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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칼럼] 위대한 죽음 이덕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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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5-04-07 18:39 조회3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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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칼럼] 위대한 죽음 이덕구 선생


아래 이덕구 선생에 관한 글은 6년 전 이은탁 선생이 올린 글로 이적 선생의 페이스북 '이적의 자주통일방'에서 게재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제주도 인민유격대가 1948년 4월 3일, 미군철수, 단독선거반대, 이승만 타도를 외치며 무장봉기했다. 남로당(남조선노동당) 제주도지부 군사부장, 인민유격대사령관 이덕구(1920~1949년 6월7일)가 봉기를 이끌었다.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던 이덕구(당시 교사)는 1949년 6월 7일 경찰과 교전 중 29세로 전사했다.





이덕구와 인민유격대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적으로 규정하고무장투쟁을 벌이다 전사했다. 따라서 국가에 유공자 인정을 요구할 수 없다는 거 안다. 그것은 통일조선을 바랐던 그들도 바라지 않는 일을 것이며 현 체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덕구와 인민유격대의 투쟁을 빼고서는 4.3항쟁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피해담론’만으로는 4.3항쟁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반독재, 반외세, 반자본주의, 통일 정신이 계승해야 할 4.3항쟁의 참뜻이다.

소설가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에 1949년 6월 8일 제주 관덕정 광장에 십자형틀에 묶여 전시된 이덕구의 주검을 묘사한 부분을 덧붙인다.

“관덕정 광장에 읍민이 운집한 가운데 전시된 그의 주검은 카키색 허름한 일군복 차림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집행인의 실수였는지 장난이었는지 그 시신이 예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에 높이 올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 그랬던지 구경하는 어른들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심란해 보였다. 두 팔을 벌린 채 옆으로 기울어진 얼굴, 한쪽 입귀에서 흘러내리다 만 핏물 줄기가 엉겨 있었지만 표정은 잠자는 듯 평온했다. 그리고 집행인이 앞가슴 주머니에 일부러 꽂아놓은 숟가락 하나, 그 숟가락이 시신을 조롱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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