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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점령군 철수, 친미예속군대 와해, 친미부역정권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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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21-08-22 20:16 조회4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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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점령군 철수, 친미예속군대 와해, 친미부역정권 붕괴


*글 : 한호석 박사(통일학연구소 소장)


*사진은 필자


<차례>


1. 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현대사

2. 이슬람학생의용군이 미국군을 이겼다

3. 미국군이 자행한 잔악한 전쟁범죄

4. 철군협상과 조기철군론

5. 미국 국방부가 조기철군을 반대한 이유

6. 철군 직후 아프간무장군이 순식간에 와해된 원인



1. 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현대사


2021년 8월 15일 세계를 놀라게 한 사변이 일어났다. 장장 20년을 끌어온 아프가니스탄전쟁이 피묻은 막을 내린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3,7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남아시아의 내륙국가다.


그런데 20년 전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탈레반정권을 전복시켰을까? 이 물음은 사람들의 시선을 복잡다단한 아프가니스탄 현대사에로 끌어당긴다.


1973년 모하메드 다우드 칸(Mohammed Daoud Khan) 수상은 모하메드 자히르 샤(Mohammed Zahir Shah) 국왕이 통치해온 아프가니스탄왕국을 전복시키고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을 수립했다. 1975년 국가혁명당(National Revolutionary Party)을 창당한 모하메드 다우드 칸은 진보정당을 탄압하고, 반공로선을 추구했다.


1965년에 창당된 인민민주당(People's Democratic Party)은 1978년 4월 27일 혁명을 일으켜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을 전복시키고 아프가니스탄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인민민주당정권은 지주가 빈농을 옭아맨 모든 빚을 전액 탕감했고, 토지개혁과 문맹퇴치를 실시했으며, 봉건적 결혼제도를 폐지하고 여성의 권리를 보장했으며, 소수족의 권리도 보장하는 등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힘썼다. 그러나 인민민주당정권이 수행하는 민주개혁은 이슬람수구세력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슬람수구세력은 1978년 10월 민주개혁을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인민민주당정권과 이슬람반란군의 충돌이 격화되어 내전이 일어났다. 내전에 휘말린 인민민주당정권은 소련과 체결한 우호협력조약에 의거하여 소련에 무력개입을 요청했다. 1979년 12월 27일 소련은 우호협력조약에 근거하여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개입했다.


그러자 백악관이 발끈했다. 반소감정을 품은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ames Earl Carter Jr.)는 소련에 대항하여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개입하고 이슬람반란군을 지원하라는 비밀지령을 중앙정보국(CIA)에 내렸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소련의 우호관계를 단절시키고, 인민민주당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이슬람반란군에 막대한 분량의 무기를 대주면서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불법 개입했다. 그처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불법적으로 개입했으면서도, 아프가니스탄과 맺은 우호협력조약에 근거하여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합법적으로 개입한 소련의 군사행동을 무력침공이니 뭐니 비방하면서 반소선동에 열을 올렸다.



▲ 이 사진은 1978년 4월 27일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이 혁명을 일으켜 다우드정권을 전복시킨 싸우르혁명(Saur Revolution)의 승리를 축하하는 전투원들이 붉은기와 무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이다. 당시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싸우르혁명을군사정변으로 폄하하였지만, 그것은 다우드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을 뚫고 궐기한 인민민주당이 혁명의 편에 가담한 군사지휘관들과 함께 일으킨 명실상부한 민중혁명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소련군은 인민민주당정권을 수호하고 이슬람반란군을 격퇴하기 위해 9년 동안 싸웠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1989년 2월에 철수했다. 그런데 1991년 12월 소련이 갑자기 해체되면서 인민민주당정권에 대한 소련의 지원이 중단되었다. 그렇게 되자 내전으로 지친 인민민주당정권은 존망의 위기에 빠졌다. 인민민주당정권은 미국의 군사지원을 받은 이슬람반란과의 내전에서 패하여 1996년에 붕괴되었다.


내전에서 승리한 이슬람반란군은 탈레반정권을 수립했다. 탈레반정권은 인민민주당을 강제해산하고, 아프가니스탄민주공화국을 전복시켰다. 그들은 사회정치생활 전반에서 이슬람 율법 샤리아(Sharia)를 실정법과 생활규범으로 강요하는 아프가니스탄이슬람추장국(Islam Emirate)을 수립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반란군이 정권을 탈취하여 이슬람추장국을 수립한 것은 반역사적인 봉건유제가 재생되고, 아프가니스탄의 민주적 발전이 가로막혔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2001년 10월 미국은 탈레반정권이 알카에다 국제테러단을 비호해준다고 주장하면서 이른바 반테러전쟁이라는 명목을 내걸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의 무력침공을 받은 탈레반정권은 붕괴되었고, 아프가니스탄이슬람추장국은 전복되었다. 미국은 자기들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에 친미부역정권을 세웠다. 친미부역정권은 1978년 인민민주당에 의해 전복되었던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을 복구했다. 지난날 이슬람반란군을 사주해 인민민주당정권을 붕괴시켰던 미국이 탈레반정권을 붕괴시키고 친미부역정권을 세운 것은 미국의 전략목표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는 데 있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무력침공을 받아 정권을 잃어버린 탈레반은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느꼈다. 미국과 탈레반의 20년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위에서 간추려 서술한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군주국⟶친미공화국⟶민주공화국⟶이슬람추장국⟶친미공화국⟶이슬람추장국으로 끊임없이 교체되어온 극심한 혼란과 굴곡의 역사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프가니스탄 민중은 1973년 이후 오늘까지 48년 동안 끝없이 밀려든 역사의 격류에 휩쓸려 목숨과 재산을 잃었고, 아프가니스탄의 도시와 산천에는 전쟁의 깊은 상처가 남았다. 만일 1978년에 민주공화국을 수립한 인민민주당정권이 민주개혁을 끝까지 완수했더라면, 그리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민중은 평화와 행복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현대사는 개인과 사회의 운명,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혁명과 전쟁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 이슬람학생의용군이 미국군을 이겼다


탈레반(Taliban)은 19세기 말 남아시아에 일어난 이슬람부흥운동을 계승한 집단이다. 탈레반 핵심세력은 이슬람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들(Talib)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1,400년 전에 제정된 이슬람 율법을 절대시하면서, 사회력사발전의 흐름을 중세기로 되돌리려는 반동적 수구세력이다. 그런 탈레반이 미국의 무력침공과 점령, 아프가니스탄의 미국화(Americanization)를 반대하여 반미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지난 20년 동안 지속된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미국군과 이슬람학생의용군 사이에서 벌어진 대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정식 군사훈련도 받지 못했고, 무기라고는 고작 소총과 유탄발사기밖에 갖지 못한 이슬람학생의용군이 핵무기와 첨단군사장비로 무장하고 세계 최강 군대로 자처하는 미국군과 20년 동안 싸워 결국 승리한 것이다. 학생의용군이 어떻게 세계 최강 군대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미국을 숭앙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어났다.


아프가니스탄 종전과정의 겉만 훑어보면 불가사의하게 보이지만, 속을 파보면 그것은 불가사의한 현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만 패한 것이 아니라, 패전경험을 이미 여러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전 세계를 지배하고 농락하며, 수많은 약소국들을 침략하고, 약소국들의 자원을 노략하는 거대한 제국주의패권국가로 등장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벌어진 미국의 5대 전쟁 중에서 걸프전쟁(1991)에서만 이겼을 뿐, 코리아전쟁(1950~1953), 윁남전쟁(1961~1973), 아프가니스탄전쟁(2001~2021), 이라크전쟁(2003~2010)에서 줄줄이 패했다.



▲ 이 사진은 탈레반 전투원들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그들은 정식 군사훈련도 받지 못했고, 무기라고는 고작 소총과 유탄발사기밖에 갖지 못한 이슬람학생의용군이다. 그런 탈레반 전투원들이 핵무기와 첨단군사장비로 무장하고 세계 최강 군대로자처하는 미국군과 20년 동안 싸워 결국 승리했다. 이런 전쟁경험은 전쟁승패의 결정적 요인을 무기의 질량적 우세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전투원들의 강인한 정신력에서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군이 이슬람학생의용군에 패한 아프가니스탄 종전과정을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더 있다. 이슬람학생의용군은 자기 조국을 침공한 제국주의침략군을 몰아내는 이슬람성전(聖戰) 지하드(Jihad)에 목숨 바칠 각오를 품고 끝까지 용감하게 싸웠지만, 물설고 낯선 외국에 쳐들어간 미국군 병사들은 자기들과 인연이 없는 이역에서 피를 흘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 제국주의침략전쟁에 끌려나간 미국군 병사들은 전투 중에 개죽음을 당하지 않고 파병기한이나 채우고 복귀할 생각만 했다. 그처럼 어영부영하는 미국군이 악착같은 이슬람학생의용군을 도저히 당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883억2,000만 달러(103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퍼부으며 무력침공과 강제점령으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이식시키려 했던 아프가니스탄의 미국화(Americanization of Afghanistan)는 물거품으로 끝났다.


다른 한편, 아프가니스탄 친미부역정권을 무장으로 보위하겠다던 아프간무장군(Afghan Armed Forces)은 어영부영하는 미국군보다 훨씬 더 한심했다. 아프간무장군은 미국군이 쥐어준 미국산 무기를 손에 들고, 미국군 교관들 밑에서 미국식 군사훈련을 받고, 미국의 국익을 위해 전선에 끌려나간 용병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은 아프간무장군을 유지하기 위해 850억 달러(100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부패하고 무기력한 아프간무장군은 교전이 시작되어 총성이 울리면 뒤로 돌아 뺑소니치기에 바빴으니, 악착같은 이슬람학생의용군을 도저히 당할 수 없었다.


이런 전쟁경험은 전쟁승패의 결정적 요인을 무기의 질량적 우세에서 찾을 게 아니라, 전투원들의 강인한 정신력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명백하게도, 아프가니스탄전쟁은 전쟁의 운명이 전투원들의 정신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리를 또 다시 입증해주었다.



3. 미국군이 자행한 잔악한 전쟁범죄


2001년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은 이슬람학생의용군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것임을 진작 알았으나, 전략적 오판에 빠져 ‘명예롭게 철수할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무려 20년 동안 저강도 전쟁(low-intensity warfare)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미국의 패전징후는 이미 오래 전에 나타났다. 아프가니스탄전선에 파병된 미국군은 학생의용군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약화되었음을 드러냈고, 제국주의침략전쟁은 반드시 패한다는 역사적 진리를 입증했으며, 전범국의 모습을 남김없이 노출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동안 얼마나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질렀을까? 2013년 10월 23일 미국 온라인매체 <GQ>에 실린 폭로기사에 따르면, 미국 공군 소속 무인정찰공격기 조종사 출신 브랜든 브라이언트(Brandon W. Bryant)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동안 무인정찰공격기를 원격조종하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민간인 1,623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그는 도이췰란드 언론매체와 대담하면서 “(무인정찰공격기에서 로켓포를 발사하려는 순간) 저격현장에 있는 어린아이를 (원격조종장치를 통해) 보고, 지휘부에 보고했으나, 지휘부는 ”그건 개 한 마리일 뿐“이라고 하면서 사살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미국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행한 전쟁범죄가 어찌 그 사건 하나뿐이었겠는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군은 무인정찰공격기에서, 공격헬기에서, 전투차량에서, 작전기에서 정밀유도폭탄과 정밀유도미사일을 발사하여 아프가니스탄 민중을 무참히 살해했다. 2017년 1월 5일 미국의 유명한 외교문제연구기관인 대외관계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미국군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수리아, 리비아, 예먼, 쏘말리아, 파키스탄에 퍼부은 정밀유도폭탄과 정밀유도미사일은 모두 26,171발이었는데, 그 가운데 1,337발을 아프가니스탄에 퍼부었다고 한다.



▲ 이 사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을 벌이는 미국군이 민간인들을 체포하여머리에 검은색 두건을 씌우고 두 손을 뒤로 결박한 채 어디론가 끌고 가는 장면이다. 점령군에게 체포된 그들은 아마도 고문을 당하거나 학살을 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20년동안 지속된 아프가니스탄전쟁 중에 미국군은 잔악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부터가 전쟁범죄다. 미국의 전쟁범죄로 아프가니스탄에서 14만7,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군이 발사한 정밀유도폭탄의 화염 속에서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민중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2018년 11월 8일 미국 브라운대학교 왓슨국제-공공문제연구소(Wat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nd Public Affairs)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이른바 ‘반테러전쟁’을 선포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48만~50만7,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 가운데서 민간인 사망자는 24만~26만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14만7,000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이런 통계자료는 미국이 제국주의침략전쟁 중에 얼마나 잔악한 전쟁범죄를 자행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14만7,000명을 살해한 미국의 잔악상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던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는 미국의 전쟁범죄를 조사하기 위한 수사권을 발동하기로 결정했다. 그랬더니 2020년 9월 2일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당시 미국 국무장관 마익 팜페오(Mike R. Pompeo)는 국제형사재판소가 감히 사법권을 발동하여 미국을 심판하려는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반발하면서, 미국의 전쟁범죄를 수사하려던 국제형사재판소 파투 벤수다(Fatou B. Bensouda) 검사장과 파키소 모초초코(Phakiso Mochochoko) 부서장에게 제재를 가해 그들의 해외여행을 제한하고 그들의 자산을 동결하며 협박을 들이댔다. 패악질도 그처럼 흉악한 패악질이 또 어디에 있을까. 만일 미국의 전쟁범죄가 재판과정에서 드러나면, 미국 대통령이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될 판이었으므로, 황급히 미국 국무장관이 나서서 패악질을 저지른 것이다.


미국이 침략전쟁을 도발하고, 점령지에서 전쟁범죄를 자행할 뿐 아니라, 자기의 전쟁범죄를 수사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패악질을 저지르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한국의 친미세력은 그런 미국을 마냥 숭앙하고 찬양하고 추종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불가사의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4. 철군협상과 조기철군론


2018년 7월 22일 중동의 소국 카따르(Qatar)의 수도 도하(Doha)에 있는 하마드국제공항에 미국인 중년녀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무부 남아시아-중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로 일하던 앨리스 웰스(Alice G. Wells)였다. 이튿날 그는 도하에서 탈레반 협상대표들을 직접 만나 비밀리에 철군협상을 시작했다. 거만한 미국이 야만집단으로 깔보는 탈레반을 상대하여 철군협상을 시작한 것은 머지않아 세계를 놀라게 할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징후가 아닐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2018년 7월 23일 도하에서 시작된 미국과 탈레반의 철군협상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저강도 전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미국이 그 전쟁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을 만큼 지쳐버렸음을 보여준 뚜렷한 징후였건만, 미국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기 모습을 언제나 허장성세로 은폐해왔기 때문에 당시에는 비밀협상의 시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전쟁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을 만큼 지쳐버린 미국은 탈레반을 상대로 하는 철군협상을 시작한 때로부터 3년이 지난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점령군을 철수했다. 점령군 철수는 친미예속군대를 와해시켰고, 친미부역정권을 붕괴시켰다. 20년 전쟁은 결국 탈레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으면, 탈레반을 상대로 벌인 철군협상을 좀 일찍 끝내고 진작 철수할 것이지, 왜 3년이 지나도록 시간을 질질 끌다가 황급히 도망쳐 나왔을까?


2019년 3월 8일 <뉴욕타임스> 보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탈레반 철군협상에서 양측은 미국군 철수문제는 합의했으나, 철군의 세부사항에서 견해차이를 좁히지 못했다고 한다. 양측의 견해차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당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점령군 14,000명 가운데 7,000명을 몇 달 안에 감축하고, 나머지 7,000명은 3~5년 안에 점차적으로 철수할 것이며, 철군일정을 탈레반에 알려줄 수 없다고 주장했고, 탈레반은 1년 안에 점령군을 전원 철수해야 하며, 철군일정을 자기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정을 보면, 철군협상에서 미국은 말이 되지 않는 억지를 부렸고, 탈레반은 상식적인 주장을 꺼내놓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9년 8월 2일 보도에 따르면, 2019년 8월 당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는 미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는 2020년 11월 3일 이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군 14,000명을 전원 철수하는 조기철군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주장했다고 한다. 미국 국무부도 조기철군을 주장했지만, 미국 국방부는 강하게 반대했다. 그렇게 되자, 조기철군을 주장하는 국무부와 조기철군을 반대하는 국방부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2020년 10월 11일 마크 밀리(Mark A. Milley) 미국군 합참의장이 미국 라디오방송 <NPR>과 진행한 대담에 따르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철군의견에 대해 “철군조건이 충족될 때” 철수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하며 사실상 조기철군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미국 대통령과 국무부가 조기철군을 주장해도 미국 국방부가 철군조건을 내세워 조기철군을 반대하면 철군시기가 몇 년 뒤로 미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 이 사진은 2019년 3월 미국과 탈레반이 카따르의 수도 도하에서 철군협상을벌이는 장면이다. 거만한 미국이 야만집단으로 깔보는 탈레반을 상대로 협군협상을 벌인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저강도 전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미국이 그 전쟁을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을 만큼 지쳐버렸음을 보여준 뚜렷한 징후였다.



5. 미국 국방부가 조기철군을 반대한 이유


미국 국방부는 왜 조기철군을 반대한 것일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 미국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려면, 엄청난 분량의 군사장비를 미국 본토로 다시 가져가거나 현지에서 폐기해야 했다. 미국 국방부가 주장한 철군조건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하던 군사장비를 미국 본토로 다시 가져가거나 현지에서 폐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군사기지들마다 가득 쌓여있는 군사장비를 전부 철수 또는 폐기하려면, 오랜 시간과 많은 예산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럴만한 시간도, 예산도 턱없이 부족했다.


2021년 6월 9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C-17 수송기 약 500대를 동원하여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군사장비 13,000개를 미국 본토로 철수했다고 한다. 이 수송기의 화물탑재중량은 77t이므로, 총 38,500t의 군사장비를 철수한 것이며, 평균적으로 수송기 한 대가 군사장비 26개씩 실어 나른 셈이다.


하지만 미국 본토로 철수하는 군사장비보다 현지에서 폐기하는 군사장비가 훨씬 더 많았다. 군사장비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본토까지 수송기로 실어 나르는 수송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현지에서 폐기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1년 5월 11일 미국 <합동통신(Associated Press News)> 보도에 따르면, 미국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본토로 철수하지 못하는 군사장비를 폐기하여 고철더미를 만들었는데, 아프가니스탄 현지의 고철판매업자는 아프가니스탄 전국에 있는 고철야적장들에 미국군이 폐기한 군사장비 고철더미가 가득 찼다고 말했다고 한다. 2014년 미국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부분적으로 감축되었을 때, 군사장비를 폐기한 고철이 176,000t이었는데, 그것을 고철시장가격으로 환산하면 4,650만달러(약 520억원)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감군과정에서 그처럼 엄청난 양의 군사장비를 폐기해야 했던 미국군이 이번에 전면적으로 철수하면서 얼마나 많은 군사장비를 폐기해야 하였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미국군은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폐기하지 않은 군사장비를 아프간무장군과 경찰에게 넘겨주고 철수했다. 2021년 8월 20일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군이 철수하면서 아프간무장군에 넘겨준 군사장비는 기관총 7,000여 정, 장갑수송차(Humvee) 4,700대, 수류탄 20,000발, 무인정찰기 및 작전기 200여 대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군이 철수하면서 아프간무장군에 넘겨준 막대한 분량의 미국산 군사장비들은 아프간무장군이 와해되는 바람에 전부 탈레반의 손에 넘어갔다.


2) 미국 국방부가 조기철군을 반대한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거류하는 미국 국적자들을 해외로 대피시키는 비전투원소개작전계획(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을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1년 8월 19일 미국 언론매체 <월스트릿저널(Wall Street Journal)> 보도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Anthony J.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은 2021년 7월 13일 한 편의 비밀전문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탈레반이 매우 빠른 속도로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미국 국적자들을 해외로 대피시키는 비전투원소개작전을 늦어도 8월 1일부터 시작해야 하며, 미국 국적자들과 함께 해외로 대피시킬 친미부역자들의 개인정보를 미리 수집해야 한다고 요청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는 그런 요청을 행동에 옮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 국방부는 비전투원소개작전계획을 갖지 못했고, 미국 국무부도 친미부역자들의 개인정보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이 사진은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전쟁이 탈레반의 무혈승리로 막을내린 직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서 미국 국적자들, 친미부역자들, 해외탈출자들이 미국군 수송기에 탑승한 장면이다. 비좁은 탑승공간에 사람들이 콩시루처럼 빼곡하게 몰려있다. 미국은 비전투원소개작전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수많은친미부역자들과 해외탈출자들이 공항진입로와 활주로로 몰려들어 항공기를 타려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국제공항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미국의 비전투원소개작전은 실패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지막 날이 왔다. 2021년 8월 15일 아침부터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 뒷마당에서 부랴부랴 문서를 소각하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대사관 청사에 걸려있던 미국 국기가 급히 내려졌다.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들은 대사관 앞마당까지 날아온 CH-47 치누크 헬기를 타고 하미드카르자이국제공항으로 허겁지겁 탈출했다. 원래 미국 국무부는 미국 국적자와 친미부역자 4,200명을 하미드카르자이국제공항에 집결시켜 8월 17일까지 민간항공기편으로 소개시키려고 했지만, 탈레반 전투원들이 8월 15일 오전에 카불 시내로 통하는 4대 도로를 모조리 차단하는 바람에 차량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헬기로 황급히 탈출한 것이다.


상황이 그처럼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탈레반 전투원들은 카불 도심으로 향하던 진격의 발걸음을 카불 외곽에서 잠시 멈추었다.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에 철수시간을 주기 위한 고의적인 행동이었다.


탈레반 전투원들은 2021년 8월 15일 저녁 카불 도심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행진해 들어가 대통령궁과 중요한 거점들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탈레반 전투원들이 대통령궁에 도착하기 직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아쉬라프 가니(Ashraf Ghani)는 아내와 보좌관 두 명을 데리고 황급히 헬기를 타고 해외로 도주했다. 2021년 8월 16일 <스푸트닉통신(Sputnik News)> 보도에 따르면, 아쉬라프 가니는 부정축재로 긁어모은 재물로 가득 찬 자루들을 헬기에 다 싣지 못해 자루 몇 개를 활주로에 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대통령이 해외로 도주한 직후, 하미드카르자이국제공항은 완전히 마비되어 민항기 운항이 중단되었다. 다급해진 미국군은 미국 국적자들과 친미부역자들을 군용 수송기에 태워 인접국으로 급히 실어 나르기 시작했으나, 혼란과 공포가 엄습한 상황에서 하미드카르자이국제공항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그래놓고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2021년 8월 18일 미국 국방부 출입기자단 앞에서 아프간무장군이 방어력을 가진 것으로 판단했었다느니,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11일 만에 붕괴할 것이라는 징후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느니 뭐니 하면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2021년 8월 19일 <CNN> 보도에 따르면, 미국군 합참본부 지역작전 부참모장 윌리엄 테일러(William D. Taylor)가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비전투원소개작전에 동원된 항공기가 하미드카르자이국제공항에서 시간 당 1대 정도 이착륙하고 있는데, 항공편으로 해외에 소개시키는 대피인원은 하루에 5,000~9,000명이라고 한다. 미국 국적자들과 친미부역자들을 그런 속도로 소개시키면, 비전투원소개작전은 오는 8월 31일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탈레반 전투원이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카불 진입로에서 진격을 몇 시간 동안 고의로 멈추어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들에게 탈출시간을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을 포위했더라면, 탈레반 전투원들과 미국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져 수많은 직원들이 인명피해를 입거나 인질로 붙잡혔을 것이다. 또한 탈레반 전투원들이 하미드카르자이국제공항을 공격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그 공항을 포위했더라면, 공항 일대에서 탈레반 전투원들과 미국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져 비전투원소개작전은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비전투원소개작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은 수많은 친미부역자들과 해외탈출자들이 공항진입로와 활주로로 몰려들어 항공기를 타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2021년 8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국민연설에서 카불 공항에서 진행되는 비전투원소개작전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그 결과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6. 철군 직후 아프간무장군이 순식간에 와해된 원인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종전과정에서 오판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전략적 오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국군이 철수하는 중에 탈레반과 아프간무장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프간무장군이 탈레반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몇 달 동안 버틸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미국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국군이 철수하는 중에 아프간무장군이 탈레반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몇 달 동안 버티기는커녕 아프간무장군은 전투를 벌이지 않았고, 그로써 내전은 재발하지 않았다. 철군은 종전이 아니라 내전을 불러온다는 오래된 ‘공식’은 아프가니스탄에 적용될 수 없었고, 아프가니스탄전쟁은 아프간무장군의 와해와 탈레반의 무혈승리로 신속하게 끝났다.


실제로 아프간무장군은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와해되었다. 아프간무장군은 전투를 포기했고, 따라서 인명피해도, 포로도 없이 조용히 와해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가이므로, 아프간무장군에는 해군이 없고, 육군과 공군만 있었는데, 총병력은 186,000명이었다. 미국군이 철수하면서 넘겨준 우수한 무기를 가진 아프간무장군 186,000명이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순식간에 와해된 것은 세계전쟁사에 특기할 경이로운 사건이다.


아프간무장군이 순식간에 와해된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집단적으로 투항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무기를 버리고 집단적으로 도주했기 때문이다.



▲ 이 사진은 2021년 7월 4일 국경지대로 퇴각한 아프간무장군이 인접국 타지키스탄으로 집단도주하는 장면이다. 미국군이 긁어모은 오합지졸인 아프간무장군은탈레반 전투원들과 맞서 싸울 전의를 상실한 채 미국군으로부터 넘겨받은 작전차량을타고 집단도주했다. 그렇게 되어 아프간무장군은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급속히 와해되고 말았다.


1) <뉴욕타임스> 2021년 8월 18일 보도기사는 아프간무장군이 왜 집단적으로 투항했는지를 알려준다.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미 3개월 전부터 항복하지 않으면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최후통첩을 각 지방의 부족장들을 통해 현지의 아프간무장군 지휘관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탈레반에 대한 반감이 가장 강하다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글란주(Baghlan Province)에 진입한 탈레반 군사지휘관은 그 지역 부족장 무하마드 잘랄(Muhammad Jallal)에게 전화를 걸어 “만일 아프간무장군이 항복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들을 죽이겠다”는 최후통첩을 그 지역의 아프간무장군 기지들에 전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런 최후통첩을 받은 아프간무장군은 탈레반과 몇 차례 항복협상을 벌인 끝에 군사기지 2개소와 전초기지 3개소를 고스란히 탈레반에 넘겨주었고, 모든 군사장비를 탈레반에 넘겨주고 자진해서 무장을 해제한 뒤에 뿔뿔이 흩어져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지난 몇 달 동안 전국적으로 아프간무장군에 대한 압박-설득병행전술을 펼치며 그들을 집단투항으로 유도했고, 따라서 탈레반 전투원들은 전투를 하지 않고 “번개 같은 속도로(with lightning speed)" 진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탈레반 전투원들이 압박-설득병행전술로 아프간무장군을 와해시켰음을 알 수 있다.


2021년 8월 18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2020년에 아프간무장군 전체 병력의 4분의 1이 제대했고, 그 자리에 신입병사가 채워졌다고 한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탈레반 전투원들의 압박-설득병행전술에 넘어가 집단투항하는 장병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2) 2021년 8월 16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수많은 아프간무장군 수송차량들이 인접국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가는 국경다리에 몰려들었고, 인접국 이란으로 넘어가는 국경도로에도 몰려들었다고 한다. 2021년 8월 17일 로씨야 통신사 <인테르팍스(Interfax)> 보도에 따르면, 아프간무장군 군인들이 탑승한 항공기 2대가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여 인접국 타지키스탄 서남부 쿨롭 공항에 비상착륙하였다고 한다. 또한 아프간무장군 군인들이 탑승한 항공기 1대가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여 인접국 우즈베키스탄 영공으로 무단진입했다가 우즈베키스탄 반항공군의 요격을 받고 격추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은 아프간무장군이 차량과 항공기를 타고 인접국으로 도주하였음을 보여준다. 차량을 타고 인접국으로 집단도주한 군인들은 중간급 장교들이고, 항공기를 타고 인접국으로 집단도주한 군인들은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이다. 이처럼 군사지휘관들이 자기 병사들을 버리고 해외로 줄행랑을 쳤으므로, 아프간무장군은 급속히 와해되었던 것이다.


점령군 철수, 친미예속군대 와해, 친미부역정권 붕괴가 한꺼번에 일어난 급변사태는 이번에 아프가니스탄 종전과정에서 처음 일어난 것이 아니라, 1973년부터 1975년까지 기간에 윁남 종전과정에서도 매우 유사한 형태로 일어났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점령군 철수, 친미예속군대 와해, 친미부역정권 붕괴가 또 다른 곳에서 유사한 형태로 일어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런 급변사태가 일어날 만한 곳은 어디인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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