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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금선사에 안치된 신념의 강자 동지들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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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9-16 15:29 조회2,3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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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묘소답사반이 2022년 8월 28일에 답사한 서울 금선사에 우리 동지들 20명이 안치되어 있으며 동지 부인들이 3명이 안치되어 있다." 비전향장기수 김영승 선생이 동지들의 묘소를 찾아 애국자 동지들의 간고했던 투쟁의 삶을 회고하며 기록을 남기는 가운데 서울의 금선사에 안치된 동지들을 찾아 올린 글 제9신부터 마지막을 이어서 싣는다. [민족통신 강산 기자]



(제 9신) 

그리운 송세영 동지를 그리면서


송세영동지는 1931년 2/7일에 충남 논산 연무읍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한학자이신 부친으로부터 수학 국문을 공부하여 문학전집 등을 익히기도 했다.

1946년부터 논산 대건중학교에 입학하여 민주학생연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그후 체포되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1950년에 복학했으나 전쟁으로 인하여 인민군에 의한 해방으로 민주청년 동맹에서 조직사업을 했다.

그해 9월 28일 후퇴로 말미암아 대둔산에서 빨찌산 통신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1951년 적들의 동기 공세에 의해서 지리산으로 이동하였다가 1952년 1월에 전북 장수 백운산에서 체포 당하였다.

리승만의 특별조치령으로 15년 선고를 받고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후 대전을 비롯한 여러 감옥을 거쳐 1967년에 만기 출옥하게 되었다.

출옥 후 결혼하여 자제 둘을 낳기도 했다.

1989년부터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에서 맹렬한 활동을 전개하여 2011년에는 양심수 후원회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2000년부터는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임인 통일광장에도 가입하여 사회진보와 자주통일 사업에도 맹활약을 하였다. 특히 전적지 답사에 총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감옥 후유증으로 청각 1급 장애인 등급을 받기도했다.

송세영동지는 감옥 후유증으로 4월 초순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마지막 퇴원해서 자택에서 우리 곁을 떠나고 마는 아픈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그리운 송세영 동지이시여!

동지의 일생은 조국해방 전선투쟁에서 혁혁한 빨찌산 통신 연락원으로 투쟁 전사답게 투쟁했으며 출옥 후 마지막 생을 다할 때까지 한치의 흔들림 없이 맹렬한 활동 경험과 교훈을 우리 후대들에게 교훈으로 남기었습니다. 이젠 모든 아픈 시름을 다 잊으시고 조국통일의 길 위에서 영생하기 바랍니다.

생존한 사모님과 아드님들은 부친의 염원을 잊지 않고 잘 생활 하고 있으니 안심하기 바랍니다.

유분은 서울 금선사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2022년 9/28일 전국묘소 답사반 일동 올림.







그리운 맹기남 선생을 그리면서


맹기남 선생은 1921년 7/23일 함남 연흥군 삼흥면에서 출생했다.

1936년에 윤흥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일찍부터 금광 기계공업 종사중에 1940-42년에 서울 영등포 기계조립공장에 종사했다.

1943-45년에 원산 조선소 기계조립영업에 종사했다.

1950년 전쟁 날 때까지 원산 도로 시설 사업 기계조립 계장을 했다.

1953-55년까지 내각 중공업성 금속공업관리소 부원장을 했다.

1958년 8월에 중앙당에 소환되어 남녘에 내려오다 의정부에서 경찰에 체포 당하여 무기 선고를 받았다.

1988년 12월 21일에 사면으로 출옥하게 되었다.

출옥 후 사회복지시설에 기거했다가

1994년에 대구 갱생 보호소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2001년 2월 4일에 제2차 송환을 요구했는데 1/17일에 노환으로 익산에서 입원 했으나 폐렴으로 25일에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고 마는 아픈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가족으로는 사모님과 아들 인성과 맡딸 인옥을 두었다.


그리운 맹기남선생이시여!

선생의 일생은 기계조립공의 전문가로서 조국의 건설사업에 혁혁한 발자취를 남기었으며 조국통일 전선사업에서 우여곡절은 있으나 초심을 잃지 않고 마지막 생을 마감하였다는 것은 우리 후대들에게 더없는 경험과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젠 모든 아픔과 시름을 다 잊으시고 조국통일의 길 위에서 영생하기 바랍니다.

자제들은 선생의 참 뜻을 이어받아 잘 살아나가고 있으니 안심하기 바랍니다.

유분은 현재 서울 금선사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2022년 8월 28일 전국묘소 답사반 일동




(제10회 금선사 마지막) 

그리운 박종린동지를 그리면서


박종린동지는 1933년 3월 14일에 중국 길림성 훈춘현 안석촌에서 5형제 중 4째로 출생했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고국에 돌아와 함북 경원군 안동면으로 이주 하게 되었다.

1947년 7월에 경원군 안동중학을 졸업했다.

1950년 9월에 만경대 유자녀 학원을 졸업을 한 후 인민군에 자원 입대하여 오백룡 사단에 편입되었다.

위대한 조국해방 전쟁 중 낙동강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였다.

1951년 12월에 화선 입당하여 조선 로동당 당원이 되였다.

1958년에 결혼하여 59년에 맏딸인 옥희를 낳았다. 1959년 6월 20일부터 연락통신책으로 활동했다 (당시 인민군 소좌였다).

박종린동지는 1959년 12월 29일에 적들에게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 감금되었다.

1960년 10월 28일에 모란봉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형을 받았고, 61년 2월18일에 대법에서 무기로 확정되어.장기형을 감옥에서 살게되었다.

박동지는 1976년에 대구 감옥 공장에서 “붉은 별”조직 건으로 무기형을 받아 쌍무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공장에서 북쪽 방송을 듣는 건이었다)

박종린동지는 1993년 12월 24일에 병보석으로 출옥했다.

1994년- 2000년 9월까지 무안해제중학교 매점에서 근무했다.

부인은 김일성 종합대학교수였으나 종린선생이 신념의 고향으로 올라오지 못한 점에 충격을 받아 쓰러져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종린동지는 금강산도, 평양도 갔으나 먼 발치에서 다만 딸의 얼굴은 보았으나 만나지는 못했다. 그 심정 이해가 간다.

박종린동지는 무안에서 서울로 올라와 홍익대 중고등부 매점에서 근무했으며 민족21 독자 사업부에서 근무도 했다.

박종린 동지는 통일광장,범민련 고문으로 마지막 생을 다 할 때까지 최선을 다했다.

박종린 동지는 인천 부평에 살면서 옥고의 후유증으로 대장암에 결려 인천 사랑병원에서 2021년 1/26일에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고 마는 아픈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당시89세)

그리운 박종린 동지시여!

박동지의 일생을 통에 볼 때에 항일 혁명가의 아들로서 태어나 해방된 조국의 혁명유자녀 학원 출신은 우리 동지들 중 금재성동지와 박동지 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63명이 신념의 고향으로 갈 때 올라가지 못함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옥희 따님의 모친이 그렇게도 기다렸던 현실적인 꿈이 절망으로 쓰러져 운명했다는 소식은 우리 모두의 슬픔과 분노의 장이 되었습니다.

동지들은 일생에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 확고한 현실임을 실감하면서 우리 후대들은 교훈으로 삼아야 될 것입니다.

박종린 동지는 말수가 적고 절실히 필요한 말만하는 고매한 도덕적 품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박선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간 인천에 사는 동안 자주 찾아 뵈었으며 도움을 그리 많이 주지 못했음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젠 모든 아픔과 시름을 다 잊으시고 조국통일 위의 길에서 영생하기 바랍니다 .

가족은 옥희씨 단하나 있습니다.

유분은 금선사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참고 @@ 금선사에 안치된 우리 동지들 마지막 분입니다.





앞으로 5-6분이 남아 있는데 금년 중 찾아가 참배를 다 끝내고 책으로 출판하여 우리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후대들이 바톤을 이어받아 참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한 것임을 이해하고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2022년 8월 28일 전국묘소 답사반 일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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