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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백절불굴의 애국투사인 최석기동지를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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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5-13 00:19 조회2,5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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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백절불굴의 애국투사인 최석기동지를 회고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최석기동지는 함경도에서 1931년 10월 24일에 출생했다.

최동지는 1949년에 강동정치학원에서 교육 받았다.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때 인민군 대위로 근무하다가 1953년에 제대하여 조국통일사업에 동원되었다가 1953년 12월 30일에 적들에게 체포되었다.

재판에서 무기형을 받고 대전 감옥 특사인 4사에서 비전향으로 투쟁하다가 1974년에 새로 개설된 제 2 살인 병사에 집어넣고 살인깡패재소자 조돈웅 등 2명을 한방에넣어서 무지막대한 고문구타를 자행했다.

결국 전향을 거부하니 국방색 담요를 뒤집어 씌워놓고 바늘로 찔러죽였다.


죽인 건이 사건화 되어 찔러 죽인 돈웅소제를 교무과에서 고발하겠다고 했다 한다.

그러나 돈웅 깡패는 교무과장이 시켜서 했다고 항거하니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당시 중앙 정보부에서도 알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15척 담벽 안에서 밥이 끓는지 죽이 끓는지 모르는 암흑세상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죽여도 글자 몇자로 써서 상부에 보고하면 그뿐이었다.


오늘날 진실위 조사에서 그 만행의 진상이 들어나고 있지 않는가.

최석기동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는, 과거 국가인권위서 저들의 전향말살책에 거부하다가 희생된 청주 보안감호소에서 김용성선생과 변형만선생, 대구감옥에서 손윤규선생, 대전감옥에서 최석기선생과 박융선 선생등 5명을 제기하여 확정 통고를 받고 이분들의 죽으이 사상 전향제도를 철폐시켰다는 점에서 민주화 운동에도 관련이 있다고 하여 보상심의 위원회에 제기했었다.

그러나 당시 조중동이 어찌하여 빨찌산이나 소위 간첩이 민주화 운동자가 될 수 있는가 라고 대서특필하자 색깔론에 몰릴 것에 두려워 모두 부결표를 던져 기각되고 말았다. .

그후 민사소송도 못해 지금껏 국가는 사죄 한마디 없다.

그래서 국가가 살인은 한 것은 분명한데 죽음에 대한 배 보상이 전혀 없다. 사죄는 커녕 세월만 흘러가면 그만이라는 것밖에 없으니 미제를 몰아내고 그의 주구인 윤석렬 등 폐거리들을 몰아내야 해결되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때 시신은 어떻게 처리 했는지 박융서동지와 함께 알아 보고 있는 중이다.


불굴의 애국투사인 최석기 동지시여!

동지의 생애를 평가할 때 위대한 조국 해방전쟁에서나 제대후 조국통일 공작 사업에나 치열한 싸움에서 불행하게도 적들에게 체포되어 무기형을 받고 옥중 투쟁속에서 극악한 전향말살책을 불굴의 신념으로 지킨 영웅적인 희생은 옥중투쟁사에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동지의 투쟁 경험과 교훈은 우리 후대들에게 산 역사적인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늦게나마 이젠 모든 것을 후대들에게 맡기고 조국통일의 길 위에서 영생하기 바랍니다.


2023년 5월 11일 필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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