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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67. 비전향장기수들을 보안관찰법을 비롯한 악법으로 그물망처럼 묶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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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6-08 11:29 조회2,1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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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67

비전향 장기수들을 보안관찰법을 비롯한 악법으로 그물망처럼 묶어놓고 있다.

[민족통신 편집실]



김영승 선생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비전향장기수들은 만기로 출옥을 했어도 악법으로 묶어 놓아 꼼짝달삭 못하게 하고 있다.

악법인 보안관찰법도 인권말살의 근원인 사회안전법과 같이 비전향 여부를 기본핵심으로 하고 있다. 사회안전법의 보안감호처분이 전향여부를 하고 있어 1975년 이 법이 제정되어 전국의 비전향장기수들을 단 한번에 잡아들이고 보안감호처분시켜 청주보안감호소에 수감시키고 무지 막대한 고문구타를 자행했다.

비록 사회안전법 폐지로 비전향장기수들이 석방되었으나 보안관찰 법에 의하여 묶고 있는 것이다.

사회안전법이 월남에서 미제가 폐망하자 동시에 괴뢰월남이 폐망해 월남이 통일되자 박정희 군사팟쇼 독재자는 조선이 남침하게 되면 비전향장기수들이 일시에 동원된다는 구실조건으로 1975년에 사회안전법을 제정하여 일시에 전국에 살고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잡아들여 보안감호처분 시켜 청주보안감호소에 구금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감옥에서 만기가 되어도 전향하지 않는한 만기전에 감호처분시켜 만기일 후에 청주보안감호소에 구금시키고 전향 말살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1975년 6월에서 1976년 까지 비전향장기수 176명를 감금시키고 1989년 폐지 될 때까지 16명이 희생되고, 전향하게 만들어 결국 52명이 비전향으로 출옥하게 되었다.

현재 비전향장기수동지들은 10여명이 생존하고 있으나 모두 90대에 이르려 건강이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

보안관찰법은 법무부에 심위 위원회가 있어 2년마다 심사하나 형식적이고, 전향하지 않는한 계속 2년 갱신시켜 무기아닌 무기와 같아 작은 감옥에서 큰 감옥으로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도 재판에 의한 것이 아니라 행정 처분인 것이며 전향여부가 기본핵심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비전향장기수들은 활동능력이 있는 한 절대로 보안관찰처분을 면제받을 수 없다.

비전향장기수들은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원이나 문밖출입을 못하게 되면 소위 면제란 인심을 쓰게된다.

필자는 아직도 전국을 누빌수 있기 때문에 면제받지 못한다. 만악의 근원인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보안관찰법 폐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 국가보안법에 가려 보안관찰법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대중들이 많이 있다. 이 시대에 보안관찰법이 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대중들도 많은 것이다.

하기야 14년 동안 청주보안감호소가 있어도 간판조차 달지 않고 있으니 청주보안감호소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대다수였을 것이다.

필자는 1989년 석방된 후 환영대회에 참가했다 해서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연행되어 조사받고 일년후에 기소유예처분을 받았었다.

그 때 내가 맨처음으로 보안관찰법위반을 받았었다. 지금 같으면 문제될 것 없지만 당시에는 매일 감시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리승만 박정희 정권시대는 일찍 나온 동지들이 서로 만나거나 감옥에 면회를 가면 무조건 2-3년씩 형을 받아 살기도 해서 비전향 장기수들이 석방되어서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었다.

1991년 10월 6일에 결혼을 했으나 뒤풀이 장소를 알리는 벽보를 붙이었으나 못찾아오게 이도 떼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필자는 2000년도에 유럽 부룻셀에서 조선에 대한 인권법이 상정되어 이를 파탄시키기 위하여 한상렬 통일연대 위원장을 중심한 80명이 갔었다. 그 때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에 기다리고 있는데 뉴라이트 족속들이 찾아와 “김정일” 어쩌고 하는 육두문자를 쓰고 난리를 자행했었다.

갔다와서 뉴라이트족속들을 규탄하는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를 보고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본 결과 소년 빨찌산 출신임을 알고 공안에 고발했다.

그리하여 불려다가 조서를 받았으나 구속은 되지 않고 집행유예를 받고 자격정지를 받은 사실이 있는데 내용은 “김일성 주석을 수령님”이라 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장군님“이라 하고 맥아더 동상을 파괴해야 한다고 한 것에 고무찬양죄를 적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해외에 나갔다는 것을 보안관찰법위반이라 해서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 위반을 경합시켜 집행유예를 받게 된 것이다.

그 후 20012년도에는 범민련 노수희동지가 장군님의 100일 탈상을 맞아 조선에 올라 갔다가 판문점을 통해 내려왔는데 징역 4년을 살고 출옥했다. 그때 나는 경기경찰청 보안대에 압수 수색을 당했다.

압수수색영장을 보니. 1) 노수희동지 북상한 것과 관련된 자료가 없는가이고 2) 당시 왕재산 사건에 관련자료가 없는가이고 3) 필자가 전국을 돌고 하니 어떤 조직포치의 자료가 없는가 였다.

그때 심지어는 식당에서 인천 젊은 친구와 식사하는 것도 사진찍은 것이 조서에 남아있었다. 맨 꽁무니 따라다니며 감시했다는 징표이다.

그 때 300여점을 압수해 갔지만 대법까지 가서 집행유예와 자격정지를 뱓았지만 압수물중 '세기와더불어'와 범민련 소식지와 팜플렛만 압수당하고 나머지는 다 찾았다.

그리고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필자 이메일, 통장, 전화와 핸드폰 등 각종 인터넷을 압수수색을 당한 것을 2018년도에 통보해주어 알게 되었다.

그만큼 감시를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몰래 감시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할테면 맘대로 하라 하고 내 건강이 허락하고 있는 한 내 할 일은 죽을 때까지 한다는 신념으로 변함없이 행동하고 있다.

2023년 5월 30일 필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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