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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김중산] 고 노길남 박사를 추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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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5-05 07:40 조회2,5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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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고 노길남 박사 서거 3주기 추모 모임에서 노 박사를 추모한 김중산 선생의 추모사를 싣는다. [민족통신 편집실]


고 노길남 박사를 추모함

글: 김중산 객원 논설위원





제가 노길남 박사와 알고 지낸 지는 햇수로 한 37년쯤 됩니다만, 언젠가 대표적 친북인사로 알려진 노박사와 어울리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긴 어떤 분이 저의 ‘국가 정체성’이 뭐냐고 묻길래, 제가

“백두에서 한라까지 나의 조국은 하나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통일보다 나은 분단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 국가 정체성”이라고 답한 기억이 오늘따라 노박사의 생전 모습과 오버랩 되어 더욱 오롯이 떠오릅니다.


존경하는 현준기 옹의 추도사에 이어, 멀리 시카고에서 오신 오영칠 선생과 시애틀에서 오신 강산 선생 등 여러분들께서도 한평생 분단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고 노길남 박사의 숭고한 삶을 기리는 절절한 말씀들을 해주실 것이기에, 저는 고인의 삶에 대해 더 부연하지 않고 다만 생전에 산을 오르내리며 그와 나눈 많은 얘기들 중 단 두세 가지만 짧게 말씀드리고 물러가겠습니다.


3년 전, 그러니까 노박사가 입원하기 2주 전쯤 산행 때, 아무도 예기치 못한 영원한 이별이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도 모른 채 고인은 저에게 확신에 찬 어조로 “중산이 형, 나는 앞으로 20년은 더 살 자신이 있는 데 형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래 제가 “글쎄, 솔직히 난 노박사처럼 그렇게 오래 살 자신이 없어. 요즘들어 부쩍 사람들이 “내 나이가 어때서” 어쩌구 하며 백세인생을 노래하지만 신문에 나는 부고 기사를 보면 많은 이들이 대체로 85세를 전후해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떠나가는 걸 보면 난 앞으로 한 5,6년 정도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노박사, 아무래도 내가 먼저 갈 것 같으니까 내가 죽거든 꼭 노박사가 민족통신에 나에 관한 부고 기사를 멋지게 써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저의 소천을 알리는 기사를 써주기로 약속한 노박사를 먼저 보내고 오늘 이렇게 그를 추모하는 말을 하게 되다니 참으로 허망하고 억장이 무너집니다.


노박사와 저는 불과 두살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많이 부족한 저를 늘 ‘형’이라 살갑게 불러줬습니다. 그점 매우 고마웠고 잊지 못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노박사는 다혈질에 직설적인 성격이라서 사람들과 곧잘 부딪쳤습니다. 눈에 거슬리면 참는 대신 그는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냅다 들이 받곤 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왜 그렇게 싸우느냐고 물었더니 계면쩍은 표정으로 잠시 침묵한 뒤 “내 성격이 지랄 같아서 그래요”라고 합디다. 저는 그런 노박사와 단 한번도 크게 싸우지 않은 행운을 누린 몇 안 되는 사람중의 하납니다.


고인에 대한 세간의 평이 어떻든 제가 곁에서 지켜 본 노박사는 사나운 싸움닭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심성이 아주 여리고 가식이나 위선을 모르는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역시 산행중에 노박사와 저희 민족산우회 한 회원 간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화를 참지 못한 노박사가 말릴 겨를도 없이 육두문자가 섞인 거친 말로 그를 매섭게 닦달했습니다. 며칠 후 산에서 그와 다시 만난 노박사는 그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비오듯 흘리면서 일전에 자기가 잘못했다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사과 하기도 쉽지 않거늘 하물며 바보 같은 눈물까지 보이다니, 저는 그의 그런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에서 마치 시인 천상병의 환생을 보는 듯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과는 아무나 못 합니다. 사과는 용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비겁하고 뻔뻔한 사람은 사과할 줄 모릅니다. 아니 절대 안 합니다.

예컨대 ‘살인마 전두환 옹호 발언’을 사과하라니까 사과(Apology) 대신 사과(Apple)를 입에 문 ‘개사과’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국민을 조롱하는가 하면, 귀가 어두운 저 같은 사람이 들어도 분명히 ‘바이든’이라고 말해 놓고는 ‘날리면’이었다며 사과는커녕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 놓는 후안무치한 ‘윤가’를 보십시오. 우리 노박사와 극명하게 대비되지 않습니까? 물론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지만 말입니다.


끝으로 하나만 더 얘기하고 끝내겠습니다. 언젠가 노박사가 산행중에 젖은 목소리로 저에게 “형, 혹시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알아요?”라고 물었습니다. 노래라면 뽕짝에서부터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거 빼고는 거의 다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 누구나 다 아는 뻔한 걸 묻다니_ _ _. 저는 노박사가 틀림없이 도니체티의 오페라 아리아 ‘사랑의 묘약 중’ Una Furtiva Lagrima “남몰래 흘리는 눈물”에 대해 묻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숨어 우는바람소리처럼 남몰래 흘리는 자신의 눈물을 말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아프고 못 견디게 괴로울 때면, 그는 집 근처 공원을 거닐면서 마음 없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남몰래 울었습니다. 분단 이후 오랜 세월 세뇌된 치명적인 마약과도 같은 반공 논리에 중독이 된 나머지, 남들처럼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을 모두 내려 놓고 오로지 한생을 분단조국의 평화 통일을 위해 목숨 걸고 헌신해온 자신을 빨갱이라 매도하고

끊임없이 핍박하는 주변 사람들의 편견과 냉대가 뼈에 사무치게 서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가 눈물을 흘릴 때 그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그런 줄도 모르고 무심코 지나친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노박사. 우리 혼백이 되어서라도 먼훗날

통일조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눈물로 빕니다.


김중산 (04/2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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