 “말 수가 적은 분이지요. 그리고 평생을 살면서 저에게 언제나 존대말을 하며 존중해 주었던 분입니다. 남녘의 어느 분은 농담을 하면서 저의 남편을 가리켜 빨갱이 신사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부인의 얼굴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는 표정이다. 방광암과 대장암 수술까지 하고 그 이후 4년여 동안 회복치료를 받아 왔으나 막바지에 다시 식도암으로 고생하다가 운명했다고 설명하면서 부인은 “의사들까지 모두가 좋은 신사선생이라고 말할 정도로 좋은 분이셨다.”고 회고하며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부부사이가 대단히 화기애애했던 가를 말해준다. 이들 사이에는 외아들이 있다. 리대림씨는 1972년 북부조국으로 귀화해 살다가 결혼했다. 이 며느리는 컴퓨터계에서 이름있는 인물로 ‘노력영웅’칭호를 받은 량수녀씨이다. 이들 사이에 두 아들이 있다. 부인은 “첫 손자(외국어대 영어/일어과 출신)는 지난 해 남편(할아버지)이 세상을 떠난 후 한달만인 3월에 장가를 갔고, 둘째 손자는 김일성종합대학교 수학과 출신으로 이번 할아버지 1주기를 지나고 바로 그 이튿날인 2월15일 가족들 모임으로 혼례식을 갖고 손님들 초청하여 잔치를 하는 것은 오는 5월에 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양가 가족들이 평양과 도교에 흩어져 살고 있기에 두번에 걸쳐 행사를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www.facebook.com/kilnam.roh 혹은 www.twitter.com/#!/minjoktongsh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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