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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노 칼럼] 내친김에 평양시민 김련희씨와 남은 3명의 장기수들을 북녘 가족품으로 돌려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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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5-06-19 19:32 조회5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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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노 칼럼] 내친김에 평양시민 김련희씨와 남은 3명의 장기수들을 북녘 가족품으로 돌려보내야

[민족통신 편집실] 

글: 이흥노 (워싱턴시민학교 이사)




이재명 새정부가 지난주 대북확성기 방송과 대북삐라 살포를 전격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자 북측도 7시 간만에 대남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화답했다. 이를

지켜본 모든 국민이 일제히 그리고 한결같이 이재명 새정권은 윤석열 검찰

정권과의 결정적 차별화를 목격한다면서 기쁨을 금치 못하고 있다. 무엇

보다 매일 밤잠을 설치던 접경지역 주민들이 이제는 발을 뻗고 편히 잠들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좀 더 크게 보면

비록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꽉막힌 남북 관계를 열어제치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아주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될만 하다.


이재명 새정부 앞에는 수 많은 난제와 과제가 놓여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것이 바로 내란 청산이다. 이의 청산 없이는 한 발자욱도 더

전진할 수 없다. 왜냐면 윤 검찰 정권이 사회 정부 각계 각층에 워낙 깊숙히

대량으로 자기 세력을 박아놨기 때문에 여전히 중동 암약하고 있어서다.

거덜난 경제와 외교를 살리는 게 너무도 절박하다. 이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윤석열 내란수괴가 전쟁과 계엄을 통해 영구집권을 노리고 조성한

남북 적대 관계를 끝내야 한다. 친선 우호 관계를 거쳐 상호 협력 협조

관계로 발전해서 좋은 이웃나라가 되는 게 절박하다.


물론 윤석열에 의해 완전히 상실된 신뢰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당연히 말

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 대북확성기 방송과 대북삐라 살포 중단 조치가

결정적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중단 조치 7시 간만에 북녘에서도 중단으로

화답했다. 이것을 사소한 일로 치부할 게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징검다리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무엇 보다 국제 관계나 남북

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으려면 신뢰가 앞서게 마련이다. 북녘에서 즉각

좋은 화답이 답지했다는 것은 매우 좋은 신호다. 깡그리 상실된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내친김에 이재명 정부가 중단없이 계속 성과를 내야 한다. 북녘 시민들을

그들의 북녘 고향으로 돌려보내자는 것이다. 이들은 북녘 혈육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 비극의 주인공들

중에는 평양시민이라는 걸 솔직하게 그리고 떳떳하게 주장하면서 당국의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수 십 년 형기를 마친 마지막 장기수 3명이

있다. 


김련희씨는 2011년, 중국에 사는 4촌 언니댁을 방문했다가 지독한

악질 탈북부로커로 부터 “두 달만 한국서 일하면 목돈을 검어쥐고 평양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꼬임에 넘어가 한국땅을 밟았다.

김련희씨는 입국 과정에서 이미 속았다는 걸 깨닫고 부로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여권 까지

압수된채 강제로 입국하게 됐다는 것이다. 국정원 도착 즉시 그는 속아서

입국하게 됐다는 사연을 털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도와달라며 울며불며

호소를 했건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두고온 연노한 엄마와 딸이 살고 있는

평양으로의 귀향을 위해 14년이나 양 발이 피가 나도록 헐도록 뛰었지만,

돌아오는 건 당국의 냉대화 감시 강화 뿐이었다. 다행히 사회 각계각층의

따뜻한 손길이 김씨에 와닿아 지금 유일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가족 품으로 돌아가려는 김련희씨가 겪고 있는 파란만장의 사연을 다룬

다큐 영화 '그림자꽃' (2019)이 제작되어 해내외 영화제에도 출품되어

호평을 받은 바도 있다. 김련희씨는 분단 현실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분단의 제물로 희생이 강요되고 있다. 김씨를 북녘 혈육의 품으로

돌려보낼 현행법이 없다는 구실로 외면하려는 당국의 태도와 시민들의

무관심은 우리의 양심을 아프게 찔러댄다. 김씨는 KPI뉴스 기자와의

인터뷰 (2020)에서 남북 관계를 개선한 문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제발 저

고향에 가서 가족 만나게 해주세요”라 통사정했으나 소리없는 메아리였다.


김련희씨에 버금가는 기막힌 사연의 황소 이산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북녘의 장마로 김포와 인접한 북의 개풍군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짐작되는

황소를 경기도 김포 한강 하류에서 발견된 것은 96년 8월이었고 5개 월 후

97년 1월 추운 겨울에 해병대가 구출했다. 지뢰를 밟아 한쪽 발꿈치가

날라가고 뼈만 앙상한 황소를 김포시 농업기술센터의 이재준씨가 도맡아

길렀다. 김포 군수가 직접 '평화의 황소'라는 이름을 달아준 이 황소를

이재준씨는 언제가 북녘 황소의 고향으로 돌려보내자는 일념으로 온갖

정성을 다해 건장한 황소로 길러냈다.


20년 전 무인도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황소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경인일보 보도 (2017)의 덕분이다. 이 놀랍고 반가운 소식을 접한

나는 만감이 교차됐다. 불현듯이 김련희씨의 복사판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시 김포 농업기술센터의 이재준씨에게 “본의 아니게 이산가족이

된 황소를 정성껏 돌보는 것이 통일을 위해 큰 몴울 하는 것”이라며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 애석하게도 기다리던 답장은 끝내 오질 않았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글을 통해 이들의 억울한 이산가족 사연을 널리 알리고

당국에 호소하는 일이 전부였다.


당시 “황소와 김련희씨 두 이산가족을 북녘 가족품으로” 제목으로 인터넷

매체에 발표해 좋은 반응과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평화의 소가 고향땅으로

보내지면 태어나 자란 자기집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고 주인은 또 어릴때

헤어진 으젓한 황소와 눈물의 상봉을 하리라는 상상을 해봤다. 김련희씨가

귀향하게 되면 누구 보다 17살에 헤어진 딸과 연노한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할까. 김씨는 실명된 어머니가 앞을 보지 못하지만 목소리는 알아볼

것이라며 어머니와의 극적 상봉의 꿈을 잠시도 버린적이 없고 끝내 이꿈이

성취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신념의 화신”이라 불리는 34년 장기수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씨를 93년 북송 조치를 취했다. 그로 부터 4년이 흐른 후 97년에

'평화의 황소'가 구출됐다. 이인모 장기수의 북송이라는 전례가 있는데도

구출된 황소를 북녘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매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것은 비록 말못하는 동물이라 하더라고 황소가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할까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귀향 조치를 취하는 게

우리의 몫이고 도리가 아니겠는가. 단순히 동물의 귀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봐야 맞다.


문재인 정권에서 부터 불기 시작한 남북 간 훈풍을 타고 북녘 고향 혈육의

품으로 가게해달라고 전국을 누비며 울며불며 애걸복걸하는 김련희씨를

문 정권이 매몰차게 외면하는 것을 보고 너무도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고

분개도 했다. 김련희씨는 딸과 같은 또래의 북녘 여자선수들을 직접 만나 딸

생각을 하면서 안아주려는 큰 희망을 안고 강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웬걸

당국에서 김씨의 접근을 차단하고 나섰다.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북녘 여선수들이 귀국하는 동선을 따라 판문점 까지 달려갔다. 허나

이번에도 당국은 접근 조차 못하게 막았다.


두고 온 딸 생각을 하면서 여선수들의 손목이라도 잡아보고 떠나보려고

마음먹었으나 이 소망도 허사가 됐다. 김련희씨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땅바닥에 털석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악질 탈북부로커 보다

자신의 무지와 무기력을 원망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부는 터라 부모 자식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이 나날이

부풀어지는 판에 당국이 보인 잔인한 처사에 실망 분노 희망이 교체되곤

했다. 김씨는 문 정권이 2차 북송을 단행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혹시 자신도

묻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을 걸로 짐작이 간다.


이미 1차로 6.15남북공동선언(2000년)에 따라 64명이 판문점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갔다. 허나2차 북송 희망자 대부분은 연로해 세상을 떠났다.

문재인 정권이 합법적일 뿐 아니라 명분도 있는 2차 북송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것 뿐 아니라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실패는 정말 개탄스런 큰 실책이자 오점으로 우리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나는 20년이 넘게 김련희씨와 형기를 마친 장기수들의 북송을 줄기차게

글과 행동으로 촉구해오고 있다. 가족상봉과 남북공동행사를 위해 평양에

가면 반드시 송환된 장기수들을 만나는 게 나의 공식 일정이다.

2005년에 장기수 몇 분을 만났고 두 번째 2008년엔 당국에 특별히 부탁해서

15분을 고려호텔옆 단고기 전문식당으로 초대했다. 이미 나와 구면이 된

장기수들도 있어 쉽게 어울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술잔이 오가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에서 오간 흥미로운 이야기 중에는; ∇그리던

조국땅을 밟고 바로 조국의 흙을 먹었다, ∇우리는 너무 행복해 더 바랄 게

없다, ∇우리가 조국품에 안길 수 있었던 건 인권과 결혼한 권오헌 선생의

덕택이 크다, 등이다.


귀국 장기수들이 한결같이 권오헌 선생의 은혜를 절대 잊을 수 없다는 말이

나를 권오헌 선생을 만나도록 떠밀었다. 평양에서 이들과 작별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울을 둘렀다.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처음

권오헌 선생과2차 송환을 기다리는 몇 분의 장기수들도 만났다. 나는

“강남갔던 제비가 봄소식을 가지고 왔다”고 말문을 열고는 평양에서 만난

귀국 장기수들의 소식을 전했다. 애석하게도 양심수 후원회 명예회장

권오헌 선생은 양심수와 장기수의 대부로 평생을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싸우다가 금년 봄, 2차 북송을 성공시키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 새정부의 절체절명의 과제는 두 말할 것 없이 조기 내란 청산이다. 그와

동시에 매우 중대하고 시급한 것은 윤석열 내란수괴가 절단낸 남북 관계를

바로잡는 일이다. 이미 확성기 방송과 대북삐라 살포 중단에 대해 북측은

아름다운 화답으로 대응했다. 이것은 매우 좋은 신호가 분명하다. 중단 없이

잃어버린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평양시민 김련희씨와 남은 장기수 3명을

조속히 북녘 혈육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도적 차원에서

뿐 아니라 실종된 신뢰를 회복하고 단절된 대화 견인을 위해서도 이들의

북송이 적극 검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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