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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조의방북 보고회 통해 북녘사회 현주소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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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1-07 20:44 조회2,8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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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손세영 편집위원]로스엔젤레스 지역 통일단체들의
대표들은 7일 정오 시내 용궁식당 별관에서 김정일 위원장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
온 ‘조의방북 재미동포대표단 보고회’ 모임을 통해 북녘 땅 현지에서 진행된
여러가지 모습들을 청취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날 보고회는 양현승 목사의 사회로
묵념, 단체장들 인사말(박상준, 김현환, 조경미 회장들), 그리고 윤길상 목사,
양은식 박사, 현준기 선생, 노길남 박사가 조의방북하여 평양현지에서 보고 느낀
소감들을 각각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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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조의방북 보고회 통해 북녘사회 현주소 소개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손세영 편집위원]로스엔젤레스 지역 통일단체들의 대표들은 7일 정오 시내 용궁식당 별관에서 김정일 위원장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 온 ‘조의방북 재미동포대표단 보고회’ 모임을 통해 북녘 땅 현지에서 진행된 여러가지 모습들을 청취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날 보고회는 양현승 목사의 사회로 묵념, 단체장들 인사말(박상준, 김현환, 조경미 회장들), 그리고 윤길상 목사, 양은식 박사, 현준기 선생, 노길남 박사가 조의방북하여 평양현지에서 보고 느낀 소감들을 각각 소개했다. 이날 행사를 위해 정신화 전도사(한민족교회)가 노래 ‘직녀에게’(문병란 작사, 김형성 작곡)을 불렀고, 홍순호 선생이 하모니카 독주로 ‘두만강’과 ‘에델바이스’를 소개했고, 조의방북에 대한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고, 마지막 순서에는 참석자들 모두가 일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손과 손을 맞잡고 합창하고 이 모임을 폐회했다.

윤길상 목사(재미동포전국연합회 회장)는 “북녘사회는 지도자, 군민들이 대가족의 한 식솔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녘동포들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애절하게 통곡하며 가슴을 치고 , 땅을 치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고난의 행군을 하며 걸어온 66년의 민족분단 발자취에서 이들은 모두 큰 식솔같이 생사고락을 함께해 왔기에 자기 지도자가 서거한 것에 대하여 그렇게도 통절하게 가슴아파했다고 생각된다.

<##IMAGE##>“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서거에 대하여 북녘동포들이 슬퍼하는 그 배경에는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이후 그 이듬헤 불어닥친 큰물피해, 여기에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나라들의 붕괴바람이 불어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닥쳐왔고, 설상가상으로 클린턴 대통령 이후 죠지 더불유 부시 미대통령의 대북압살고립 적대시정책으로 힘겨운 고난의 행군을 해오면서도 입을 것, 먹을 것을 줄여가며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을 건설해야 만 했던 그 어려운 날들을 쉬지 않고 밤낮으로 현지지도의 길에 나섰고, 끝내 겹싸인 피로 때문에 달리는 열차에서 숨을 거둔 것에 대해 북녘동포들은 그렇게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도 김정일 위원장은 핵보유국으로, 첨단과학기술 강국으로 북녘사회를 우뚝세워 놓았기 때문에 그는 비록 서거했어도 그 뒤를 이은 김정은 지도자가 조금도 흔들림없이 강성대국을 건설할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을 이번 방문에서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돌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지도자는 그 누구도 북을 침략할 수 없는 억제력을 소유한 조건에서 이제야 말로 북녘동포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경공업에 힘을 기울일 수 있는 환경을 한층 더 성숙화 시키는데 이미 지난 몇 년 간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현지지도에 임해 왔다는 사실도 아울러 파악할 수 있었다.”

양은식 박사는 “북녘 땅은 통곡에서 통곡, 오열에서 오열하는 그야말로 울음과 통곡의 바다를 연상할 정도로 전체 동포들이 하나같이 슬픔과 애통에 잠겨 있었다. 나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서거때에도 초청을 받고 방문하여 국상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이번에도 국상을 치르는 북녘동포들의 애통해 하는 울음소리와 그 눈물은 마치도 바다를 이룰 정도로 북 전역에는 애도의 물결로 들끓었다.

<##IMAGE##> 12월28일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거행된 장례식과 영구차의 평양시내 행진 모습들, 그리고 29일 김일성 광장에서 수십만 군중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도대회는 참으로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들의 애통하는 울음소리와 오열은 진정으로 지도자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구체적인 증거로 볼수 있었다. 남측과 해외 일부 언론들은 그러한 모습들을 연출이니 뭐니 말하는 보도들도 보았는데 그것은 사실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관찰하고 돌아왔다. 나는 또 북녘동포들이 저토록 통절하게 애석해 하는 그 원인들이 뭘까를 생각했다. 높은 자리를 누리기 보다는 인민들을 위한 일을 더 많이 했고, 고난의 행군시절 잠못자고 피로가 겹쌓일 정도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리하였기 때문에 순직한 것을 안타까와 하는 모습들이었다.

인공지구위성을 비롯하여 CNC 같은 새세기 산업혁명을 위한 기술개발, 주체철 생산체계화, 주체비료, 희천발전소 등 전력산업 개발, 살림집 등 생활향상을 위한 각종 사업들을 정력적으로 벌여 오면서도 자신은 넥타이맨 옷 한번 입어보지 못하고 365일 인민군초소로, 경공업 기업소로, 첨단과학 기술 기지 등으로 동분서주하면서 쌓인 피로, 그리고 김일성 주석의 염원이며 소원이었던 조국통일을 위하여 6.15선언과 10.4선언을 고수하고 이행하려고 온 정성을 다 기울이며 노력하여 온 희생적 활동들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로 서거했다는 것이 북녘동포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죄책감이었고, 죄송한 마음이었다는 것이 내가 만난 북녘동포들의 일관된 반응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북녘 동포들이 그 토록 통절하며 울부짖는 모습들을 잠시도 잊을 수 없는 것이 나의 심정이다.

현준기 선생은 “나는 이번 조의 방북을 통해 무엇을 보았는가”라고 질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대가족제를 보았다. 이것은 일심단결을 보았다는 말이다. 2천년 전에는 중국에 노자철학이 있었지만 20세기와 21세기에 와서는 주체철학이 조선에서 창시되었다. 조선은 김일성 주석에 의하여 한 나라를 대가족화하는데 확고부동하게 확립시켰다는 것을 이번 방문에서 구체적으로 관찰 할 수 있었다. 여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할이 지대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사상유례가 없는 선군정치를 통하여 인류역사에서 찾아 보기 힘든 자주화의 역사를 창조해 냈고, 대외교전에서 백전백승의 업적들을 남겨놓았다는 것을 돌이켜 보면 놀람을 금치못한다.

나는 또 이번 방문에서 한치의 차질도 없는 후계자 승계과정을 관찰 할 수 있었다. 더욱이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은 대장의 늠름함과 당당함을 엿볼 수 있었다. 체구와 그 자세는 물론 애도기간에 여러가지 지침들을 내려주는 모습들을 접하면서 이미 준비가 완료된 지도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녘 형제자매들이 쏟아 내는 통곡의 눈물바다는 진정, 그 자체였다. 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지적은 북녘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며 한편으로는 순수하고 순진하다고들 말한다. 이말은 거짓을 모른다는 이야기와도 같은 뜻이다. 이들의 통곡과 눈물을 연출이라고 비하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북녘동포들이 진심으로 지도자를 흠모하고 존경하며 한 식솔의 어버이로 생각하며 그 서거를 애통하게 슬퍼하는 모습들을 보고 왔다. 이것이 북녘동포들의 진심 그대로이다. 그 어디에서도 가식이라는 것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노길남 박사(민족통신 편집인겸 대표)는 이번 조의방북에 대해 조의와 취재를 겸했다고 소개하고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IMAGE##>재미동포 조의방북 대표단은 16명, 재일동포 50명, 재중동포 50 등 2백여명의 해외동포들이 이번 김정일위원장 서거를 맞아 장례식에 참석했다. 나는 금수산기념궁전에 가서 조의를 표하고 김정은 대장을 직접 만나 조의를 표했고, 남녘에서 참석한 이휘호여사 일행 7명을 금수산기념궁전 입구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고, 일주일 동안 여러곳들에서 취재활동도 벌였다. 남측 보수언론이나 서방 보수언론이 보도한 폄훼 한 내용과는 북녘 현지의 모습들은 아주 달랐다. 해외동포로서 언론인으로서 참석한 사람들은 제4언론의 주필 정기열 박사와 조선신보 김지영 부국장 등 취재진, 그리고 민족통신 특파원으로 참석한 나를 포함하여 3개 언론사들이었다. 현지에 참석하고 쓴 보도들은 모두 진실 그 자체였다.

한가지 새로운 점은 이번 방문하는 첫날 내가 머물러 있던 고려호텔 방에 인터네트를 볼 수 있는 컴퓨터 모뎀을 설치하여 30분에 6.6유러를 지불하고 사진들을 포함하여 보도자료들을 마음대로 송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금수산기념궁전을 비롯하여 평양체육관 등 평양시내 6개지역에 설치한 조의소(빈소)에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었고, 북 전역에 설치된 6만여개의 조의소들의 소식들을 조선중앙통신에 의해 실시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이 항일투쟁을 하던 시기에 김주석의 안위를 위해 자기 한 목숨을 던진 중국인 항일열사 장울화 열사의 가족 7명이 조의방북을 하여 그들과 특별대담을 가졌고 방북직후 연길을 거쳐 무송에 가서 가족들을 보충취재하고 돌아왔다.

평양에 머물던 애도기간(2011.12.24~31)에는 모든 분위기가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고, 경건한 환경으로 추모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새벽2시, 때로는 새벽5시까지도 조의소를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모여 지도자를 통곡과 눈물로 애도하는 모습들이었다. 특히 장례식이 있던 날 영웅거리, 천리마 거리를 지날 때 북녘동포들이 김정일 위원장의 영구차가 지나갈 때 눈길을 밟지 마시라고 목도리를 풀고, 오버코트를 벗어 아스팔트 길에 깔아 놓은 모습을 보며 이것이 바로 지도자와 인민들 사이에 싻튼 사랑의 관계이며, 이민위천의 관계이며, 동지적 의리관계이며, 혁명적 의리관계이며 동시에 북녘사회의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관찰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계들이 바로 그 어떤 핵무기 보다 강한 ‘일심단결’의 씨앗들이다. 애도기간이 끝났는데도 대부분의 일꾼들은 평소에 즐기던 술을 삼가고 있다. 앞으로 1년 동안은 금주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일꾼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인류역사상 지도자와 그 구성원들의 관계가 이렇게 끈끈한 적이 있었던가라고 더듬어 본다. 결론은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북녘사회와 같이 지도자와 인민이 하나된 사회를 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29일 김일성광장에서 수십만 군중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대회가 진행되었고, 이 행사가 끝나면서 이곳 북녘동포들은 그 슬픔과 애통하는 마음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새로운 결의를 다지며 두 주먹을 불끈쥐는 모습들을 여기저기서 관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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